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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 이후의 소설 속-106화 (106/164)

◈ 106화 Chapter 24: 주연의 역습 (3)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하던가.

지금 일어난 일 역시도 바로 그러한 맥락과 같았다.

그저, 쟁기질 한 번.

그러나 그 쟁기질은 상식과는 한참은 멀리 떨어진, 그런 쟁기질이었다.

“말도 안 되는…….”

멀리서 보면, 지금 일어난 일은 꽤나 간결했다.

농부가 쟁기질을 했고, 그 땅이 농사짓기에 꽤 그럴듯한 농경지가 된 것.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그 느낌은 또 달랐다.

단 한 번의 쟁기질. 그 단순한 행위로 천지가 뒤집어졌다.

“끄으으…….”

“괴, 괴물……!”

뒤집힌 것은 해변에 위치한 모래사장뿐만이 아니었다. 해변과 인접한 바닷가 역시도, 그 무자비한 쟁기질에 의해서 썰물도 아닌데 처참하게 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인근에 위치한 모든 공간이 농경지로 변해 버린 것이었다.

당연히 그에 휩쓸린 [플레이어]와 디오가 무사할 리가 없었다.

“크윽…… 이 무슨 터무니없는……!”

“뭘 그리 놀라? 농부가 쟁기질하는 거 처음 봐?”

「대다수의 독자가 ‘베른’이 휘두른 ‘쟁기’의 터무니없는 위력에 얼이 빠집니다!」

「주말농장 경력 5년 차를 자처하는 한 독자가 바다 인근 땅에서는 바닷물의 염분 때문에 농사가 불가능하다며 [설정] 오류를 지적합니다!」

「클리셰 붕괴의 효과로, 일부 [물리법칙]과 [자연법칙]이 무시됩니다!」

베른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한스는 말이야. 항상 굶어 죽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까워했어. 아직 걷지도 못하는 갓난아기가 어미의 젖이 없어서 죽고, 그 어미는 배를 곯아서 죽고. 그래서 생각했지. 굶어 죽는 이가 없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쟁기는 그러던 도중에 만들어졌다. 식량이 없다면, 식량을 만들 땅을 만들어 내면 되니까. 하지만 그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해서일까, 한스는 어느덧 자신이 터무니없는 물건을 만들어 버렸다는 걸 깨달았지.”

베른이 계속해서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물건을 완전히 폐기해 버릴 수는 없었어. 제아무리 위험하다고 한들, 그것에는 한스 자신의 그토록 원했던 염원이 담겨 있었으니까. 그래서 봉인을 했지. 이 위험한 물건이 엄한 이의 손에서 함부로 쓰이지 않도록. 그리고 나와 약속했어. 이 물건은 절대로 농경지를 만드는 용도 이외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나는 지금, 그 약속을 깼다.”

베른이 자신의 손에 들린 쟁기를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참 순진한 친구지. 아무런 제약도 없이 나를 믿은 것도 그렇고, 이 세상에 정말로 식량이 부족하다고 믿는 것도 그렇고. 사실 이 세상은 전혀 식량이 부족하지 않은데 말이야. 잘못된 것은 식량 분배의 불균형을 만들어 낸 이 세계 때문인데.”

「오늘도 국제 구호 기구에 기부금을 전달한 한 독자가 ‘베른’의 발언에 씁쓸함을 표합니다!」

「불우한 이웃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자신도 도와달라며 구걸에 나섭니다!」

베른이 진흙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디오를 향해서 쟁기를 겨누며 말했다.

“디오, 너를 그 지긋지긋한 운명에서 꺼내 주겠다.”

“……헛소리.”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디오에게 수많은 버프를 걸어 주던 [플레이어]들의 과반수가 어딘지도 모를 농경지의 지하 아래에 처박힌 지 오래였다.

물론, 간신히 생매장을 피한 일부 [플레이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들의 상태 역시도 결코 멀쩡하지 못했다.

“으으…….”

“서, 성직자 없어? 내 체력이…… 꺽!”

상황이 그러했으니, 당연히 지금 디오의 곁에는 그를 도울 그 어떤 존재도 존재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홀로 쓸쓸하게 남은 상황.

베른 역시도 그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에, 여유롭게 말했다.

“지금 너에게 승산은 없어.”

“자신이 과하군.”

“예전에도 말하지 않았나? 싸우는 건 내가 아니라고.”

그와 함께 은근슬쩍 내 뒤로 몸을 숨기는 베른의 모습.

“자, 덤벼.”

“…….”

「대다수의 독자가 ‘베른’의 허세 없는 행동에 큰 유쾌함을 표합니다!」

「선비를 자처하는 한 독자가 호가호위(狐假虎威)를 적절히 이용하는 ‘베른’의 모습에 깊은 탄복을 표합니다!」

기껏 멋지게 등장해서 있는 폼이란 폼은 다 잡아놓고, 마무리는 역시나 베른다웠다.

그 사이, 어느새 비틀거리며 진흙 속을 헤치고 나온 디오가 씹어 삼키듯이 말했다.

“오늘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대놓고 훗날을 기약하는 디오의 모습에 베른이 이죽거렸다.

“도망이라도 치려고? 우리가 이렇게 두 눈 멀쩡히 뜨고 있는데 가능하겠어?”

“그러면 죽이던가.”

그와 함께 슬쩍 나에게로 시선을 옮긴 디오의 시선에는 상당히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이것 봐라.’

아까는 뭘 알고서 하는 말인가 긴가민가했는데, 지금은 확신이 섰다.

지금 디오는 내가 자신을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와 함께 디오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역시. 너는 날 죽이지 못해.”

그리고는 녀석의 앞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균열.

파직-.

파지직-!

「등장인물, ‘용사 디오’에 의해서 [개연성 무시]가 발동합니다!」

저 징조가 무엇인지 눈치챈 베른이 외쳤다.

“어딜 도망가!”

베른이 다시 한번 힘차게 쟁기를 휘둘렀으나, 그저 천지가 요동칠 뿐 지금 디오의 도망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 빚은 반드시 갚겠다.”

그 말과 함께, 균열과 함께 일어난 푸른빛이 디오의 몸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눈이 멀어 버릴 것처럼 환한 빛이 마침내 멎었을 때, 그 자리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놓쳤군.”

디오를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인지, 아니면 나에 대한 원망인지는 몰라도 그 광경을 지켜본 베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나를 향했다.

“너…… 왜 가만히 보고만 있는 거냐.”

아무래도 후자였던 모양.

그리고 베른의 추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디오 녀석이 말이 사실이냐?”

“아예 틀린 말은 아니죠.”

디오가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다면, 나는 디오를 죽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않는 것’뿐이지만 말이다.

“……자세히 설명해라.”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지금 베른의 눈은 더 이상 말을 돌리거나 대답을 회피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기세였다.

자, 어쩔까…….

고민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으레 세상의 모든 거짓말이 그렇듯이, 가장 완벽한 거짓말은 진실에서 비롯된 거짓말이다.

“디오가 죽으면, ‘끝’이 찾아옵니다.”

“끝? 그게 무슨 말이냐? 무엇의 끝이 찾아온다는 거지?”

“이 세계.”

“……뭐?”

더없이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인 베른이 이내 말했다.

“……터무니없군. 디오 녀석이 특별한 존재라는 것쯤은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녀석의 존재 자체가 이 세계의 명운을 걸 정도로 특별한지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이군.”

사람들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큰 비밀을 말하면, 그것에 대해서 수용하기보다는 의심과 부정을 앞세운다.

그리고 그러한 것은 베른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렇게 말한 베른의 표정은 여전히 납득한 얼굴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적당한 선에서 스스로와 타협한 듯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배배 꼬인 심사가 어디 가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대로 손가락만 빨고 있다가 디오 녀석에게 죽으면 되는 일인가?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면 되겠군. 아주 좋아. 유서는 지금 쓰면 되는 건가?”

「길거리 찹쌀 꽈배기 장사 3년 차를 자처하는 한 독자가 ‘베른’의 배배 꼬인 심사에 입맛을 다십니다!」

「소수의 독자가 꽈배기 장사 독자의 뒤틀린 황천의 식성에 혐오감을 표합니다!」

“……굳이 죽어 줄 필요는 없겠죠.”

“그러면 뭐 어쩌자고?”

“우리의 적이 디오뿐만은 아니죠. 바로 그 점을 노릴 겁니다.”

내가 턱짓으로 이미 반파되다시피 한 함선들이 늘어선 바다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부의 적만큼, 두려운 건 없는 법이니까요.”

* * *

「“끄으윽…….”」

「디오는 상처투성이인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짧게 신음했다. 그날의 사고 이후, 자신의 몸은 더 이상 일개 게임 캐릭터의 몸이 아니게 되었고, 이후 이곳에서 얻는 고통과 상처는 순전히 그의 몫이 되었다. 때문에 지금의 디오에게 있어서 이곳은 이미 또 다른 현실이었다.」

「“괜찮아요?”」

「그렇게 말한 이는 다름 아닌 에드윈이었다. 디오가 아인즈 반과 베른을 피해서 그곳을 벗어날 때, 그나마 주변에 있던 몇 명의 플레이어를 함께 데려온 것이었다. 말하자면 디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셈이었다.」

「“하필이면 유일하게 회복이 가능한 클래스가 기절해 있다니…….”」

「그렇게 말한 이는 까망베르 길드 소속의 부길드장인 체다였다. 그의 말처럼 그의 클래스는 레인저로, 약초를 얻을 수 있는 특수한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 이상 회복 계열의 스킬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있는 클래스였다.」

「“선배…….”」

「에드윈은 자신의 눈앞에 형편없는 몰골로 기절해 있는 강한성기삽니다를 바라보았다. 이럴 때만큼은 기절 상태 이상조차도 쓸데없이 리얼하게 구현된 게임성이 원망스러웠으나, 그나마 자신을 이런 곳에 혼자 버려둔 채로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에드윈이 그렇게 강한성기삽니다를 애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그 광경을 바라보던 체다가 말했다.」

「“고작 셋인가…….”」

「체다가 말한 셋이라는 의미는 현재 디오가 얼떨결에 구해 낸 플레이어의 숫자를 말하는 것이었다. 에드윈과 강한성기삽니다 그리고 체다까지. 무려 5만 명이 넘는 플레이어가 참여한 첫 번째 대규모 원정에서 고작 셋이 살아남은 것이다. 그것도 월드 퀘스트의 핵심 인물인 용사 디오의 도움을 받아서.」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다 죽었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요? 그래도 몇 명 정도는…….”」

「“낙관적인 건 좋지만, 제대로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얼굴만큼이나 마음씨도 예쁘장한 숙녀분.”」

「“……지금 그거 조크예요?”」

「“긴장을 풀어주려는 친절한 신사의 배려죠.”」

「그와 함께 에드윈의 표정이 지금껏 볼 수 없을 정도로 더 없이 구겨졌다. 다른 여자들이라면 모를까, 그녀는 저렇게 가볍고 실속 없는 남자들을 매우 혐오했기 때문이었다.」

「‘남자라면 모름지기 진중하고 듬직해야지.’」

「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기절해 있는 강한성기삽니다에게 시선이 가는 에드윈이었으나,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렇게 그녀가 강한성기삽니다가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누워 있을 시간이 없다.”」

「“예?”」

「대뜸 입을 연 것은 다름 아닌 용사 디오였다.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던 그가 대뜸 일어나서 저렇게 말하자, 에드윈과 체다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너희들을 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리고 그 일에는 너희의 도움이 필요하다.”」

「마치 대답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이 시작된 거침없는 말. 하지만 그렇기에 그 말을 듣는 순간, 에드윈과 체다는 그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월드 퀘스트의 연계 퀘스트다!’」

「월드 퀘스트의 핵심 인물인 용사 디오가 직접 제의한 것이라면, 굳이 알아볼 필요도 없이 분명하리라.」

「“그게…… 무슨 일이죠?”」

「“통로를 열어야 한다.”」

「“……통로? 무슨 통로를 말씀하시는 거죠?”」

「디오가 손가락으로 자신과 플레이어 사이를 한 번 쭉 그으며 말했다.」

「“너희의 대륙과 우리 대륙을 잇는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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