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차 이후의 소설 속-135화 (135/164)

◈ 135화 Chapter 31: 현실과 공상의 악마 (1)

그리고 이어진 것은 감동의 해후였다.

“디오!”

“……키리엘?”

떨떠름한 디오를 향해서 키리엘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그 저돌적인 돌격에 처음에는 움찔했던 디오였으나, 이내 키리엘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조용히 그녀를 마주 안았다.

“디오, 디오…….”

……허어.

어째 지켜보는 것만으로 숨이 막히는 장면이라 그런지,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다수의 독자가 마침내 재회한 [주인공]과 [히로인]의 만남에 감동합니다!」

「감수성이 풍부한 일부 독자가 눈물을 글썽입니다!」

「야설 빌런이 [주인공]에게 미성년자 관람 불가 행위를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아침 드라마 애청자를 자처하는 한 독자가 진부한 신파극에 노잼을 표합니다!」

「야설 빌런의 추종자들이 아침 드라마 애청자의 댓글에 비추 테러를 가합니다!」

“허허허.”

베른이 그 광경을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나타났다. 사실, 그들은 처음부터 나와 디오를 지켜보고 있었다.

“젊음이 좋긴 좋군.”

만약 다른 소설이었다면 에필로그에나 나올 법한 나름대로 감동적인 장면이었지만, 베른의 감평은 그야말로 간단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는 베른의 표정에 일순 작은 그리움이 스쳐 지나갔다.

* * *

‘다음’이 찾아온 것은 다행히도 디오와 키리엘의 꽁냥꽁냥이 찐하다 못해 브레이크 없이 곧장 미성년자 관람 불가로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하긴 [서브 시나리오]가 파괴된 마당에 [개연성]이 이렇게 서두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아니면 저 염장질이 보기 싫었거나.

「[강제 복원력]이 발동합니다!」

「[Chapter 31]의 [메인 시나리오]가 진행됩니다.」

「현실과 공상의 악마, 슈뢰딩거를 처치하시오.」

나에게 이전과는 다르게 [메인 시나리오]의 자세한 내용이 보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제 나 역시도 ‘용사의 동료’가 되었으니까.

말하자면, 운명 공동체가 된 셈이었다.

「야설 빌런이 갑작스럽게 끊어진 애정 행각에 불같은 분노를 표합니다!」

「야설 빌런의 추종자들이 야설 빌런의 분노에 동참하여 댓글 창을 불태웁니다!」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그냥 쟤네가 엿 먹으니까 기분이 좋은걸.

“……어?”

에드윈의 표정이 의아함으로 가득 물들었다. 아마 그녀에게 있어서는 [퀘스트]의 형태로 등장했을 테지만, 그녀의 반응은 그 이상이었다.

“잠깐, 이거…….”

“이게 말이 돼?”

“말도 안 돼…….”

누구라도 좋으니까 되물어달라는 듯한 저 열렬한 어필에, 결국 베른이 심드렁하게 물었다.

“왜? 뭔데 그렇게 호들갑이야?”

베른은 여전히 에드윈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하긴, 애초에 이 파티 자체가 서로에 대한 유대감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슈뢰딩거는…… 게임사 이름인데요.”

“무슨 사?”

베른의 표정이 멍청하게 변했다. 어차피 여기서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나와 디오뿐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그렇군. 그래, 분명히 그런 이름이었어.”

그제야 관심을 표한 디오의 말에 녀석의 옆에 찰싹 붙어 있던 키리엘이 베른과 비슷한 멍청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게 무슨 말이야? 게임사라니?”

만약 그녀가 예전의 ‘하차자’였다면 충분히 알아들었겠지만, 아무래도 지금의 그녀에게 그런 지식은 기대할 수 없을 듯했다.

디오는 그녀의 질문에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더니 이내 나에게 시선을 옮겼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은 나에게 넘긴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할 말이야 뻔했다.

“이 세계는 만들어진 게임 속이고, 슈뢰딩거는 그 게임을 만든 집단의 이름이야.”

뭐, 솔직히 나도 이 게임을 만든 게임사의 이름이 슈뢰딩거라는 [설정]은 지금 알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내 말에 키리엘과 디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한쪽은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는 표정이었고, 한쪽은 내 거침없는 발언에 놀란 표정이었다.

“……뭐?”

“잠깐, 너……!”

「다수의 독자가 브레이크 없는 당신의 핵직구에 주목합니다!」

「마초이즘을 신봉하는 한 독자가 빠꾸 없는 당신의 상남자식 발언에 유쾌함을 표합니다!」

“……허어.”

짧게 침음하는 베른과 함께 기나긴 침묵이 찾아왔다. 키리엘은 도저히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이었고, 디오는 그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마침내 그 침묵을 깬 것은 에드윈이었다.

“……어쨌거나 수상하네요. 그 악마 ‘슈뢰딩거’가 그 게임사의 이름과 관련이 있을까요?”

“그렇겠지.”

대답을 한 것은 다름 아닌 디오였다. 녀석의 대답이 의외였는지, 에드윈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설마…….”

그런 그녀를 향해서 디오가 짧게 대답했다.

“네 짐작이 맞을 거다.”

“말도 안 돼요. 지금 슈뢰딩거를 처치해야 한다는 것도 결국은 [퀘스트]잖아요?”

“우스운 이야기군. 이곳이 아직도 네가 하던 게임 같나?”

“그건…….”

에드윈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사실은 이미 그녀 역시도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이 세계는 게임이 아니다. 단지, 그녀의 무의식이 이곳을 ‘게임’으로 분리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이 잔인한 진실 속에서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

에드윈이 그렇게 입을 벌린 채로 할 말을 잊자,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그 침묵이 깨진 것은 조금의 시간이 더 흐른 후였다.

「[개연성]이 [강제 복원력]을 더욱 강화합니다!」

「[메인 시나리오]에 대한 추가 정보가 공개됩니다!」

「현실과 공상의 악마, ‘슈뢰딩거’를 처치하여 이 세계의 ‘허상’을 부수시오.」

“설마…….”

에드윈의 표정에 정체 모를 감정이 깃들었다. 그리고 그런 표정을 지은 것은 디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무엇을 떠올렸는지는 뻔했다.

돌아갈 수 있다.

그들에게 떠오른 것은 바로 그러한 감정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뭔가 이상한데.’

현실과 공상의 악마.

굳이 깊게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그 이름부터가 수상함이 풀풀 풍기는 이름이다. 그것이 ‘게임 속’이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는 이 세계의 만들어진 진실이라면 더욱더.

아마 ‘슈뢰딩거’는 디오와 에드윈이 이 세계에 갇히게 된 배후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결국, 슈뢰딩거를 쓰러뜨려서 이 세계의 허상을 부순다는 것은 ‘게임 속’이라는 허상을 부숨으로써 그들이 ‘현실’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든다는 이야기였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이곳이 ‘게임 속’이라는 [설정]은, 작가가 나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다급하게 만들어 낸 [설정]이었다. 이 세계가 허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 만들어 낸 방어기제.

그런데 [개연성]은 지금 그것조차도 배제하려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본래대로 되돌리기 위해서.

‘어처구니가 없네.’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

자기 [설정]에 잡아먹히는 작가들.

지금 내 눈앞에 벌어진 일은 바로 그러한 일 중 하나였다.

‘머저리인 건 알았지만, 하다 하다…….’

작가 놈의 한심함에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로서는 무척이나 잘된 일이었다.

위협적인 존재인 [플레이어]를 배제하려고 했던 건, 내가 가장 먼저 하려고 했던 일이었으니까.

말하자면,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 셈이었다.

“또 무슨 음흉한 생각을 하고 있군.”

“예?”

갑작스러운 베른의 말에 무슨 소리인가 해서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용사 파티’의 일행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기분 나쁘네.”

“소름 끼쳐.”

……솔직히 해 온 짓이 있기에 저런 식의 반응도 어쩔 수 없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조금 상처받았다.

「저세상 칼럼니스트를 자처하는 한 독자가 이왕 이렇게 된 거, 고백해서 혼내 주자며 당신을 종용합니다!」

「일부 독자가 저세상 칼럼니스트의 의견을 지지합니다!」

……도움 안 되는 새끼들.

“이만 가지.”

나에게 쏟아지던 비난을 끊은 것은 다름 아닌 디오였다. 녀석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한번 흘겨보고는 그대로 시선을 옮겼다.

상념이 가득 깃든 눈동자.

아마 슈뢰딩거를 처치하고 난 뒤를 걱정하는 것일 터였다.

‘답지 않게 고민하기는.’

그러나 디오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녀석은 ‘슈뢰딩거’를 처치해도, 결코 ‘현실’로 돌아갈 수 없을 테니까.

* * *

「[메인 시나리오]가 진행 중입니다.」

「튜드 대륙 남서쪽에 위치한 ‘악마의 신전’에서 ‘현실과 공상의 악마’에 대한 단서를 얻으시오.」

누가 [퀘스트] 아니라고 할까 봐, 진행 한번 친절하기 그지없었다.

어쨌거나 우리로서는 잘된 일이었으니, ‘용사 파티’는 망설임 없이 대륙 남쪽에 있을 항구 도시를 향했다.

이동 수단으로 택한 것은 어느새 돌아온 루와 아자토스였다.

“……읏.”

처음 디오를 본 루가 트라우마를 되새기며 기겁했으나 디오와 키리엘을 아자토스에 따로 태우는 조건으로 간신히 합류할 수 있었다.

[허튼짓하면 죽여 버린다.]

루가 으르렁댔으나, 디오는 가해자는 두 발 뻗고 잔다는 격언을 몸소 실천이라도 하듯이 가볍게 무시했다.

「정의덕후를 자처하는 한 독자가 피해자 앞에서 뻔뻔한 가해자의 모습에 안타까운 현실을 비추며 맹렬히 분노합니다!」

「일부 독자가 ‘루’에게 지독한 짓을 하는 당신에게 맹렬한 비난을 쏟아냅니다!」

맞는 말이다.

디오는 루를 죽였던 적이 있다. 그것도 무참하게. 비록 내가 어떻게 다시 살려내기는 했지만, 그 트라우마가 어디로 가는 건 아닐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시점에서 함부로 [메인 시나리오]에서 이탈했다가는, [작가]나 [개연성]에게 어떤 꼴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는 루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반.]

“어.”

[저 녀석이랑…… 계속 같이 가야 해?]

예전에는 본신일 때는 딱딱한 말투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무래도 루에게도 약간의 변화가 생긴 모양이었다.

아니면 디오의 존재에 저도 모르게 쫄았거나.

어찌 되었든 간에 그녀에게 있어서는 미안한 일이었다.

“조금만 참아.”

내 말에 루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 거대한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도착했어.]

그녀의 말에 지상을 내려다보니, 마치 고대 그리스에서나 볼 법한 도리아식 거대 신전이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마침내, ‘악마의 신전’에 도착한 것이다.

* * *

신전 내부의 풍경은 바깥에서 상상했던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맞이한 것은 흑색 케이프를 두르고 있는 ‘악마의 신전’의 사제였다.

“크크큭…… 감히 ‘현실과 공상의 악마’님을 만나고 싶다고? 목숨이 아까운 줄 모르는 필멸자들이구나.”

내 목숨이 아까운 건 모르겠고, 네 목숨이 곧 떨어질 거라는 건 알겠다.

그 예상이 정확했는지 거침없이 움직인 디오의 손이 사제의 목을 움켜쥐었다.

“단서를 말해라. ‘슈뢰딩거’는 어디에 있지?”

“가, 감히 ‘현실과 공상의 악마’님의 진명을!”

“말해라.”

디오의 손아귀가 더욱 조여지자, 안 그래도 말라서 비틀어질 것 같은 사제의 목이 당장이라도 뽑혀 나갈 것처럼 위태위태해졌다.

“끄, 끄윽! ‘현실과 공상의 악마’님께서는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그제야 디오의 손에서 풀려난 사제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 하자, 디오가 그의 무릎을 발로 찼다. 뼈가 통째로 박살 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끄아아악!”

“엄살떨지 마라. 목이 뽑혀 나간 것도 아니니까.”

필요하다면 목도 뽑을 수 있다는 뉘앙스였다.

“단서가 충분하지 않다.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이 어디지?”

“쿨럭! 그, 그것까지는 모릅니다! 저, 정말입니다!”

무릎이 완전히 박살 나서 다시는 걷는 게 불가능해 보이는 데도 저렇게 필사적으로 매달릴 정도라면 사제의 말은 사실인 듯했다.

에드윈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시선이 닿지 않는 곳? 떠오르는 곳이 없는데…….”

“저도…….”

키리엘 역시도 가볍게 동의하자, 그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나를 향했다.

오호…….

이런 식으로 뺑뺑이를 돌리시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을 마침내 찾아서 그곳에 가더라도, ‘슈뢰딩거’를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아니, 오히려 만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지금 이 [메인 시나리오]의 의도가 내가 생각한 그것이 맞다면 말이다.

내가 그런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진부하고 뻔한 내용 늘리기를 당해 줄 리가 만무했다.

내가 신전 안쪽에 ‘악마’가 조각된 석상을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이만 나오지?”

고작 한마디의 말이었지만, 이 말에는 추후 불러올 전개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키는 힘이 있었다.

그래, 바로 지금처럼.

「다수의 독자가 당신의 발언에 주목합니다!」

「다수의 독자가 당신의 떡밥에 흥미를 표합니다!」

늘 말하지만, 이 세계는 진실 따위보다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한 곳이다.

파지직-!

「[개연성]이 요동칩니다!」

“지금 무슨……!”

에드윈이 그렇게 경악하며 소리를 질렀다. 내가 일행들을 바라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생각해 봐. ‘악마의 신전’에 악마가 없다니, 이상하지 않아?”

당연한 이야기지만 원래 ‘신’은 신전에 없다.

그러나 그 사실에 매우 큰 충격을 받았는지, 에드윈이 감탄하며 말했다.

“그, 그러고 보니!”

머저리라 다행이다.

「[개연성]이 거칠게 요동칩니다!」

자, 이제 거의 다 왔다.

이제 늘 하던 대로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강제 복원력]에 의해서 [개연성]이 더욱 견고하게 발동합니다!」

「[개연성]의 요동거림이 멈춥니다.」

치직-.

순식간에 멈춰 버린 [개연성]의 움직임.

당연히 이 뒤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줄 알았던 ‘용사 파티’의 일원들의 시선이 나에게 고정되었다.

“……뭐야?”

“아무 일도 안 일어났는데?”

이를 지켜보고 있던 베른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뭐하냐?”

“…….”

이 더러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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