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Chapter 32: 복원 (3)
에드윈은 표정을 찌푸렸다. 며칠 전부터 일행들에게서 느껴지는 기류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말도 안 돼…… 그런 곳이 존재한다고? 하지만 아인즈 반이 그곳 출신이라면 어느 정도 납득은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의문점이…….”
디오는 무엇이 그렇게 심각한지 연신 굳은 표정으로 정신병자마냥 혼자서 중얼거렸고,
“디오…….”
키리엘은 그런 디오를 옆에서 바라보며 함께 고민을 나누고 싶어 했지만 알아듣지를 못했고,
“망할, 애송이 놈.”
베른은 누군가를 기다리며 혼자서 씹어 삼키듯이 말하고는 혀를 찼다.
에드윈은 이 기류 속에서 그나마 말이 통할 것 같은 루에게 말을 붙여 보았으나, 들려오는 것은 거의 병적인 ‘반 집착증’이었다.
“반을 만나야 해…….”
“반은 어디에 있지?”
“반, 반, 반…….”
말이 통할 것 같다는 것은 아무래도 그녀만의 착각이었던 듯싶었다.
“에휴…….”
에드윈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이라도 [로그아웃]을 해야 하나 싶었지만, 이 애물단지들을 이대로 내버려 두고 가 버리자니 다시 한번 찜찜함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이대로 두고 보는 것도 못 할 짓이었기에, 결국 참다못한 그녀가 디오의 앞에 섰다.
“저기요.”
“……뭐지?”
“그렇게 궁금하면, 찌질하게 그러고 있지 말고 직접 가 보면 되잖아요? 하인즈의 유산인가 뭐시긴가에. 어차피 해야 할 일 아니에요?”
“…….”
그와 함께 디오의 표정이 마치 큰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처럼 변하자, 에드윈이 속으로 혀를 찼다. 설마 해서 말해 본 건데 정말로 생각을 못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도대체 얼마나 얼을 놓고 있는 거야.’
에드윈은 디오가 왜 저렇게까지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불지옥 반도’가 어쨌다는 건지. 그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그녀의 상태가 의아했는지, 답지 않게 디오가 에드윈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너는 괜찮아 보이는군.”
“뭐가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한 그 대답에 디오는 할 말을 잃었다. 분명히 비슷한 의구심을 갖고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태평스러운 그녀의 모습에, 끙끙 앓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바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니다.”
어차피 ‘하인즈의 유산’을 찾게 되면 알게 되겠지. 디오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가지.”
누가 ‘용사 파티’ 아니라고 할까 봐, 에드윈이 그렇게 소리쳐도 꿈쩍도 하지 않던 일행들이 디오의 말과 함께 순식간에 부산스러운 분위기를 정리하고서 길을 떠날 준비를 마쳤다.
“허어…….”
직접 보고도 믿기 어려운-사실은 그냥 믿기 싫은- 광경에 에드윈은 어이가 없어졌으나, 굳이 입을 열지는 않았다. 괜히 입을 열어 봤자 자신만 손해라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 그녀는 자신만의 소심한 고민을 했다.
“뭐해? 준비 안 하고.”
“예이.”
디오의 말에 대충 대답한 에드윈이 [로그아웃] 단축키에 살며시 올려놓았던 손을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아직 갈 때가 아닌 모양이다.
“하인즈의 유산을 찾으러 간다. 그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나?”
“전혀.”
에드윈이 가장 먼저 부정했고, 키리엘 역시도 마찬가지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디오의 시선이 굳은 표정으로 침묵한 베른에게 향했다.
“당신은?”
“…….”
표정이 굳은 것은 베른의 옆에 붙어 있는 루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이들은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듯했다.
“알고 있는 게 있나 보군.”
디오는 자신이 눈치챈 바를 굳이 감추지 않았다. 비록 저들을 진짜 ‘동료’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일단은 일행인 이상 이쯤에서 저들의 협력 여부 정도는 가려낼 필요가 있었다.
“답하지 않을 건가?”
갑작스럽게 싸늘해진 디오의 말에 옆에 있던 루가 괜히 몸을 움찔했다. 애써 아닌 척하고 있었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자신의 심장을 꿰뚫었던 디오에 대한 악몽을 떨치기는 쉽지 않았다.
“내가 말해 주지.”
그때 베른이 디오와 루 사이를 가로막았다.
“나도 하인즈의 유산에 대해서는 정확히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그가 위대한 마법사였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지.”
“그게 전부인가?”
베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전부라면?”
“시간을 끄는 건가? 아니면 단순히 말해 주기 싫은 건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동료’끼리 숨기는 건 좋지 않아 보이는데.”
“동료라…… 재미있는 말인데. 네가 우리를 그렇게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는 줄은 몰랐어.”
갑작스럽게 분위기가 기묘하게 흘러가기 시작하자, 이를 눈치챈 키리엘이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저, 저도! 인간 마법사에 대해서는 자세히 아는 바가 없기는 하지만 하인즈의 이름에 대해서는 몇 번 들어본 것 같아요.”
“그래서?”
그제야 디오의 시선이 옮겨지자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던 키리엘이 이내 혀를 비쭉 내밀었다.
“그러니까…… 똑같은 인간 마법사들에게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요?”
제 딴에는 나름대로 분위기를 풀어 보려고 충동적으로 저지른 행위였겠지만, 결과는 크게 나쁘지 않았다.
“……그것도 그렇군.”
디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순순히 대답을 들을 수도 없을 텐데 더 이상 의미 없이 베른과 대치하기보다는 움직이는 것이 훨씬 더 생산적이었다.
“마법사를 찾아야겠어.”
그 순간, 마치 그런 그의 결심을 종용이라도 하듯이 이내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메인 시나리오]가 진행 중입니다.」
「‘하인즈의 유산’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페론 마탑으로 향하시오.」
그와 함께 베른의 미간이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살며시 구겨졌다.
* * *
에드윈은 생각에 잠겼다.
‘불지옥 반도?’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의미에 대해서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디오의 태도는 마치 자신이 그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내가 뭘 놓치고 있나?’
그녀가 알고 있는 반도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곳은 ‘불지옥’보다는 오히려 ‘유토피아’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도 강대한 초강대국.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평등한 국가.
그렇기에 그녀의 의문은 더욱 깊어졌다.
「[국뽕] 클리셰가 발동 중입니다!」
「[국뽕] 클리셰의 효과로, [대한민국]의 경제, 군사, 영토, 문화 등 모든 수치가 [5000%] 증가합니다!」
에드윈은 발걸음을 총총 옮겼다. 왜인지 모르게 느껴지는 찜찜함을 뒤로한 채로.
“같이 가요!”
* * *
하얀 방에 들어온 지 하루가 더 지났다.
이미 짐작하고 있던 대로, 어설픈 물리적인 도주는 내가 있는 하얀 방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감금] 에피소드가 진행 중입니다.」
「[감금자]의 비위를 거스르지 마십시오. [감금자]는 당신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감금자]와의 대화에서 [감금자]가 원하는 바에 대해서 습득하고, 이를 이용하시오.」
기본적인 요체는 밀실 스릴러 영화나 방 탈출 게임과 유사했다. 방 안에서 빠져나갈 힌트를 얻고, 방을 빠져나간다는 것.
문제는, 그 난이도가 일반적인 방 탈출 게임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높다는 점이었지만 말이다. 세상에 출구도 없는 밀실 탈출 스릴러라니, 삼류 소설가나 쓸 법한 소재였다.
‘하지만 빠져나갈 방법은 반드시 존재한다.’
그렇지 않다면 [감금]이라는 에피소드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을 테니까. 만약 탈출 방법이 전무 했다면 지금 하이디의 행동 양식으로 보아서 [사육]이나 [배드엔딩]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반.”
하이디는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내 옆에 붙어 있었다. 얼핏 보면 내가 도망갈까 봐 감시하는 모양새였으나, 실상은 조금 달랐다.
“우리는 항상 함께야.”
“영원히.”
“다시는 내 옆을 떠나가지 마.”
결코 정상이라고는 볼 수 없는 집착.
그녀는 나에게 어떤 [역할]을 요구하고 있었다. 마치 숨바꼭질에서 술래라는 역할을 했듯이.
그런 그녀를 볼 때마다 괜히 마음이 미어졌다. 그녀가 저렇게 된 것은 결국 나 때문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내가 더욱 마음을 굳건하게 먹어야 했다. 지금 시점에서 그녀를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었으니까.
“오늘은 뭐할까?”
그녀의 눈동자를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런 류의 스릴러 장르에는 항상 기가 막힌 반전이 숨어 있지 않던가? 만약 그 반전을 알아낼 수 있다면 내가 이곳을 빠져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될 터였다.
「탐정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범인의 정체는 ‘하이디’가 분명하다며 자신의 추리에 감탄합니다!」
……꼭 있다. 대놓고 드러난 설정을 가지고 무슨 대단한 반전이라도 맞춘 것처럼 호들갑 떠는 놈들이.
물론, 자칭 탐정의 말이 아예 개소리는 아니었다. 어쨌거나 이 밀실 탈출의 난이도가 급상승한 주원인이자 다른 밀실 탈출과 차별화되는 요소가 바로 지금도 내 옆에 붙어 있는 [감금자]의 존재였으니까.
그렇다면 이쯤에서 지금의 상황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었다.
1. [감금 장소]인 하얀 방은 혼자서 탈출이 불가능하다.
2. 내 자유는 [감금자]에게 속박되어 있다.
3. 설사 [감금자]를 속여서 바깥으로의 탈출이 성공하더라도, 심장이 저당 잡혀 있으므로 그다지 의미가 없다.
4. [감금자]인 ‘하이디’는 현재 나에게 일정 수준의 호의를 가지고 있다.
이 조건을 두고 생각해 보면, 이상적인 공략법은 [감금자]인 하이디를 잘 구슬려서 내 심장을 돌려받고 자유도 되찾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평범한 설득으로는 불가능하다. 만약 그런 것이 가능했다면 애초에 내 가슴에 이런 무식한 구멍을 내놓지도 않았을 것이다.
[감금자]에서 시선을 떨어뜨려 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설명이야 [감금 장소]에서 힌트를 얻으라고는 하지만 하얀 방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유일하게 있는 물건인 의자에 대한 조사도 이미 끝난 지 오래였다.
그렇다면 발상을 바꿔서 이번 에피소드에 숨어 있는 [반전]은 무엇인가?
……모르겠다. 반전이 그렇게 쉽게 알 수 있는 거였다면 애초에 반전이라고도 불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장고 끝에 악수가 나온다고 하던가. 오랜 고민 끝에 나온 생각치고는 나온 결론이 무척이나 심플했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
내가 그런 결론을 내린 후 하루가 더 지났고, 다시 한번 하이디가 찾아왔다.
“맛있어?”
하이디가 흡족한 얼굴로 자기가 가져다준 체리 파이를 먹고 있는 나를 응시하며 웃었다. 마치 자식을 바라보는 엄마 같은 미소였다.
“그럭저럭.”
“빈말 한 번을 안 해 주네.”
“내가 입맛이 조금 까다로워서. 알잖아? 내가 좀 귀하게 자랐어야지.”
그저 너스레를 떨려고 한 말이었건만, 하이디의 반응이 어째 이상했다.
“……아? 아아, 그랬지. 그랬어. 왕자님이었지. 노예가 아니라…….”
그 순간, 하이디의 몸이 아주 잠깐이지만 흐릿하게 보였다. 마치 그 존재를 부정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 변화는 고작 순간에 불과했지만, 내가 그 변화를 놓칠 리가 없었다.
……이것 봐라.
그리고는 떠올랐다.
이 삼류 스릴러 에피소드를 끝낼 방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