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Chapter 24: 주연의 역습 (2)
「대다수의 독자가 ‘용사 디오’의 절대적인 카리스마에 기쁨의 교성을 내지릅니다!」
「[주인공]을 지지하는 일부 독자가 당신이 [정의 구현] 당하기를 원합니다!」
「등장인물, ‘용사 디오’에게 [힘을 되찾은 주인공] 버프가 적용됩니다!」
「[힘을 되찾은 주인공] 버프의 효과로, ‘용사 디오’의 전투력이 일시적으로 상승합니다!」
그와 함께, 다시금 옛 주인의 품으로 돌아간 성검에서 붉은빛과 노란빛이 뒤섞인 기묘한 힘이 뿜어져 나왔다.
‘이건…… 조금 위험하군.’
마족 왕자인 내가 조금이나마 위협을 느낄 정도의 힘.
예전이었다면 턱도 없을 일이었으나 용사와 마왕, 그 두 가지 힘을 모두 다 다루는 디오에게 있어서는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데 신경 쓸 여유가 있나 보군.”
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몰아친 폭풍우.
콰아아앙!
그러나 그 힘이 통한다고 해서, 그 사이에 존재하는 절대적인 무력의 차이가 줄어드는 건 아니었다.
“졸려서 한숨 자고 올까 생각 중이야.”
“언제까지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나 보겠다.”
“굳이 그때까지 지켜볼 필요 없어.”
그와 함께, 디오에게서 몰아치던 폭풍우가 가벼운 손짓 한 번에 흩어졌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어쩌다가 사람이 개미에게 물릴 수는 있어도, 결국 개미는 개미고 사람은 사람이다.
본질적인 차이는 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먼치킨] 클리셰가 발동 중입니다!」
「[먼치킨] 클리셰의 효과로, [주인공] 버프의 효과를 일부 무시합니다!」
디오의 얼굴에서 긴장의 기색이 비쳤다.
“……괴물 녀석.”
“날 막는다며? 더 분발해야겠는데?”
“건방 떨지 마라.”
말하기 무섭게 디오의 오른손에 잡힌 성검에서 순백의 빛이, 그리고 왼손에서는 붉은빛이 맺히기 시작했다.
얼핏 보면 조금 전에 했던 공격과 비슷해 보이는 공격.
그러나 그 두 가지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었다.
「타락 용사 전용 스킬, [신념을 잃은 정의]가 발동합니다!」
……이젠 자기가 진짜 게임 캐릭터인 줄 아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마냥 저걸 무시할 수는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으레 게임이라면 기본 공격보다는 스킬이 강한 법이었으니까.
콰카카카캉-!
“꺄악!”
“에드윈!”
나름대로 용사라는 녀석이 주변이 휩쓸리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이런 무식하기 짝이 없는 공격이라니…….
‘고맙게도 말이지.’
늘 그렇지만, 나처럼 대놓고 나쁜 놈이라면 모를까. 영웅을 자칭하기 위해서는 언제나처럼 큰 제약이 따르는 법이다.
바로 지금처럼.
「[선]을 지지하는 일부 독자가 주위를 배려하지 않는 거침없는 [주인공]의 공격에 약간의 불편함을 표합니다!」
「[정의]를 지지하는 일부 독자가 [정의]를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며 그 의견에 반박합니다!」
「등장인물, ‘용사 디오’의 [주인공] 버프가 일부 약화됩니다!」
그와 함께, 조금 전보다 명백하게 약화된 [신념을 잃은 정의]를 향해서 내가 가볍게 손을 뻗었다.
비록 녀석처럼 거창한 [스킬]은 아니었지만, 이미 약화된 공격에는 그 정도면 차고도 넘쳤다.
슈아아앙-!
“큭!”
결국 내 힘을 견디지 못한 디오의 몸이 그대로 형편없이 튕겨 나가며 모래사장 한복판을 굴렀다.
“쿨럭!”
피와 섞인 모래를 뱉어내며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서는 디오의 모습.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말했다.
“벌써 끝이야?”
“건방…… 떨지 말라고 했다.”
그때였다.
「성기사 직업 스킬, [중급 회복]이 발동합니다!」
그와 함께, 디오의 전신에서 일어난 녹색 빛과 함께 피와 모래로 뒤섞여 있던 녀석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가기 시작했다.
“이건…….”
놀람으로 물든 디오의 시선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강한성기삽니다가 있는 곳이었다. 아까 디오가 행한 무식한 공격에 휩쓸려서 그 역시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건만, 상처투성이의 모습으로 디오를 돕기 위해서 나선 것이었다.
“뭐해요! 어서 일어나지 않고!”
“……고맙군.”
“어차피 당신이 죽으면, 우리도 죽어.”
그렇게 말하는 강한성기삽니다의 시선에는 무언의 원망이 섞여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까의 공격에 약간이나마 악감정을 가진 듯 했다.
비록 완전히는 아니지만, 겉으로 보이는 상처를 모두 회복한 디오가 내 앞에 섰다.
“기다려줄 줄은 몰랐군.”
“내가 꽤 친절한 편이거든.”
어차피 내 목적은 디오를 죽이는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물론, 내 의견이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이 반드시 그 생각을 알아주는 것은 아니었다.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그 친절함, 반드시 보답하지.”
“아이고 고마워라.”
그 순간, 디오의 몸에서 여러 가지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성기사 직업 스킬, [신성 방패]가 발동합니다!」
「성기사 직업 스킬, [신성 보호]가 발동합니다!」
「성기사 직업 스킬, [신의 축복]이 발동합니다!」
그와 함께 디오의 몸을 지키듯이 감싼 빛무리들.
아무래도 모종의 버프를 걸어 준 듯했다.
그리고 그것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화염 술사 직업 스킬, [폭염의 가호]가 발동합니다!」
「화염 술사 직업 스킬, [샐러맨더의 수호]가 발동합니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에드윈까지.
비록 저들의 실력 자체는 별거 아니었으나, 문제는 그 버프가 들어간 대상이 용사 디오라는 점이었다.
비록 쥐어 준 것이 녹슨 철검에 불과할지라도, 그것을 쥔 자가 명인이라면 달라진다는 이야기였다.
‘이것 봐라.’
어느새 온갖 버프를 몸에 두른 디오의 모습은 그야말로 접대받는 용사님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지금껏 간과하고 있던 한 가지 사실에 대해서 되새길 수 있었다.
‘만약 성직자 같은 정통 보조 클래스가 단체로 디오를 보조한다면…… 꽤 성가셔지겠군.’
그 말은 즉, 내가 신경 써야 할 것이 훗날에 다가올 [플레이어]들의 성장뿐만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말 그대로 짜증 나기 그지없는 상황.
‘썩을 망겜 같으니.’
도대체가, 사냥당하는 쪽도 조금은 배려해 줘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금 나에게 있어서 그런 불평을 늘어놓을 시간은 없었다. 어느새 온갖 버프를 몸에 두른 디오가 성큼성큼 그 발걸음을 나를 향해서 옮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인즈 반!”
“성격도 급하기는.”
자, 이제 어쩔까…….
사실, 지금 당장 내가 이 위기 아닌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눈앞에 있는 에드윈과 강한성기삽니다를 압도적인 화력으로 죽이고, 그 후에 홀로 남은 디오를 제압하면 된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저 둘을 ‘평범한 방법’으로 죽이게 되면 저들은 다시 원래의 대륙에서 멀쩡한 모습으로 부활할 테고, 나는 내가 한 말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게 된다.
즉, [최종보스]로서 위엄에 손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
당장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며 저들을 절망에 빠뜨려도 모자랄 판에, 본 게임이 시작하기도 전에 그런 실추를 보인다?
그건 앞으로의 내 행보에 있어서 크나큰 장애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았다.
‘남은 방법은 한 가지군.’
압도적인 힘으로 온갖 버프를 두른 디오를 쳐부순다.
내가 그렇게 다짐하는 사이, 디오가 선공을 취했다.
「용사 전용 스킬, [마왕 살해]가 발동합니다!」
그와 함께 일어난 거대한 검기.
용사의 빛과 마왕의 힘. 그리고 미약하나마 신성력과 불의 마력까지 깃든 힘이 나를 향해서 쇄도했다.
콰콰콰콰!
‘……어설프게 상대할 수는 없겠군.’
지금까지는 디오가 어떤 공격을 해도 그저 가벼운 손짓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그렇게까지 대충 상대할 수만은 없었다.
뿌득-.
뿌드득-.
그와 함께, 내 머리 위에서 감춰져 있던 마족 왕자의 뿔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족의 뿔은 힘의 상징.
그리고 그런 상징을 직접 드러낸 이상, 압도적인 모습만을 보여야 한다.
「[먼치킨] 클리셰가 강하게 발동 중입니다!」
「[먼치킨] 클리셰의 효과로, [주인공]을 포함한 모든 등장인물을 평등하게 만듭니다!」
‘한 번에 끝낸다.’
거기에는 그럴듯한 스킬도, 멋들어진 필살기도 필요 없었다.
그저 압도적인 육체적 성능과 본신의 힘으로 강하게 때린다는 의지.
그거면 충분했다.
“터무니없는……!”
불어온 광풍과 함께 디오의 얼굴이 점차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이내 그 광풍이 그쳤을 때, 그곳에 남은 것은 쓰러진 디오의 모습과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는 에드윈과 강한성기삽니다뿐이었다.
“용사가 이렇게 허무하게…….”
“자, 이제 얘기를 계속하지. 죽을 사람은 정했나?”
그 얘기를 들은 강한성기삽니다와 에드윈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던 것처럼.
“그, 그게 무슨…… 설마 아직도 서로 죽이라는…….”
“내가 약속했을 텐데? 둘 중 한 명은 살려 주겠다고.”
내가 지금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다분히 의도적인 무시.
마치 처음부터 디오의 등장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 의도는 정확하게 먹혀들어 갔다.
“……저런 괴물을 잡으라고? 몇만 명이 몰려가도 불가능해.”
그 몇만 명에 디오가 포함된다면 결과는 당연히 다르겠지만, 저들이 저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는 ‘절망’과 ‘공포’를 연출했고, 그 점이 저들에게 훌륭하게 먹혀들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때였다.
“아직…… 아직 끝이 아니다.”
다 죽어 가는 목소리.
그 목소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디오였다.
그의 모습은 정상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있어 보였지만,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간신히 입을 연 모양이었다.
“살아남았으면 몰래 죽은 척이나 할 것이지. 굳이 그렇게 죽고 싶은가 봐?”
“큭…… 큭큭…… 죽일 수 있으면 죽여 봐라.”
이것 봐라?
무언가 알고 얘기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허세를 부리는 건지는 알 수 없었으나 상황이 상당히 더러워진 것만은 확실했다.
‘플레이어 녀석들부터 치우고 적당히 기절시켜 놔야겠군.’
그렇게 내가 에드윈과 강한성기삽니다 쪽으로 시선을 옮긴 순간이었다.
「성직자 직업 스킬, [완전 회복]이 발동합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빛.
그와 함께, 쓰러져 있던 디오의 모든 상처가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생존자가 남았었나?’
아니, 생각해 보면 그 수많은 함선에 탄 플레이어 중에서 헤엄쳐서 대륙까지 도달한 것이 에드윈과 강한성기삽니다뿐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무리였다.
‘시간을 너무 끌었군.’
어느새 바닷속에서 하나둘씩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플레이어]들의 모습.
에드윈이 얘기한 것처럼 몇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숫자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몇백 명에는 이르는 숫자였다.
시킨 일 처리 하나 똑바로 하지 못하는 아자토스에게 나도 모르게 원망의 시선이 갔지만,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디오에게 수많은 빛이 작렬하게 시작했다.
「성직자 직업 스킬, [재생 촉진]이 발동합니다!」
「성직자 직업 스킬, [축복]이 발동합니다!」
「성직자 직업 스킬, [신성한 불길]이 발동합니다!」
「성직자 직업 스킬, [신성 강림]이 발동합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기사 직업 스킬, [보호의 맹세]가 발동합니다!」
「흑마법사 직업 스킬, [생명력 공유]가 발동합니다!」
「드루이드 직업 스킬, [자연의 축복]이 발동합니다!」
「도적 직업 스킬, [은밀한 발걸음]이 발동합니다!」
순식간에 말 그대로 온갖 버프로 떡칠 된 디오의 모습.
물론, 저렇게까지 떡칠이 됐다고 한들 내가 진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저 지금까지처럼 압도적인 모습으로 이길 수는 없다는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조차도 충분히 거슬리는 사실이었다.
‘어쩔까…….’
정석대로라면 그냥 디오의 뒤에서 사리고 있는 [플레이어]들을 단번에 쓸어버리면 된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의 디오 정도라면 충분히 나를 방해할 수는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는 게 이런 심정일까.
부르지도 않았는데 잘도 쫓아온 마왕은 내가 디오와 푸닥거리를 하는 사이에 어디론가 사라졌고, 아자토스는 어느새 활동 시간이 한계에 달했는지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그러나 사람이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했던가.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재미있어 보이는데, 나도 껴 주지 그래?”
평소였다면 그다지 반갑지는 않은 목소리였으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딘가 반갑게 들려온 목소리.
그 정체는 다름 아닌 베른이었다.
“오랜만이다. 디오. 나보고 도둑놈이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네?”
“……내 물건을 되찾았을 뿐이다.”
“그래, 그래. 그래서 나도 직접 온 거야. 직접 되찾으러.”
“당신은 그게 더 어울려.”
디오가 가리킨 것은 다름 아닌 베른의 등에 매달리다시피 있는 쟁기였다.
“아, 이거? 나도 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긴 해.”
베른이 그렇게 미소를 지으며 쟁기를 손에 집어 든 순간이었다.
“무슨……!”
디오가 경악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손에서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그 덩치를 불려 나가기 시작한 그놈의 쟁기를 보고서, 놀라지 않을 인간은 이곳에 없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 나타난 쟁기의 크기가 도저히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고작 인간의 크기인 베른이 저걸 어떻게 들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아아, 이것은, ‘쟁기’란 것이다. 이 땅을 농경지로 만들어 버릴 수 있지.”
그 말은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