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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 이후의 소설 속-117화 (117/164)

◈ 117화 Chapter 27: 마족의 회유 (2)

내가 유난히 얼을 타고 있는 플레이어에게 말했다.

“뭐해?”

“예?”

“어서 버프 안 걸고.”

“……아, 예!”

명백하게 당황한 그 표정은, 일개 [몬스터]에 불과할 터인 내가 이렇게 당당하게 버프를 요구할 줄은 몰랐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눈치싸움이라도 했던 건지, 그 말을 신호탄으로 내 몸에 온갖 버프 스킬들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흑마법사 직업 스킬, [생명력 공유]가 발동합니다!」

「폭염 술사 고유 스킬, [이프리트의 수호]가 발동합니다!」

「신탁의 성기사 고유 스킬, [강신]이 발동합니다!」

비록 디오에 비하면 그 수는 현저히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어차피 나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관계없는 사실이었다.

차이를 드러내는 것은 예전처럼 누구는 버프가 있고 누구는 없을 때였지, 막상 따지고 보면 좋은 버프와 그저 그런 버프를 나누는 경계는 의외로 사소한 차이에 불과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파일럿이 다르다는 거지.

내가 살며시 몸을 풀며 말했다.

“뒤로 빠져 있어.”

「다수의 독자가 전장의 선두에 몸소 서는 당신의 모습에 카리스마를 느낍니다!」

「패자의 면모를 보이셨습니다! 등장인물, ‘아인즈 반’의 [비중]이 증가합니다.」

「현재 비중: 16.4%」

‘괜찮군.’

[비중]은 곧 이 세계에서의 [영향력]이다.

잘난 거라고는 [비중]뿐인 [주인공]이 지금까지 받아 온 혜택을 생각한다면, 최근 들어서 지지부진했던 [비중]의 성장은 매우 좋은 신호였다.

내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가장 좋은 전략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지. 그렇다면 가장 좋은 전술은 무엇일까?”

“그, 글쎄요?”

「프로불편러를 자처하는 한 독자가 아까는 전술이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냐며 당신의 ‘반적반’성 발언을 지적합니다!」

일일이 따지기는.

내가 앞으로 한 발자국을 옮기며 말했다.

“압도적인 힘.”

「당신을 지지하는 일부 독자가 당신의 발언에 주목합니다!」

“지금부터, 그걸 보여 주지.”

「[먼치킨] 클리셰가 폭발할 듯이 요동칩니다!」

「[먼치킨] 클리셰 효과로, [먼치킨] 앞에 만인이 평등해집니다!」

내가 아직도 눈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디오를 향해서 말했다.

“굳이 기다려 준 거야? 고마워라.”

「저세상 칼럼니스트를 자처하는 한 독자가 이를 업계에서는 ‘국룰’이라고 표현한다며 용어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습니다!」

“……아인즈 반!”

기다릴 시간은 다 기다렸다는 듯이, 디오의 몸이 격하게 쇄도했다.

「타락 용사 고유 스킬, [집행]이 발동합니다!」

콰콰콰카카!

눈앞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베어 가르기라도 하겠다는 건지, 성검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빛과 금빛 섬광이 어우러졌다.

말 그대로 파멸의 힘.

그러나 상대를 잘못 골랐다.

“약해.”

「[먼치킨] 클리셰의 효과로, [필살의 일격] 이하의 공격을 무효화시킵니다!」

스르륵-

가벼운 손짓과 함께 사라져 버린 디오의 공격.

그러나 디오는 멈추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지금 이 자리에서 불태우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용사 전용 스킬, [마왕 살해]가 발동합니다!」

콰아아앙!

무식하기 짝이 없는 공격.

나에게 닿지도 못한 그 눈먼 공격은 아군조차도 개의치 않고서 베어 갈랐다.

“으아악!”

“피해!”

「플레이어, [힐안주는힐러]님이 [용사 디오]에 의해서 사망하셨습니다!」

「[힐안주는힐러]님의 레벨이 하락합니다.」

「[힐안주는힐러]님이 가진 소지금과 소지품 중 일부가 랜덤으로 드랍 됩니다.」

「플레이어, [도닥붕은진리]님이 [용사 디오]에 의해서 사망하셨습니다!」

「[도닥붕은진리]님의 레벨이 하락합니다.」

「[도닥붕은진리]님이 가진 소지금과 소지품 중 일부가 랜덤으로 드랍 됩니다.」

[용사의 동료]를 선택한 플레이어들이 거침없는 그의 손에 휩쓸려서 잿빛 먼지가 되어 가고 있었지만, 디오는 멈추지 않았다.

「타락 용사 전용 스킬, [신념을 잃은 정의]가 발동합니다!」

아군을 가리지 않는 그 악몽의 재림에, 플레이어들이 경악했다.

“미, 미친!”

“야! 지금이 아이템이나 주울 때야? 빨리 피해!”

「다수의 독자가 점차 치열해지는 전투 상황에 팝콘을 씹어먹습니다!」

그렇게 가한 공격이 다시 한번 나에게 허무하게 가로막히자, 디오가 악을 썼다.

“어째서…… 어째서 너는 매번!”

그와 함께 디오의 움직임이 점차 느려졌다. 제풀에 지친 것이 아니었다. 어느새 그의 손에 사라진 플레이어들의 버프가 증발한 것이었다.

“나를 막아서지 마라!”

필사적이다 못해 애처로운 디오의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녀석이 조금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졌어, 디오.”

“웃기지 마!”

디오는 계속해서 악을 쓰며 끊임없이 달려들었다. 만약 싸움에 굶주린 투귀가 있다면 저런 모습이리라.

「용사 고유 스킬, [성검 방출]이 발동합니다!」

「타락 용사 고유 스킬, [악몽 베기]가 발동합니다!」

그와 함께 디오에게 존재하는 용사의 힘과 녀석이 영혼을 팔고서 얻어낸 마왕의 힘이 함께 쇄도했다.

물론, 소용없었지만.

「[먼치킨] 클리셰가 강하게 발동 중입니다!」

모든 스킬이 막혔건만 디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내가,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는데!”

필사적으로, 또 악착같이.

하지만 그럴수록 비참해지는 것은 결국 디오였다.

「[주인공]을 지지하는 일부 독자가 ‘용사 디오’를 응원합니다!」

「[주인공] 버프가 요동칩니다!」

「[먼치킨] 클리셰의 효과로, [주인공] 버프가 무효화 됩니다!」

“나는 그냥…… 돌아가고 싶은 것뿐인데.”

「다수의 독자가 처절한 [주인공]의 모습에 동정심을 품습니다!」

「[주인공] 버프가 강하게 요동칩니다!」

「[먼치킨] 클리셰의 효과로, [주인공] 버프가 무효화 됩니다!」

‘빨리 끝내야겠군.’

이런 와중에도 나조차도 동정할 뻔한 신파극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리다니…… 과연 [주인공]이 아무나 하는 게 아니긴 아닌 모양이다.

“이만 끝내자.”

물론, 그렇다고 해서 디오를 죽이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저, 상황을 정리할 뿐이지.

‘이렇게 쓰는 건가?’

몇 번의 어설픈 시도 끝에, 마침내 내 손끝에서 작은 섬광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마족 고유 스킬, [마력 방출]이 발동합니다!」

그와 함께 내 손끝에서 뿜어진 파멸의 빛이 모든 것을 덮쳤다.

콰콰콰콰!

그리고 일어난 재앙은, 그 흔한 비명 한마디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플레이어, [카멜리아]님이 [마족 왕자 아인즈 반]에 의해서 사망하셨습니다!」

「플레이어, [선빵은필승]님이 [마족 왕자 아인즈 반]에 의해서 사망하셨습니다!」

「플레이어, [레온]님이 [마족 왕자 아인즈 반]에 의해서 사망하셨습니다!」

「플레이어…….」

「…….」

「…….」

이를 지켜보던 [마족의 회유] 진영 쪽 플레이어 중 한 명이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편을 잘 고른 것 같네요.”

“……동의합니다.”

한 번의 대청소가 끝난 후.

허망한 표정을 지은 디오가 씁쓸하게 말했다.

“죽여라.”

“싫은데.”

내 대답을 들은 디오가 웃었다. 무척이나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아, 죽이지 못하던가? 그렇다면 죽이지도 않을 거면서, 이렇게 계속해서 두고두고 괴롭히겠다는 건가? 네가 원하는 게 그건가? 아인즈 반.”

“쫑알쫑알 시끄럽네. 애새끼도 아니고 칭얼거리기는.”

대화에 끼어든 것은 다름 아닌 에드윈이었다.

“……네가 끼어들 대화가 아니다. 여자.”

“끼어들고 아니고는 내가 판단해.”

「일부 독자가 ‘에드윈’의 당당한 모습에 걸크러쉬를 외칩니다!」

“우리를 끌어들일 때는 그렇게나 당당하시더니, 이제 와 피해자 코스프레? 장난질도 정도껏 해야지.”

「팩트폭격기를 자처하는 한 독자가 ‘에드윈’의 묵직한 팩트에 동의합니다!」

난데없는 에드윈의 폭언에 디오의 눈이 분노를 머금었다.

“네가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지?”

“몰라. 모르는데 뭐 어쩌라고? 내가 그걸 굳이 꼭 알아야 해? 나는 그냥 지금 네가 하는 꼬라지가 마음에 안 들어. 그것뿐이야.”

「언더그라운드 랩퍼를 자처하는 한 독자가 속사포 같은 ‘에드윈’의 촌철살인에 합격 목걸이를 수여합니다!」

“……닥쳐라.”

“왜, 또 협박하시게?”

어느새 나타난 강한성기삽니다가 흥분한 에드윈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그쯤 해 둬. 의미 없는 감정 낭비야.”

“선배, 아직도 모르겠어요?”

“뭘?”

“디오는 NPC가 아니에요.”

강한성기삽니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정황상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어떻게 확신하는 건데?”

에드윈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도 갇힌 거예요. 우리처럼.”

“……설마.”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게 들어맞아요. NPC일 터인 그가 했던 행동들이나, 과할 정도로 느껴지는 목표에 대한 집착.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일어난 일. [용사의 동료]라는 건, 결국 [용사]와 같은 목표와 리스크를 감수한다는 거잖아요?”

「탐정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에드윈’의 뛰어난 추리력에 감탄합니다!」

「뛰어난 추리력으로 존재감을 과시하였습니다! 등장인물, ‘에드윈’의 [비중]이 증가합니다!」

「현재 비중: 1.4%」

……이것 봐라.

상황을 관망하던 내가 작게 감탄하는 사이, 디오의 표정이 놀란 강아지처럼 변했다.

“너…….”

“가.”

“뭐?”

“가라고. 지금 너를 죽여 봤자, 찜찜하기만 할 것 같으니까. 네가 여기서 죽은 후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대로 죽어 버린다면 내가 살인자가 되는 거잖아?”

그와 함께, 에드윈의 시선이 조심스럽게 나에게 향했다.

“어차피 당신도 지금 디오를 죽일 생각이 없는 거죠?”

굳이 부정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었다.

어차피 이미 말하기도 했었고.

“맞아.”

“그러면 거리낄 건 없겠네요.”

에드윈이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하자, 이를 지켜보던 다른 플레이어들이 반발했다.

“잠깐! 누구 마음대로 용사를 보낸다는 거야?”

“맞아. 지금 이대로 보내면 우리는 꼼짝없이 이곳에 갇혀 지내야 한다고!”

그들의 반발에, 에드윈이 사납게 웃었다.

“그래서 뭐?”

그 사나운 미소 속에 머금은 말투는 마치 짐승이 으르렁대는 것 같았다.

“불만 있으면 덤벼 보던가.”

「소수의 독자가 등장인물, ‘에드윈’의 카리스마 넘치는 발언에 환호합니다!」

「게임 폐인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게임은 역시 레벨이 깡패라며 자신의 오랜 폐인 생활을 정당화합니다!」

……이것 봐라.

어째 상황이 제멋대로 종결되는 기분이었지만, 나로서는 굳이 터치할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에드윈의 엄포에 순식간에 플레이어들의 반발이 수그러들자, 이를 지켜보던 디오가 씹어 삼키듯이 말했다.

“……후회할 거다.”

물론, 본전도 못 찾았지만.

“정말 그럴 것 같으니까 빨리 눈앞에서 꺼져 줄래요? 마음 바뀔라.”

“…….”

「저세상 칼럼니스트를 자처하는 한 독자가 ‘에드윈’의 사례를 예시로 들며 게임 중독의 위험성에 대해서 설파합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왠지 하이디가 보고 싶어지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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