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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 이후의 소설 속-94화 (94/164)

◈ 94화 Chapter 22: 최종보스 (1)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연기, 붉게 충혈된 눈동자.

온통 붉은색으로 도배 된, 누가 보아도 결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디오의 모습이 말하는 바는 한 가지였다.

‘……무슨 일이 있었군.’

아마 시기는 데우스 교단에서 나와 헤어졌던 시기부터 지금까지 사이일 터.

‘교단인가.’

망할 작가 놈이 나에게만 수작질을 부렸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디오가 저렇게 변할 정도로수작질을 부렸다면, 모르긴 몰라도 누군가의 죽음에 버금가는 사건이 있었던 듯 했다.

“이제, 너도 빼앗길 차례야.”

그렇게 말한 디오가 향하기 시작한 곳에 있는 루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반인 반용의 모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찢겨 나간 날개의 흔적과 부러진 뿔은 그녀가 더 이상 반항할 힘이 없음을 말해 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미리보기]로 도대체 디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나에게 그런 시간적 여유는 허락되지 않았다.

“아자토스!”

[끼잇!]

“디오를 막아!”

그와 함께 디오를 막아선 아자토스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듬직한 모습이었으나, 왜인지 모르게 지금의 디오를 막아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정도로 지금의 디오에게서는 불길하고 흉악한 기운이 풍겨 나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속 시원하게 말해 주면 좋으련만.’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면 누가 고생을 하겠는가.

「쓸데없이 감수성이 풍부한 한 독자가 데우스 교단에서 일어난 불의의 폭격에 의해서 결국 고대정령 물을 잃고서 괴로워하는 디오의 모습에 큰 동정심을 품습니다!」

“…….”

어째 처음으로 도움 아닌 도움을 받은 것 같은 건 기분 탓이겠지.

「설명충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이에 대한 보충 설명으로 디오가 현재 원망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인즈 반’임을 추가로 설명합니다!」

‘……역시 그렇게 된 건가. 그렇다면 좋지 않다.’

본의 아니게 원인을 알아낸 것은 좋지만, 문제는 그 원인이 명백하게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점이었다.

‘당연히 작가 놈의 개입이 있기는 했겠지만…… 고작 그 정도로는 어느 쪽도 납득시키지 못한다.’

지금 와서 디오에게 ‘물이 죽은 것은 조금 안 됐지만, 내가 한 짓이 아니다.’라고 틀에 박힌 변명을 해 봤자 녀석의 분노를 더 일으킬 뿐. 당장 늘 해 왔던 것처럼 말 몇 마디로 이 상황을 타개하기에는 아무래도 상황이 조금 멀리 돌아와 버린 것 같았다.

[끼이이…….]

그 순간, 힘없는 비명을 내지른 아자토스의 몸이 서서히 흩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의 예상대로, 지금의 디오는 아자토스가 막아설 상대가 아니었다.

「등장인물, ‘아자토스’에게 [약한 놈 중에서 가장 강한] 속성이 추가됩니다!」

「등장인물, ‘아자토스’에게 [전투력 측정기] 속성이 추가됩니다!」

내 최후의 방패가 쓰러진 후, 무방비가 된 내 앞에 디오가 그 흉악한 기세를 온전히 드러냈다. 살이 절로 떨릴 정도의 그 압박감은 마치 마왕 같았다.

“……디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다 너 때문이었어. 키리엘이 죽은 것도, 물이 죽은 것도.”

자조적인 목소리.

그와 함께 디오의 손에서 뿜어진 붉은 안개가 서서히 내 목을 죄어오기 시작했다.

“나도 참 병신새끼가 따로 없어. 키리엘이 너 때문에 죽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마왕의 모습을 보고서는 죽지 않았다고 믿기 시작해 버렸어. 그게 너에 대한 원망을 어느새 거둬 버렸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물이 죽은 건 유감이다. 하지만 그녀도 네가 이러는 것은 원하지 않을 거다.”

이건 진심이었다.

물이 죽은 것은 전적으로 작가 놈의 농간을 예상하지 못한 내 책임이었다.

“감히 그 이름을 입에 담지 마라!”

“끅!”

「클리셰가 요동칩니다!」

“디오…… 네가 이러는 것 자체가 이미 신의 뜻대로 되는 거다.”

그러나 고작 말 몇 마디로 저 상태의 디오가 원래대로 돌아올 리가 만무했다.

“상관없어.”

「다수의 독자가 전례가 없던 위기에 처한 당신의 상황에 주목합니다!」

「당신의 행보를 지켜봐 온 한 독자가 당신이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지 기대합니다!」

“이거나 처먹어.”

그와 함께 내가 품에서 꺼낸 권총으로 디오의 관자놀이를 쐈으나, 그 후에 보인 광경은 어느새 디오의 이빨 사이에 물려 있는 총알이었다.

직접 보고도 믿기 어려운 광경.

이미 총이 이 세계에서 충분히 위협적인 무기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망할 괴물 놈.”

이제는 정말로 위험했다.

지금까지는 아군으로 삼았기에 잠시 잊고 있었지만, 녀석은 주인공.

결코 만만하지도, 준비 없이 함부로 적으로 두어서도 안 될 상대였다.

그때였다.

“그래…… 순서가 이게 아니지.”

무슨 변덕이라도 생긴 걸까.

그렇게 중얼거린 디오가 나를 저 멀리 내팽개치고는 어느새 쓰러져 있는 루에게 다시금 시선을 옮겼다.

흐릿해진 시야 사이로,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했지? 이번에는 네가 빼앗길 차례라고.”

「클리셰가 폭발할 듯이 거칠게 요동칩니다!」

그리고 일어난 일은 무척이나 빠르게 일어났지만, 한편으로는 슬로우모션처럼 느리게 보였다.

“……아.”

형편없이 뽑혀져 나간 뿔이 있던 자리에서는 붉은 피가 솟구치고, 이내 이어진 붉은 손길이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

주인공이라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

그러나 그 손은 너무나도 쉽게 그녀의 마지막 생명을 꺾어 버렸다.

마치 더 이상 주인공으로서 살지 않겠다는 듯이.

「[최종보스가 된 주인공] 클리셰가 발동합니다!」

「[주인공]에게 더 이상 [주인공] 버프가 발동하지 않습니다!」

「[주인공]에게 [최종보스] 버프가 적용됩니다!」

* * *

나는 지금껏 이곳에서 내가 무엇을 잃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잃는다는 감정은 이곳의 ‘나’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낯선 감정이었다.

“……루?”

왜일까.

그저 등장인물일 뿐일 터인데.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의 죽음이 쉽게 와닿지 않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바로 네 차례니까.”

그와 함께 흐릿한 시야 사이로 붉은색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이제는 주인공이기를 포기한 녀석이, 죽음의 사신으로 변해서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다수의 독자가 평소답지 않게 굳어 버린 당신의 모습에 고구마를 호소합니다!」

「당신의 행보를 지켜봐 온 한 독자가 이해할 수 없는 당신의 감성적인 모습에 이질감을 호소합니다!」

그래, 나도 안다.

지금의 내가 결코 나답지 못하다는 것쯤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도망이나 무슨 행동을 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무기력증에 빠져 버린 것이다.

‘……끝인가.’

왜인지 모르게, 이대로 죽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이대로 죽고 나면 이 빌어먹을 세계에서 한여름 밤의 꿈처럼 나갈 수 있을지.

물론, 어디까지나 그건 내 희망 사항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때였다.

“애송이!”

위기는 언제나 영웅을 부른다.

너무나도 진부하고, 상투적인 등장.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이미 너무나도 늦은 등장이었다.

“……베른.”

흐릿한 시야 사이로 보인 그의 모습은 결코 멀쩡하지 못했다.

여기저기 찢어지고, 상처 입은 그 모습은 얼마 전까지 멀쩡한 모습으로 헤어졌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필시 그에게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늦었어요.”

“미안하다.”

도대체 왜 사과를 하는 걸까.

평소였다면 꼬장꼬장하게 받아쳤을 베른이었기에 그 이질감은 더욱 컸다.

그리고 그의 기색을 살핀 나는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리안은 어떻게 됐죠?”

“내가 갔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시체를 확인했나요?”

“……그건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왜일까.

그 소식에 스스로 안도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태가 생각보다도 심각하다는 사실 역시도.

더 이상 넋 놓고 있을 틈이 없었다.

“어떻게 된 거죠?”

“나도 아직은 잘 몰라. 제도에 도착하니, 이 꼴로 변해 있더군.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말이야.”

그 느낌은 정확할 것이다.

정확히는, 내 시선이 닿지 않는 틈을 기다린 것이겠지만.

그때였다.

“내가 잡담 나눌 시간을 허락했던가?”

순식간에 나와 베른 사이를 스쳐 지나간 핏빛의 안개.

마치 경고처럼 휘둘러진 그 압도적인 힘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오직 죽음뿐이었다.

그 광경을 바라본 베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디오, 내가 운명에 먹히지 말라고 늘 경고했을 텐데.”

“그딴 거,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어.”

“형편없는 놈.”

내가 성검을 쥐고 나서는 베른에게 말했다.

“……디오는 강해요.”

지금의 베른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을 정도로.

“알아. 이미 한 번 당해 보기도 했고.”

‘역시.’

베른이 전신에 입은 상처가 설명되는 순간이었다.

“너무 걱정 마라. 예전처럼 쉽지는 않을 테니까.”

덤덤한 목소리였으나, 더없이 불길한 목소리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불길함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이내 베른의 그림자에 죽음이 드리웠다.

「[사망 플래그]가 요동칩니다!」

“자, 간다.”

성검에서 뿜어진 빛과 디오의 손에서 뿜어진 핏빛 안개가 한데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 * *

디오와 베른의 전투 양상은 마치 지난번 마왕과 베른의 전투가 떠오를 정도로 너무나도 일방적으로 돌아갔다.

“크윽!”

전신에서 피분수를 뿜어내는 베른의 모습은 누가 봐도 위험해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남은 생명을 이곳에서 불태우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디오! 네 스승에게 배운 게 고작 그게 전부냐!”

“……내가 아는 사람들을 들먹이지 마.”

“싫은데? 네 스승인 에단은 말이다…….”

베른의 생명은 마치 바람 앞의 촛불처럼 당장이라도 꺼질 것처럼 위태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마지막 불꽃을 불사르듯이 필사적으로 디오의 공격에 맞섰다.

“매일 너처럼 징징거렸어. 듣는 사람이 짜증 날 정도로 말이야.”

“그만하라고 했다!”

「[사망 플래그]가 거칠게 요동칩니다!」

그것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슨 수를 써야 한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베른의 죽음은 자명했다.

그렇게 되기 전에 무슨 수를 써야만 했다.

‘……그 방법뿐인가.’

지금 상황에서는 위험 부담이 너무나도 큰 방법이라서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으나, 이대로 베른의 죽음을 지켜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더 이상 누군가가 나 때문에 죽는 것을 지켜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개연성 무시]를 사용하였습니다!」

그 순간, 눈앞에서 일어난 빛이 사방으로 비산하기 시작했다.

“약속대로 네가 날 도울 차례야.”

그와 함께, 빛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지원군의 모습에 디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키리엘?”

“내가 했던 말 잊었어? 그 여자 아니라니까.”

가볍게 지나간 목소리.

그러나 그 목소리를 내뱉은 존재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얘기해 줄게. 사람들은 나를 마왕이라고 불러. 서쪽의 마왕, 그게 지금의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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