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차 이후의 소설 속-146화 (146/164)

◈ 146화 Chapter 33: 지옥에 대하여 (4)

그리고 폭정이 시작됐다.

아니, 시작했다.

「[절대 권력] 클리셰가 발동합니다!」

「‘불지옥 반도’의 군주가 되셨습니다!」

「‘불지옥 반도’ 내 모든 자국민에 대한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부여받습니다!」

불지옥 반도 내의 모든 생사여탈권의 소유.

말 그대로 절대 권력이다.

그리고 이러한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불가능할 것 같은 폭정도 얼마든지 가능하게 만든다.

“오늘부터 세율을 200% 올린다.”

“……예?”

“까라면 까.”

“예, 옙!”

「다수의 독자가 악독하기 짝이 없는 당신의 국가 운영 방식에 ‘불지옥 반도’의 멸망을 예상합니다!」

「아나키스트를 자처하는 한 독자가 ‘혁명’과 ‘무정부’를 외칩니다!」

「사회지배층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어차피 대중은 개돼지라며 당신의 폭정을 지지합니다!」

그리고 그 효과는 무척이나 빨랐다.

“국민들의 불만이 보통이 아닙니다!”

“청원나라 홈페이지도 마비됐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러라고 하는 짓거리인데.

“다 죽여.”

“……예?”

“앞으로 예? 하는 거 금지다.”

“……잘 못 들었습니다?”

“너부터 죽여줄까?”

“당장 시행하겠습니다.”

「당신의 행보를 지켜봐 온 한 독자가 목적을 알 수 없는 당신의 행동에 주목합니다!」

내가 굳이 귀찮게 이곳까지 와서 이런 짓거리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강력한 작용은 늘 강력한 반작용을 부른다.

그리고 그것은 이곳, ‘불지옥 반도’에서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

「[폭군] 클리셰가 발동합니다!」

「[폭군] 클리셰 효과로, 당신에 대한 자국민의 반발심이 [200%] 증가합니다!」

「[폭군] 클리셰 효과로, [반란] 클리셰가 요동칩니다!」

‘드디어인가.’

[반란] 클리셰.

‘불지옥 반도’ 내에서 모든 자국민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소유한 나에게 대적할 수 있는 존재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도 [반란] 클리셰가 일어난다?

그 이야기는 즉, ‘불지옥 반도’의 자국민이 아닌 외부의 인물이 개입함을 의미했다.

예를 들면, 지금도 어디선가 찔찔대고 있을 망할 놈의 [주인공]이라던가.

「[반란] 클리셰가 거칠게 요동칩니다!」

“박 실장.”

“……예.”

“내가 예? 하지 말랬지?”

“그, 그 예가 그 예가 아니라…….”

“농담이야.”

내가 새파랗게 질린 박 실장에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외출할 준비해.”

이제, 그 찌질이를 만나러 갈 시간이다.

* * *

“웃기지 마.”

디오는 주먹을 꽉 쥐고서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꽉 쥐어진 주먹 사이로 핏물이 배어 나왔다.

“너……!”

같지만 다른 얼굴.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

그러나 디오는 그런 그녀를 향해서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했던 말은 그 역시도 느끼고 있던 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결코, 정상적인 공간이 아님을.

그리고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이 바로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너무 걱정하지 마.”

마치 위로라도 하는 듯한 말투였다.

“나는 네 편이니까.”

“……뭐?”

디오가 어이없다는 듯이 되묻자, 그녀의 표정이 이내 옛날에 한번 본 적 있었던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변했다.

“예전에 말했었잖아? 나는 네 해피엔딩을 바란다고. 그런데 지금 이 꼴이 뭐야? 칠칠치 못하게 ‘지옥’에나 끌려오고.”

“…….”

마치 큰누나 같은 잔소리였다.

“그리고 내가 나타난 게 그렇게 불만이야? 아무리 그래도 ‘지옥’같이 생각한다는 건 인간적으로 좀 너무하지 않아? 다 죽어 가는 거 주워다가 입혀 주고 먹여 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네?”

속사포 같은 갈굼에 디오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이미 알고 있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막상 입을 여니 좀 깨는 성격이긴 했다.

“어쨌거나, 네가 이곳에 왔다는 이야기는 결국 아인즈 반에게 당했다는 이야기지?”

“……보고 있었나?”

“설마. 이 여자 안에서 완전히 잠들어 있었어. 사실상 죽은 거나 다름없었지. 뭐, 그 덕에 ‘이곳’에서 나가는 방법에 대한 가정 중 하나가 글러 먹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이곳에서 나가는 방법? 그게 무슨 말이지?”

“신경 쓰지 마. 혼잣말이니까.”

마왕은 그렇게 싱긋 웃어 보이고는 살며시 시선을 옮겼다.

“어쨌거나 우리 용사님은 잠깐 시선을 떼니까 또 머저리처럼 당하고 다니네?”

“당하긴 누가……!”

“누구긴 누구야.”

그녀의 눈이 빙긋 웃으며 디오를 빤히 응시했다. 명백한 조롱이었으나, 디오는 마땅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듯이 입술을 닫았다.

“……망할 여자.”

“됐고, 일단 그렇다면 너는 아인즈 반의 목적이 뭔지 모른다는 말이지?”

“……그래. 그 망할 자식이 나를 이곳에 처박았다.”

“그렇단 말이지…….”

마왕의 눈이 흥미롭다는 듯이 물들었다. 디오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또 익숙하게 느껴졌다.

디오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키리엘은 어떻게 된 거지?”

그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살짝 불편한 기색이었다.

“말했잖아. 걱정하지 말라고. 이곳을 빠져나가게 되면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올 거야. 애초에 내가 표면으로 나타난 원인 자체가 비정상적이었으니까.”

“그 말은, 너는 다시 사라진다는 이야기인가?”

어딘가 딱딱하게 굳어 있는 디오의 말투에 불편하기 짝이 없었던 그녀의 기색이 이내 장난기로 바뀌었다.

“왜, 막상 사라진다니까 아쉬워?”

“……누가 너 따위를. 빨리 키리엘이나 돌려내라.”

“귀엽기는. 알았어요, 용사님.”

이번에도 마치 큰누나가 막내 남동생을 어르는 말투였다. 디오는 무어라고 한마디 쏘아 주려다가, 이내 그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지고 들어가는 것 같았기에 그만두었다.

“말투를 보니 아인즈 반의 목적에 대해서 짐작 가는 것이 있는 거 같은데?”

“있긴 있지.”

여유롭기 짝이 없는 그녀의 말투에 디오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뭐지?”

“그 전에, 일단 이곳에 대해서 이해했어?”

“……대충은 이해했다. 이곳이 ‘지옥’이라는 것도, 마치 불합리와 거울 속 이면만을 가져다 놓은 것 같은 비정상적인 장소라는 것도.”

“훌륭해. 그래도 아주 머저리는 아닌 모양이야. 이 누나는 안심했단다.”

어느새 다가와서 슬쩍 디오의 머리칼을 쓰다듬는 그녀의 손길에 디오가 움찔하며 소리 질렀다.

“죽고 싶나?”

“그럴 수 있으면 해 보던가.”

“……망할 여자.”

디오는 결국 말싸움으로는 그녀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다. 그녀가 잡고 있는 인질은 자그마치 자기 자신이었다. 애초에 그런 상대에게 가할 수 있는 협박이나 위협은 없었다.

“그런데 그거 알아? 이곳은 네 생각보다도 훨씬 더 불안정한 곳이라는 거.”

“그게 무슨 말이지?”

“저길 봐.”

디오의 시선이 그녀의 손가락 끝을 따라서 이동했다. 그 끝이 향한 곳은 분수대가 있는 거리 한복판이었다.

물안개가 흩날리고, 그 안에서 머리에 뿔을 단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여전히 화려하기 짝이 없는 모습.

그 화려함이 조금 과하긴 했지만, 그녀가 말한 불안정함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저게 어쨌다는…….”

디오는 하던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럽게 분수대에 있던 ‘사람’들의 머리가 하나둘씩 터져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와! 대박!”

“방금 봤어? 빨리 사진 찍어서 SNS에 올려야지!”

“야, 개쩖! 나 방금 머리 터지는 거 봄!”

바로 옆에서 조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친구의 머리가 터져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슬퍼하거나 놀라는 이 하나 없었다.

그들은 그저 그 사태 자체를 즐기는 듯했다.

“야, 들어보니까 얘네들 청원나라에서 독재 반대 서명했던 애들이라던데?”

“‘그분’에게 대항했단 말이야? 죽어도 싸네.”

“아싸! 얘네 덕분에 팔로워 5만 넘길 수 있을 것 같아! 조아요~”

광기?

아니, 이 광경은 고작 그런 단순한 표현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애초에 상식 자체가 뒤집힌 세상.

그러나 그 뒤집힌 상식을 가지고 있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면모가 있기도 한 세상.

“……미쳤군.”

디오는 방금 자신이 본 것에 대해서 말로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그 광경은 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이제 알겠어? 이곳이 어떤 곳인지.”

그 광기의 현장을 설명하는 어조치고는 덤덤하기 그지없었다. 디오는 키리엘의 껍데기를 쓰고 있는 그 ‘마왕’이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알아내고 싶었으나, 그 바람은 요원했다.

“……그래.”

“그렇다면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대충 된 거네. 일단, 내가 예상한 바는 이래.”

그녀가 계속해서 말했다.

“아인즈 반은, 이 ‘불지옥 반도’를 없애고 싶어 해. 그것도 다름 아닌 너의 손으로.”

“……없애고 싶어 한다고? 내 손을 빌려서? 그것도 자신의 고향을?”

그 말에 마왕이 웃었다.

“고향? 아……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겠네. 하지만 아인즈 반 본인은 그렇게 생각 안 할걸?”

“그게 무슨 말이지?”

“뭐라 설명해야 할까…… 너, 이곳에 오기 전까지의 목적이 뭐였는지는 기억하지?”

“……‘하인즈의 유산’을 파괴해서 이곳과의 연결을 끊어 내는 것이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그런데 그 일이 사실은 아주 중요한 거거든. 아인즈 반에게는 치명적인 일이기도 하고.”

“……잘 이해는 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치지.”

“그래, 그래. 그런 자세 아주 좋아. 어차피 말해 봤자 못 알아먹을 테니까.”

명백한 무시였으나,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디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래서 아인즈 반이 너를 이곳으로 보낸 거야. 갑작스럽게 이곳과의 연결이 끊어져 버리면, 자신의 존재가 위협받게 되니까. 하지만 이제 네가 직접 두 눈으로 이곳이 어떤 곳인지를 확인했으니 그에 대한 위험성은 사라졌다고 볼 수 있지. 그래서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거야. 말하자면, 이제 위험부담만 있을 뿐인 쓸모없는 세상을 부수겠다는 거지.”

디오의 눈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그녀의 말에서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무엇인가를 직접 확인하는 일이 중요한 건가? 지금 네가 하는 말들을 종합해 보면 마치 그런 식으로 들리는데.”

“중요하지. 아주 많이.”

그녀의 말에 디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치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도 된다는 듯한 말이군.”

별생각 없이 뱉은 말이었으나, 디오는 방금 자신이 내뱉은 말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나르시스트나 중2병이라고 오해해도 변명할 건더기가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들려온 마왕의 대답은 긍정이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야.”

“……뭐?”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디오를 바라보며 마왕의 입술이 살며시 달싹였다.

말할까?

힌트라면 이미 차고 넘치도록 주었다. 그런데도 못 알아듣는다는 사실은, 무엇인가에 의해서 이미 통제되어 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덧 옛날 일.

혹시 지금이라면 알아들을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일개 소설 속 [주인공]이며, 아인즈 반은 그 소설 속 자체를 파괴하려 하는 그 어떤 [악]보다도 거대한 [악] 그 자체라고.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쩌면, 마침내 ‘진짜’ 기회가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이 지긋지긋한 소설의 막을 내릴 기회가.

“그러니까…….”

그러나 그녀는 말을 채 끝 맞추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울린 메시지 때문이었다.

「[메인 시나리오]가 갱신됩니다!」

「‘불지옥 반도’를 파괴하시오.」

마왕이 디오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자.”

“어디로?”

“이곳에서 도망치자.”

“……뭐?”

그리고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망할 놈이 원하는 대로 해 줄 수는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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