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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 이후의 소설 속-110화 (110/164)

◈ 110화 Chapter 25: 하차 이후의 게임 속 (3)

「“하지만…… 고작해야 몬스터잖아요?”」

「에드윈의 의문은 타당한 것이었다. 제아무리 월드 퀘스트의 최종 목표라지만, 상대는 어디까지나 일개 몬스터였다. 그런 몬스터가 미지의 대륙을 넘어서 이미 플레이어들이 정복한 지 오래된 튜드 대륙까지 손길을 뻗친다? 그녀의 상식으로는 너무나도 이상한 일이었다.」

「“고작해야 몬스터라…… 재미있군.”」

「그녀의 말에 그저 씁쓸한 웃음으로 답한 디오의 모습과 함께 잠시 동안 침묵이 찾아왔다. 평소였다면 이쯤에서 체다가 나서서 실없는 소리나 한번 늘어놓았을 테지만, 왜인지 모르게 이미 이 침묵의 버스에 합승한 상태였다.」

「“그걸 단순히 몬스터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이상한 부분이 많아. 레벨과 아이템을 초기화시킬 수 있는 몬스터라니, 말이 된다고 생각해?”」

「강한성기삽니다의 말에 어느새 잊고 있었던 그때의 악몽을 되새긴 에드윈이 살며시 몸을 떨었다.」

「“……그것도 그러네요.”」

「“단순한 몬스터가 아니니까.”」

「끼어든 것은 다름 아닌 디오였다. 그의 난입이 의외였는지, 강한성기삽니다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물었다.」

「“……몬스터가 아니라면 살아 있는 버그 덩어리라도 됩니까?”」

「“버그 덩어리라…… 재미있는 비유군. 어쩌면 그럴지도.”」

「반쯤은 농담에 가까운 말이었으나, 진지함이 한껏 묻어난 디오의 반응에 강한성기삽니다의 표정이 살며시 굳었다. 그리고는 마치 무엇인가를 결심한 듯이 말했다.」

「“용사님,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플레이어’십니까?”」

「무겁기 짝이 없는 그의 질문에 괜히 옆에 있던 체다의 몸이 움찔했다. 사실, 누구보다도 그 사실이 궁금했던 체다였으나 그런 질문을 할 분위기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기에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강한성기삽니다가 마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듯이 먼저 말을 꺼내자, 유독 크게 반응한 것도 당연한 이야기였다.」

「“재미있군.”」

「디오의 표정에는 그 어떤 변화도 없었다. 그리고는 나머지 단어를 내뱉었다. 여전히 무감하기 짝이 없는 어조로.」

「“편한 대로 생각해.”」

「“…….”」

「아니, 사실은 이 자체로도 이미 대답이나 다름없었다. NPC들, 즉 토착민들은 플레이어들을 부를 때 ‘여행자’라고 부르지, ‘플레이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아니, 아예 인지조차도 하지 못한다. 그 때문에 이러한 디오의 대답은 또 다른 대답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이들에게 있어서 엄청난 충격이었다.」

「“…….”」

「다시 한번 기나긴 침묵이 오갔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깬 것은 다름 아닌 디오였다.」

「“오래 쉬었군. 계속 가지.”」

「디오가 턱짓으로 가리킨 것은 다름 아닌 던전 안쪽이었다. 디오는 지금 계속해서 사냥을 이어 가자고 말하는 것이었다.」

「“……계속 가는 건가요?”」

「“그래.”」

「“하지만 지금 마족 왕자는 튜드 대륙에 있잖아요?”」

「“그렇지.”」

「“이해가 안 돼요. 튜드 대륙이 이미 그자의 손에 넘어가고 나면 두 대륙 사이를 잇는 통로를 만든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 없잖아요? 지금 당장이라도 돌아가서 그자를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에드윈의 말은 정론이었다. 그녀의 말처럼, 튜드 대륙이 그의 손에 넘어가고 나면 통로를 잇는 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악효과였다. 그리고 그에 대한 디오의 반응 역시도 부정이 아닌 수긍이었다.」

「“그렇겠지.”」

「반론 한마디 없이 가볍게 수긍한 디오의 말에 무어라 몇 마디를 더 꺼내려던 에드윈은 그대로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그녀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 디오가 조금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말대로, 지금 튜드 대륙으로 넘어가서 녀석을 막는 건 최선의 수다. 중간에 불필요한 과정도 필요 없을 테고, 앞으로 생겨날 무수한 의미 없는 희생도 생기지 않을 테지.”」

「“그렇다면 더욱 지금 당장…….”」

「“물론, 성공했을 때의 이야기겠지만.”」

「디오의 말에 에드윈은 그대로 할 말을 잃었다. 그래, 그랬다. 당장 디오가 보여 온 압도적인 신위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지만, 월드 퀘스트의 최종 목표인 마족 왕자는 보통 존재가 아니다. 아니, 이미 패배를 경험도 했다. 그럼에도 말을 꺼낸 것은 에드윈 스스로 자신이 어느 정도 성장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라면 충분히 마족 왕자를 막아낼 수 있어요!”」

「“그렇게 안 봤는데, 보기보다 어리석군.”」

「그렇게 말한 디오가 일행들을 한 번 훑었다. 다들 입 밖으로는 내뱉지 않고 있었지만 내심 에드윈의 의견에 동의하는 눈치였다.」

「“상대의 역량을 아는 것도 실력이다. 그런 의미로 지금의 너희들은 형편없군.”」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강한성기삽니다가 항변하자, 디오가 조소를 머금고는 말했다.」

「“지금 너희가 짊어진 것을 너무 가볍게 보는군. 단 한 번의 실패로 모든 것을 잃는다. 그 의미를 모르겠나?”」

「“허 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체다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참고 있었던 게 용한 수준이었다.」

「“기껏해야 게임에 무슨…….”」

「그러나 그 말은 명백한 실수였고, 오판이었다. 그 말은 디오에게 있어서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을 건드렸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에게 있어서 이곳은 ‘기껏해야 게임’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잘못 생각했군.”」

「그 순간, 에드윈을 포함한 일행들은 정체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원인은 결코 멀리 있지 않았다.」

「“너희에게 없는 것이 절실함이라면, 내가 그 절실함을 주지.”」

「왜인지 모르게 불길하게 울려 퍼진 목소리. 디오에게 생긴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에드윈이 그 말에 의문을 표했다.」

「“그게 무슨 소리…….”」

「그러나 에드윈은 곧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작은 균열. 그와 함께 그들의 앞에 지금껏 없었던 새로운 알림창을 본 순간, 그녀는 디오가 말한 ‘절실함’이 무엇인지 여지없이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히든 퀘스트 – 용사의 동료》가 강제로 수락됩니다!]」

「[《히든 퀘스트》의 효과로, 월드 퀘스트 클리어 전까지 로그아웃이 제한됩니다.]」

* * *

“흐암.”

늘어지게 하품 한 번.

그리고는 기지개를 쭉 켜자, 손끝에 뭐가 걸렸다.

그래, 촉감조차도 꼬장꼬장한 그런 느낌이었다.

“한가해 보이는군.”

“실제로 그러니까요.”

팔자 좋게 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굳이 무엇을 더 할 필요도 없이 상황이 스스로 변해 가고 있을 뿐.

“여행자들을 잡아라!”

“거기서라!”

“고작 NPC 주제에 미쳐 가지고…… 야, 들이받아! 이대로 잡혀가느니 그냥 싸우다가 죽는 게 나아!”

“하긴, 자기들이 레벨이 높으면 높았지, 기껏해야 인공지능 주제에 우리한테 이러는 게 말이 돼?”

상황이 이렇게까지 변한 이유는 간단했다.

토착민들은 지금까지 받았던 억압을 견디지 못했고, 플레이어들은 지금까지 누려 왔던 것들을 잃고 싶지 않아 했다.

토착민과 여행자.

NPC와 플레이어.

내가 한 일은 그저 그들 사이에 내재되어 있던 불화의 씨앗을 터트린 것에 불과했다.

“죽여서는 안 된다. 반드시 생포해라!”

“잡힐 것 같으면 차라리 죽어!”

마치 아귀싸움처럼 보이는 토착민들과 플레이어들의 끊이지 않는 전쟁을 바라보며 베른이 툭 내뱉었다.

“지옥 같군.”

“무슨 소리를. 제가 거기 출신이라서 아는데, 생각보다는 있을 만해요.”

그와 함께 베른의 표정이 더없이 이상해졌다.

“진담이냐?”

“뭐…… 반 정도는?”

“지옥에 있었다는 게?”

“아뇨. 있을 만하다는 게 농담이었는데.”

입시 지옥, 취업 지옥, 결혼 지옥, 노후 지옥처럼 지옥이 끊이지 않는 곳이 있을 만할 리가 있겠는가.

당연히 농담이지.

“…….”

「설정 덕후를 자처하는 한 독자가 당신의 [설정]을 떠올리고는 박장대소합니다!」

「저세상 칼럼니스트를 자처하는 한 독자가 현실이 힘든 것은 현실이 힘들다는 강박관념을 심어 준 반정부 세력이 주도한 세뇌의 효과라며 당신의 발언을 지적합니다!」

……정말 지옥 같군.

내가 그렇게 짧게 평가하는 사이, 몇 번인가 이상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베른이 이내 입을 열었다.

“……어쨌거나, 이제 어떻게 할 거지? 굳이 뭘 해야 할 필요성은 없어 보이지만, 네가 이대로 가만히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저를 너무 잘 아시네요.”

“하루 이틀 봤어야지.”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어요. 비록 지금은 제가 의도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지만, 곧 몇 가지 변수가 생길 겁니다.”

베른이 흥미롭다는 듯이 물었다.

“그래서?”

“기다려야죠.”

“뭐?”

“제가 말했잖아요? 변수라고. 변수를 어떻게 예측해요? 보고 나서 대응해야지.”

궤변이라면 궤변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토착민과 플레이어들의 전쟁 양상은 의외로 무척이나 간단했다.

토착민들은 애당초 목숨이 한 개뿐이니 죽으면 그대로 끝이었고, 불사일 것만 같던 플레이어들도 잡히면 언제 빠져나올지 짐작도 안 되는 감옥에 갇힌다. 즉, 마냥 플레이어들에게 유리할 것만 같았던 전쟁의 양상이, 오히려 서로 목숨이 한 개인 ‘진짜 전쟁’으로 변하며 바뀐 것이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은 당연히 평균 레벨이 월등히 높은 토착민 쪽이었다. 즉, 이대로라면 튜드 대륙에 널려 있는 플레이어들이 모조리 다 감옥에 잡혀가는 것도 이제 시간문제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였다.

‘이대로 끝날 리는 없겠지만.’

상황이 이대로 내가 짠 대로 흘러가면 참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렇게까지 낙관주의자는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현실주의자 쪽이지.

‘변수라…….’

지금 이 상황에 있어서 변수가 될 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역시 가장 큰 변수라고 하면 디오의 존재였다.

녀석이 플레이어 몇을 빼돌린 것까지는 이미 확인한 사항.

하지만 위협이 되기에는 아직 한참이나 모자랐다. 그 정도의 성장 속도라면, 내가 모든 일을 끝내고 나서도 모자란 수준이었다.

상황은 전체적으로 보면 전혀 나쁘지 않았다. 변수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인지 모르게 무엇인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러한 생각을 얼마 동안이나 했을까, 나는 마침내 그 이질감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마왕은 어디에 있죠?”

“응? 그러고 보니…… 요즘 본 기억이 없군. 언제부터였지?”

마왕이 없어진 것까지는 용납 가능한 수준이었다.

어차피 내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지금의 그녀가 가진 사상과 신념이 나에게 있어서 상당히 위험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하이디랑 루는요?”

“나 참…… 그걸 이제야 묻는 거냐? 하이디와 루라면 내가 떠날 때 그곳에 남았어.”

이걸 잊고 있었다고?

……아니, 내가 너무 얕보고 있었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를.

「등장인물, ‘하이디’의 [공기] 속성이 강하게 발동 중입니다!」

「등장인물, ‘루’의 [공기] 속성이 강하게 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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