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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 이후의 소설 속-115화 (115/164)

◈ 115화 Chapter 26: 레이드 (3)

그리고 내가 한 행위는 무척이나 간단했다.

누군가 그러던가, 손은 눈보다 빠르다고.

정확한 말이었다.

콰앙-!

그와 함께 반응할 생각조차 못 한 디오의 고개가 꺾이며 녀석의 입가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고, 고작 이 정도로!”

아무래도 아직 덜 맞은 모양.

그렇다면 사양할 필요 없었다.

콰캉-!

내 손이 자비 없이 디오의 얼굴을 후려치자, 녀석이 악을 썼다.

“우습게 보지 마라!”

“싫은데.”

콰카캉-!

그 어떤 기교나, 기술도 필요 없었다. 절대적인 힘의 차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 어떤 잔재주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는.

몇 번 손을 쓰지도 않았건만, 순식간에 마치 새우처럼 꺾인 디오의 몸이 저 멀리 형편없이 튕겨 나갔다.

“쿨럭!”

분명히, 디오가 강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입장일 뿐, [먼치킨]인 내 입장에서 보면 솔직히 말해서 그게 그거였다.

「[먼치킨] 클리셰가 강하게 발동 중입니다!」

「[먼치킨] 클리셰의 효과로, [주인공] 버프가 무력화됩니다!」

내가 만신창이가 된 디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별것도 아닌 게.”

「다수의 독자가 전형적인 [악당]의 대사에 주목합니다!」

「[패배 플래그]가 요동칩니다!」

“…….”

그때였다.

「성기사 직업 스킬, [고급 회복]이 발동합니다!」

「신탁의 성기사 고유 스킬, [신념의 방패]가 발동합니다!」

던전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또 다른 인영.

그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강한성기삽니다와 에드윈이었다.

예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모습.

그들은 더 이상 예전의 애송이들이 아니었다.

“망할…… 쪽도 못 쓸 거면서 까불기는 왜 까불어?”

바뀐 것은 외견뿐만이 아니었는지, 예전과는 다르게 거칠어진 말투의 강한성기삽니다의 빈정에 디오가 말했다.

“전직은 끝났나?”

“누구 덕분에.”

“잘됐군.”

「[게임 판타지]를 애독하는 한 독자가 등장인물, ‘강한성기삽니다’의 달라진 모습에 주목합니다!」

강한성기삽니다가 디오의 옆에 서며 말했다.

“잘 됐다? 착각하는 것 같아서 말해 두는데, 우리는 네 부하 따위가 아니야. 이번 레이드가 끝나고 나서도 그렇게 웃을 수 있는지 지켜보지.”

“어련하실까.”

그와 함께 교차 된 시선.

‘이것 봐라?’

굳이 추측할 필요도 없이 그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것은 명백한 갈등과 대립이었다.

하지만 왜?

비록 디오의 싸가지가 없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플레이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디오는 [월드 퀘스트]의 핵심 요인이자, 자신들이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은인이었다.

저렇게 반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더욱 이상한 것은, 디오의 반응 역시도 강한성기삽니다의 말에 크게 이견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마치 자신이 그럴만한 짓이라도 저질렀다는 듯이.

“제법 사이가 좋아 보이는데?”

내가 비아냥대자, 디오가 말했다.

“그런 편이지.”

“그거 부러운데, 나도 끼워 줄 수 있을까?”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꽤 어렵게 하는군.”

“조금 전까지 흠씬 두들겨 맞고 있던 게 어디 사는 누구였더라?”

「아가리파이터를 자처하는 한 독자가 유치하기 짝이 없는 당신의 발언에 판정패를 선언합니다!」

시끄러워.

“지금까지와는 다를 거다.”

그렇게 말한 디오의 곁으로 서서히 에드윈을 비롯한 세 명의 플레이어들이 모여들며 순식간에 진형이 갖춰졌다.

진형이 갖춰진 상대와 그렇지 않은 상대가 어떤 차이일지는 굳이 볼 필요도 없었다.

“그것참, 기대되네.”

사실은 조금도 기대 안 되지만.

물론, 그런다고 해서 일어날 일이 안 일어날 리는 없었다.

「클리셰가 요동칩니다!」

「[사냥당하는 보스몹] 클리셰가 발동합니다!」

……아이고, 고마워라.

「[사냥당하는 보스몹] 클리셰 효과로, [전투력]이 [30%] 하락합니다!」

「[사냥당하는 보스몹] 클리셰 효과로, [먼치킨] 클리셰 효과가 크게 약화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에게 찾아온 시련은 고작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어느새 디오의 몸 주위에서 빛나기 시작한 온갖 버프들이, 맹렬하게 요동쳤다.

「신탁의 성기사 고유 스킬, [강신]이 발동합니다!」

「폭염 술사 고유 스킬, [억겁의 염화]가 발동합니다!」

「폭염 술사 고유 스킬, [이프리트의 수호]가 발동합니다!」

「악마 사냥꾼 고유 스킬, [악마화]가 발동합니다!」

……가지가지 하는구만.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지금 상황은 나에게 있어서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래, 지금 여기 있는 것이 나 혼자였다면 말이다.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데.”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어느새 쟁기를 짊어진 채로 내 옆에 선 베른이었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때가 있죠.”

“꽤 앙증맞게 봐주는군. 그러면 고양이답게 귀엽고 상큼하게 가 볼까?”

「인싸학개론 교수를 자처하는 한 독자가 등장인물, ‘전대 용사 베른’의 [인싸력]에 A+ 학점을 수여합니다!」

베른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뭐해? 안 덤비고.”

* * *

싸움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놀랍도록 강해진 플레이어들의 버프를 두른 디오는 확실히 강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어차피 나를 일대일로 이길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결국 디오가 나에게 발목을 붙잡혀 있는 사이, 베른의 무자비한 쟁기질에 의해서 싸움은 허무할 정도로 끝이 났다.

“싱겁군.”

베른이 그렇게 말하며 쟁기를 거두자, 이미 매몰되어 버린 던전의 입구 쪽에서 간신히 머리만 내민 체다가 비명을 질렀다.

“이,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아직 살아 있었네?”

베른이 그렇게 말하며 쟁기를 든 채로 성큼성큼 다가가자 체다가 가느다란 비명을 쏟아냈다.

“자, 잠깐!”

“왜?”

“마, 말로 합시다! 우리도 알고 보면 불쌍한 사람들이라고요!”

“흠.”

베른의 시선이 흙더미에 파묻힌 채로 머리만 내밀고 있는 체다를 쓱 훑었다.

“내 눈에는 그다지 그렇게 안 보이는데? 일단 기생오라비처럼 생겨서 마음에 안 들어.”

「다수의 독자가 등장인물, ‘전대 용사 베른’의 시원한 발언에 유쾌함을 표합니다!」

「일부 독자가 등장인물, ‘전대 용사 베른’의 [참교육]을 기대합니다!」

“자, 잠깐만요! 스탑!”

퍼억-.

「플레이어, [체다] 님이 [타락 용사 베른]에 의해서 사망하셨습니다!」

「[체다] 님의 레벨이 하락합니다.」

「[체다] 님이 가진 소지금과 소지품 중 일부가 랜덤으로 드랍 됩니다.」

“말 많은 녀석은 질색이야.”

「다수의 독자가 거침없이 [참교육]을 시전한 ‘베른’에게서 카리스마를 느낍니다!」

그렇게 플레이어 중 하나인 체다가 허무하게 죽어 버리자, 상처투성이의 모습으로 간신히 나를 상대하고 있던 디오의 표정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쓸모없는 녀석.”

“동료한테 너무하는 것 아니야?”

내가 비아냥대자, 디오가 우습다는 듯이 말했다.

“동료? 그딴 녀석이? 웃기지도 않는 소리.”

‘오호…….’

그러면 그렇지.

디오로서는 한마디라도 지지 않으려고 한 말이었겠지만, 그 말은 의외로 나에게 큰 정보를 알려주었다.

“서로 그렇게까지 우호적인 관계는 아닌가 봐? 그자가 너한테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

“알 것 없다.”

“왜 그래? 우리 사이끼리. 한번 허심탄회하게 말해 봐.”

“닥쳐라.”

제법 맹렬한 반응.

아니, 평소에도 이랬던가?

어쨌든 간에, 지금 디오와 플레이어들 사이에 어떤 기묘한 일이 있는 건 사실인 듯했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플레이어들이 [월드 퀘스트]의 최고 중요 인물이자 은인일 터인 디오에게 반감을 품고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제아무리 시간이 있었다지만, 비정상적으로 빨랐던 플레이어들의 성장 속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오에게 반감을 품고 있는 플레이어들의 모습.

그 결과들을 종합하니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런가.’

내가 디오를 향해서 무어라 입을 열려던 순간.

지이잉-!

갑작스럽게 일어난 진동.

그 근원지는 다름 아닌 던전의 위쪽과 연결된 빛의 기둥 쪽이었다.

그 현상이 말하는 바는 분명했다.

「[히든 피스] [통로]가 작동합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난 현상과 함께, 베른에 의해서 매몰되었던 던전의 입구가 살며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쓸려나간 흙더미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던전의 입구뿐만이 아니었다.

“으으…….”

쓸려나간 흙더미 사이에서 신음하고 있는 그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에드윈과 강한성기삽니다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체다와는 다르게 베른의 무자비한 쟁기질에 의해서 생매장당하다시피 한 덕에 목숨을 부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머리맡에, 지금껏 없었던 새로운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에드윈?”

“기, 길드장님?”

길드장이라고 불린 사내는 에드윈과 강한성기삽니다를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맙소사…… 정말로 게임 속에 있었어……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그 전에…… 뒤에!”

“어?”

그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베른이었다.

“줄줄이 사탕도 아니고…….”

그렇게 한숨을 내쉰 베른이 다시금 쟁기를 내려찍으려던 순간이었다.

「드루이드 직업 스킬, [대지의 방패]가 발동합니다!」

「흑마법사 직업 스킬, [뼈 방패]가 발동합니다!」

「화염 술사 직업 스킬, [샐러맨더의 수호]가 발동합니다!」

「성기사 직업 스킬, [신성 방패]가 발동합니다!」

「기사 직업 스킬, [보호의 맹세]가 발동합니다!」

순식간에 그의 앞을 막아선 수많은 스킬들.

그것이 말하는 바는 간단했다.

“길드장님! 괜찮으십니까?”

“나는 괜찮다.”

길드장이라고 불린 사내는 달려온 다른 부하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에드윈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나저나 에드윈, 네 덕분에 우리 길드가 [월드 퀘스트]를 위한 발판을 선점할 수 있게 되었어. 정말 잘했다.”

그 말과 함께 어느새 [통로]를 통해서 수십, 수백 명의 플레이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곳이 미지의 대륙인가?”

“튜드 대륙하고 별 차이도 없는데?”

“멍청아! 기본 레벨이 아예 다른 동네에 와서 그런 소리나 지껄이냐? 아무튼, 누가 NPC한테 잡혀서 일 년 가까이 감옥살이 한 녀석 아니랄까 봐…….”

“야, 야! 그건 비밀이라니까!”

“시끄러워. 어차피 알 사람은 다 알아.”

……재미있군.

지금 이 상황을 정리하자면 간단했다.

[통로]를 통해서 에드윈과 같은 소속인 플레이어들이 이곳으로 건너왔고, 저들은 [월드 퀘스트]의 클리어를 노리고 있었다.

이대로 저들이 디오 쪽에 붙는다면 나로서는 꽤 곤란한 상황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분위기를 읽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어느새 어느 정도 상처를 회복한 디오가 말했다.

“네가 졌다. 아인즈 반.”

“피나 닦고 말해.”

“……지금 당장 이 상황을 모면한다고 한들, 어차피 더 이상 네게 미래는 없다.”

비록 많이 재수 없기는 했지만 지금 디오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미 열려 버린 [통로].

성장한 [플레이어].

모든 조건이 나에게 악조건을 가리켰다.

그래, 더럽게 치사하고 불합리한 조건.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네.”

내가 계속해서 말했다.

“나만 사냥당하는 게, 왠지 조금 불공평한 것 같다는 생각이.”

“세상은 원래 불합리한 법이다. 그건 누구보다도 네가 잘 알고 있을 텐데? 아인즈 반.”

맞는 말이다.

“그래서 플레이어들을 이 게임 속에 가둔 건가? 너와 같은 신세로 만들려고?”

“……너.”

역시 그랬군.

지금까지는 긴가민가했지만, 방금 디오의 반응으로 마침내 확신할 수 있었다.

디오가 그들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왜 그랬지?”

“……그들에게 절실함을 주었을 뿐이다.”

“그래? 그렇다면 어디 한번 물어볼까? 그들에게 정말로 절실함이 필요한지.”

“……뭐?”

「[개연성 무시]를 사용하였습니다!」

「[개연성 무시]의 효과로, [히든 퀘스트]가 요동칩니다!」

디오는 한 가지 실수를 했다.

만약 저런 일을 저지를 것이었다면 절대로 나에게 들켜서는 안 됐다.

하지만 이미 들킨 이상, 내가 그것을 이용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RPG 게임의 꽃은, 역시 세력 선택 아니겠냐?”

“……뭐?”

「[히든 퀘스트 - 마족의 회유]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히든 퀘스트]의 효과로, 월드 내에 존재하는 모든 플레이어의 로그아웃이 제한됩니다.」

+

《히든 퀘스트 – 마족의 회유》

‘마족 왕자 아인즈 반’을 도와서, ‘용사 디오’를 처치하라.

난이도: ?

보상: ?

제한: 클리어 전까지 로그아웃 제한.

수락 시, ‘마족 왕자 아인즈 반’과 우호적인 관계 형성 및 ‘용사 디오’와 적대적인 관계 형성.

거절 시, [히든 퀘스트 – 용사의 동료] 강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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