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Chapter 31: 현실과 공상의 악마 (2)
그 후, 우리를 찾아온 것은 아니나 다를까 지옥의 뺑뺑이였다.
「[메인 시나리오]가 진행 중입니다.」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의 단서를 찾기 위해, 온 세상의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현자 오올’에게 도움을 구하시오.」
“현자 오올이 누구지?”
디오의 물음에 에드윈이 답했다.
“들어본 적 있어요. 그런데 그는 워낙 신출귀몰하는 터라 숲의 엘프들과만 교류한다고 들었는데…….”
「[메인 시나리오]가 진행 중입니다.」
「‘현자 오올’에 대한 단서를 얻기 위해서 ‘숲의 엘프’를 찾으시오.」
“숲의 엘프라고? 그들은 어디에 있지?”
“아, 그것도 아마 튜드 대륙 동서쪽에 있는…….”
「[메인 시나리오]가 진행 중입니다.」
「‘숲의 엘프’에 대한 단서를 얻기 위해서 ‘잃어버린 왕좌의 주인’을 찾아가시오.」
“잃어버린 왕좌의 주인이라…….”
에드윈이 손바닥을 탁 치며 말했다.
“아! 그자를 알고 있는 자를 찾으려면…….”
「[메인 시나리오]가 진행 중입니다.」
「‘잃어버린 왕좌의 주인’에 대해서 알고 있는…….」
「…….」
……시작부터 이 꼴인 것을 보니,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는 영영 끝을 못 보겠다 싶었다.
“야, 너네.”
“왜?”
“……지금 우리 목적이 뭔지는 알지?”
그리고 암 덩어리들이 차례대로 말했다.
“잃어버린 왕좌의 주인을 찾는 거잖아.”
1번 암 덩어리 자칭 퀘스트 공략 전문가 에드윈이 그렇게 말했고,
“숲의 엘프를 찾는 거 아니었어?”
2번 암 덩어리 엘프 출신 키리엘은 지금 자기 정체성이 무엇인지는 안중에도 없는 듯, 그저 동족을 볼 수 있다는 환희에 떨었고,
“현자 오올을 찾는 거다.”
마지막 암 덩어리 용사님은 무엇이 그렇게 당당한지 얼굴에 자신감이 가득 깃들어 있었다.
“…….”
오, 망할 새끼들.
확신이 섰다.
이대로 이 새끼들에게만 맡기면, 이 시나리오는 영원히 못 깬다.
“야, 그거 알아?”
이제는 어떤 트리거가 되어 버렸는지, 디오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더니 이내 나를 강렬하게 노려보았다.
“……또 무슨 소리를 지껄이려는 거냐.”
의심과 경계심이 가득 깃든 시선.
「다수의 독자가 이어질 당신의 발언에 흥미를 표합니다!」
「당신의 행보를 지켜봐 온 한 독자가 이어질 말을 예상합니다!」
예상치 않게 관객이 생겼지만, 어차피 내가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아니, 너 병신이라고.”
* * *
묘한 일이었다.
본래라면 누구보다도 [메인 시나리오]를 망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앞장서고 있어야 할 내가, 지금은 이 암 덩어리들을 이끌고 있다니.
제아무리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지만 영 내키지 않는 건 사실이었다.
「[메인 시나리오]가 진행 중입니다.」
「‘잃어버린 왕좌의 주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기사 다르킨’을 찾으시오.」
“기사 다르킨은 왕국 내에서도 명망이 높은 기사야. 그가 유명한 이유는 그 강함 때문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최후의 왕좌’를 지키기 위해서 마지막까지 검을 들었던 충신 중 한 명이기 때문이야.”
에드윈의 설명에 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했다.
저딴 식의 진행을 줄줄이 따라갔다가는, 정말로 여기서 늙어 죽을지도 모른다.
“걔는 죽었어.”
“……뭐?”
「[개연성]이 요동칩니다!」
에드윈이 어이없다는 듯이 되묻자, 내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내가 죽였거든.”
「[개연성]이 거칠게 요동칩니다!」
내가 튜드 대륙에서 잠깐 활동했을 때,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죽어 나간 숫자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중에서 ‘기사 다르킨’이 있다고 해서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지 더 이상 그딴 말장난이 먹힐 리가 없었지만 말이다.
「[강제 복원력]에 의해서 [개연성]이 더욱 견고하게 발동합니다!」
「[개연성]의 요동거림이 멈춥니다.」
치지직-.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세 사그라진 [개연성]의 요동거림.
이를 지켜보던 디오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또 헛소리냐.”
“글쎄?”
어차피 여기까지는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은 이를 이용하는 일이었다.
“내가 ‘기사 다르킨’의 죽음을 어떻게 알았을 것 같아? 설마 내가 죽였던 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디오의 표정이 살며시 굳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기사 다르킨의 죽음에 대해서 나에게 따지러 왔던 녀석이 있어.”
당연한 이야기지만, 정말로 그딴 놈이 있었을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늘 그렇듯이 중요한 것은 그 실체보다 어떻게 ‘보이는가’였다.
바로 지금처럼.
“너…….”
살며시 굳어가는 디오의 표정.
「소수의 독자가 당신의 발언에 주목합니다!」
「[개연성]이 미약하게 꿈틀거립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게 누구일까?”
「다수의 독자가 당신의 발언에 주목합니다!」
「탐정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당신의 발언에 대한 추측성 발언을 늘어놓습니다!」
“말해라. 그게 누구지?”
그 어느 때보다도 격해 보이는 디오를 바라보며 내가 살며시 말했다.
“비밀.”
“……뭐?”
“때가 되면 알게 될 거야.”
디오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한 가지만 묻지. 너는…… ‘그’와 무슨 관계지?”
“내 정체가 뭔지 잊어버렸어?”
그와 함께, 내 머리 위에서 살며시 마족의 상징인 뿔이 자라났다.
마족 왕자.
지금의 내 [설정]이자, [서사].
그런 존재가 설령 ‘악마’랑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한들 이상한 것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있다고 보는 것이 옳았지.
“……알겠다.”
「다수의 독자가 당신이 흘린 떡밥을 기억합니다!」
「[개연성]이 살며시 요동칩니다!」
그러면 그렇지.
이미 예상했던 대로, 제아무리 [강제 복원력]이라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은연중에 흘린 떡밥까지 부정할 수는 없었다. 내가 말하는 ‘그’의 주체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제 남은 일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지긋지긋한 시나리오에 지름길을 놓는 일이었다.
“지금부터 ‘그’를 만나러 갈 테니까, 잠자코 따라오기나 해.”
「[개연성]이 거칠게 요동칩니다!」
「[메인 시나리오]가 진행 중입니다.」
「‘기사 다르킨’의 죽음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를 찾으시오.」
예상했던 대로 [메인 시나리오]의 내용이 바뀌었다. 이제 남은 일은 이 시나리오를 내 멋대로 이끄는 일이었다.
“가자.”
내가 그렇게 말하며 살며시 루의 등 위에 올라타자, 어느새 먼저 타고 있던 베른이 나를 불렀다.
“반.”
“예?”
베른은 무어라 말하려는 듯이 입을 벌린 채로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입을 닫았다.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긴.
이 아저씨가 또 뭘 숨기고 있구만.
“뭔데요?”
“아직은,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
베른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굳게 입을 닫았다. 분명히 무언가 감추고 있는 게 있는 것 같긴 한데, 아무래도 이미 닫은 입을 다시 열 것 같지는 않았다.
“좋아요. 대신, 말을 할 생각이 들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말해 주세요. 언제든지 들어줄 테니.”
“알았다.”
“그러면 가시죠.”
“어디로 갈 거지?”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선이 닿지 않는 곳.”
* * *
“시선이 닿지 않는 곳? 대체 누구의 시선을 말하는 걸까요?”
키리엘의 말에 베른은 침묵했고, 디오는 시선을 피했다.
아무래도 함부로 입 밖으로 내기에는 각자 걸리는 게 있는 거겠지.
그런 상황 속에서 그녀의 말에 대답한 것은 결국 에드윈 혼자였다. 키리엘과 에드윈을 단둘이 놓고 보면 참으로 어색한 사이라고 볼 수 있었으나, 그녀는 애써 살갑게 굴었다.
“글쎄요? 그냥 인적이 없는 무인도 같은 곳 아닐까요?”
“무인도라…… 상당히 그럴듯하네요.”
“아니면 빛조차 닿지 않는 심해 속이라던가?”
“그것도 그럴듯하네요. 그런데 그런 곳은 어떻게 가죠?”
“그것도 그러네…….”
그리고 다시금 침묵이 찾아왔다.
베른은 여전히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디오는 그보다 조금 더 심각한 표정을. 그리고 에드윈과 키리엘은 이 어색한 기류를 견디지 못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허참.’
새삼 드는 생각이지만, 장소 이름 한번 참 재미있게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이라니, 마치 누군가를 의식하고 있는 듯한 지명이 아닌가.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이라…….’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그곳이 어디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곳이 어디인지는 그다지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모든 것은 그럴듯하게만 보이면 되는 문제였으니까.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에드윈이었다.
하긴, 이 어색한 기류 속에 있는 그녀의 표정은 정말로 괴로워 보였으니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었다.
“이제야 말해 줄 생각이 든 거야?”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대해서 ‘그럴듯한 장소’를 떠올리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겠지만 말이다.
내가 에드윈을 바라보며 물었다.
“[게임]에 속한 월드는 어디까지지?”
“그야…… 이번에 ‘미지의 대륙’까지 개방이 되었으니…… ‘튜드 대륙’과 ‘미지의 대륙’ 아닐까?”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그렇다면 이 문제 역시도 생각보다 간단한 결론으로 귀결될 수 있었다.
“맞아.”
“뭐야, 알면서 물은 거야?”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으니까.”
“잠깐, 설마…….”
눈치 느린 여자 같으니라고.
내 말을 이해한 것은 다른 일행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는지, 디오가 눈썹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다수의 독자가 이어질 당신의 발언에 주목합니다!」
“게임에 속한 ‘월드’의 바깥. 그곳이 바로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이다.”
* * *
게임의 바깥.
그곳으로 향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루를 타고서, 막연히 세상 끝으로 날아가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정말 여기야?”
흔히, 게임을 하면 맵 끝에 존재하는 것은 배경으로 이루어진 벽과 그 너머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심연이다.
본디 존재하지 않는 공간.
하지만 그렇기에,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너무나도 부합되는 장소.
내가 그 심연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용사 파티’의 일행들을 향해서 말했다.
“뭐해? 안 가고.”
“……네가 먼저 가면 안 될까?”
하긴, 당연한 이야기지만 보통 저런 ‘권외’ 공간에 함부로 발을 디뎠다가는 에누리 없이 사망하는 것이 보통 게임의 정석이었다.
“그러던가.”
내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심연을 향해서 떨어져 내리자,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경고! 당신은 ‘월드’를 벗어났습니다! 일정 시간 안에 ‘월드’로 복귀하지 않을 시, 사망합니다.]
친절하기는.
물론 내가 저런 얄팍한 경고를 들을 리가 만무했다.
내가 심연 속을 향해서 말했다.
“이만 나오지?”
이전과 똑같은 말이었으나, 그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개연성]이 폭발할 듯이 요동칩니다!」
「강력하게 발동한 [개연성]이 [강제 복원력]을 무시합니다!」
「어긋난 [개연성]이 회복됩니다!」
파지직-!
파직, 파지직!
그와 함께 일어난 [개연성]의 움직임.
그리고 심연 속에서 유쾌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 하하하- 이게 누구신가.]
솔직히 말해서 처음 듣는 목소리였으나, 나는 무척이나 잘 아는 사이라도 되는 것처럼 친근하게 말을 붙였다.
“오랜만이다. ‘현실과 공상의 악마’여.”
그때였다.
파지직!
「[강제 복원력]이 일부 [개연성]을 복원합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구냐 네놈은? 조금 살갑게 대해 줬다고 아는 척하지 마라.]
……망할 새끼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