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Chapter 27: 마족의 회유 (3)
디오가 사라진 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내 앞에 다가온 에드윈이 물었다.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조금 전 디오에게 욕을 퍼붓던 때와는 다른 진지한 목소리였다.
“말해 봐. 대답해 줄 수 있는 거라면 대답해 주지.”
「일부 독자가 은근슬쩍 근엄한 척 말투를 바꾼 당신의 모습에 극혐을 표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의 목적이 이해가 안 돼요. 퀘스트의 목적은 디오를 죽이는 거지만, 본인은 디오를 죽일 생각이 없다니. 무언가 이상하잖아요?”
타당한 의문.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나에게 저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물어오는 것은 상당히 예상외였다.
“유감이야. 그건 내가 대답해 줄 수 없는 부분인데.”
“왜죠?”
“그것까지 포함해서.”
「일부 독자가 당신의 말 같지도 않은 말장난에 불편함을 표합니다!」
「탐정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당신이 어째서 그렇게까지 [주인공]을 죽이려고 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의구심을 표합니다!」
에드윈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그러면 도대체 뭘 대답해 준다는 거죠?”
“그 외의 것들.”
“……좋아요. 그렇다면 다른 걸 묻죠. 디오가 단순한 NPC가 아니라는 것은 알겠어요. 그러면 도대체 당신은 뭐죠? 당신도 우리나 디오처럼 이곳에 갇힌 사람인가요?”
“우리처럼이라…….”
재미있는 표현이다.
여기 있는 모두는 이곳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각자가 인식하는 세계의 범위가 다르다.
저들은 이곳을 단순한 게임으로.
마왕은 이곳을 소설 속으로.
그리고 나는…….
「다수의 독자가 당신의 발언을 주시합니다!」
「[제4의 벽]이 살며시 진동합니다!」
“비슷해.”
「[제4의 벽]의 진동이 잠잠해집니다!」
지켜보는 눈들이 있었기에 그렇게까지 시원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는지 에드윈이 조용히 수긍했다.
“역시.”
“그렇다면 이제 내가 묻지. 그렇다면 너는 디오를 죽이지 않은 이유가 뭐지? 설마 정말로 살인자가 되지 않겠다는 이유는 아닐 테고.”
물론, 그녀의 입장에서 디오를 죽이고 나면 꿈자리가 굉장히 사나울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처해 있는 상황이나 디오에게 품은 원한을 생각해 봤을 때, 고작 그 정도 이유로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에드윈이 말했다.
“그냥…… 왠지 마음에 안 들어서요. 우리끼리 죽고 죽이는 이 상황이.”
「일부 독자가 미묘한 의미를 품은 ‘에드윈’의 발언에 주목합니다!」
「주체적인 면모를 보이셨습니다! 등장인물, ‘에드윈’의 [비중]이 증가합니다!」
「현재 비중: 2.1%」
“저는…… 디오를 구하고 싶어요. 아, 착각은 하지 마세요. 저는 아직도 디오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우니까. 그래서 당신 쪽을 선택한 거기도 하고요. 무엇보다도…… 당신이라면 그 방법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이것 봐라.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그냥요. 여자의 직감이라고 해 두죠. 그리고 제가 구하고 싶은 건 당신 역시도 마찬가지예요.”
「야설 빌런이 등장인물, ‘에드윈’의 간지러운 발언에 눈을 크게 뜹니다!」
“나를?”
“네, 당신도요.”
「야설 빌런과 그의 추종자들이 ‘에드윈’의 용기를 열렬히 응원합니다!」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습니다! 등장인물, ‘에드윈’의 [비중]이 증가합니다!」
「현재 비중: 2.3%」
“어차피 이 이상은 말해 줄 생각이 없을 테죠?”
“아마도?”
정확히 말하자면, 말해 주지 못할 것까지야 없긴 했다. 다만, 그 이후로 에드윈이 어떤 존재가 될지 예상이 되지 않을 뿐이지.
성가신 존재는 서쪽의 마왕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차고도 넘쳤기에, 굳이 변수를 늘리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역시.”
그렇게 말한 에드윈이 강한성기삽니다의 옆에 서서 말했다.
“저희는 이만 가 봐야겠어요. [통로]도 열렸으니, 이제 튜드 대륙으로 넘어가서 뒷정리해야 할 테니까요.”
그녀가 말한 ‘뒷정리’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레벨이 깡패라는 게임의 절대적인 진리 중 하나를 내세워서, [용사의 동료]와 [마족의 회유]로 갈라진 플레이어 세력을 평정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는 간단했다.
‘플레이어들 쪽은 이제 신경 쓸 필요 없겠어.’
이제 디오와 내 조건은 완전히 동등해졌다.
지금까지의 내가 [플레이어]들을 견제하느라 온 힘을 다 쏟고 있었다면, 이제 디오 역시도 나처럼 [플레이어]들을 견제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냥당할 테니까.
그렇다면 남은 변수는 한 가지뿐이었다.
‘마왕.’
현재 가장 많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 존재.
문제는 나는 지금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또 어떤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는 점이었다.
‘[미리보기]는…… 아무래도 안 보는 편이 훨씬 낫겠지.’
예전이었다면 모를까, 지금의 마왕은 [미리보기] 정도는 가볍게 예상하고서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조차도 생각하며 움직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미리보기]에 드러난 정보를 보고서 판단하고, 움직이는 행위는 굳이 따질 것도 없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물론, 애초에 거짓으로 판단하고서 일단 한번 보는 방법도 있기는 하겠으나, 그건 가위바위보를 할 때 상대가 뭘 낼지 듣고서 그에 대한 거짓 여부를 판단하는 일만큼이나 의미 없었다.
‘성가시긴.’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직접 발로 뛰는, 말하자면 꼼수 없이 정직하게 정보를 끌어모으는 방법뿐이라는 건데 당연히 이 방법이 내 성에 찰 리가 없었다.
평생을 뒷문 옆 지름길로만 다니다가 난데없이 정문으로 다니라고 하면 적응이 되겠는가.
‘가만.’
그때 문득 생각난 한 존재.
그 존재는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는 존재였다.
“마왕이 어디에 있지?”
“뭐?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옆에 있던 베른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으나, 애초에 내가 물어본 상대는 그가 아니었다.
「스포충이 당신의 질문에 몸을 배배 꼬며 근질거리는 손가락을 어쩔 줄 몰라 합니다!」
그보다 훨씬 더, 입이 싼 놈이었지.
* * *
「그녀는 꿈을 꾸었다. 끔찍한 악몽이었다. 꿈속에서의 그녀는 무력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누군가의 악의가 그녀의 목을 죄고, 믿어 왔던 이의 무관심이 그녀의 존재를 지웠다.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살려 줘. 나를 잊어버리지 마. 나를 기억해. 나를 불러 줘.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그녀의 몸이 점차 흐릿하게 변했다. 누구도 그녀를 찾지 않았다. 그녀는 결국 사라졌다.」
「“……아.”」
「……꿈인가? 꿈이구나. 간신히 잠에서 깬 하이디는 헛바람을 들이키며 입을 뻐금거렸다. 최근 들어서 자주 꾸기 시작한 악몽이었다. 악몽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지, 그녀는 잠에서 깼음에도 불구하고 한참 동안 멍하니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꿈속에서 보았던 악몽이 그녀의 손바닥에서 겹쳐 보였다. 그녀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서 조용히 흐느꼈다. 사라지고 싶지 않아. 나는 여기에 있어. 나를 찾아줘.」
「“아직도 자는 거야?”」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루였다. 걱정이 한껏 묻어나는 목소리. 그러나 하이디는 애써 괜찮은 척하며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말했다.」
「“……조금만 더 잘래.”」
「거짓말이었다. 그녀는 잠드는 것이 두려웠다. 잠들었다가는, 다시는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으니까. 루 역시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테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그것은 어느 순간부터 있어 온 루와 하이디 사이에 존재하는 무언의 배려였다.」
「“꿈을 꿨어.”」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다름 아닌 루였다. 하이디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우리가 죽는 꿈.”」
「설마 했던 단어가 직접 적으로 튀어나오자, 하이디의 몸이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러나 이내 장난스럽게 풀린 루의 목소리에 그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온통 생크림으로 가득 찬 바다에 빠져서 죽는 꿈이었지. 정말 끔찍했어. 아직도 입안에서 단내가 감도는 것 같다니까?”」
「이건 배려였다. 최근 들어서 잦은 악몽에 괴로워하는 하이디를 조금이라도 쓰다듬어 주려는 배려. 하이디 역시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조용히 숨죽여 그녀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그런 꿈까지 꾸는 걸 보니, 아무래도 단 걸 너무 많이 먹었나 봐. 조금 줄여야겠어. 그러니까 지금 당장 대답 안 하면 내일부터는 간식 반으로 줄인다?”」
「이제 하이디가 그녀의 호의에 대답할 차례였다.」
「“……그건 안 돼.”」
「“왜?”」
「“그거라도 없으면, 도대체 무슨 낙으로 살라고?”」
「그렇게 말한 하이디가 마침내 이불 밖 세상으로 감춰져 있던 고개를 내밀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의미로, 오늘 아침은 뭐야?”」
「“생크림에 빠져 죽을 수 있는 메뉴.”」
「“그런 꿈을 꿔 놓고 괜찮겠어?”」
「하이디의 농담에 루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야. 그런 위험한 물건을 함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 빨리 먹어서 해치워야지.”」
「평소와 같은 루의 농담을 들은 하이디는 안도했다. 괜찮아. 모든 것은 쓸데없는 걱정에 불과해.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그녀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렇게 침대 밖으로 발걸음을 옮긴 하이디는 옷장 앞에 놓인 거울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일순간 흐리게 보였다. 그와 함께 그녀의 시야에 악몽에서 보았던 장면이 겹쳐졌다. 절망 속에서 사라져 버렸던, 그때의 장면이.」
「“……흡.”」
「그녀는 하마터면 입 밖으로 터져 나올 뻔한 비명을 애써 참아냈다. 괜찮다. 악몽 때문에 본 환각에 불과할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고는 속으로 셋을 셌다. 하나, 둘, 셋. 좋아. 다 셌다. 그녀가 다시금 조심스럽게 눈을 뜨자,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너무나도 선명했다. 거봐, 환각 맞잖아. 그녀가 안도하며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앞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실이 나타났다.」
「“……루?”」
「“응? 왜?”」
「하이디는 숨을 죽였다.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루의 모습이, 너무나도 흐리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사라져 버릴 것처럼. 하지만 하이디는 애써 내뱉었다. 루가 그녀를 배려했던 것처럼, 그녀 역시도 그렇게 했다.」
「“……살찐 거 아니야?”」
「“뭐래. 이 나이스 보디를 앞두고 그게 할 소리야?”」
「“아닌데, 쪘는데.”」
「루가 눈을 부라렸다.」
「“아침부터 죽어 볼래?”」
「어느 정도 진심이 느껴지는 루의 협박에 하이디는 속으로 대답했다. 죽고 싶지 않아. 사라지고 싶지 않아. 하지만 그녀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생크림에 빠져 죽을 생각이라면 충분히 있는데?”」
「그렇게 말한 하이디가 주방을 향해서 달려갔다. 마치 자신의 천진난만함을 보여 주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야!”」
「“늦게 오면 내가 다 먹을 거야!”」
「“너 잡히면 죽어!”」
「하이디는 애써 웃어 보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울고 있을 자신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