◈ 87화 Chapter 20: 데우스 교단 (4)
「아모스의 이야기를 모두 다 들은 베른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데우스 교단이 이곳에 살고 있는 네 일족을 몰살시켰다?”」
「“맞아.”」
「그러나 베른에게서 들려온 대답은 아모스가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그래서?”」
「“……응?”」
「“단순히 약자라고 해서 늘 고결하고 정의로운 것은 아니지. 너희 검은 마탑 또한 다른 약자들을 유린하고, 핍박해 온 것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그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베른에게 기대했던 감정은 동정과 공감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너무나도 날카롭게 진실을 파고들고 있었다.」
「“그, 그건…… 우리 일족과는 관련이 없는 이야기야!”」
「아모스의 필사적인 항변에도 불구하고 베른의 표정은 여전히 변함없었다.」
「“하지만 한통속인 것만은 사실이지.”」
「“…….”」
「그녀는 더 이상 변명하지 못했다. 베른의 말이 변명조차 통하지 않는 정론임을 이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검은 마탑이 데우스 교단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더라면, 몰살당하는 것은 그들이 되었을 테니까. 때문에 데우스 교단을 단순한 침략자로 매도하기에는 지금껏 쌓아 온 검은 마탑의 그늘이 너무나도 어두웠다.」
「“……알았어.”」
「아모스는 그제야 현실을 자각했다. 백마를 탄 용사님이 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아름다운 공주였지, 마녀의 일족으로서 살아온 자신이 아니었다. 그렇게 그녀가 포기한 채로 힘없이 발걸음을 옮기려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목표가 어느 정도 비슷한 것도 사실이긴 해.”」
「어딘가 여지가 있는 것처럼 들리는 말. 그녀는 그러지 말라고 스스로 말하면서도 마지막 희망의 끈을 붙잡았다.」
「“그 말은……?”」
「“가는 길까지라면 함께 가 줄 수 있다.”」
「꺼져 가던 희망의 불씨가 다시금 타올랐다. 그녀가 베른에게 안기려던 찰나, 베른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망할…….”」
「“왜 그래?”」
「“아무래도 약속은 조금 미뤄야 할 것 같다.”」
「“이유가 뭔데?”」
「“제일 피하고 싶던 존재가 와 버렸거든.”」
「베른이 턱짓으로 가리킨 곳에 있는 것은 잔잔한 숲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주변의 나무가 순식간에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하며 썩은 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용사.”」
「썩은 길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것의 모습은 흡사 악귀와도 같았다. 하지만 베른은 그것의 정체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마왕…….”」
「“마, 마왕이라고?”」
「아모스가 경악했으나, 베른에게 그녀의 반응에 일일이 맞장구쳐 줄 여유는 없었다. 성검을 뽑아 든 그가 마왕의 앞에 마주 섰다.」
「“디오 녀석은 여기에 없는데? 유감스럽지만 잘못 찾아왔어.”」
「“……디오?”」
「무척이나 오랜만에 본 마왕의 눈동자는 예전과는 다르게 마치 속이 텅 빈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베른이 씁쓸하게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네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게 알겠군.”」
「“용사…… 죽인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그럴 거라면 디오 녀석을 찾아갔어야지.”」
「그와 함께 성검에서 뿜어진 빛과 마왕의 힘이 격돌했다. 악을 멸하는 힘과 모든 것을 파괴하는 힘이 마주치며 주변의 일대 지형을 바꿔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격돌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명백한 힘의 차이가 결국 베른 쪽에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크윽!”」
「안 그래도 힘의 차이가 명백한 상대에게, 멀쩡하지도 못한 몸으로 덤벼들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순식간에 베른을 향해서 마왕의 힘이 쇄도하려던 찰나, 하늘에서 갑작스러운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본 아모스가 경악하며 말했다.」
「“저게…… 뭐야?”」
「그와 함께 하늘 위에서 떨어져 내린 거대한 화염이 순식간에 마왕의 몸을 덮쳤다. 그 광경을 바라본 베른이 이때다 하며 아모스를 안아 들며 외쳤다.」
「“튀어!”」
* * *
그리고 나타난 광경은 언젠가 한 번 본 적이 있는 싸구려 재난 영화에서나 볼 법한 것들이었다.
구멍 난 하늘과 솟구치는 화염.
비명을 지르는 수많은 사람과 무너져 내린 건물.
부모를 잃고서 울부짖는 아이.
지옥이 있다면 이곳이었고, 평범한 사람은 퍼져 가는 공포와 혼란만으로도 패닉에 빠지기에는 너무나도 충분한 광경이었다.
물론, 내가 이 정도까지 했는데 명색이 신이라는 녀석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구세주가 나타난 것일까. 갑작스럽게 하늘에 드리운 먹구름 속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기적이었다.」
그와 함께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 비가 번져 가던 불길을 잡기 시작했다.
몸에 불이 옮겨붙어서 발버둥 치던 사제가 감격하듯이 외쳤다.
“오오…… 신이시여!”
“신께서 우리를 돌보고 계신다!”
하긴, 자기 앞마당에 대놓고 이렇게 깽판을 쳐 놓는데 주목하지 않을 리가 없긴 했다.
하지만 폭격에 대한 대항책이 고작 비뿐이라는 건, 지금 상황에 대해서는 녀석조차도 딱히 방법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적어도, [개연성]과 그것을 지적하는 독자들이 있는 한 말이다.
「밀덕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네이팜탄이 고작 비 몇 방울에 꺼지는 것이 말이 되냐며 [설정 오류]를 지적합니다!」
「[개연성]이 요동칩니다!」
「어긋나 있던 [개연성]이 회복되며, 전소했던 모든 불꽃이 다시 타오릅니다!」
“끄아아악!”
“시, 신이 우리를 버렸다!”
“누구냐! 감히 신을 모독한 녀석은! 지금 당장 내가 목을 베어 주마!”
제법 호기롭게 외친 사제였으나, 그에 대한 대답은 이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린 불꽃들이었다.
“끄아아아!”
“누, 누가 물 좀!”
“시, 신이시여!”
간절한 외침이 마침내 닿았을까. 이내 또 다른 글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점점 거세지기 시작한 비바람은 이내 폭풍우로 변해서, 힘차게 내렸다.」
그와 함께 내리던 빗방울이 점점 더 굵어지더니, 이내 몰아치기 시작했다. 작가 놈의 말마따나 폭풍우처럼 말이다.
세차게 몰아치는 폭풍과 함께 상황은 이대로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가 이 상황을 이대로 그냥 넘어갔다면 말이다.
“두 번째, 시작해.”
그리고 다시 한 번 하늘에서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폭격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처음의 폭격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는 스케일로.
쐐애애애앵-.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파공음이 사방에 울려 퍼지고, 저 멀리서 버섯구름이 보였다. 그와 함께 후폭풍이 몰아치며 일대를 덮치기 시작했다.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열풍에 휩쓸려 나가는 성직자들과 기사들.
이제는 정말로 말 그대로 지형이 바뀌기 직전의 순간이었다.
「데우스교의 본단이 붕괴합니다!」
「본단의 붕괴로, 데우스 교단의 신앙이 크게 약화됩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클리셰가 붕괴합니다!」
「클리셰 붕괴율: 5.01%」
지금까지 해 왔던 일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압도적인 붕괴율.
이것은 정말로 내가 녀석에게 크게 한 방 먹였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파생되는 효과는 단순히 그뿐만이 아니었다.
「클리셰 붕괴율이 일정 수치를 초과하여, 일부 법칙이 붕괴합니다!」
「흔들림이 없었던 절대적인 신앙에 대한 믿음이 사라집니다! 새로운 다신교가 등장합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경계가 모호해집니다! 일부 지역에서 망자들이 등장합니다.」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뜹니다.」
척 보아도 심상치 않은 현상들.
말 그대로 이 세계가 막장으로 다다르고 있다는 큰 증거였다.
‘이만 이곳을 떠야겠군.’
지금까지는 [행운]을 계속 매수하며 버티고 있었지만, 이미 목적을 이룬 마당에 굳이 위험과 소모를 무릅쓰고서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을 필요성은 없었다.
‘어차피 아쉬운 놈이 찾아오겠지.’
그렇게 내가 슬슬 이곳을 떠나려던 순간.
「관리자의 권한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작품이 비공개 처리됩니다!」
‘……이것 봐라.’
그리고 일어난 일은 지금까지 내가 저지른 일에 비하면 비교적 심플했다.
그저, 멈췄다.
타오르던 불길도, 비명을 지르던 사제들도 모두 다 멈췄다.
물론, 그러던 와중에도 멈추지 않는 것은 한 가지 있었다.
「이제 그만 둬라.」
어느새 눈앞에 작게 써 내려가는 글자들.
이곳에서의 깽판에 대해서 큰 충격이라도 받은 걸까.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녀석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대화를 시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내 대답은 당연히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내가 왜?”
협상의 기본은 양보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이 있을 경우의 이야기. 이미 한낱 복수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녀석에게 내가 원하는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너는 이미 도를 넘어섰어. 이러한 행위는 결국 네 파멸만을 부를 뿐이다.」
뻔한 개소리.
꼭 제일 나쁜 놈들이 남 걱정해 주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자기 안위만 챙긴다니까.
굳이 그렇다면, 녀석이 절대로 들어주지 못할 요구 사안을 말하면 될 뿐이다.
“그래? 그러면 나를 집으로 돌려보내면 되겠네.”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순순히 돌려보내 줄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였을 리가 없겠지.
“협상 결렬이군. 정 막고 싶으면 지금 날 죽이면 되겠네. 마침 보는 눈도 없고 말이야. 한번 해 봐.”
내가 이토록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녀석은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현재 무려 10%를 넘는 [비중]이 있었고, 그것은 곧 이 세계에서의 지분이었다.
[독자]라는 존재가 있는 소설 속 세계인 이상, 녀석은 정당하고 합당한 [개연성] 안에서 나를 없애지 않는 이상, 나를 어쩌지 못한다.
「착각하고 있는 게 있구나.」
“무슨 개소리를 할지 기대되는데.”
「네가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것은, 너에게는 처음부터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말까지 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녀석이 몰릴 대로 몰리긴 한 모양이었다.
물론, 내가 순순히 수용할 리가 만무했지만 말이다.
“기대한 것보다는 제법 괜찮은 개소리였어.”
「역시 믿지 않는구나. 하지만 그 역시도 당연하다.」
“마음껏 지껄여.”
「세상을 편협하게 보고, 삐딱한 시선으로 비틀어 보는 것. 그게 내가 너에게 부여한 설정이니까.」
“꽤 자세히 관찰했는데? 관음증 환자도 아니고.”
「아인즈 반.」
녀석이 계속해서 써 내려갔다.
「의심 많고 머리가 좋은 너라면 이미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거다. 어떻게 일개 소설 작가인 내가 너를 이 세상 속에 가둘 수 있었는지. 아니,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을 거다.」
그 순간, 왜인지 모르게 서늘한 감각이 전신을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지금껏 놓치고 있었던 무엇인가에 대한, 그런 서늘함.
「너는 처음부터 그저 내 등장인물에 불과했다. 자신이 하차한 소설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설정을 가진 등장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