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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 이후의 소설 속-113화 (113/164)

◈ 113화 Chapter 26: 레이드 (1)

뭐야?

나를 깨운 것은 다름 아닌 어딘가 축축하게 느껴지는 아자토스의 촉수였다.

이 자식……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아주 그냥 온몸이 축축한 것이 느낌이 이상하다 못해 괴상했다.

[끼이잇!]

「야설 빌런이 아무리 그래도 이건…… 가능이라며 환호합니다!」

「야설 빌런의 추종자들이 두 눈을 욕망으로 물들인 채로 그 의견에 맹렬하게 동의합니다!」

……미친놈들.

잠깐 안 본 사이에 댓글들이 광기로 물들어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이 소설도 갈 데까지 간 모양이었다.

그렇게 내가 독자 놈들의 반응을 보며 얼굴을 찌푸리고 있을 때 그제야 정신을 차린 베른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꿈이라도 꾸셨나 봐요?”

“장난치지 말고.”

제법 심각한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베른은 이 상황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별거 아니에요. 잘 생각해 봐요. 우리가 튜드 대륙을 떠난 적이 있던가요?”

“그러고 보니…… 기억이 안 나는군.”

“당연해요. 애초에 간 적이 없으니까.”

그제야 굳어 있던 베른의 표정이 약간 풀렸다.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한 것이다.

“……보험이라는 게 그런 의미였나?”

“그런 셈이죠.”

애초에 우리는 튜드 대륙은커녕, 이 자리조차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저 아자토스를 통해서 잠들었을 뿐.

하지만 나는 그 과정을 일부러 의식하지 않았다. 의식하지 않았으니 나타나지 않고, 묘사되지도 않았다.

마왕이 했던 것처럼, 나도 그녀에게 철저하게 ‘보여 주고 싶은 것’만 보여 준 것이다.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다수의 독자가 당신의 철저한 준비성에 감탄합니다!」

「탐정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자신은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며 그다지 신빙성이 없는 주장을 펼칩니다!」

상황을 이해한 것은 베른 역시도 마찬가지였는지, 이내 그가 일어서며 말했다.

“키리엘 쪽은 어떻게 할 거지? 이제 함정인 걸 알았으니 굳이 갈 필요는 없지 않나?”

“어차피 그 여자도 이쯤에서 포기할 겁니다. 정말로 죽을 생각이 아니라면.”

“그런가.”

그녀는 자신의 속셈이 완전히 탄로 났는데도 무리하게 일을 진행 시킬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나도, 그녀도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지?”

베른이 한 질문은 곧 내 고민이기도 했다.

마왕은 아직 죽을 생각이 없다. 하지만 감정 기복이 심하다 못해 우울증 수준인 그녀가 언제까지고 그 방식을 고수할지는 미지수였다.

만약 내가 지금까지처럼 계속해서 디오의 해피엔딩과 멀어지는 방향으로 이 세계를 압박한다면, 그녀는 충분히 다시금 극단적인 선택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뜻이었다.

“걱정 마세요. 저에게 다 생각이 있으니.”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하니 안심이 되는군.”

사실 아무 생각도 없지만.

물론, 내가 고작 베른이나 안심시키자고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다수의 독자가 빈틈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당신의 발언에 주목합니다!」

「당신의 행보를 지켜봐 온 한 독자가 여전히 알 수 없는 당신의 속내에 묘한 기대심을 품습니다!」

「탐정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당신이 흘린 떡밥이 어떤 사이다로 다가올지 기대합니다!」

좋아, 그렇게 계속 기대하라고.

충분히 보답해 줄 테니까.

‘어쨌거나…… 마왕 쪽은 손을 써두긴 해야겠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지금 이 상태로 그녀를 방치하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한 일이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다시 그녀의 자아를 부수는 것도 고려해 볼 정도로.

‘……조금 마음에는 걸리지만, 일단은 지켜봐야겠군.’

안 그래도 거슬리는 일들이 산더미다.

이대로 마왕에게만 시선을 빼앗기는 건 오히려 그녀가 의도하는 대로였다.

더군다나, 지금은 그녀가 주고 간 아주 좋은 정보도 있지 않은가.

“아무래도 디오에게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군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물론, 나 역시도 지금 디오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녀석은 지금 드넓은 바다를 사이로 둔 두 대륙을 잇는 통로를 열려고 하고 있었고, 그것을 위해서 데리고 간 플레이어들을 성장시키려 하고 있었다.

내가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디오를 내버려 둔 이유는, 디오가 선택한 방법이 녀석에게 있어서 최선은 물론이고 차선조차도 되지 못하는 차악책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굳이 힘든 길을 가겠다는데 내가 거기에 응해 줄 필요가 있겠는가?

내가 할 일만 하면 됐지.

그런데 그러한 상황 속에서, 마왕이 위험부담을 짊어지고서라도 디오에게 시간을 벌어 주려고 했다.

그녀는 바보가 아니다. 실패했을 시의 리스크를 그녀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필시 그럴만한 리턴이 있다는 뜻.

즉, 현재 디오의 상황이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상당히 달라졌다는 말이었다.

“생각은 끝났나?”

베른의 물음에 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이 꼬장꼬장한 아저씨는 나를 알아도 너무 잘 안다.

“디오를 만나러 가죠.”

* * *

「“꾸에엑!”」

「바하락스 마굴 3층. 예전의 에드윈이었다면 사냥은커녕 입장하는 것조차도 감히 상상도 못 했을 어마어마한 던전이었지만, 그녀는 그저 묵묵히 스킬을 사용했다.」

「콰카캉-!」

「“회복 부탁해요.”」

「“알겠다.”」

「그녀의 말과 함께, 자연스럽게 강한성기삽니다의 손에서 신성한 빛이 뿜어지며 빠르게 소모되었던 그녀의 체력을 채워졌다. 마치 기계 같은 동작들이었다.」

「“꾸엑!”」

「“키에에에!”」

「한 마리, 두 마리. 그들의 사냥 속도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정교했다. 그런 기계적인 행위가 끝이 난 것은 마침내 바하락스 마굴 3층 토벌이 완료된 후였다. 그제야 가장 먼저 움직임을 멈춘 체다가 입을 열었다.」

「“끝났네.”」

「체다의 말을 신호로 마침내 죽어 있던 그들의 눈에 다시금 서서히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마치 꺼져 있던 전원을 켠 로봇 같았다.」

「“이제야 꽤 쓸 만해졌군.”」

「목소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용사 디오였다. 이제껏 그들의 사냥을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던 디오가 나서자, 그를 본 에드윈에게서 눈에 띌 정도로 불안증세가 나타났다. 명백한 두려움이었다.」

「“으으…….”」

「“가까이 오지 마.”」

「강한성기삽니다가 그의 앞을 막아섰으나, 애초에 막는다고 막아질 상대가 아니었다. 마침내 그녀의 앞에 선 디오가 작게 속삭였다.」

「“이제야 절실함이 느껴지는군.”」

「마치 모종의 키워드처럼 들려온 말에, 에드윈은 그날의 악몽을 다시 떠올렸다. 자신들을 끝없는 절망으로 끌고 갔던, 그 악몽을.」

* * *

「“로, 로그아웃이 안 돼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 그녀의 앞에 나타난 것은 현실이었다.」

「“이제 절실함이 생기나?”」

「어딘가 조롱이 섞인 디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강한성기삽니다와 체다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었다.」

「“이 미친 자식!”」

「그와 함께 순간적으로 강한성기삽니다와 체다가 디오를 향해서 달려들었으나, 애당초 성립조차 될 수 없는 싸움이었다. 순식간에 넝마가 된 그들의 몸이 형편없이 바닥을 굴렀다.」

「“으으…… 마, 말도 안 돼…… 어째서 고통이…….”」

「바닥에 널브러진 체다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신음했다. 아무리 현실감이 넘친다지만, 이곳은 어디까지나 게임에 불과했다. 그런데 조금 전 디오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후,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그의 전신에 찾아온 것이었다.」

「“고작 그따위 고통도 견디지 못할 거면서.”」

「어딘가 뒤끝이 느껴지는 목소리였으나, 체다는 그 어떤 반문도 하지 못했다. 지금의 그에게 찾아온 것은 그저 공포였다.」

「“따라와라.”」

「디오의 말에 반박할 수 있는 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꾸에에엑!”」

「디오를 선두로, 수많은 던전을 돌파하기 시작한 그들은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만약 지금의 그들이 튜드 대륙으로 돌아간다면, 랭킹 1, 2, 3위는 나란히 차지할 만큼.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로그아웃을 할 필요도, 사소한 감정싸움을 할 여유도 없었으니까.」

「“…….”」

「그러던 와중에도 에드윈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고자 했다. 그녀는 어떻게든 이성을 찾아서 해결책을 찾으려 했고, 가장 현실적인 판단하에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길드 채팅을 이용해서 현실에 있을 다른 길드원에게 자신과 강한성기삽니다의 접속기 전원을 꺼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찾아온 대답은 희망이 아닌 절망이었다.」

「[정말로…… 껐다고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말로 접속기 전원을 종료했다면, 자신들이 아직도 이곳에 갇혀 있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내 길드원에게서 들려온 말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어떻게 게임 속에…….]」

「그녀는 입을 열 수 없었다. 혼수상태. 현실에 있는 그녀와 강한성기삽니다의 육체에 일어난 일이었다. 마치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절실함의 방향성이 잘못됐군.”」

「그와 함께 들려온 디오의 목소리에 에드윈은 이해할 수 없는 공포에 떨었다. 그래, 분명히 지금까지는 정신 나간 게임사의 횡포나 버그 정도로 해석한다면 충분히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 아아…….”」

「“이제 알겠나? 너희가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그와 함께 그녀는 눈앞에 있는 남자에게서 끝을 알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단순한 NPC? 월드 퀘스트의 핵심 인물? 눈앞에 있는 존재는 고작 그 정도로 설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괴, 괴물…….”」

「“뭐라고 부르든지 상관없어.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으니까.”」

「디오의 말은 더 이상 단순한 협박처럼 들리지 않았다. 저건 진심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그녀는 그저 떨리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이고는 숨죽여 울었다.」

* * *

「“에드윈?”」

「“아.”」

「잠시 기억 속에 잠겨 있던 그녀를 깨운 것은 다름 아닌 강한성기삽니다의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언제 들어도 의지가 되는 목소리. 만약 그가 없었더라면 그녀는 미쳐 버렸을지도 모른다.」

「“얘기 듣고 있었어?”」

「얘기라니? 그녀는 그제야 일행들이 무엇인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죄송해요. 잠시 딴생각 좀 하느라.”」

「그러나 그녀를 추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는 뻔했으니까.」

「“길게 말할 생각은 없다.”」

「이내 들려온 디오의 목소리에 그녀의 몸이 저도 모르게 움찔했으나, 이내 진정하고는 그의 말을 경청했다.」

「“이제 너희는 준비가 됐다.”」

「의외의 인정. 하지만 그 사실에 기뻐하는 이는 이곳에 그 누구도 없었다. 그들에게 고작 저런 칭찬 정도에 일일이 기뻐할 만큼의 여유는 없었다. 그들이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디오의 말에 주목했다.」

「“통로를 연다.”」

「디오가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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