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차 이후의 소설 속-112화 (112/164)

◈ 112화 Chapter 25: 하차 이후의 게임 속 (5)

「[미리보기]가 종료됩니다.」

이것 봐라…….

지금 마왕이 요구하는 바는 간단했다.

이만 이 지긋지긋한 세계의 [완결]을 보자는 것.

그것도 주인공에게 완벽한 해피엔딩을 안긴 채로 말이다.

‘……제법인데.’

이번만큼은 나조차도 조금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나는 마왕이 나에게 할 제안이 기껏해야 내가 일으킨 분란에 대한 뒷수습 정도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내가 순순히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하이디와 루를 인질로 잡아서 나에게 이 지긋지긋한 이야기의 ‘끝’을 요구한 것이다.

자신을 죽이라고.

나는 그렇다고 치고 당사자인 디오에게마저 참으로 이기적이고, 끔찍하게 변질된 애정이 아닐 수 없었다.

“키리엘을 만나러 갈 건가?”

갑작스럽게 베른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나는 몇 초 동안 멍하니 그의 눈을 마주 보다가 이내 그 이름이 현재 마왕의 이름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죠.”

나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걸리는 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많았다.

“무언가 석연치 않아 보이는 얼굴이군.”

“솔직히 그래요.”

나는 굳이 속을 감추지 않았다. 베른의 말처럼, 마왕의 제안이 어딘가 석연치 않은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굳이 그에게까지 감출 사실은 아니었다.

“하긴.”

별다른 의문 없이 내 말에 짧게 동의하는 베른의 모습.

얼핏 보면 별다른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었으나, 사실 따지고 보면 굉장히 이상한 장면이었다. 내가 무엇을 보고 왔는지 몰라야 할 베른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내가 보고 온 것에 대해서 알고 있는 듯이 말한다.

그 사실이 말하는 바는 간단했다.

베른 역시도, 내가 보았던 것을 함께 보았다.

‘잠깐…….’

그와 함께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어떤 가능성.

마왕이 사라진 후, 그녀는 이미 내가 [미리보기]를 통해서 자신을 지켜볼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했다. 내 신중함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신중함에 비해서 실제로 요구한 사항이나 상태는 불안정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고의로 자신의 불안함을 드러내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이것 봐라…….’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리보기]는 작중에 등장한 등장인물들의 내면묘사도 거침없이 묘사한다. 그리고 그 사실은 마왕 역시도 당연히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묘사된 그 내면이 진실인가?

이것에 대한 대답은 또 다른 문제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뻔한 세계에서는, 진실보다는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가야겠어요.”

“혼자 갈 건가?”

베른이 그렇게 물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베른이 나와 함께 가 봤자 좋을 일은 없었다. 스스로 성검에 찔려서 죽기를 바라는 마왕에게 그 사용자인 베른을 가까이에 두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물론, 정말로 그녀의 목적이 그것이었다면 말이지만.

“아뇨. 아무래도 같이 가는 게 낫겠죠. 협상의 구색 정도는 맞춰 줘야 할 테니.”

“그래? 의외로군. 알았다. 따라가지.”

베른이 순순히 동의하자, 내가 아자토스를 불렀다.

“아자토스.”

[끼잇!]

이내 내 그림자 속에서 살며시 모습을 드러낸 아자토스의 모습.

그 광경을 본 베른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호문쿨루스는 왜? 전력으로서는 제법이지만, 지금 우리가 싸우러 가는 건 아닐 텐데?”

“보험이죠.”

지금 내가 가진 의문은 결코 확신이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합리적인 의심에 닿는 수준.

그렇기에 더욱 합리적인 의심이 확신으로 변했을 때를 대비한 보험이 필요했다.

“……그래.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듣지.”

“저를 너무 잘 아시네요.”

“말했잖아?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니라고.”

그와 함께, 내가 기다리고 있었던 메시지들이 나타났다.

「다수의 독자가 당신이 흘린 기묘한 떡밥에 주목합니다!」

「당신의 행보를 지켜봐 온 한 독자가 당신의 속내를 궁금해합니다!」

「탐정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당신의 속셈에 대해서 추측성 발언을 늘어놓습니다!」

됐군.

“그러면 가시죠. 짐짝들 데리러.”

* * *

하이디와 루가 있던 곳은 제국의 남쪽에 있는 어느 고급 여관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객실이었으나, 안으로 들어서면 마법에 의해서 연결된 별도의 공간으로 통하는 구조였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

집주인도 아닌 주제에 마치 집주인처럼 우리를 응대하는 마왕의 모습은 뭐라고 해야 할까…… 무척이나 뻔뻔했다.

내가 지금의 그녀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은 고작 그 정도였다.

“집주인은 기절시켜 놓고 본인은 꽤 좋아 보이는데?”

“살아 있는 게 어디야.”

내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마왕의 목소리는 덤덤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 마치 내가 [미리보기]를 통해서 봤던 것처럼 무엇인가 망가지고, 체념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먼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갑자기 마음을 바꾼 이유가 뭐야? 나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었나?”

“별로…… 바꾼 적은 없어. 처음부터 내가 원하는 일만 행했던 것뿐이지.”

“네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확신은 있고?”

내가 그녀에게 물은 것은 처음 내가 그녀를 설득할 때 했던 말이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나가는 방법을 모른다.

그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지만, 적어도 ‘아직 모르고 있는’ 그녀보다는 사정이 낫다.

“이제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정말로 체념이라도 한 것 같은 목소리.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이상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그녀의 본질을 대충이나마 알고 있는 나로서는 지금 그녀의 모습이 마치 자신의 불완전함을 연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부 독자가 갑작스러운 마왕의 심정 변화에 의아함을 표합니다!」

“진심인가?”

“그래.”

마왕이 그렇게 말하고는 팔을 활짝 벌렸다.

“자, 나를 죽여. 아인즈 반.”

“싫다면?”

“그러면 내가 저 둘을 죽이겠지. 저 둘이 죽고 나면, 그때도 네가 나를 죽이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물었다.

“네 진짜 목적이 뭐지? 정말로 이곳에서 죽는 게 네 소원인가?”

“그래.”

“하지만 불가능해. 나는 너를 죽일 수 없어.”

“네 옆에 있는 전대 용사라면 가능하겠지.”

“성검도 없는데?”

“말장난이나 할 셈이야? 처음부터 그런 건 아무런 의미도 없었어.”

그와 함께 마왕의 오른손에서 작은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하며, 아주 잠깐에 불과했지만 성검의 모습이 일부분 드러났다.

그 말은 간단했다. 그녀라면, 그리고 나나 베른이라면 지금 디오의 손에 있는 성검을 다시금 뺏어 오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뜻이었다.

“안 통하네.”

“시시한 장난이나 칠 생각은 없어. 나를 죽이던지, 아니면 저 두 명이 죽는 걸 지켜볼 건지 선택해.”

선택이라…….

당연하지만, 내가 그 어느 것도 선택할 리가 없었다.

“네 말에는 모순이 있어.”

“모순?”

“너는 디오가 너를 죽이고서 괴로워하기를 바라지 않겠지만, 그거야말로 모순이야. 네 죽음 자체가 녀석에게 ‘새드엔딩’이라는 생각은 안 해 봤나?”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디오는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모를 거야. 미처 깨닫기 전에 모든 게 끝나 있을 테니까.”

「논술학원 수강생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빈틈이 보이지 않는 ‘마왕’의 논리에 감탄합니다!」

그와 함께, 마왕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결단을 내리게 도와줘야겠네.”

마왕의 손이 살며시 움직이자 쓰러져 있는 루와 하이디의 심장에 박힌 저주가 더욱 강해지기 시작했다.

“한 시간을 주지. 너는 이제 선택을 해야만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선택할 여지조차도 사라져 버릴 테니까.”

그녀는 나를 재촉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모르게, 나는 그 모습이 재촉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가 시간을 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 봐라.’

그 이유는 간단했다.

사람은 제한된 시간이 주어지게 되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도 최대한 그 시간을 활용하려고 한다.

그것이 지금처럼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면 더욱더.

그렇다면 나 역시도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그녀는 나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 근거는 지금까지 내가 해 왔던 행동들과, 그에 대한 결과들이었다.

나는 마왕의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았다.

아인즈 반은 신중한 남자다.

아인즈 반은 항상 예상치 못한 일들을 행한다.

아인즈 반은 주어진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하다고 좋을 만큼 타개책을 제시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그녀가 나에게 인도적 배려라도 하듯이 시간을 주려 하고 있다. 어떤 변수가 생길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고서.

그렇다면 이것은 배려가 아니다. 이건 단순한 시간 끌기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사실들이 말하는 바는 간단했다.

이건 함정이다.

“그래서, 지금 시간을 끄는 이유는 뭔데?”

그와 함께, 마왕의 표정이 조금씩 변했다.

체념의 빛이 어려 있던 눈빛에는 다시금 생기가 돌았고, 덤덤했던 목소리는 조금 높아졌다.

“……결국 이것까지 읽어 냈구나. 하지만 이미 늦었어.”

“늦었다고?”

“그래, 이미 승패는 네가 이곳을 들어왔을 때 났어. 이 공간은 바깥 세계와 시간의 흐름이 달라. 지금 네가 바깥으로 나갔을 때, 이미 세상은 디오에 의해서 키워진 무수한 플레이어들로 득실대고 있을 거야.”

마왕이 말하는 바는 간단했다.

그녀는 내가 함정에 빠졌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것도, 빠져나갈 길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함정에.

「대다수의 독자가 당신조차도 함정에 빠뜨린 ‘마왕’의 치밀한 함정에 감탄합니다!」

마왕의 함정은 간단했다.

그녀는 나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위험부담이 크고 난이도 높은 방법보다, 나를 찌를 수 있는 창을 만들어 낼 시간을 버는 방법을 선택했다.

처음부터 별도로 분리된 공간을 선택한 이유도 아마 그 이유였으리라.

“그렇군.”

“아인즈 반. 이만 포기해. 너에게 앞으로는 없을 테니까.”

그녀의 말대로, 지금 사태는 내가 가장 염려하던 사태나 다름없었다.

불사의 존재들인 플레이어들이 성장했고, 나는 앞으로 사냥당할 일만 남은 상태.

그야말로 절망적이었다.

그래, 만약 ‘보험’을 들어두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뭐?”

덤덤한 내 목소리에 마왕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동요했다.

“아직도 모르겠어? 네가 지금 보고 있는 게 뭔지.”

“그게 무슨 소리지?”

니체가 말했다.

우리가 그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라고.

「철학과 학부생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그 말은 이런 상황에 사용하는 말이 아니라며 당신의 설명을 지적합니다!」

“별거 아니야. 네가 나를 속였듯이, 나도 똑같이 너를 속였을 뿐.”

마왕은 [미리보기]를 통해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까지도 예상해서 겉으로 보이는 자신의 마음마저도 속여냈다.

다름 아닌 나를 완벽하게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

하지만 그 말은,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마왕이 나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것만 보여 주었다면, 나 역시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아자토스.”

내가 조용히 아자토스를 불렀다. 그리고는 말했다.

“나를 깨워.”

그와 함께, 이 공간의 현실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기분 나쁜 악몽에서 깨어나듯이.

“너…… 지금 무슨 짓을……!”

“네가 보고 있는 게 아직도 현실 같아?”

내가 서서히 흩어져 가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 시발 꿈.”

「현실을 붕괴시키셨습니다! 클리셰가 파괴됩니다!」

「클리셰 붕괴율: 26.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