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Chapter 32: 복원 (4)
배신자 페드로.
그는 자신에게 붙은 낙인이 치욕적인 오명이라고 생각했다. 배신 따위를 한 것이 아니다. 그깟 하찮은 야망 때문이 아니라, 썩어 빠진 제국과 마탑을 다시 세우려는 대의였다.
페론 마탑의 전(前) 부탑주, 페드로는 자신이 나락에 떨어졌던 날을 되새겼다. 갑작스럽게 마탑에 들이닥친 블랙 드래곤과 난데없이 마탑의 소유권을 주장하던 미친놈.
그러나 페드로는 그 미친놈에게서 대의를 보았다. 썩어 빠진 제국의 살을 도려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그렇기에 그는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것이 썩은 동아줄인지도 모르고.
‘용사…… 그자만 아니었다면.’
페드로는 길을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되돌아온 용사 일행을 떠올렸다.
용사 일행은 마탑을 접수하러 왔던 블랙 드래곤을 위시한 자들과 싸웠고, 싸움은 결국 블랙 드래곤 측의 도주로 막을 내렸다.
페드로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강물에 떠내려간 오리알 신세가 된 것이다.
모든 소란이 종식되자, 순식간에 모든 권위를 잃은 페드로는 배신자로서 재판 아닌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것은 사실상 법과는 거리가 있는 처벌이었다.
그 죗값으로 그는 가지고 있던 모든 심장의 서클을 잃었고, 이마에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노예의 낙인이 찍힌 채로 페론 마탑의 노예가 되었다.
고작 틀린 것을 바로잡고자 한 결과로는 지독한 대가였다.
-“퉷!”
-“더러운 배신자.”
-“페드로, 네놈의 불순한 생각은 진작 알아보았다.”
부탑주로서 쌓았던 명예는 멸시로, 선구적인 발상과 지혜는 반역을 꿈꾸는 불순한 생각으로.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부…… 전부 다 죽여 버릴 것이다.’
그날, 페론 마탑에 들이닥쳤던 블랙 드래곤과 미친놈-아인즈 반. 그리고 용사 일행까지.
그렇게 복수의 칼날을 갈며 실낱같은 생명을 이어 갔다. 계속된 비참한 나날 속에서 마침내 신이 그의 기도를 들어주기라도 한 것일까.
그 복수의 대상이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것도 하나도 아닌, 떼거리로.
“너.”
용사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때의 위풍당당했던 모습과 지금의 초라한 노예의 모습은 전혀 다른 인물이라도 해도 믿을 정도였으니까.
아니면, 애초에 기억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거나.
그러나 페드로는 후자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망친 자들이 그래서는 안 된다. 적어도 기억은 하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하인즈의 유산에 대해서 알고 있나?”
페드로는 잠시 고민했다. 대마법사 하인즈. 마법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름이다. 그리고 그의 유산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페론 마탑의 부탑주였던 자신은 알고 있었다.
페드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전과는 다르게 더없이 갈라진 목소리였으니, 이 목소리를 듣고서 예전의 페드로를 기억해 낼 수는 없으리라.
“……그것은 무엇 때문에 찾으십니까?”
“네놈은 알 것 없다.”
용사는 예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상처 입은 맹수처럼 보이는 그 모습도, 천한 성품도.
그러나 페드로에게 있어서는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혹시나 용사가 소문처럼 악을 징벌하고, 선의를 머금고서 정의를 행하는 이면 어쩌나 했는데 아무래도 기우였던 모양이었다.
‘마음 놓고 증오할 수 있겠구나.’
페드로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모든 것이 그를 위해서 준비된 기회인 것만 같았다. 그는 신이 내려준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따라오십시오.”
“알고 있는 건가?”
“저도 한때는 마법사였던 몸입니다. 마법사라면 하인즈의 유산에 대해서 한 번쯤은 들어보고는 하지요.”
거짓말이었다. 하인즈의 유산은 일개 마법사 따위가 알 수 있는 정보가 아니었다. 그러나 용사에게서는 별다른 의심의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가. 잘됐군.”
페드로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그곳이 어디로 향하는 입구인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놈들 같으니라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복수의 순간이 왔다. 이제 그는, 저들을 ‘지옥’으로 인도할 것이다.
페드로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 * *
디오는 기묘한 기분을 지우지 못했다.
‘말도 안 돼.’
부정을 하고,
‘하지만…… 아니라면?’
추측을 하고,
‘모두 헛된 거짓에 불과하다.’
마침내 망상을 한다.
하지만 디오는 지금 자신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의심이 결코 한낱 망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인지하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됐다.’
아인즈 반이 ‘다른 곳’에서 온 존재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 ‘다른 곳’의 이름이 무엇인가 이상했다.
‘마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듯한…….’
디오의 생각은 거기서 끝이었다. 언제부터 바라보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도저히 속내를 읽을 수 없는 인간-베른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흠.”
그리고는 살며시 시선을 피하는 베른의 낌새가 영 수상했으나, 어차피 저 음흉한 인간이 묻는 대로 대답해 줄 리도 없었기에 디오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왜 그래?”
키리엘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으나 디오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고는 앞에서 ‘하인즈의 유산’으로 안내를 하는 안내인을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그러나 그 기억이 워낙 희미해서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리고 그 경우는 대부분 두 가지로 나누어지곤 했다. 의도적으로 존재를 숨겼거나, 별 볼 일 없는 자거나.
디오의 판단은 후자였다.
‘굳이 신경 쓸 필요 없겠지.’
그리고는 시선을 돌려서 그 너머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하인즈의 유산’에 거의 다 도착한 모양이었다.
* * *
「[감금] 에피소드가 진행 중입니다!」
이 삼류 스릴러 에피소드에는 기존 밀실 탈출 에피소드와 크게 다른 점이 있다.
바로, 감금자의 존재.
그 이야기는 즉, 감금자와의 관계 그 자체가 이 에피소드를 클리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열쇠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 그 감금자는 나에게 허점을 드러냈다. 너무나도 치명적인 허점을.
“잘 먹었어.”
“……그래.”
“오늘은 뭐 안 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내가 먼저 웃으며 말을 건네자, 이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감금자-하이디의 어깨가 작게 들썩였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해.”
아쉬울 건 없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은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러지 뭐.”
하이디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뒤돌아섰다. 그녀의 뒷모습에 비친 어깨가 유난히 작아 보였다.
“그러면 이만 쉬어.”
하이디는 그렇게 말하며 빛과 함께 사라졌다. 자, 이제 시간이 생겼으니 해야 할 일을 마칠 순서였다.
어디 보자…….
[감금자]가 가진 힌트는 대충 눈치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이곳, [감금 장소]에 대한 힌트였다.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이 바로 그 힌트를 찾는 일이었다.
삐걱-.
우선, 의자는 아니고.
똑똑-.
벽면에도 별다른 특징은 없고.
쾅쾅-.
천장이나 바닥 역시도 마찬가지.
혹시나 해서 재차 조사해 봤지만 역시나 단서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특정 정보를 얻어낸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딴 건 없었을 수도 있고.
“대체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된 건지…….”
스스로가 한심해서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여전히 구멍 나 있는 가슴팍이 보였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 있는 건지 여전히 의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빌어먹게도 편리한 몸이다. 가슴이 뚫린 건 물론이고 아무런 생리현상조차도 일어나지 않으니.
마치 ‘하얀 방’에 갇히기 위해서 미리 준비된 몸뚱어리 같았다.
“……어?”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나는 그제야 [감금 장소]가 가진 탈출 힌트를 깨달을 수 있었다.
과연…….
그렇게 생각하면 이 모든 의문점들이 납득이 간다.
내가 이 꼴을 하고 어떻게 아직도 살아 있을 수 있는 건지. 또 하이디는 도대체 어떻게 내 자유를 구속한 건지.
나는 멍한 시선으로 하이디를 기다렸다.
이제, 이곳에서 나갈 때가 됐다.
* * *
하이디가 돌아온 것은 다음날이 되고 난 뒤였다. 많은 생각을 했었는지 그녀의 안색은 복잡함이 가득 묻어나 있었다.
“오래 기다렸어.”
내 말이 의외였던 건지 하이디의 얼굴이 조금 상기됐다.
“……정말?”
그러나 결코 그녀의 기대처럼 순수한 의도는 아니었다.
“나를 돌려보내 줘.”
상기됐던 하이디의 얼굴이 이내 기대한 만큼 실망으로 가득 물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애써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녀가 그토록 바랐던 역할극의 속행이었다.
“……좋아. 오늘은 어디로 갈까? 제도? 아니면 남쪽의 섬?”
“내가 하는 말이 그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 텐데?”
내가 재차 강조하자, 애써 모르는 척하려던 하이디의 표정이 점차 굳었다. 그녀가 내 이름을 불렀다.
“반.”
“이 정도면 너에 대한 사과로는 충분할 정도로 표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이제 이 지긋지긋한 역할극은 그만했으면 좋겠어.”
“반!”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던 하이디의 얼굴에 약간의 노기가 깃들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심장에서 격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감금] 에피소드가 진행 중입니다!」
「[감금자]의 의지로, 당신의 심장을 압박합니다!」
이거…… 장난 아닌데?
아닌 게 아니라, 살면서 느껴본 고통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만한 고통이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나를 보며 하이디가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말해.”
“끄흐…… 뭘?”
“아무 데도 가지 않겠다고. 영원히 내 옆에 있겠다고 말해!”
“그, 그거 유감인데. 나, 나는 집착하는 여자는 취향이 아니라서.”
“반!”
그녀의 외침과 함께 심장의 고통이 더욱 강해졌다. 정말 죽을 것 같은 고통. 그러나 죽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뭐, 뭐해? 어서 심장을 터트려서 죽이지 않고. 이곳에서 말 같지도 않은 역할극이나 하고 있느니, 차라리 죽겠어.”
“반…… 제발.”
내 심장을 쥐고서 당장이라도 죽일 듯이 노려보던 그녀가 이제는 애원했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았다.
“하라고!”
그러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고통도 점차 잦아들었다. 시선 끝에선 하이디가 몸을 떨고 있었다.
“못하겠지?”
하이디의 몸이 움찔했다. 그것은 그녀가 나를 미치도록 사랑해서가 아니었다.
“당연한 이야기야. 내 가슴에는 처음부터, 구멍 따위 나 있지 않았으니까.”
그저, 정말로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상당한 연출이었어. 제아무리 나라고 해도 깜빡 속아 넘어갈 만큼.”
분명히, 그녀는 내 가슴을 꿰뚫고서 그 심장을 움켜쥐었다.
아직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을 만큼 강렬한 연출.
그런 강렬한 연출이 있었기에, 나는 대놓고 나 있는 가슴의 구멍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지언정 그녀가 내 심장을 강탈해 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못했다.
그것 자체가 함정이었다는 것도 모르고.
“우스운 일이야. 가슴에 머리통만 한 구멍이 나 있는 것도 모자라서, 심장이 없는데도 멀쩡한 존재라니. 제아무리 마족이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개연성]이 요동칩니다!」
이번에는 그따위 도움은 필요 없다.
지금 내가 하려는 것은 어디까지나 합당한 [공략]이었으니까.
“나는 이곳에서 [로그아웃]하겠어. 하이디.”
하이디의 눈이 조금씩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 어떻게 그걸……?”
“네가 나타났던 장소를 생각하면 이제야 떠올렸다는 게 우스울 정도지.”
그녀가 나타난 곳은 다름 아닌 ‘현실과 공상의 악마’가 있던 장소였다. 아마 하이디는 그곳에서 소멸한 ‘현실과 공상의 악마’가 남긴 파편을 이용했을 것이다.
이곳, ‘하얀 방’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단지 그것뿐이었다면 나는 끝까지 진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하이디가 만들어 낸 ‘하얀 방’은 그만큼 치밀했으니까.
그녀가 허점을 보인 것은 자신의 [설정]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을 때였다. 그것은 그녀가 어딘가 [개연성]에 어긋나는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징조였고, 그것을 토대로 나는 마침내 이 [감금] 에피소드를 클리어할 열쇠를 찾아낼 수 있었다.
「[감금] 에피소드를 클리어하였습니다!」
「명석한 추리력을 선보였습니다! 등장인물, ‘아인즈 반’의 [비중]이 증가합니다!」
「현재 비중: 18.4%」
「곧 [메인 시나리오]로 복귀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나는 이곳에서 [감금] 에피소드뿐만 아니라, 하이디에 관한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만 했다.
“아, 아아…….”
그녀는 지금 떨고 있었다. 내가 다시 한번 자신을 버리고 갈까 봐.
하이디의 몸이 점차 무너져 내렸다. 그녀가 억지로 바른 립스틱도, 쓰고 있던 가면도 벗겨져 내렸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그저 한 명의 가녀린 소녀였다.
“하이디.”
그와 함께, 그녀의 몸이 점차 흐려지기 시작했다.
「[개연성]이 거칠게 요동칩니다!」
「[설정 충돌]이 발생합니다!」
“나는…… 나는 뭐야? 노예? 마족? 아니면…… 복수자? 나는 대체 뭐야?”
그녀는 지금 대가를 치르려 하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마저도 걸고서, 악마-작가와 거래한 대가를.
그러나 내가 그것을 두고 볼 리가 없었다.
“하이디.”
“나는…… 나는 대체…….”
“하이디, 내 말 들어.”
“바, 반? 반…… 제발 떠나지 마. 사라지고 싶지 않아. 잊혀지고 싶지 않아…….”
내가 흐릿하게 변해 버린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 와중에 당황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 반?”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간단했다.
있을 자리가 없다면, 있을 곳을 만들어 주면 된다.
내가 그녀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사랑한다. 씨발 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