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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 이후의 소설 속-104화 (104/164)

◈ 104화 Chapter 24: 주연의 역습 (1)

“말도 안 되는…….”

경악으로 물든 그들의 얼굴은 더 이상 지금의 사태를 가볍게 넘기지 못하고 있었다.

“선배…….”

그들의 시선이 한차례 교차한 후, 마침내 결심을 마친 건지 강한성기삽니다가 씹어 삼키듯이 말했다.

“……나를 죽여.”

“안 돼요!”

“이성적으로 생각해. 어차피 이렇게 둘 다 레벨과 아이템을 잃느니, 한 명이라도 남는 게 나아.”

“그렇다면 더욱더 제가 죽어야죠! 선배가 저보다 레벨도 높고, 아이템도 훨씬 더 좋잖아요!”

정론이라면 정론.

그와 함께 강한성기삽니다의 시선이 에드윈에게 향했다.

지금까지는 없었던 차가운 눈빛이었다.

“그러면 그럴래?”

“……예?”

“듣고 보니, 네 말이 맞는 것 같아서. 일단 네가 죽은 다음에 내가 나중에 너를 도와주면 되잖아? 너 정도의 수준이라면 금방 복구할 수도 있을 테고.”

「다수의 독자가 갑작스럽게 변모한 ‘강한성기삽니다’의 인성을 의심합니다!」

「이과생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계산기를 꺼내며 ‘강한성기삽니다’의 합리적인 판단을 지지합니다!」

“그건…….”

떨리는 에드윈의 목소리.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다시금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강한성기삽니다가 말했다.

“거봐. 어차피 못 할 거면서.”

“…….”

강한성기삽니다가 자신을 시험했음을 깨달은 에드윈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강한성기삽니다는 처음부터 자신이 죽을 생각이었다.

“자, 죽여.”

“저는…….”

“어서.”

그렇게 부드럽게 말한 강한성기삽니다가 마침내 두 팔을 벌리고 죽음을 각오하자, 그 모습을 바라본 에드윈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선배, 저는 그게 아니라…….”

“네 탓이 아니야. 그리고 정말로 죽는 것도 아니잖아?”

“으아아아!”

절망이 가득 섞인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며 에드윈의 떨리는 손이 서서히 강한성기삽니다의 목으로 향했다.

조금, 아주 조금만 더 뻗으면 한 명의 [플레이어]의 모든 것이 사라지려던 그 순간.

“그럴 필요 없다.”

나지막하게 들려온 목소리.

우습게도, 그 목소리는 이제 내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현상과 함께 공간을 찢고서 나타났다. 그 어떤 전조도, 개연성도 없는 그런 현상 말이다.

그리고 그런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는 내가 아는 한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게 내 적이라면 더욱더.

“……디오?”

뭉개진 [개연성]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이자, 용사인 디오였다.

「[선]을 지지하는 일부 독자가 당신의 악행을 막아서기 위해서 극적으로 등장한 [주인공]의 존재에 크게 환호합니다!」

「당신의 행동에 큰 반감을 가진 한 독자가 [주인공]에게 후원금을 전달합니다!」

마왕의 목소리를 들은 강한성기삽니다의 눈에 휘둥그레졌다.

“디, 디오라고?”

“선배 설마…….”

“맞아! 용사 디오라면 월드 퀘스트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이 맞아!”

“그렇다면……!”

단번에 바뀐 분위기와 함께, 그들에게서 희망의 기색이 자라났다.

내 입장에서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방해꾼이 등장한 셈이었다.

‘……이것 봐라.’

녀석이 이곳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는 뻔했다.

[자본주의] 버프.

그것을 통해서 내 행동을 미리 읽어 내고 이렇게 지금 내 앞에 선 것이었다.

“아인즈 반.”

“얼굴이 제법 좋아 보이는데.”

“너를 막겠다.”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광채가 날 것 같은 당당한 모습.

만약 내가 [독자]였다면 이쯤에서 녀석에게 환호를 보냈으리라.

물론, 어디까지나 내가 [독자]였다면 말이지만.

“네가? 되겠어?”

「[주인공]의 팬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당신의 재수 없기 짝이 없는 빈정거림에 불쾌함을 표합니다!」

분명히, 지금의 디오는 강하다.

과거에 용사로서 모든 힘을 가지고 있을 때보다도 훨씬 더.

하지만 지금 녀석이 가지고 있는 힘은 용사가 가지고 있어야 할 힘보다는 오히려 마왕이 가지고 있어야 할 힘에 가까웠다.

마치 작가 놈에게 영혼이라도 팔고 얻어낸 힘처럼.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렇기에 녀석은 나를 절대로 이길 수 없었다.

용사는 불합리함을 이겨내는 존재지만, 마왕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은 이제는 용사보다는 마왕에 가까운 존재가 된 지금의 디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그렇겠지. 분명히 지금의 나는 너를 이길 수 없다.”

생각보다도 훨씬 더 깔끔한 인정.

그의 말을 들은 에드윈과 강한성기삽니다의 얼굴에 다시 그늘이 드리웠다.

“이럴 수가……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서, 선배! 괜찮아요. 아직 진 것도 아니잖아요!”

“고작 우리 둘이 가세한다고 해서 바뀔 상황이 아니야. 에드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나를 죽여.”

“선배!”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이걸 순순히 인정한다고?’

아니,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지금 내 앞을 가로막을 이유가 없었다.

녀석이 [주인공]으로서 암 덩어리 호구 행위를 반복했던 것도 이제 옛말.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은근슬쩍 내 영향을 강하게 받은 지금의 디오는 어떻게 보면 작가 놈보다도 훨씬 더 껄끄러운 상대였다.

그런 녀석이 지금 아무런 대비도 없이 내 앞에 당당하게 서 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설마.’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한 가지.

마왕 디오가 불가능한 일이라면, 용사 디오가 해내면 된다.

“내가 말했을 텐데. 지금의 나는 너를 이길 수 없다고.”

그리고 한 가지 있었다.

녀석이 용사로서의 힘을 되찾을 방법이.

파직-!

파지직-!

디오의 손에서 점차 번져 나가기 시작한 빛무리.

그것은 무척이나 익숙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등장인물, ‘용사 디오’에 의해서 [개연성 무시]가 발동합니다!」

그와 함께 일어난 광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은 그 압도적인 광채는 이내 이 공간 전체를 장악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

그리고는 어느새 디오의 손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성검 다이베른이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만 같은 불꽃을 머금은 채로 그 흉악한 이빨을 드러냈다.

“아인즈 반. 너를 막겠다.”

* * *

「반과 서쪽의 마왕이 홀연히 사라진 후 덩그러니 남게 된 전대 용사 베른은 앞으로 다가올 시련에 대비해서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의 육체는 비록 전성기에 비하면 조금 쇠했으나, 이미 그의 경지는 여러모로 전성기 이상을 초월한 지 오래였다. 지금까지 목숨을 건 수많은 전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후욱! 후욱!”」

「조금, 조금만 더. 무언가 아련하게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미묘한 느낌이 그의 손끝에 감돌았다. 그의 스승은 이런 경우를 ‘벽에 부딪쳤다.’고 비유했지만, 지금의 베른이 느끼는 감정은 다름 아닌 ‘방해를 받았다’였다. 그 원인은 다름 아닌 반이 훌렁 놓고 간 짐 덩어리들 때문이었다.」

「“거기 아저씨, 괜히 힘 빼지 말고 여기 와서 차나 한잔 하는 건 어때요? 과자가 맛있는데.”」

「“단련은 좋은 일이지만, 적절한 휴식 또한 필요한 법.”」

「그 짐 덩어리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하이디와 루였다. 도대체가 한시도 반과 떨어지지 않던 녀석들이 웬일로 따라가지 않는가 싶더니만 아무래도 여기서 놀고먹으려고 한 모양이었다.」

「“반 녀석이 했던 말 들었을 텐데? 감당할 수 없는 위협이 다가오고 있다. 너희도 노닥거릴 시간이 있다면 단련을 아끼지 마라.”」

「“네에. 이것만 먹고요.”」

「“나는 낮잠도 한 번 자고 나서.”」

「……글러 먹은 녀석들. 저들을 그렇게 평하는 베른에게 있어서 더욱 복장이 터지는 사실이 있다면, 지금의 자신이 바로 저 글러 먹은 녀석 둘보다 명백하게 약하다는 사실이었다.」

「“괴물 녀석들.”」

「베른에게는 보였다. 겉보기에는 과자와 차나 홀짝이는 가녀린 소녀와 여성이었지만, 그 본질은 흉악하기 짝이 없는 블랙 드래곤과 정체조차도 알 수 없는 뿔과 날개가 달린 이족이라는 것이.」

「“후우.”」

「베른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강해져야 한다. 그가 그렇게 느끼는 것은 단순히 다가오는 위협 때문이 아니었다. 아인즈 반이 마치 알을 깨고 나온 새처럼 더 이상 그의 보호를 필요치 않게 되었을 때, 그는 왜인지 모르게 자신의 존재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마치 세상이 더 이상 그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 때문에 그는 필사적이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서, 그리고 존재하기 위해서. 첫 번째 이변은 그때 일어났다. 그가 누구보다도 필사적일 때.」

「현재 [비중]에 따라, [정산금]이 지급됩니다!」

「현재 비중: 26.1%」

「현재 적립된 정산금: 10,350G」

「“……뭐야?”」

「그 순간, 베른은 지금까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세계가 변하는 것을 느꼈다. 그래, 마치 그때와 같은 현상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그러나 의문은 길지 않았다.

이내 그의 눈앞에 새로운 것들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자본주의] 버프가 발동합니다!」

「현재 [자본주의] 버프 등급: [0단계]」

「[자본주의] 버프 등급이 증가할수록, 사용할 수 있는 권한 개수와 등급이 증가합니다.」

「현재 적립된 금액 중 일정 금액을 소요하여 다음과 같은 효과를 발동시킬 수 있습니다.」

+

[미리보기 결제] [0단계] - 「100G」

[개연성 무시] [0단계] - 「500G」

+

[미리보기 결제] [0단계]

미리보기 분량을 결제합니다.

현재 등급에 따라서 결제할 수 있는 편수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개연성 무시] [0단계]

일부 개연성을 무시합니다.

현재 등급에 따라서 무시할 수 있는 개연성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

그 순간, 베른은 직감했다.

지금껏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던 현상들에 대한 해답이 바로 이곳에 있다고.

그렇게 그가 미지의 영역으로 손을 뻗으려던 순간이었다.

파지직-.

짧게 일어난 이질감.

그러나 그 이질감은 그에게 있어서 이미 몇 번이나 보아왔던 것이었다.

‘설마……!’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일어난 이상을 느낀 베른이 재빨리 자신의 허리춤을 매만졌다. 그러나 그곳에는 언제나처럼 있어야 할 성검이 이미 사라져 있었다.

이해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한 터무니없는 현상.

추욱-.

어느새 그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용사의 힘이, 조금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망할……!”

언제나 그랬듯이, 또 다른 주인을 찾은 성검이 용사의 힘을 옮기는 매개체 역할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아는 한, 지금 세대에 용사의 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는 그를 제외하고 오직 한 명뿐이었다.

“……디오.”

그러나 베른은 주저앉아 있지 않았다. 이제 그에게 남아 있는 용사의 힘은 고작해야 반 정도였지만 이미 고난이라면 질리도록 겪어 온 그였다.

고작 그 정도의 시련이 그에게 절망을 안겨 줄 수는 없었다.

자리를 일어선 베른이 오래전 구석에 박아 두었던 쟁기를 꺼내며 말했다.

“한스, 자네의 힘을 다시 빌릴 때가 됐군.”

대장장이 한스.

베른이 농사를 지으며 조용히 여생을 마무리하려고 할 때, 인근 마을에서 대장간을 운영하던 대장장이.

촌구석에 있는 대장장이치고는 꽤나 실력이 뛰어난 편이었지만, 그저 그뿐인 사람.

그러나 베른은 왜인지 모르게 지금 이 말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자네와의 약속은 더는 지키지 못할 것 같군.”

그 약속은 사실 별거 없었다.

그저, 농기구를 소중하게 다뤄 달라는 약속.

하지만 베른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말이 무언가로 이어질 거라 생각했다.

마치, 아인즈 반이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개연성]이 요동칩니다!」

그와 함께 갑작스럽게 일어난 울렁거림.

베른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을 느꼈으나, 손에 들린 쟁기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봉인을 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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