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차 이후의 소설 속-96화 (96/164)

◈ 96화 Chapter 22: 최종보스 (3)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다름 아닌 마왕이었다.

그녀는 디오와 대치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조차도 잊은 채로 입을 떡 벌리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물러서 있어.”

“……괜찮겠어?”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 순간, 폭발하듯이 전신에서 들끓는 힘.

마족의 왕자로서 각성한 이 힘은 이제 더 이상 이 세계의 상식이 통용되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당연히 그 힘의 여파를 느낀 마왕이었기에 이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어이가 없네.”

내가 그런 그녀의 앞에 나서며, 눈앞에서 여전히 붉은 기운을 내뿜고 있는 디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래 기다렸지?”

“크르르!”

아무래도 지금 당장은 대화가 통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했다.

“일단 쳐 맞자.”

「대다수의 독자가 카리스마 넘치는 당신의 모습에 환호합니다!」

「먼치킨을 지지하는 일부 독자가 당신의 활약을 기대합니다!」

마치 파리를 내쫓는 것 같은 가볍게 휘두른 손.

그러나 그 효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콰카카카캉-!

마왕이 가진 힘이 지형을 바꾸는 힘이었다면, 마족의 왕자가 가진 힘은 지도를 바꾸는 힘.

당연히 그 힘에 적중된 디오의 몰골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끄륵…….”

미친놈도 매를 들면 멀쩡해진다고 하던가.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이성을 잃고서 폭주하고 있던 디오의 눈에 어느새 이성과 함께 당황이 깃들었다.

“이, 이 무슨…….”

“왜 벌써부터 당황하고 그래?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내가, 이 힘을 가진 내가 질 리가 없다!”

그와 함께 디오의 전신에서 붉은 안개가 시야를 가릴 정도로 과하게 뿜어져 나왔다. 그렇게 뿜어진 안개는 주위 모든 것을 집어삼키면서 점차 그 몸집을 불려 나가기 시작했다.

「[발악하는 최종보스] 클리셰가 발동합니다!」

「[발악하는 최종보스] 클리셰의 효과로, [최종보스가 된 주인공]의 전투력이 [200%] 상승합니다!」

“죽어!”

예전이었다면 흉악하게 드러난 그 기세만으로도 짓눌려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랐다.

「[먼치킨] 클리셰의 효과로, [최종보스가 된 주인공]의 모든 버프가 무효화됩니다!」

그와 함께 울려 퍼지는 허무한 소리.

까앙!

마치 거대한 철판에 가로막힌 것처럼 울려 퍼진 그 소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너무나도 손쉽게 가로막힌 디오의 주먹에서 퍼진 소리였다.

나름대로 혼신의 힘을 담아서 한 공격이었겠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급이 맞아야 통하는 법.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는 모기보다도 못한 공격에 불과했다.

“말도…… 이건 말도 안 돼.”

“돼.”

그와 함께 휘둘러진 내 왼손이 디오의 뺨을 후려치자, 마왕조차도 이겨 낼 수 없었던 디오의 몸이 너무나도 쉽게 나가떨어지며 건물 벽에 파묻혔다.

“쿨럭!”

나에게 있어서는 고작해야 가벼운 손찌검에 불과했으나, 디오에게 있어서 그것은 자신의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막아낼 수 없는 필살의 한 수였다.

고작 두 번의 손찌검에 어느새 만신창이로 변한 디오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그 충격 때문일까.

흩날리는 돌가루 속에서 디오의 목소리가 씹어 삼키듯이 울려 퍼졌다.

“내가, 내가 이 힘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버렸는데……!”

“아무도 너한테 그런 걸 강요한 적 없어.”

“닥쳐!”

그와 함께 디오에게서 흘러나온 힘의 잔해가 사방에 퍼졌으나, 단지 그뿐이었다.

“아서라. 너는 나를 이길 수 없어.”

“닥치라고 했다!”

위이이이잉!

제도 전체를 날려 버리기라도 할 셈일까.

지금 디오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그 정도로 거대했다.

마치 자신의 남은 생명을 모조리 불사르기라도 하듯이.

“그것뿐이지만.”

내가 가볍게 손을 뻗자, 디오에게서 뻗어나가기 시작하던 힘들이 모조리 멈췄다.

응당 뻗어나갔어야 할 그 힘은 이내 고무공처럼 찌그러지기 시작하며 이내 디오를 향해서 덮쳐들기 시작했다.

결국 자신의 힘에 먹혀들어 죽는, 전형적인 [최종보스]의 최후였다.

“나는…… 나는……!”

「대다수의 독자가 이제는 갈 데까지 간 [최종보스가 된 주인공]의 형편없는 모습에 동정심을 표합니다!」

「카리스마를 잃었습니다! [최종보스가 된 주인공]이 [최종보스] 자격을 박탈당합니다!」

「등장인물, ‘용사 디오’의 [비중]이 감소합니다!」

「현재 비중: 22.3%」

「[위기에 처한 주인공] 클리셰가 발동합니다!」

「[먼치킨] 클리셰의 효과로, [주인공]의 모든 버프가 무효화 됩니다!」

「다수의 독자가 [주인공]의 비참한 최후를 직감합니다!」

디오가 자신의 힘에 짓눌리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만둬!”

어느새 내 앞을 가로막은 자는 다름 아닌 전신을 피로 목욕한 베른이었다.

그가 나타난 순간, 디오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힘이 풀리며 그를 잡아먹을 듯이 덮쳐들던 붉은 안개가 사방으로 비산하며 흩어졌다.

“……디오를 죽일 셈이냐?”

“그럴 생각은 없어요.”

“죽일 생각이 없다고? 지금 저 녀석의 꼴이 보이지 않는 거냐?”

나도 알고 있다.

만약 이 공격이 그대로 들어갔다면, 디오가 정말로 죽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은.

그리고 그렇게 되면 이 소설은 그대로 [완결]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였다.

“그냥 화풀이였어요.”

그리고는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제는 기절해 버린 디오와 이미 싸늘해진 루를 교차했다. 그런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베른이 말했다.

“……디오 녀석이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른 건 사실이다. 운명이니 뭐니 하는 것도 전부 다 변명에 불과하겠지.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녀석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죽은 이는 그 어떤 걸로도 대신할 수 없어요.”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이유가 될 순 없어.”

왜일까, 나는 그 말이 왠지 내가 아닌 베른 스스로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냥 죽이지 그래?”

그 말을 한 이는 다름 아닌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마왕이었다.

“저 진부한 아저씨 말을 들을 필요가 있겠어? 그냥 지금 죽이고 다 끝내자고.”

“언젠가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리고 어차피 본심으로 하는 말도 아니잖아?”

[주인공]의 행복을 그토록 바랐던 마왕이었기에, 우습게도 지금 마왕의 말은 오히려 ‘죽이지 말라’고 애원하는 것처럼 들렸다.

본심을 들켜서일까, 마왕이 재빨리 고개를 돌리고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 아는 척하지 마.”

「이 시대의 선비를 자처하는 한 독자가 외강내유(外剛內柔)의 본보기를 잘 보여 주고 있는 ‘마왕’의 모습에 참으로 어애안자(語愛顔慈) 한 처자가 없다며 흡족해합니다!」

「등장인물, ‘서쪽의 마왕’의 [츤데레] 성향이 증가합니다!」

‘이제 끝난 건가.’

내가 쓰러져 있는 디오에게 다가서자,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이내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클리셰가 파괴됩니다!」

「클리셰 붕괴율: 10.1%」

「클리셰 붕괴율이 일정 수치를 초과하여, 일부 법칙이 붕괴합니다!」

「일정 지역에서 더 이상 물리 법칙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행성의 자전 방향과 주기의 변화로, 일부 지역이 바다로 수몰되며 그에 따라서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지역이 나타납니다!」

변화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인과율의 이상으로 오랜 잠에서 깨어난 천신이 인간계에 진정한 모습으로 강림한 당신을 주시합니다!」

「붕괴되어 가는 인과율의 이질감을 느낀 일부 지식인들이 비밀결사를 결집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희미해지며, 오래전 세상을 호령했던 고대의 기사단이 감히 자신들을 사바세계로 다시금 불러온 지금의 사태에 대해서 큰 분노를 표출합니다!」

이제야 10%.

그러나 그 변화는 결코 작지 않았다.

‘앞으로 더 어려워지겠군.’

비록 지금의 내가 [먼치킨]이라는 어마어마한 타이틀을 달고 있기는 했으나, 만약 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지금까지 해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가 쓰러진 디오 앞에 서자, 내 옆에 다가온 베른이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일단 디오를 구속해야겠죠. 깨어나서 날뛰면 꽤 곤란할 테니.”

“하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디오의 처분은 꽤나 골칫덩이였다.

그와 비등한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인 마왕과 붙여 놓았다가는 내가 눈을 뗀 사이에 둘 중 하나가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뿐더러, 그렇다고 해서 내가 데리고 다녔다가는 원래의 내 목적인 클리셰 파괴에 큰 제약이 생겼다.

‘아무래도 이걸 노렸겠지.’

참으로 망할 작가 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내가 디오의 처분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한 줄기의 빛. 그 빛은 마치 용사를 구하기 위해서 내려온 신의 구원의 손길인 것처럼 용사의 몸을 천천히 감쌌다.」

눈앞에 나타난 새로운 문장.

작가 녀석의 개입이었다.

‘이것 봐라.’

그와 함께 어느새 정신을 차렸는지,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있었을 터인 디오가 씹어 삼키듯이 말했다.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다수의 독자가 삼류 악당이나 뱉을 법한 추하기 짝이 없는 [주인공]의 발언에 고개를 내젓습니다!」

「추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등장인물, ‘용사 디오’의 [비중]이 크게 감소합니다!」

「현재 비중: 20.3%」

“어딜!”

내가 손을 뻗자,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파괴적인 마족 왕자의 힘이 뿜어져 나왔다.

마왕이 아니라 마왕 할아버지가 와도 막을 수 없는 수준의 위력.

그런 위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뻗은 공격은 디오를 감싼 빛에 의해서 너무나도 허무하게 가로막혔다.

‘역시.’

이미 파워 밸런스고 뭐고 모조리 날려 버릴 정도의 [먼치킨]인 내가 한 공격을 막은 것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 주지] 클리셰가 발동합니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 주지] 클리셰의 효과로, 도주 중인 등장인물에게 향하는 모든 공격이 무효화 됩니다!」

그 순간, 디오를 감쌌던 빛이 이내 녀석의 몸 전체를 삼켜 버리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말 그대로 도망간 것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베른이 말했다.

“……놓쳤군.”

“괜찮아요.”

막상 놓치긴 했으나, 어떻게 보면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아까도 말했다시피, 지금 나에게 있어서 디오의 존재는 처치 곤란인 애물단지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추격할 건가?”

“그럴 필요 없어요. 어차피 스스로 나타날 테니.”

“그러면 이제 묻고 싶군. 그 뿔과 날개는…… 도대체 뭐지?”

“제가 말했을 텐데요. 다른 곳에서 왔다고.”

물론, 그게 거기는 아니지만 말이다.

“이제 정말로 어떻게 할 거지?”

베른의 물음에 내가 잠시 폐허가 된 제도를 바라보았다.

온통 폐허로 변한 제도와 잿더미가 되어 버린 황궁. 그리고 그 사이에 가지런히 누워 있는 루의 모습.

지금 내가 그녀의 시체를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는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깽판.”

내 말에 베른이 잠시 동안 눈을 끔뻑였다.

“뭐?”

“깽판 칠 겁니다.”

이제, 녀석에게 먼치킨의 정석이 무엇인지 보여 줄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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