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Chapter 27: 마족의 회유 (1)
그리고 일어난 일은 무척이나 단계적으로 일어났다. 처음에는 침묵, 그 후에는 당황. 마지막으로는 혼란이었다.
“……히든 퀘스트라고? 잠깐…… 로, 로그아웃이 안 돼!”
“뭐라고?”
“나도야!”
웅성, 웅성.
“……아인즈 반!”
당황이 뒤섞인 디오의 표정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제법 화가 단단히 난 듯싶었다.
뭐, 화나라고 한 짓이 맞긴 했지만.
「대다수의 독자가 당신이 저지른 행위에 경악합니다!」
「당신을 지지하는 일부 독자가 당신이나 [주인공]이나 한 짓은 똑같지 않냐며 ‘내가 해도 불륜, 남이 해도 불륜’을 시전합니다!」
어느새 분노를 갈무리한 디오가 말했다.
“……차라리 잘됐군. 여기서 살아갈 생각은 버려라.”
디오의 말과 함께, 그의 몸에서 온갖 버프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성직자 직업 스킬, [축복]이 발동합니다!」
「성직자 직업 스킬, [신성한 불길]이 발동합니다!」
「성자 고유 스킬, [신성화]가 발동합니다!」
「드루이드 직업 스킬, [자연의 축복]이 발동합니다!」
「혹한의 지배자 고유 스킬, [절대 영도]가 발동합니다!」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막대한 버프.
심지어 그중 몇 명의 보조 클래스는 버프만 따지면 에드윈이나 강한성기삽니다 같은 최상위 플레이어들보다도 뛰어났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보조에 호응하듯이 디오의 손에 들린 성검이 붉은빛을 뿜어냈다.
「타락 용사 전용 스킬, [신념을 잃은 정의]가 발동합니다!」
「용사 전용 스킬, [마왕 살해]가 발동합니다!」
압도적인 버프로 무장한 지금의 디오는 더 이상 지금까지의 그가 아니었다. 그 말은 즉, 제아무리 나라고 한들 혼자의 힘으로는 디오에게 패배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 나 혼자라면 말이다.
“끝이다!”
디오의 스킬이 나를 향해서 쇄도하던 순간이었다.
「흑마법사 직업 스킬, [생명력 공유]가 발동합니다!」
「흑마법사 직업 스킬, [뼈 방패]가 발동합니다!」
「연금술사 직업 스킬, [신체 강화 물약]이 발동합니다!」
내 주위에서 맴돌기 시작한 그것은, 명백한 버프였다. 비록 디오에게 걸린 버프에 비하면 그 종류나 위력이 현저하게 낮았으나 그다지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이제 내 편을 자처하는 이들이 생겨났다는 점이었으니까.
“델? 듀이?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이성적으로 생각해. 상식적으로 마족 왕자 쪽에 붙는 게 훨씬 더 유리하잖아.”
“델의 말이 맞아. 에드윈이 했던 말 못 들었어? 로그아웃이 불가능해지는 현상은 단순한 버그 따위가 아니야. 바깥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벗어날 수 없다고!”
“그렇다면 월드 퀘스트는?”
“지금 그딴 게 문제야? 당장 로그아웃이 불가능해지면, 출근도 못 한다고! 이대로 내가 해고당하면…… 우리 집은 끝장이야. 차라리 마족 왕자의 편에 서서, 하루라도 더 빨리 이 싸움을 끝내는 게 나아.”
“제기랄…… 이렇게 위험할 줄 알았더라면, 이딴 게임, 진작 끊어 버리는 건데…….”
누군가는 그들을 이기적이라며 욕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저것은 무척이나 현명한 판단이었다.
내가 노린 것도 바로 그 점이기도 했고.
그 순간, 디오의 몸이 나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감히!”
자신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간 것에 대한 분노인지, 아니면 배신을 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와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점이었다.
“뭘 그렇게 화를 내고 그래? 네가 했던 짓이잖아?”
그 순간이었다.
갑작스럽게 끼어든 목소리.
그 목소리는 내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맞아. 내로남불도 적당히 해야지.”
「폭염 술사 고유 스킬, [이프리트의 수호]가 발동합니다!」
그와 함께 나에게 걸린 새로운 버프.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에드윈이었다.
“너…….”
“이럴 줄 몰랐어? 아니잖아. 네가 우리를 이곳에 가뒀을 때, 우리가 이럴 거라고는 당연히 예상했어야지.”
「다수의 독자가 ‘에드윈’의 이유 있는 타당한 배신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주인공]을 지지하는 일부 독자가 아무리 그래도 배신은 조금 아니지 않냐며 조심스럽게 반박 의견을 내어놓습니다!」
「팩트 폭격기를 자처하는 한 독자가 디오가 에드윈을 비롯한 세 명의 플레이어에게 저지른 악행에 대해서 육하원칙에 맞게 서술합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경악한 것은 디오뿐만이 아니었다.
“……에드윈? 지금 그게 무슨 짓이지?”
“죄송합니다. 길드장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양보 못 하겠습니다.”
“정신 차려 에드윈! 이건 [월드 퀘스트]가 달린 일이야. 사소한 개인의 감정으로 일을 그르치지 마!”
“길드장님.”
에드윈의 길드장 앞에 서며 속삭였다.
“계속 길드장님, 길드장님 하면서 대접해 주니까 뭐라도 된 것 같으세요? 레벨도 낮은 게.”
“뭐?”
그와 함께, 에드윈의 손에서 불꽃이 치솟았다.
「폭염 술사 고유 스킬, [억겁의 염화]가 발동합니다!」
그것의 목표가 누구인지는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으리라.
“끄아악!”
「플레이어, [롱기누스] 님이 플레이어, [에드윈] 님에 의해서 사망하셨습니다!」
「[롱기누스] 님의 레벨이 하락합니다.」
「[롱기누스] 님이 가진 소지금과 소지품 중 일부가 랜덤으로 드랍 됩니다.」
허무할 정도로 깔끔한 최후.
어지간히 수준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고서야 저렇게 스킬 한 번에 즉사하는 일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으나, 이미 에드윈과 다른 플레이어들 사이에는 그 정도의 차이가 존재했다.
에드윈이 떨어진 아이템을 주우며 비웃었다.
“쪼렙 주제에 입만 살아 가지고.”
「일부 독자가 갑작스러운 ‘에드윈’의 변화에 떨떠름하면서도 환호합니다!」
「소수의 독자가 ‘에드윈’의 당당한 모습에 걸크러쉬를 외칩니다!」
“에, 에드윈 너!”
그 모습을 본 다른 길드원이 그녀에게 달려들었으나, 이내 끼어든 다른 거구의 사내에 의해서 가로막혔다.
“어딜.”
「신탁의 성기사 고유 스킬, [신념의 방패]가 발동합니다!」
거구 사내의 정체는 다름 아닌 강한성기삽니다였다.
“강한! 너까지!”
“나까지 그러는 게 아니라, 나니까 그러는 겁니다. 부길드장님.”
“……너희 사정은 알고 있어. 어느 정도 이해도 하고. 하지만 우리한테 꼭 이래야겠어?”
강한성기삽니다가 사납게 웃었다.
“이해해 주신다니 다행이군요. 지금 물러나시면 굳이 죽이지는 않겠습니다.”
“너……!”
부길드장이라 불린 사내는 위협적으로 으르렁대고 있었지만, 막상 그런 모습에 반해 직접 덤비지는 못했다. 아마 눈앞에서 길드장이 허무하게 당한 걸 나름대로 염두에 두고 있는 거겠지.
“그전에, 제가 먼저 묻고 싶군요. 원래 저희 길드가 이렇게까지 [월드 퀘스트]에 집착하는 길드였습니까? 저는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너희가 없는 동안,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무슨 상황?”
“토착민들과의 전쟁이 마무리될 때쯤, 헬로드 길드의 선전포고를 시작으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됐어. 이번에는 플레이어들끼리의 전쟁인 셈이지. 그런데…… 그 전쟁의 양상이 지금까지와는 많이 달라.”
“무엇이?”
“……계속 말이 짧군. 어쨌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본론부터 말하자면, 플레이어들이 전쟁에서 [감옥] 시스템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끔찍한 발상이었지.”
강한성기삽니다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
“만약 어설프게 포로라도 되면, 토착민들과 싸울 때처럼 그 시궁창에 갇히게 된다는 겁니까?”
“그래, 토착민들과의 전쟁에서 깨달은 거지. 아니, 누구나 깨닫고 있었지만 누가 먼저 쓰느냐에 달린 싸움이었지. 같은 플레이어들을 상대할 때는, [감옥]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었으니까.”
“막장이군요.”
“이제 알겠나? 우리가 왜 [월드 퀘스트]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이제 이 싸움에서 패배한다는 이야기는, 언제든지 감옥에 처박힐 수도 있음을 의미하게 되었어. 더 이상 우리도 한 발 빼고 있을 수는 없게 되었다는 거지.”
「다수의 독자가 어느덧 막장으로 치닫는 [게임]의 운영에 노답을 표합니다!」
「[설정]을 중시하는 일부 독자가 이런 상황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손을 놓고 구경하는 [게임사]의 막장 운영에 [개연성] 오류를 지적합니다!」
「팩트폭격기를 자처하는 한 독자가 자신이 즐겨 하던 모바일 게임의 막장 운영 사례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며 해당 [개연성] 오류 지적에 반박합니다!」
“과연…… 알겠습니다.”
강한성기삽니다가 고개를 끄덕이자, 부길드장의 얼굴이 환해졌다.
“우리를 이해해 주는 건가? 그렇다면…….”
“먼저 디오를 죽인 후, 저희가 그 싸움을 끝내드리죠.”
“……뭐?”
“지금 당장 여기서 물러나시란 말입니다. 로그아웃도 안 되는 [감옥]에 처박히고 싶지 않으면.”
“강한!”
“귀 안 먹었습니다. 그리고 불쌍한 척은 하지 마시죠. 우리보다 절실한 것도 아니면서. 차라리 솔직하게 말을 해요. [월드 퀘스트]가 탐이 난다고.”
“……괴물이 됐구나.”
강한성기삽니다가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곧 모두가 그렇게 될 겁니다.”
그들의 대화가 끝난 후, 진영은 자연스럽게 두 개로 갈라졌다.
[마족의 회유]를 선택한 자들과.
[용사의 동료]를 선택한 자들로.
물론, 그 수는 [용사의 동료]를 선택한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어차피 숫자의 차이는 큰 의미가 없었다.
중요한 사실은, 더 이상 플레이어라는 불멸의 존재가 나에게 있어서 위협만이 아니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믿을 수 없는 기지로 위기를 극복하셨습니다! 등장인물, ‘아인즈 반’의 [비중]이 증가합니다!」
「현재 비중: 15.4%」
「[게임]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장르]에 균열이 생깁니다! 클리셰가 파괴됩니다.」
「클리셰 붕괴율: 27.9%」
「클리셰 붕괴의 효과로, [장르]의 벽이 요동칩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내가 디오에게 말했다.
“평소에 착하게 좀 살지 그랬어?”
뭐, 만약 그랬더라도 크게 달라지는 사안은 없었을 것이다.
디오가 결국 저런 선택을 하게 만든 것도 결과적으로는 내가 의도한 것이었으니까.
“닥쳐라.”
그와 함께, 디오의 뒤에선 수많은 플레이어가 각자의 무기를 잡고서 진형을 잡았다.
“마족만 잡으면…… [월드 퀘스트]는 우리 차지야.”
“고지가 눈앞이다! 다들 준비해!”
“보조 클래스는 용사에게 모든 지원을 집중하고, 나머지는 보조 클래스를 지원한다!”
제법 진형이 잡혀가는 그들과는 다르게, 내 쪽 진형은 상당히 초라했다.
그래, 마치 오합지졸들을 모아놓은 것 같았다. 그 이질감을 느꼈는지, 플레이어 중 한 명이 말했다.
“……우리도 뭔가 해야 하지 않아요?”
“뭐하러?”
“예?”
그렇게 말한 내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진형이니, 전술이니 하는 건 약한 놈들이나 쓰는 거야. 강자에게 있어서 그런 건 사치지. 왜, 그런 말도 있잖아. 힘이 약하면 머리가 고생한다고.”
「속담 전문가를 자청하는 한 독자가 단연코 그런 속담은 없다며 당신의 발언을 지적합니다!」
“……누가 한 말이죠?”
내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