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Chapter 23: 장르 변경 (2)
「대다수의 독자가 등장인물, ‘용사 디오’의 충격적인 발언에 어안이 벙벙해집니다!」
「[개연성]을 중시하는 일부 독자가 너무나도 뜬금없는 반전에 [개연성]을 요구합니다!」
과격하다면 과격할 정도의 반응.
그리고 그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베른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무슨 말이지? 마치 이곳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처럼 들리는군.”
“정확히 들었어. 가짜.”
“그딴 정신 나간 소리나 하러 온 거라면, 이제 곱게 돌아가긴 글렀다고 말해 두고 싶군.”
그들의 반응처럼, 지금 디오의 말은 마치 폭주 기관차처럼 앞뒤 신경 쓰지 않고 막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코 디오가 말하는 ‘현실’이 결코 내가 알고 있는 ‘현실’과 같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돌아간다라…… 어차피 내가 돌아갈 곳은 한 곳뿐인데.”
“그따위 헛소리는 이제 더 듣고 싶지 않군. 뭐하지? 어서 안 덤비고.”
도발적인 베른의 말에도 불구하고 디오는 그저 낮게 웃을 뿐이었다.
“싸울 생각은 없다. 만약 그랬다면 기습을 했겠지.”
“그건 네 생각이고. 우리 생각은 조금 다를 텐데?”
“나는 경고를 하러 온 거다.”
“경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
베른이 삐딱하게 대답했으나, 그의 눈은 이미 디오의 진의를 읽어 내기 위해서 재빠르게 굴러가고 있었다.
“네가 우리에게 하는 경고를 어떻게 믿지?”
“믿고 안 믿고는 너희들 자유겠지. 하지만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될 거다.”
“그렇다면 어디 한 번 지껄여 보시지.”
얼핏 보면 베른이 한발 물러난 걸로 보이지만, 사실은 이 상황 자체가 베른이 유도한 것에 가까웠다.
지금 그에게 있어서 디오의 말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말이 아니었을 테니까.
“사고가 있었다.”
“사고?”
“내가 이 세계에 갇히게 된 사고.”
“갇혔다? 표현이 이상하군.”
그 말처럼, 디오의 표현은 상당히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아니, 잠깐…….
‘그런 건가.’
하지만 나는 이내 디오가 한 말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디오가 지금까지 했던 말들을 조합해 보면, 의외로 간단한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나는 작가 녀석에게 이 세계가 가짜임을 말했다.
하지만 ‘통 속의 뇌’가 자신이 갇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없듯이, 녀석 역시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가짜 속의 가짜.
그 모순을 견디기 위해서, 그리고 어떤 ‘가짜’ 안에 속해 있을 터인 이 세계를 또 다른 ‘가짜’로 만들기 위해서, 작가 녀석이 선택한 방법.
“이 세계는 내가 하던 게임에 불과하다. 내가 사고로 이 세계에 갇히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지.”
「클리셰 붕괴의 효과로, 장르가 변경됩니다!」
「[판타지] → [게임 판타지]」
「대다수의 독자가 충격적인 반전에 뒤통수를 얼얼해합니다!」
「탐정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일말의 떡밥도 없는 반전에 이런 건 반전도 아니라며 막장으로 치닫는 전개를 맹렬히 비난합니다!」
“……게임? 공차기 같은 놀이를 말하는 건가? 네 말이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에단이 불러낸 것일 텐데? 그건 어떻게 설명할 거지?”
“그런 설정이었지. 내가 한 게임의 캐릭터 초기 설정.”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어차피 알아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하지만 조심하라고 말해 두고 싶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될 테니.”
제멋대로인 디오의 말에 베른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만 늘어놓는 주제에 조심하라니? 누군가 우리에게 위협을 가하기라도 한다는 건가?”
“지금까지는 그랬겠지. 너희는 그럴듯한 보상도 주지 않는 주제에 해치우기도 불가능에 가까운 계륵 같은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퀘스트가 발생했다.”
“퀘스트? 기사들이 하는 임무를 말하는 건가?”
“비슷해.”
비슷하다고는 얘기했지만, 어차피 디오가 하는 말을 베른이 전부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런 베른과는 다르게, 대강의 이야기를 알아들은 마왕의 표정은 점차 굳어 갔다.
“…….”
베른이 말했다.
“그래, 네 말대로 우리가 위험해졌다고 치지. 그렇다면 네가 어째서 우리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는 거지?”
그 순간, 아주 잠깐이지만 디오의 시선이 마왕을 훑고 지나갔다.
아마 디오 본인은 티를 안 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옆에서 보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티가 나도 너무 나는 수준이었다.
‘얼씨구.’
강렬해도 어떻게 저렇게 강렬할 수가.
만약 내가 마왕이었다면 뭘 꼬나보냐면서 뺨을 한 대 후려쳤을 법한 눈빛이었으나, 당연히 내가 눈치챘다고는 생각하지 못한 디오가 말했다.
“내 마음이다.”
“……여전히 제멋대로군.”
“어쨌든 내가 할 말은 다 했으니, 이만 가겠다.”
“누구 마음대로?”
베른이 그의 앞을 막아서자 디오가 낮게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내 마음대로지.”
디오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주위에서 나타난 푸른색 마법진이 순식간에 그의 몸을 집어삼켰다.
「전용 스킬, [특수 귀환]이 발동합니다!」
「[특수 귀환]의 효과로, [특수 귀환] 중인 대상이 [무적] 상태가 됩니다!」
누가 아니랄까 봐, 참으로 게임다운 기술.
그렇게 번뜩이는 푸른빛과 함께 디오가 사라지자, 당장이라도 디오를 베어 넘길 것처럼 위협적인 태도를 유지하던 베른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이가 없군.”
짧은 중얼거림.
그리고는 이내 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한테 해야 할 말이 있을 거다. 말해라.”
올 것이 왔군.
자아……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대략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진실’을 알려주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적당히 디오 녀석의 말을 토대로 새로이 변경된 ‘설정’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고민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디오의 말이 사실입니다.”
“사실이라…… 그렇다면 알아듣게 설명해 주었으면 하는데. 우선, 이게 뭐지?”
베른이 가리킨 것은 어느새 그의 앞에 다시금 나타난 창들이었다.
「현재 적립된 정산금: 0G」
「현재 비중: 26.4%」
저것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나 역시도 생각해야 할 부분들이 있었다.
‘[유료 연재]와 관련된 건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유료 연재] 이후에 각 등장인물들에게 비중에 따른 정산금이 지급된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저 흔적은 바로 그것의 잔해.
그리고 그 정산금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곧 그걸 사용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이제 [비중]이 있는 인물이라면 [자본주의] 버프를 사용할 수 있다는 건가.’
이 추측이 사실이라고 해도, 어차피 이미 올려놓은 [자본주의] 버프 레벨에서 나를 따라올 인물은 없을 테니 큰 상관은 없었지만, 문제는 저걸 베른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였다.
그때였다.
“특권.”
그 말을 한 이는 다름 아닌 마왕이었다.
“특권이라고?”
“그렇게만 알아둬. 어차피 그게 뭔지는 차차 알게 될 테니.”
“불성실한 대답이군. 하지만 뭐…… 나쁘지 않아. 그건 그렇다고 치고, 그렇다면 디오가 했던 말 중에서 ‘가짜’라는 게 무슨 뜻이지?”
그렇게 말한 베른의 시선이 다시금 나를 향했다.
자, 이제부터 본론이었다.
만약 여기서 조금이라도 말을 잘못했다가는 베른이 어떤 방향으로 튕겨져 나갈지 솔직히 말해서 나조차도 예상이 안 될 정도.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진실 같은 거짓을 말해 줄 필요가 있었다.
“이곳이 인위적으로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세계라는 뜻입니다.”
“……뭐?”
얼이 빠진 베른의 얼굴은 나중에 과연 저런 얼굴을 볼 기회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드문 것이었다. 그 정도로 지금 그가 받은 충격이 지대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이성을 되찾은 베른이 또박또박 말했다.
“그래…… 그게 신이라는 녀석이겠지? 어차피 그 정도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어.”
“그렇게 대단한 녀석이 아니에요.”
“……그게 무슨 말이냐?”
“녀석은 그렇게 거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냥 평범한 인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죠.”
“이해가 되지 않는군. 이런 세계를 창조할 정도의 존재가 평범한 인간이라고? 모순이야.”
베른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일단은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제아무리 규격을 벗어난 존재라고는 하지만, 이것은 정말로 일개 [등장인물]에게 주어지기에는 너무나도 과도한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일 뿐, 베른이 그 진실에 다다르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것만은 확실했다.
“일단은 그렇게만 알아두면 될 겁니다. 어차피 차차 알게 될 테니.”
“……좋아. 그렇다면 이제 차후의 일에 대해서 논의해 보지. 디오 녀석의 말대로라면, 우리를 노리는 세력이 있다는 건데 그건 어떻게 할 거지?”
베른은 일단은 수긍한 것처럼 넘겼지만, 어차피 깊게 추궁해 봤자 원하는 대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한 선택이었다.
정말이지, 능구렁이가 따로 없었다.
“아마 당장은 큰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당장은? 그렇다는 이야기는 훗날에는 위협이 된다는 뜻인가?”
“맞아요.”
디오가 했던 말을 생각해 보면, 일단 지금의 [설정]대로라면 우리 일행은 [게임] 내에서 아주 강력한 존재지만, 그것과는 대비되게 잡아도 딱히 메리트가 존재하지 않는 필드 보스 몬스터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것도 지금까지고, [퀘스트]의 등장으로 이제부터는 그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지금까지의 우리가 잡아도 얻을 것 하나 없는 걸어 다니는 재앙 덩어리였다면, 이제부터는 걸어 다니는 보물단지로 바뀐 것이다.
그 차이점은 명백했다.
“그들은 지금은 아주 약할 겁니다. 우리에게는 그다지 큰 위협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금껏 우리가 살아 있는 것에 대해서 큰 모순이 발생해 버린다. 제아무리 작가 놈일지라도 이 정도 모험을 하는데 지켜야 할 최소한의 [개연성]이 있을 테니 말이다.
베른이 말했다.
“그런데? 그렇게 약한 녀석들이 나중에는 큰 위협이 된다면 지금 짓밟아 버리면 되지 않나?”
“그게 안 되니까요.”
“왜지?”
그 이유야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막상 이런 입장이 되어서 느끼는 거지만, [게임]은 몬스터나 NPC에게 있어서 참으로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를 죽일 수단으로 선택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들은 죽지 않아요.”
“……뭐?”
기본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 즉 유저들은 죽지 않는다.
아니,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그 사실은 그 유저들의 목표인 우리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사실이었다.
“우리는 지금부터, 불사의 군대를 상대해야 할 겁니다.”
“……믿을 수 없군. 죽지 않는 군대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차라리 그것뿐이었다면 다행이었을 겁니다.”
“문제가 더 있다는 거냐?”
“있죠. 그것도 아주 큰 문제.”
단지 그것뿐이었다면 다행이었을 테지만, 문제는 지금 내가 있는 이 소설의 [설정]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우리의 적이, 최강의 전투 민족일 거라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