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화 Chapter 33: 지옥에 대하여 (1)
“개자식아아아!”
디오가 마지막으로 내지른 비명이 메아리처럼 울리더니 점차 잦아들었다.
「다수의 독자가 어느덧 익숙해진 당신의 배신에 주목합니다!」
「즐겜러를 자처하는 한 독자가 당신의 행동에 유쾌함을 표합니다!」
「[주인공]을 지지하는 일부 독자가 당신의 배신에 고구마를 호소합니다!」
「당신의 거침없음에 사이다를 느낀 일부 독자가 당신에게 후원금을 전달합니다!」
「현재 적립된 정산금: 315,500G」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불로소득도 생겼다.
“하, 하하하…….”
그와 함께 기묘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웃음의 주인은 다름 아닌 게이트를 직접 열었던 페드로였다.
“아하하하! 이것 보라지. 천벌 받을 용사 녀석, 꼴 좋다. 와하하하!”
그러나 그의 행복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좀 닥쳐.”
“억!”
시끄럽기 짝이 없던 페드로를 손날치기 한 번에 침묵시킨 이가 발밑에 밟히는 페드로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는 듯이 나를 향해서 곧장 다가왔다.
“……괜찮은 거냐?”
무엇이 괜찮다는 걸까.
나? 아니면 아직도 내 허리에 끼인 채로 정신을 잃고 있는 하이디? 그것도 아니면…… 내가 방금 발로 차 버린 주인공?
참으로 모호한 질문이었다. 그래서 나 역시도 모호하게 대답해 주었다.
“보시다시피.”
“망할 애송이.”
베른은 그렇게 말하며 사납게 웃어 보였다. 아마 그 나름대로 반가움의 표시일 터였다.
“어디서 뭘 하고 왔는지는 굳이 안 물어도 되겠군.”
베른의 시선이 살며시 내 옆구리에 있는 하이디를 훑었다. 그의 눈이 기묘한 반가움으로 물들었다.
……이 아저씨 봐라, 나 볼 때는 저런 눈 아니었는데.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죽은 거 아니에요.”
“누가 뭐래? 하지만 너무 성급했다. 아무리 그래도 디오 녀석을 어딘지도 모를 곳에 보내 버리면…….”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굳이 뒷부분까지 들어볼 필요도 없었기에, 내가 그의 말을 잘랐다.
“상관없어요. 어차피 저희도 곧 따라갈 테니.”
“……뭐?”
베른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내 기행에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졌을 그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충격이었던 모양이었다.
“따라갈 거라고? 그러면 왜 그런 짓을 한 거냐?”
“그냥 엉덩이 좀 걷어차 주고 싶더라고요.”
반 정도는 진심이었다.
나머지 반은 그 망할 고구마 덩어리가 내가 시키는 대로 할 리가 없다는 일종의 믿음이었고.
말하자면 나름대로의 강제력 행사인 셈이었다.
“……하긴.”
뒷말은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베른은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게이트’ 쪽을 바라보았다.
“저 너머에 뭐가 있지?”
“지옥이요.”
“……진심이냐?”
“반 정도는요.”
‘그곳’은 지옥이기도 하고, 또 아니기도 하다.
모순적인 말이었지만 사실이 그런 것이 어쩌겠는가.
현실의 부조리함과 끔찍함만을 모아 놓고 마치 한쪽 면만을 비춘 거울 속처럼 일방적인 시선과 극단적인 편견이 만들어 낸 곳.
우습게도, 그렇기에 더욱 무서울 만큼 현실을 닮아 있는 장소.
그곳이 바로 ‘불지옥 반도’였다.
그리고 나는 바로 그런 곳에 디오를 던져넣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주인공]의 시선에 의해서 완전히 각인된 세계는, 제아무리 [개연성]이 억지를 써도 고작 연결을 끊는 정도로 그 [설정]을 없애지 못한다.
즉, 나는 [주인공]을 직접 그 지옥에 처박아 넣음으로써 내 [설정]에 대한 무결성을 보장받은 것이다.
「[강제 복원력]이 발동 중입니다.」
「[메인 시나리오]가 수정 중입니다.」
예상했던 대로 [메인 시나리오]는 진행을 멈췄다.
아니, 멈출 수밖에 없었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제아무리 [메인 시나리오]가 중요하다고 한들, [주인공]을 그곳에 처박아 둔 채로 두 세계 간의 연결을 끊어 내라는 말 같지도 않은 [시나리오]는 진행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지금 상황은 내가 다분히 의도적으로 일으킨 일시적 오류인 셈이었다.
하지만 오류는 언젠가 수정된다. 나는 이 시간을 이용해야 한다.
물론 그 사정을 모르는 베른의 입장에서 이 상황 자체가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군.”
베른은 그렇게 말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이제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게이트를 향했다.
“어찌 됐든 간에 저곳으로 가야 한다는 거지?”
“그렇죠.”
“……영 찝찝하긴 하지만,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이유가 있겠지. 디오 녀석도 찾으러 가야 하고.”
게이트 앞에 선 베른이 말했다.
“한 가지만 물어도 되나?”
“하세요.”
“저곳에 도착하고 난 후에는 어떻게 할 거지?”
쉬운 질문이었다.
나는 거침없이 대답해 주었다.
“저는, ‘불지옥 반도’를 없앨 겁니다.”
* * *
눈을 떠 보니, 낯선 천장이었다.
디오는 그 식상한 클리셰의 재림을 실감했다. 가히 위력적인 클리셰였다.
여기는 어디지?
흰 천장에는 그의 의문에 답해 줄 수 있는 그 어떤 정보도 쓰여 있지 않았다.
그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지금 자신의 신체가 자유롭지 않다는 것과 천장에 비친 백색 조명이 무척이나 눈에 익숙하다는 점이었다.
“으…….”
디오는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자유롭지 않다고는 했지만, 그의 육신이 어딘가에 강제적으로 속박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었을 뿐.
“…….”
디오는 두 눈을 의심했다. 살며시 내려다본 자신의 하반신에 감겨 있는 깁스와 어느새 갈아 입혀진 파란 물방울무늬 환자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의 두 눈이 이내 완전히 경악으로 물들었다.
말도 안 돼.
설마…… 돌아온 것인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고향으로?
물론, 디오는 ‘현실과 공상의 악마’를 처치한 후에 돌아갈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는 것은 순전히 그의 선택이었지, 더 이상 강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일어난 일 역시도 그의 선택은 아니었다.
일어나야 한다. 확인해야 한다.
디오는 자신이 이곳으로 오게 된 계기를 떠올렸다.
아인즈 반.
그 망할 녀석이 또 뒤통수를 쳤다.
“……죽인다.”
디오는 아인즈 반에 대한 살심(殺心)을 간신히 씹어 삼키고는 기억을 되새겼다. 혹시나 자신이 ‘게이트’에 빨려 들어오며 실수로라도 [로그아웃]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스템 사용이 제한된 구역입니다.」
“…….”
디오는 저 짧은 알림으로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첫 번째는 자신이 아직 [로그아웃]을 하지 않았다는 점과 적어도 이곳은 자신이 살고 있었던 ‘현실’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시스템’ 알림이 보일 리가 없었으니까.
그와 함께 디오에게 또 다른 의문이 생겨났다.
‘그렇다면…… 여기는 어디지?’
이곳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여기는 어디인가?
도대체 어디이길래, 자신이 알고 있는 ‘현실’ 속 병실과 똑같은 장소가 존재하는 것인가?
설마…….
디오의 머릿속에 한 가지 단어가 떠올랐다.
‘불지옥 반도.’
합당한 추론이었다.
아니, 그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내 참…… 믿겨지니? 여권도 없이 게이트를 통과하려 했다니까?”
“와우, 미친 거 아니야?”
갑작스럽게 병실 문 바깥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디오는 숨을 죽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였다.
“용케도 목숨이 붙어 있더라니까. 뿔도 아직 없는 걸 보니까 미성년자인 것 같던데…… 미성년자가 밀입국이라니, 진짜 부모는 뭐 하는 마족들인지…….”
“그러면 신원조회는 아직도야?”
“응. 그래도 일단은 밀입국자니, 감찰국에서 곧 온다고 했으니까 기다리면 될 것 같아.”
“감찰국에 연락했어?”
“숨겨 줄 수는 없잖아? 스파이로 덤터기라도 쓰면 어떻게 해?”
“하긴…….”
말소리는 점차 멀어졌다. 아무래도 디오가 있던 병실을 지나쳐간 모양이었다.
이상한 대화였다. 그 내용도, 상황도.
그러나 디오가 주목한 점은 다른 곳에 있었다.
‘……마족?’
대화의 맥락상 그냥 비유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왠지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근거는 없었다. 그냥 느낌이었다.
그와 함께 디오의 머릿속에서 조금 전의 대화가 퍼즐처럼 떠돌아다녔다.
‘밀입국자? 감찰국?’
평범한 사람이라면 몇 번 들어볼 기회가 없는 단어들이었다. 그렇기에 디오는 그 단어들이 가리키는 대상이 왠지 자신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고 거의 확신했다.
그리고 그 확신은 이내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한 답을 내렸다.
도망가야 한다.
자신이 정확히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만큼은 거의 확실했다.
“끄윽!”
그러나 그의 육체는 그의 그러한 믿음에 대해서 배신했다. 그의 양쪽 다리에 감겨 있는 깁스는 결코 그의 자유를 구속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를 보호하고, 치료하기 위한 용도.
그는 지금 육체라는 감옥에 갇혔다.
‘어떻게 하지?’
모르긴 몰라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만은 확실했다. 이대로 이곳에 편히 누워서 몸이 회복되길 기다릴 수는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때였다.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디오는 저도 모르게 누워서 잠이 든 척을 했다.
또각-.
또각-.
발소리는 점차 가까워졌다. 디오는 마른침을 삼키며 발소리가 멀어지기를 조용히 기도했다. 그러나 발소리는 디오가 누워 있는 침대 앞에서 멈췄다.
“일어나. 안 자는 거 다 아니까.”
움찔.
나긋하게 들려온 그 목소리에 디오는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청아하게 울려 퍼진 그 목소리는 이미 그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어머, 그냥 해 본 소린데 진짜 일어나네.”
목소리의 인영은 그렇게 싱긋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 인영을 바라본 디오의 눈동자 속에서 정체 모를 감정이 흘렀다.
이미 알고 있는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이질감.
디오의 시선에 의심과 불길함이 스쳐 지나갔다.
“너는…… 설마…….”
그러나 인영은 디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일방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을 뿐.
“마셔. 바로 다 나을 거야.”
디오는 눈앞에서 찰랑이는 약병을 바라보았다.
“너…… 누구지?”
“마시면 대답해 줄게.”
너무나도 뻔뻔한 그 대답에 디오는 아무런 망설임도 그것을 단번에 비워냈다.
그와 함께 산산이 조각나 있던 그의 다리가 다시금 생명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는 효과였다.
마치 기적처럼 두 다리로 선 디오를 바라보며 인영이 씨익 웃었다.
“힘들게 훔친 보람이 있네.”
“이제 말해라. 너…… 누구야.”
디오의 눈동자가 거칠게 떨렸다. 눈앞에 있는 얼굴은 이미 그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오는 굳이 그 정체에 대해서 확인받고자 했다.
그녀의 말투가,
그 미소가,
무척이나 익숙하면서도 더없이 멀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미 알잖아?”
그녀가 웃었다.
그 말은 비수가 되어 디오의 가슴을 후벼팠다.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믿을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디오가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키리엘.”
그러나 그것은 육신의 이름일 뿐이다. 그녀를 가리키는 호칭은 따로 있었다.
디오는 마치 씹어 삼키듯이 그 이름을 말했다.
“……아니, 마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