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Chapter 22: 최종보스 (2)
너무나도 당당한 마왕의 말에 디오가 씹어 삼키듯이 말했다.
“……웃기지 마. 넌 키리엘이 맞아.”
“내가 아니라면 아닌 거지, 말이 많아.”
마왕의 말에 디오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분명히, 마왕의 육체는 키리엘의 그것이 맞다. 이미 디오는 베른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껍데기에 들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나와 같은 하차자.
당연히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는 디오였기에 지금 그의 얼굴에는 대놓고 혼란이 드러나 있었고, 그 혼란에 대한 디오의 선택은 회피였다.
“……비켜.”
“싫은데.”
“네가 나설 때가 아니다.”
“그것도 네가 상관할 게 아니고.”
그와 함께 자연스럽게 디오의 앞을 막아선 마왕의 모습.
그 모습을 바라본 디오가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어째서 저 녀석을 지키려고 하는 거지? 저 녀석 때문에 네가 죽었는데!”
“죽기는 누가 죽어? 이렇게 번듯하게 살아 있는데.”
“말장난 치지 마!”
그 순간, 디오의 몸에서 폭발하듯이 붉은 핏빛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비키지 않겠다면, 힘으로 비키게 만들어 주지.”
그 힘에는 마왕조차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지,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 그 힘 뭐야.”
“능력껏 알아보던가.”
어느새 변한 디오의 태도에 마왕의 입가에 마치 악동 같은 미소가 걸렸다.
“장난 좀 쳤다고 그새 삐진 거야? 아무튼…… 쪼잔하기는.”
“마음대로 생각해.”
어느새 일말의 여유를 거둔 디오의 태도에, 마왕의 표정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게 구겨지며 살며시 나에게 시선을 옮겼다.
“어떻게 된 거야?”
“사정이 조금 있었어.”
마왕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중에 충분히 설명해야 할 거야. 아무래도 디오에게 듣기는 그른 것 같으니까.”
“당연하지.”
“그리고 이에 대한 빚 역시도 달아 둬. 아주 비싸게 받을 테니까.”
혹시나 그냥 넘어가나 했더니, 역시는 역시였다.
“알았다.”
결국 이렇게 됐지만, 지금 상황은 결코 좋지 못했다.
디오가 마왕을 죽이든, 마왕이 디오를 죽이든 상관없이 둘 중 하나만 일어나도 이 소설은 그대로 [완결]이었다. 절대로 그 상황만큼은 피해야 했다.
“죽지 마라.”
“걱정해 준 거야?”
“그럴 리가. 당연히 죽이지도 마.”
“그럴 줄 알았어.”
그렇게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마왕이 다시금 디오의 앞에 서자, 이를 기다리던 디오에게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잡담이 길군.”
“네 얘기 좀 했어. 지금 네 상태가 좀 걱정스러워야 말이지. 아! 혹시 질투한 거야?”
“……더 이상 그녀와 같은 얼굴로 그따위 잡소리는 집어치워라.”
“으, 진지충 극혐.”
그렇게 말하며 혀를 비쭉 내민 마왕의 모습에 디오의 얼굴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착잡함이 묻어나왔다.
“너…….”
“더 할 말 없지? 그러면 빨리 시작해. 아무리 봐도, 지금 네 상태를 보면 해피엔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니까.”
“…….”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디오가 조용히 그녀의 앞에 서자, 흉악한 붉은 기운이 마왕의 영역에 사정없이 침범하기 시작했다.
“어딜.”
하지만 마왕 역시도 이에 지지 않겠다는 듯이 검은색 오라를 마음껏 뿜어냈다.
드래곤조차도 감히 끼어들 수 없는 팽팽한 힘과 힘의 대결이 시작되자, 순식간에 사방에 파멸의 힘이 비산하기 시작했다.
콰카카카캉!
“젠장!”
이에 당황한 베른이 재빠르게 성검을 들고서 내 앞을 가로막았다. 만약 베른의 행동이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나 역시도 무사하지 못할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크윽!”
온전한 용사의 힘과 성검을 가진 베른이 고작 힘의 파편을 힘겨워하는 수준의 대결.
그러나 그 팽팽한 대결의 끝은 생각보다도 빨리 찾아왔다.
“어?”
어마어마한 힘의 대결과는 어울리지 않는 의아한 목소리.
그 목소리가 흘러나온 곳은 다름 아닌 마왕 쪽이었다. 그녀의 의아한 목소리와 함께, 갑작스럽게 검은색 기운의 영향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밀려나기 시작한 마왕에게 순식간에 핏빛 안개가 덮쳐들자, 그녀의 전신에서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끄으!”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심지어 당사자인 마왕조차도 저 현상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역시 이렇게 되는 건가.’
「[최종보스가 된 주인공] 클리셰의 효과로, [최종보스]의 속성이 [페이크 최종보스]로 변경됩니다!」
「[페이크 최종보스]의 보정 효과로, 등장인물, ‘서쪽의 마왕’의 전투력이 [50%] 하락합니다!」
본격적인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 * *
전신에서 핏줄기를 뿜어내고 있는 마왕에게 디오가 말했다.
“이만 항복하고 비켜. 너는 나를 이길 수 없어.”
마왕이 찌푸려진 표정을 펴고서 애써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어쩌다가 운 좋게 럭키 펀치 좀 맞춘 거 갖고 기고만장하기는.”
“키리엘!”
“그 여자 아니라니까.”
힘겹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그녀의 옆에 베른이 섰다.
“……당신도 끼어들 셈인가.”
“디오, 내가 했던 말은 잊은 거냐? 지금 네 모습을 봐라. 너는 지금 운명은커녕 너 자신조차도 이기지 못하고 있어.”
“그딴 건 상관없다고 했을 텐데.”
“그딴 식으로 막무가내로 굴 거라면 차라리 네 스승을 원망하지 그래? ‘다른 곳’에서 너를 데려온 게 바로 네 스승 아니냐? 네 스승이야말로 네 원수가 아니냔 말이다.”
“내 주변 사람을 입에 담지 마!”
「[분노한 최종보스] 클리셰가 발동합니다!」
「[분노한 최종보스] 클리셰 효과로, [광폭화] 버프가 적용됩니다!」
재앙의 화신이 있다면 저런 모습일까.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마왕이 베른에게 투정했다.
“이봐요. 아저씨, 왜 가만히 있는 애 화를 돋우고 그래? 저거 어떻게 할 거야.”
“먼저 한 건 너일 텐데.”
“내가 한 건 사랑이 듬뿍 담긴 애교였고, 아저씨가 한 건 인신 모독이잖아. 그 차이점을 모르겠어?”
마왕의 전형적인 내로남불의 태도에 베른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말을 말지. 반 녀석이 한 명 더 있는 것 같군.”
한숨 돌릴 틈조차도 주지 않겠다는 걸까.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마왕이 낮게 말했다.
“온다.”
“쉴 틈을 안 주는군.”
콰아앙!
이미 반쯤 이성을 잃어버린 디오의 공격을 막아낸 베른의 몸이 형편없이 바닥을 굴렀다. 옆에서 마왕이 보조해 주었기에 저 정도였지, 만약 홀로 저 공격을 막아냈다면 제아무리 베른일지라도 뼈가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망할…….”
무너진 건물더미를 헤치고 나온 베른이 욕지거리를 내뱉고는 마왕의 옆에 섰다. 만신창이가 된 그의 모습을 보며 마왕이 조소를 머금고서 말했다.
“늙은 아저씨는 이만 가서 쉬어도 되는데? 영원히.”
“배려는 고맙다만, 영원히 쉬기에는 아직 젊어서.”
“그것참, 다행이네. 그러면 살아 있는 김에 가급적이면 오래 살아 있어 줘요. 그래야 내가 위험할 때 방패로 삼지.”
“마왕의 방패가 된 용사라…… 딱 운명을 거역하는 느낌이군. 느낌이 괜찮아.”
「일부 독자가 ‘마왕’과 ‘전대 용사’의 예상외 케미에 유쾌함을 표합니다!」
그렇게 애써 농담을 주고받은 그들이었으나, 상황은 결코 좋지 못했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디오 때문이었다.
“키리엘…….”
눈앞에 있는 것은 더 이상 용사가 아니었다.
그저, 한 마리의 이성을 잃은 괴물.
그러나 그 괴물의 힘은 지금 여기 있는 모두를 압도하고 있었다.
“크오오오오!”
거친 포효와 함께, 순식간에 날아든 디오의 몸이 베른을 거칠게 치고 나갔다.
“끄윽!”
성검조차도 놓쳐 버릴 정도로 거대한 충격에 베른의 몸이 형편없이 바닥을 굴렀다. 그러나 고작 그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이 멈추지 않고 돌격한 디오의 몸이 순식간에 나를 향했다.
“아인즈 반!”
“어딜!”
재빨리 내 앞을 막아선 마왕이 디오의 돌격을 막으려 했으나, 이미 힘의 차이가 명백한 상황에서는 버티는 것조차도 힘에 겨웠다.
“끅!”
상황은 더 없을 정도로 암담했다.
이미 기절해 버렸는지, 조금 전부터 미동조차 보이지 않는 베른.
지금은 그나마 버티고 있지만, 곧 뚫리고 말 마왕.
큰 상처를 입어서 더 이상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아자토스.
그리고…… 결국 디오의 손에 운명을 달리한 루.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도망가지 않고 이 자리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은, 아직 최후의 방법이 남아 있기는 했기 때문이었다.
‘……아직인가.’
마왕이 서서히 무너져 가는 그 순간이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하던가.
붉은 하늘 너머에서 작은 그림자 하나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반!”
석양조차도 우스울 정도로 붉은 하늘에서 울려 퍼진 목소리.
내가 그토록 기다린 그 목소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하이디의 목소리였다.
“하이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뿔과 날개를 활짝 펼친 하이디는 마족으로서의 정체를 만연히 드러내고 있었다.
내가 지금껏 하이디를 찾지 않았던 이유는 그녀가 필요 없어서도, 잊어서도 아니었다.
오직 하이디만이 할 수 있는 일.
그것을 맡기기 위해서였다.
“내가 조금 늦었지?”
늦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하지만 나는 결코 그 원망 섞인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결국 루가 죽은 것은 이 상황에 대비하지 못한 내 책임이 컸기 때문이었다.
“받아.”
그렇게 하이디가 조심스럽게 꺼내 든 것은 작은 상자였다.
그것도 예쁜 리본으로 묶여 있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생일 축하해.”
「대다수의 독자가 갑작스러운 ‘하이디’의 발언에 어안이 벙벙해집니다!」
「다수의 독자가 ‘갑자기 분위기 생일’이 된 상황에 싸늘함을 표합니다!」
디오의 공격을 버티던 마왕이 이 광경을 보고는 어이없다는 듯이 소리 질렀다.
“지금이 생일선물이나 주고받을 때야?!”
“그럴 때 맞을걸.”
“그게 무슨 개소리야!”
확실히, 지금 상황은 한가하게 생일선물이나 주고받을 때는 아니었다.
하지만 불지옥 반도의 왕자이자, 마족인 ‘아인즈 반’에게 있어서 생일은 그 의미가 조금 남달랐다.
“그거 알아? 나는 말이야. 어렸을 적부터 가출을 밥 먹듯이 하는 학생이었어.”
「자유를 사랑하는 일부 독자가 지금껏 인간계에서 가출 생활을 이어 왔던 당신이었기에, 그 행적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수긍합니다!」
“지금 무슨 말을…….”
그때였다.
「[개연성]이 요동칩니다!」
익숙한 울렁거림.
나와 같은 하차자인 마왕 역시도 이 울렁거림을 알기에, 그녀는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학교도 몇 년 꿇을 수밖에 없었고, 진학도 늦을 수밖에 없었지.”
「[개연성]이 폭발할 듯이 요동칩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이냐면…… 지금 이순간부터, 내가 공식적으로 성인이 됐다는 뜻이야.”
내가 지금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마족에게 있어서 성인이 됐다는 의미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본격적으로, 마족으로서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것은 왕족이라는 어마어마한 혈통을 가진 ‘아인즈 반’이, 그 힘을 각성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힘은, 결코 지상의 존재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쑤욱-.
그와 함께 자연스럽게 솟아나기 시작한 뿔과 날개는 어느새 내 몸의 일부로 자리를 잡고서 그 위용을 뽐냈다.
과거에 보았던 그 어떤 마족들보다도 거대한 뿔과 날개.
이 모습을 바라본 마왕이 경악했다.
“너…….”
“놀랄 거 없어. 이제 시작이니까.”
「대다수의 독자가 마침내 마족으로서 각성한 당신의 모습에 환호합니다!」
「당신의 행보를 지켜봐 온 한 독자가 어느새 늠름해진 당신의 모습에 감격의 눈물을 흘립니다!」
내가 디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좀 맞자.”
「[진최종보스] 클리셰가 발동합니다!」
「[진최종보스] 클리셰의 효과로, [최종보스가 된 주인공]의 전투력이 [50%] 하락합니다!」
「[먼치킨] 클리셰가 발동합니다!」
「[먼치킨] 클리셰의 효과로, [먼치킨] 앞에 만인이 평등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