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화 Chapter 32: 복원 (1)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에드윈은 심연을 걸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향했다.
이딴 곳…… 들어오는 게 아닌데.
그녀는 뒤늦게 후회했지만, 이미 돌아갈 길은커녕 앞뒤조차도 구분이 되지 않았다.
여기는 도대체 어디야?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공간이었다. 마치 우주처럼 펼쳐진 끝없는 어둠이 보였지만, 그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에는 작은 별빛마저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어두워, 추워, 외로워.
그녀는 몸을 떨었다. 애써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제는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을 [길드 채팅]이라도 켜 보려 했으나, 그런 그녀의 희망을 짓밟기라도 하듯이 시스템은 먹통이었다.
[이만 포기해.]
누군가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환청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일까.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애써 무시하며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끝이 보이질 않는다.
비적비적 발걸음을 옮기지만 앞으로 가고 있는 건지, 뒤로 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위나 아래로 내려가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허무 속을 헤매리라.]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아까 들었던 목소리보다 훨씬 더 선명했다.
그녀는 그제야 확신했다. 지금 저 목소리가 결코 환청 따위가 아님을. 그리고 저 목소리의 의도가 무엇인지.
아무나, 아무나 나 좀 도와줘.
그녀를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들려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뿐이었다.
……메아리?
그녀는 그제야 알았다. 이곳은 무한한 공간이 아니다.
아주 작고, 또 작은 공간.
자신이 이곳을 나갈 수 없는 이유는 길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그 작은 공간 속에 갇혔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결국 발걸음을 멈췄다. 자신의 힘으로는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지독하다. 너무나도 지독하다.
그녀는 자신의 결말이 이딴 식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저, 되찾고 싶을 뿐이었다.
그 남자가 보여 주던 멋쩍은 미소도, 언제나 지켜줄 것 같던 든든한 등도.
이제는 그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구해 주지 못했다는 절망감에 그녀는 이제 숨죽여 울었다. 심연 속에서 그녀의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마치 우는 그녀를 향한 조롱 같았다.
[……없어!]
[……도 안 돼!]
그리고 공허 속에서 무엇인가 들려왔다. 그녀는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녀의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메인 퀘스트] [현실과 공상의 악마, 슈뢰딩거 처치]를 클리어하였습니다.」
그 순간,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심연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무너진 심연 사이에서 너무나도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어?
그녀는 팅팅 부은 두 눈을 의심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은 분명한 현실이었다.
무너져 가는 빛 사이로, 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선배?
이내 빛이 쏟아지며 그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나와!”
거칠기 짝이 없는 목소리. 그녀가 기다렸던 이와는 정반대인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녀는 이 목소리마저도 반가웠다.
“……디오?”
디오가 거친 손으로 그녀를 잡아끌자 에드윈의 몸이 너무나도 쉽게 끌려 올라갔다.
“어? 어?”
그녀가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주위를 둘러보자 빛으로 둘러싸인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느 해변가.
이름은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심연 속에 비하면 천국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정신을 차리기도 채 전에, 디오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너, 그 자식과 함께 있던 것 아니었나?”
그 자식이라니?
그녀는 애초에 디오가 누구를 말하는 건지 몰랐으나,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부터, 혼자였으니까.
“어……? 네? 아닌, 아닌데?”
“망할…….”
주위를 둘러보니, 언제부터 있었던 건지 ‘용사 파티’의 일행들이 하나같이 심각한 얼굴로 모여 있었다.
단 한 명만 빼고.
“……마족 왕자는?”
이제야 디오가 찾는 ‘그 자식’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너도 아니었나…….”
디오의 표정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아인즈 반을 찾고 있던 것 같았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나도 그걸 알고 싶군.”
아무래도 영문을 모르는 것은 디오 역시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심연 속에 들어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키리엘을 만났다. 저 둘도 그랬던 것 같고.”
디오가 턱짓으로 가리킨 것은 다름 아닌 베른과 루였다. 베른은 어딘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루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너도 아인즈 반과 함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아니었나 보군.”
둘씩 있었다는 저들의 말에, 에드윈은 괜히 혼자 외롭게 떨고 있던 것이 새삼 억울해졌다. 만약 자신도 누군가 옆에 있었다면 이런 꼴불견도 보이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에드윈은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했다는 메시지를 보았다. 그것이 환각이 아니라면, 그녀는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을 터였다.
에드윈이 떨리는 손으로 시스템 창을 눌렀다. 그와 함께, 그녀의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로그아웃]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그녀는 다시금 활성화된 [로그아웃] 단축키를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았다.
돌아갈 수 있다.
이 지긋지긋한 세계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환희가 그녀의 몸을 얼싸안았다.
[에드윈, 너 어디야?]
그 순간 갑작스럽게 들려온 메시지.
에드윈은 이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선배?
에드윈이 떨리는 손으로 [길드 채팅창]을 눌렀다. 그곳에는, 너무나도 그리운 이들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강한성기삽니다: 다들 괜찮아?]
[고든: 나는 괜찮은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은?]
[강한성기삽니다: 에드윈, 지금 어디야? 내가 갈게]
[메론맛사탕: 에드윈이 왜?]
[강한성기삽니다: 에드윈?]
[강한성기삽니다: 에드윈, 대답 좀 해 봐.]
[강한성기삽니다: 너 어디야?]
[강한성기삽니다: 에드윈.]
어느새 에드윈의 눈가에서 한줄기의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었다.
결국, 해낸 것이다.
[밖에서 만나요.]
그녀가 길드 채팅창에 그렇게 남기고는 [로그아웃] 단축키로 손가락을 옮겼다.
「정말로 [로그아웃] 하시겠습니까? [로그아웃] 시, [로그인]이 제한됩니다.」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이야기.
그러나 그녀에게 있어서 더 이상 아쉬운 것은 없었다. 어차피 이곳을 벗어나고 나면, 다시는 게임 따위 쳐다보지도 않을 생각이었으니까.
그러나 왜인지 모르게 그녀의 손가락은 쉽게 단축키를 누르지 못했다.
“당신은 안 돌아가?”
그녀가 아직도 이곳에 남아 있는 디오를 바라보며 묻자, 키리엘이 염려스러운 시선으로 디오를 바라보았다.
“……아직은.”
“뭐?”
에드윈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곳이 도대체 뭐가 좋다고 아직도 남아 있겠다는 건가?
그녀의 마음을 안다는 듯이 디오가 짧게 말했다.
“이곳은 게임 따위가 아니다.”
“나도 이제 알아.”
이곳은 [다른 세계]다. 게임은 그저 그 두 개의 세계를 잇는 매개체였을 뿐.
에드윈 역시도 이제 그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디오를 이해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해가 안 가네. 이딴 세계, 그냥 모르는 척하고 돌아가면 그만이잖아?”
게임이던, 아니던. 관계없이 이 세계에 있어서 그들은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이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던지, 그것을 책임질 의무 따위는 없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녀의 말에 괜히 옆에 있던 키리엘의 몸이 움찔했다. 당장이라도 디오가 사라지기라도 할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디오…….”
에드윈 역시도 그 기류를 읽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잠자코 있었다. 어차피 저건 디오와 키리엘의 문제였고 언젠가 넘어야 할 산이었다.
“어째서 [월드 퀘스트]를 클리어하지 못했는데도 돌아갈 수 있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았나?”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에드윈이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야…… ‘현실과 공상의 악마’를 쓰러뜨렸으니까. 그 악마가 우리를 이곳에 가둔 배후였으니, 돌아갈 수 있게 되는 건 당연한 이야기잖아?”
“당연하다라…… 그건 누가 정하지?”
디오의 말에 에드윈은 할 말이 없어졌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누구도 ‘현실과 공상의 악마’를 쓰러뜨리면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해 주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추측했고, 그렇게 되었을 뿐.
원인과 결과만 존재했을 뿐, 그 사이에는 그 어떤 인과율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아직 이곳에서 할 일이 있다. 그것뿐이다.”
디오의 선언에 에드윈은 더 이상 그를 설득할 명분도,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래.”
이제, 돌아갈 때가 왔다. 현실로 돌아가고 나면, 그녀는 가장 먼저 ‘강한성기삽니다’를 만나러 갈 것이다.
이제 게임 속이 아닌, 현실에서.
그리고 데이트를 하자고 조를 것이다. 그러면 그 고지식한 남자는 당황하면서도 마지못해 따라오겠지.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었다. 이곳에서 겪었던 피비린내 나는 일상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그러나 그녀는 쉽게 손가락을 움직이지 못했다.
“아, 진짜 짜증 나게…….”
단 한 번의 결단.
그것만 해낸다면 이 지긋지긋한 세계와 영원히 안녕이다. 그러나 왜인지 모르게 그녀는 그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찜찜해.
이 세계에 미련이 남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저 찜찜함.
그것은 마치, 볼일을 본 후에 뒤를 닦지도 않은 것은 물론이고 실수로 바지도 안 올리고 나온 기분이었다.
그녀는 결국 시스템 창을 닫았다.
“뭐 하는 거지?”
그녀의 돌발 행동에 디오가 살며시 놀라자, 그녀가 말했다.
“돌아가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어.”
물론, 장담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모종의 사건으로 갑작스럽게 예전처럼 [로그아웃] 단축키가 비활성화될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녀는 이번만큼은 고집을 부리고 싶었다. 그녀는 지금 이곳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알아내야 한다는 어떤 의무감마저 느꼈다.
“……마음대로 해라.”
애초에 디오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었기에, 디오는 그렇게 수긍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셔. 여차하면 [로그아웃]해서 도망갈 거니까.”
빈말은 아니었다. 에드윈은 정말로 여차하면 [로그아웃]으로 도망갈 생각까지 하고서 남겠다는 말을 한 것이었다. 적어도, 아직 [로그아웃]이 비활성화될 일은 없을 것 같았으니까.
“……반이 돌아오지 않는군.”
입을 연 것은 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베른이었다. 그는 연신 심각한 표정으로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지금에서야 입을 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죽여도 죽을 남자는 아닌 것 같으니.”
키리엘이 어색하게 위로하자, 베른이 의외라는 듯이 눈썹을 꿈틀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게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이기지 못했는지, 에드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건데?”
“뭐를 말이지?”
“여기서 이렇게 마냥 죽치고 있을 거냐고.”
“……아인즈 반은 시선 밖에 내버려 두는 것이 더 위험하다.”
“그러면 찾으러 가던가.”
에드윈의 말에 디오가 말했다.
“어디로?”
디오의 말처럼 ‘심연’이었던 세상 끝은 지구는 둥글다는 진리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이제 또 다른 지평선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곳은 더 이상 예전처럼 갇힌 세계가 아니었다.
“……읏.”
에드윈이 결국 할 말을 잃고서 토라진 그 순간이었다. 그녀는 정체 모를 울렁거림을 느끼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 울렁거림을 느낀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는지, 일행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심각했다.
“이건…….”
그때였다.
「[강제 복원력]이 발동합니다!」
「[Chapter 32]의 [메인 시나리오]가 진행됩니다.」
「인류의 배신자, ‘하인즈’가 남긴 유산을 파괴하여 ‘불지옥 반도’와의 연결을 끊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