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Chapter 28: 동쪽의 주인 (2)
늘 그렇지만 세상 모든 일이 생각한 대로 된다는 법은 없었다.
예를 들면, 자칭 용하다는 무당이 당장이라도 천기누설이라도 할 것처럼 한껏 판을 달궈 놓고는 그대로 돈을 가지고 튄다던가.
「스포충이 말하기 전에 잠깐 택배를 받으러 간다고 하고는 영영 돌아오지 않습니다!」
「다수의 독자가 그제야 멈춘 스포일러에 환호합니다!」
「탐정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스포충이 사라진 이유로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검은 양복 입은 애들’을 배후로 지목합니다!」
“…….”
야 인마, 말은 해 주고 가야지.
저런 말 같지도 않은 장난질이나 치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마왕의 근황을 말해 주기 싫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정말로 검은 양복 입은 애들한테 잡혀갔다거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결론은 한 가지였다.
‘직접 알아내는 수밖에 없겠군.’
그와 함께 발가락 끝에서부터 척수를 타고 뇌까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귀차니즘이 몰려들었다.
귀찮다. 너무 귀찮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귀찮아하고 미뤄 봤자 별수 없다는 것은 이미 스스로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베른, 혹시 알고 있는 괜찮은 정보 길드 있어요?”
“정보 길드? 글쎄…… 그런데 네가 그런 거에 의존했던가?”
베른의 의아하다는 듯한 말에 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 생활 방식을 조금 바꿔 볼까 해서요.”
“그래?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본디 이 뻔한 세계에서의 정보란, 그럴듯한 전문가가 목숨을 걸고 얻어낸 기밀보다 오히려 동네 주민 1이 아무렇게나 떠드는 소문 쪽이 더 신빙성이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상대가 마왕이라면 예외였다. 그동안 내 행적을 대부분 알고 있는 그녀가 그런 당연한 상식을 놓치고 있을 리가 없으니, 그런 방향성으로는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내가 그녀를 껄끄럽게 여기는 이유 중 하나였다.
“아, 마침 하나 생각났다.”
그제야 무엇인가 생각났다는 듯이 베른이 손바닥을 쳤다.
“어디인데요?”
“흑고양이의 꼬리라는 길드인데, 용건이 없다면 썩 엮이고 싶은 녀석들은 아니지만, 정보 수집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곳이라고 볼 수 있지.”
베른이 인정할 정도라면, 적어도 이 세계의 틀 안에서는 상당히 능력이 있는 자들일 터였다.
“어디에 있죠?”
“정보가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좀 뻔하긴 했지만 그것참 듣던 중 그나마 반가운 소리였다.
“마침 잘됐네요. 바로 움직이죠.”
내가 그렇게 베른을 재촉하던 순간.
앞서가던 베른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리고 그가 발걸음을 멈춘 이유는 나 역시도 알고 있었다.
「[장르]가 요동칩니다!」
익숙한 울렁거림.
어느새 딱딱하게 굳은 베른의 표정을 보니, 그 역시도 대충이나마 이 울렁거림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군.”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적중하듯이 베른의 말은 머지않아서 곧 현실이 되었다.
「어긋난 [개연성]이 회복됩니다!」
「동쪽 대륙의 지배 종족, [오크]가 등장합니다!」
‘……이것 봐라?’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이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개연성]의 인위적인 움직임.
그러한 짓을 한 것이 누구인지는 굳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마왕, 그녀가 움직인 것이었다.
“아직도 정보 길드가 필요해?”
눈치 빠른 베른의 질문에 내가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네요.”
어차피 이제 내가 가야 할 곳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러던 와중에도 의문점은 있었다.
‘그나저나 오크라…….’
굳이 말하는 것도 새삼스럽기는 하지만, 오크라는 종족은 대부분의 소설 내에서의 취급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못생긴 외모와 그다지 높지 않은 지능.
어마어마한 번식력과 야만적인 습성.
이 조건들을 조합하면, 오크라는 종족에 대해서 놀랍도록 간단한 결과가 도출된다.
말하자면 태생적인 잡몹.
물론, 가끔 여타 작품에서 특출난 오크가 등장하거나 하는 경우가 전무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 빈도수를 생각해 봤을 때 이 뻔한 세계가 오크를 어떤 종족으로 취급할지는 불 보듯 뻔했다.
그렇기에 바로 이 부분에서 의문점이 생긴다.
‘왜 하필 오크지?’
물론, 나름대로 이유야 있을 것이다.
어차피 지나치게 강대한 종족을 만들면 애초에 서쪽 대륙이 어째서 진작 오크들에 의해서 정벌 당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개연성] 문제가 생길 터이니, 종족의 강함에 대해서는 정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애초에 그녀의 입장에서는 굳이 [개연성]까지 이용해 가면서 오크라는 새로운 종족을 만들어 낼 필요가 없었다.
제아무리 숫자가 깡패라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체급이 맞아야 가능한 말이다. 지금 상황에서의 오크는 그다지 큰 도움이 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무언가 꿍꿍이가 있군.’
그녀의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는 처음부터 아주 명쾌할 정도로 드러나 있었으니, 이제 그 중간과정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끼워 맞춰 볼 필요가 있었다.
동쪽과 오크.
오크와 동쪽.
‘……잠깐.’
그와 함께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한 가지 가능성.
그 두 가지가 가지고 있는 연관 관계는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았다. 만약 내 생각이 맞는다면, 마왕이 지금 무얼 노리고 있는지도 대충 짐작이 갔다.
그리고 그 추측이 맞는다면 정말로 시간이 얼마 없었다.
“떠나야겠어요. 가능하면 지금 당장.”
그와 함께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베른이 사납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이동 수단은?”
거기에 대해서는 이미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루를 부르죠.”
* * *
금빛 물결이 파도를 치는 문.
그 문은 다름 아닌 세상의 반을 지배하고 있는 칸이 있는 대전의 입구였다.
때아닌 불청객에 비단으로 짠 관복을 입은 오크가 혹여라도 칸의 심기를 거스를까 노심초사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칸이시여…… 머나먼 이국에서 칸을 뵙고자 하는 자가 찾아왔습니다.”
그 후에 찾아온 것은 아주 짧은 정적이었다. 오크가 조심스럽게 문을 다시 두드리려던 순간,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라 하라.]
단순한 위압감이라고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목소리는 위압보다는 위엄에 더 가까웠다.
타고난 지배자의 존재감.
문 너머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목소리를 잠시 들었을 뿐인 오크가 몸을 떨었다.
“입장하시지요.”
“고마워.”
“아닙니다. 부디…… 칸께 무례를 범하지만 말아 주셨으면 할 뿐입니다.”
“걱정하지 마.”
그렇게 싱긋 웃어 보인 서쪽의 마왕, 키리엘은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까지 오는 여정은 꽤 귀찮았지만, 충분히 감수할 만한 것이었다. 그 결과로 그녀는 이곳에 섰고 마침내 이렇게 이곳의 ‘주인’을 만나게 되었다.
[나를 찾아왔다고?]
동쪽의 주인, 칸이 재미있다는 듯이 호기심을 표하자 키리엘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와 함께 키리엘의 눈이 자연스럽게 ‘칸’의 모습을 훑었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칸은 인간이 아니었다.
흉포하기 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눈.
전신에 돋아난 붉은 비늘.
머리 위에 솟아 있는 사슴의 것과 같은 뿔.
비록 지금은 용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키리엘이 그 본질을 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는 적룡(赤龍)이었다.
[그래, 머나먼 이국에서 예까지 나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지?]
칸이 흥미롭다는 듯이 묻자, 명백한 상급자의 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키리엘이 별 상관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칸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입니다.”
[그래, 하지만 그 전에 내가 먼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말씀하시지요.”
칸의 눈에서 살며시 이채가 띄었다.
[이국의 잡종들을 모조리 죽인 이유가 무엇이더냐?]
그가 말하는 ‘잡종’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드래곤.
그 웅장한 이름은, 지금 눈앞에 있는 존재에게 있어서는 그저 한낱 ‘잡종’에 불과했다.
「인권운동가를 자처하는 한 독자가 ‘칸’의 용종(龍種)차별 발언을 맹렬히 비난합니다!」
‘잡종이라…….’
고작 그 정도 존재였던가?
그녀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각자의 사정이 있었습니다. 혹여 저에게 동족의 복수라도 하시려는 겁니까?”
여차하면 무력 충돌도 각오하겠다는 듯한 제법 심각한 말투였음에도 불구하고, 칸은 그저 호탕하게 웃었다.
[재미있는 의견이구나. 내가 어째서 그 잡종들의 복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동족이라 여기지 않으시는군요.”
[그럴 필요가 없지. 여의주는커녕 그럴듯한 옥석조차도 품지 못한 하등한 잡종들이 나에게 있어서 무슨 의미가 있겠더냐? 내가 너에게 그 사실을 물은 것은, 그저 순수하게 궁금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각자의 사정이 있었다니, 내가 끼어들 여지는 이 이상 없음이다.]
제법 신랄한 말이었으나, 키리엘은 오히려 안도했다.
이 정도라면, 이 정도의 존재라면 충분하다.
[자, 이제 말해 보거라. 나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더냐?]
칸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국의 마왕이여.]
키리엘은 상대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 해서 놀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여겼다.
“칸이시여.”
그녀는 자신이 이곳까지 온 이유를 떠올렸다.
그녀는 주인공의, 디오의 해피엔딩을 바란다.
하지만 가장 쉬운 방법을 디오는 실행하지 못한다. 그에게는 용기가 없었고, 죄책감을 견딜 만큼 마음이 강하지 못했다.
아마 그런 행위 자체를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으로 여기고 있겠지.
다른 방법 역시도 요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디오 외의 유일한 ‘검’인 베른은 아인즈 반의 수족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 아인즈 반 역시도 자신을 죽일 생각이 없다.
아니, 아인즈 반은 디오 역시도 죽일 생각이 없다. 그자가 노리고 있는 것은 이 세계의 파멸이었지, 주인공이 어떤 엔딩을 맞이할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난관을 헤쳐 나간다고 한들, 그녀의 죽음은 결국 디오에게 있어서 절대로 ‘해피엔딩’이 될 수 없었다.
디오는 결국 마왕이 된 자신의 옛 동료이자 연인의 죽음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스스로 무너질 것이고, 비참해질 것이다.
즉, 처음부터 그녀가 바라는 ‘해피엔딩’은 그 조건부터가 애당초 성립할 수조차 없다는 이야기였다.
불가능한 행복.
그녀는 바로 그런 현실을 부정하고자 이 자리에 섰다.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있다면, 그 굴레 자체를 남에게 대신 씌워 버리면 될 뿐이다.
“칸이시여.”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었다.
[호오.]
칸이 흥미롭다는 듯한 눈으로 그녀를 훑었다.
그 시선은 마치 뱀이 온몸을 기어 다니는 듯한 느낌을 주었으나 그녀는 꿋꿋이 참아냈다.
더없이 굴욕적이고, 치욕스러웠지만 상관없었다.
그녀가 토하듯이 내뱉었다.
“오늘부터…… 칸께서 나의 주인이십니다.”
「다수의 독자가 당신의 충격적인 발언에 주목합니다!」
「충격적인 발언으로 [최종보스] 자격을 완전히 상실하셨습니다!」
「[최종보스] 자격을 상실하여, [최종보스] 버프 효과가 종료됩니다!」
「[최종보스] 자격을 상실하여, 더 이상 ‘성검 다이베른’ 이외의 공격을 무효화시키지 않습니다!」
「등장인물, ‘서쪽의 마왕’의 [비중]이 감소합니다!」
「현재 비중: 3.2%」
드디어, 드디어 모든 굴레를 벗어던졌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였다.
[나를 이용하려 하는구나.]
정곡을 찌르는 칸의 말에, 그녀의 몸이 움찔했다.
[하나, 좋다. 내 기꺼이 이용당해 주마. 그것 또한 이 기나긴 삶의 유희일 테니.]
그와 함께, 그녀는 눈앞에 있는 흉포한 광기를 마주했다.
그리고 결국 깨달아 버렸다.
자신이 만들어 낸 괴물이, 어떤 존재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