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Chapter 23: 장르 변경 (1)
「[제4의 벽]이 허물어집니다!」
그와 함께, 세상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무엇보다도 확연한 변화였다.
「[유료 연재]가 시작됩니다!」
「[유료 연재]의 효과로, [독자]들의 영향력이 크게 증가합니다!」
「[유료 연재]의 효과로, [등장인물]들의 [비중]에 따라 적립금이 정산됩니다!」
「[유료 연재]의 효과로, [후원금]의 명칭이 [정산금]으로 변경됩니다!」
「현재 적립된 정산금: 1,310,100G」
그와 함께 눈앞에 있는 문장이 동요로 떨렸다.
「지금 무슨 짓을…….」
이렇게까지 말해도 못 알아먹는 걸 보면 녀석의 운명도 참 기구하기 짝이 없었다.
통 속의 뇌.
우습게도, 그것은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녀석을 가리키는 단어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봐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지만.
“이제 너한테는 볼일 없다는 뜻이지.”
「……뭐?」
확인해야 할 것은 모두 다 했다.
더 이상 이곳은 녀석의 세계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더 이상 녀석에게 무엇을 부탁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었다.
“이만 꺼져.”
「[제4의 벽]이 거칠게 들썩입니다!」
그와 함께 멈춰 서 있던 세상이, 조금씩이지만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녀석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말이다.
「너 이 자…….」
굳이 했던 말을 또 하게 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당황하긴 한 모양.
그렇다면 내가 할 말 역시도 한 가지뿐이었다.
“어허, 꺼지래도.”
최후의 통보.
그와 함께,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던 세상이 이내 완전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비공개처리 되었던 작품이 공개 처리됩니다!」
그렇게 다시금 빛을 되찾은 세상의 풍경은 기묘했다.
하긴, 이곳이 어떤 곳인지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이게 정상이라고 보는 것이 맞았다.
당연히 오래 있어서 좋을 장소는 아니었기에, 나는 그대로 그제야 잠 아닌 잠에서 깨어난 베른과 마왕을 향해서 다가갔다.
“일어나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베른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무슨 일이 있었군. 도대체 뭐지?”
“몇 가지 일이 있었죠.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설명할 테니, 우선 이곳에서 할 일을 마무리 짓고 최대한 빠르게 벗어나야 할 겁니다.”
“할 일이라고?”
그때, 옆에 있던 마왕이 끼어들었다. 베른과는 다르게 어느 정도의 사정을 알고 있는 그녀인 만큼 그녀의 질문은 단도직입적이었다.
“아까 그 녀석은?”
“당분간은 얼씬대지 못할 거야.”
“나한테 뭐 할 말 있지 않아?”
“그것도 나중에.”
“흐응.”
전혀 수긍한 눈치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녀 역시도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베른이 말했다.
“그래서…… 할 일이라는 게 뭐지? 여기는 또 어디고?”
“여기는 생과 사의 경계입니다. 죽은 자와 산 자가 공존하는 곳이죠.”
“……뭐?”
그리고 이곳에서 할 일이라면 이미 정해져 있었다.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간단해요. 루를 되살릴 겁니다.”
「다수의 독자가 당신의 발언에 주목합니다!」
「당신의 행보를 지켜봐 온 한 독자가 당신의 발언이 결코 허언이 아님을 직감합니다!」
“……루를 되살린다고? 그게 가능한 일이냐?”
“가능하니까 왔겠죠.”
“어떻게?”
물론, 제아무리 나라고 할지라도 그 방법까지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언제 그런 사소한 걸 신경이나 쓰면서 살아왔던가.
그저, 그럴듯하게 보이면 그만일 뿐.
“이렇게.”
가볍게 뻗은 손.
그리고 그곳에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적-.
지금 내가 한 일은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공간을 찢을 정도로 기운을 뿜어냈을 뿐.
이 행위 자체는 루를 되살리는 일과 아무런 연관도 없는 행위였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보는 사람에게는 아니었다.
「다수의 독자가 무언가 일을 벌이려는 당신의 행동에 주목합니다!」
바로, 지금처럼.
「[개연성 무시]를 사용하였습니다!」
「필요로 하는 [개연성 무시] 등급이 부족하여, [1,000,000G]가 추가로 소요됩니다!」
「[1,000,500G]가 소요됩니다.」
「추가적인 금액 소모로 [개연성 무시] 등급이 상승하였습니다!」
「[개연성 무시] 등급: [5단계] → [6단계]」
「현재 적립된 정산금: 309,600G」
그와 함께 일어나기 시작한 생과 사의 경계에 일어난 무수한 균열들.
마치 거미줄처럼 번진 그 균열들 사이로 수많은 망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돌아가고 싶어…….]
[살려 줘, 살려 줘, 살려 줘. 나는 반드시 돌아가서 해야만 하는 일이 있어!]
[네 몸을 줘……. 네 몸만 있다면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있어.]
[누구인지는 몰라도, 내버려 두어라. 나는 생자들의 세계에 아무런 미련이 없다.]
[누가 감히 나의 안식을 방해하느냐!]
그때였다.
[반!]
작디작게 울려 퍼진 목소리.
그러나 나는 그 목소리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잡아!”
내가 살며시 손을 뻗으며 힘을 뿜어내자 균열을 통해서 달려들던 수많은 망자의 혼이 단숨에 흩어져 내렸다.
[아아…… 억울하도다.]
[이토록 덧없는 것을…….]
그와 함께 내 손을 마주 잡은 한 영혼.
그 영혼이 누구인지는 굳이 확인해 볼 필요도 없었다.
“루.”
예전과는 다르게 온전한 드래곤의 형상을 취한 루의 모습.
[어떻게 여기를…….]
“데리러 왔어.”
[그건…… 불가능해. 나는 이미 죽은 몸이야.]
“나 못 믿어?”
[그건…….]
그와 함께 잠시 찾아온 침묵.
그러나 그녀의 대답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믿어. 믿어, 반.]
“그거면 됐어.”
「[개연성 무시]를 사용하였습니다!」
「[500G]가 소요됩니다.」
「현재 적립된 정산금: 309,100G」
무려 [6단계]에 이른 [개연성 무시]의 효과는 실로 대단했다.
그와 함께, 그녀의 몸에서 점차 지금껏 없었던 생기가 돋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나만 믿으라고 했잖아.”
그리고는 어느새 완전히 육신을 되찾은 루의 눈가에서 살며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반.]
“기쁨의 재회도 좋지만, 이럴 시간이 없어. 어서 이곳을 나가야 해.”
[알겠어.]
예전과는 다르게 한껏 부드러워진 말투를 보니 아무래도 그녀에게도 상당한 변화가 있긴 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내가 루와 함께 균열로 번진 장소를 벗어나서 일행이 있는 곳에 도착하자, 루의 모습을 발견한 베른이 믿기 어렵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로 해냈군.”
“제가 한다고 말했잖아요.”
“됐고, 우선 이곳을 벗어나지. 이곳에서 조금만 더 있다가는 생명력이 모조리 빨려 나갈 것 같으니까.”
하긴, 온갖 버프를 한껏 받는 마왕이라면 모를까. 제아무리 [진주인공]이니 뭐니 해도 일개 용사에 불과한 베른이 생과 사의 경계에서 이 정도 버틴 것만 해도 상당히 용한 것이었다.
“그러면, 나가죠.”
내가 손을 뻗자, 생과 사의 경계의 입구가 산산이 찢겨 나가며 이내 산 자들의 세상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가시죠.”
* * *
우리가 생과 사의 경계를 빠져나온 순간이었다.
「클리셰가 파괴됩니다!」
「클리셰 붕괴율: 21.3%」
지금까지는 없었던 이례적인 붕괴율.
원인은 둘째 치고, 그 이례적인 붕괴율이 만들어 낸 현상 역시도 예사롭지 않았다.
「클리셰 붕괴율이 일정 수치를 초과하여, 장르가 변경됩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단 한 문장.
그러나 그 변화는 지금까지 있었던 그 어떤 변화보다도 더 거대했다.
‘……이것 봐라.’
예전과는 다르게 그것 외에는 그 어떤 설명도 존재하지 않는 걸 보니, 아무래도 상황을 지켜보며 저것으로 인해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는 것이 급선무인 듯 했다.
‘우선…… 뒷정리부터 해야겠군.’
일행들의 상태는 무척이나 지쳐 보였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동감이야.”
식은땀을 흘리는 베른과, 그 옆에서 나름대로 지친 기색을 보이는 마왕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루의 모습까지.
“이제 듣고 싶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그리고 이건 또 뭔지.”
베른이 그렇게 말하며 왼손을 들자 그의 앞에 어떤 창 하나가 나타났다.
내게는 이제 너무나도 익숙한, 그런 창이.
「현재 적립된 정산금: 0G」
「현재 비중: 26.4%」
“표정을 보니, 무언가 알고 있는 것 같군.”
여전히 귀신같은 눈치.
‘……이것 봐라.’
어떻게? 라는 질문은 넣어 두었다. 이미 많은 일을 겪고, 보아 온 베른에게 있어서 저 정도 변화는 어쩌면 충분히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지금 내가 뭐라고 대답할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건…….”
“그건 당신이 가짜이기 때문이야.”
갑작스럽게 들려온 대답.
그러나 그 대답을 한 것은 나도, 또 다른 거짓 진실을 알고 있는 하차자인 마왕도 아니었다.
“너는…….”
“디오!”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이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이 세계의 [주인공]이자, 용사인 디오였다.
‘녀석이 어떻게?’
내가 궁금한 것은 녀석이 지금 이 자리에 어떻게 서 있는지 따위가 아니었다.
디오는 이 세계의 [주인공]이다.
작가 놈이 미치지 않고서야, 제 입으로 녀석에게 진실을 알려주었을 리는 만무하다는 소리.
그렇다면 어떻게?
그러한 의문에 대해서 해소하기도 전에, 베른이 성검을 뽑아 들었다.
“제 발로 무덤을 찾아오다니. 잘 됐군.”
“당신은 날 못 이겨. 그 정도 사실은 이미 알고 있을 텐데?”
“누가 내가 싸운데?”
그와 함께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뻔뻔하게 내 뒤로 숨는 베른의 모습.
“어디 한 번 덤벼 보시지?”
“……어이가 없군.”
「다수의 독자가 등장인물, ‘전대 용사 베른’의 유쾌함에 박장대소합니다!」
“어이가 없는 건 나야. 죽으러 왔으면 곱게 목이나 내밀 것이지, 가짜?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전혀 관심 없는 척하고 있었지만, 베른은 오히려 그 점에 대해서 더 파고들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베른과 오랜 시간 동안 함께한 나였기에 알 수 있었다.
속에 백 년 묵은 구렁이가 열 마리쯤 있다고 해도 믿을 정도.
“말 그대로다. 눈앞에 있는 그것들은 당신이 가짜라는 증거에 불과해. 실존하지 않고, 오직 허상으로만 존재하는 가짜.”
“……그게 무슨 말이지?”
그때였다.
「클리셰가 요동칩니다!」
이 울렁거림이 말하는 바는 한 가지였다.
“내가 늘 말했지. 나는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뜬금없는 반전] 클리셰가 발동합니다!」
“현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