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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 이후의 소설 속-148화 (148/164)

◈ 148화 Chapter 33: 지옥에 대하여 (6)

반란군의 아지트로 향하는 길은 녹슨 맨홀 뚜껑이 입구인 하수구와 연결되어 있었다.

대체 무엇이 썩고 있는지도 모를 온갖 썩은 내. 그와 함께 오수 위에 떠다니는 수많은 오물과 정체 모를 덩어리들. 그 풍경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디오조차도 표정을 찌푸리며 코를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뭐 하는 자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곳까지 숨어들 정도라면 상황이 그렇게 좋지는 않은 모양이지?”

디오의 말에 앞장서던 사내는 그저 웃었다.

“그렇지요. 무엇보다도, ‘불지옥 반도’의 군주에게는 자국민에 대한 ‘생사여탈권’이 있으니까요. 함부로 눈에 띄었다가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습니다.”

“생사여탈권?”

“그에 대한 설명은 도착해서 들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그 ‘생사여탈권’이 바로 우리가 디오 님을 모시려는 이유라는 것만 말씀해 드리죠.”

남자의 말대로라면, ‘불지옥 반도’ 내에 있는 자국민은 군주가 가진 ‘생사여탈권’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디오는 아니었다. 그는 ‘불지옥 반도’의 국민은커녕 밀입국한 불법 체류자에 가까웠다. 아마 ‘반란군’이 디오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일 터였다.

“……대충 알겠군.”

“네, 뭐. 그런 셈이죠.”

디오가 수긍하자 남자가 대답하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약 한 시간 정도를 걷자, 앞서가던 남자가 말했다.

“거의 다 왔습니다.”

“생각보다 가까운데?”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저들도 우리의 본거지가 이런 곳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르겠죠. 이 바로 위에 있는 것이 바로 ‘레드 하우스’거든요.”

남자의 말에 디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드 하우스. 이름만 들은 것뿐이지만, 무엇을 본뜬 장소인지는 굳이 자세한 설명을 듣지 않아도 대충 짐작이 됐다.

‘……이곳은 대체 뭐냐. 아인즈 반.’

디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마침내 멈춰 선 남자가 아무것도 없는 하수구 벽면을 쓰다듬자 이내 그 사이에서 은밀하게 숨겨진 돌문이 나타났다. 남자가 그 옆에 함께 나타난 패드에 지문과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석문이 소음 하나 없이 아주 부드럽게 열렸다.

“들어오시죠.”

석문 바로 안쪽에는 본격적으로 내부로 들어서기 전에 별도의 공기정화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끔찍한 하수구의 악취와 아지트를 구분하려는 의도인 듯했다.

쉬익-.

소독약 같은 냄새와 함께 정화 장치에서 뿜어져 나온 액체가 남자와 디오를 한번 씻겨냈다. 그 모든 과정이 끝나자, 마침내 굳건하게 닫혀 있던 이중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위잉-.

그리고 드러난 것은 하수구 안에 있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최첨단 시설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공간을 용케도 들키지 않게 만들어 냈는지 신기했으나, 어차피 이 세계 자체가 이상한 것도 사실이었기에 디오는 굳이 그 사실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남자가 앞장서며 말했다.

“따라오시죠. 대장님께서 안쪽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대장님?”

“지금 저희를 이끌고 있는 리더라고 볼 수 있죠. 자, 이쪽으로.”

남자의 안내를 따라서 아지트 내부로 들어서자 적지 않은 마족들의 시선이 디오를 향했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은 얼핏 보아도 하나하나가 결코 디오의 아래가 아니었다. 그중 가장 앞에 있던 한 여성 마족이 말했다.

“그자가 인간 용사?”

“맞습니다. 일단 대장님께 데려가야 하니, 이야기는 나중에.”

“칫, 알았어.”

한마디에 여성 마족이 쉽게 포기한 것을 보니, 아무래도 ‘반란군’ 내에서 남자의 지위는 상당한 듯했다.

하긴, 만약 이 정도의 힘을 지닌 마족이 고작 반란군의 말단이었다면 그건 그것대로 끔찍한 일일 터였다.

“이곳입니다.”

디오는 남자의 안내에 따라서 아지트 깊숙한 곳에 있는 문 앞에 섰다. 아무래도 이곳이 그가 말한 ‘대장’이 있는 곳인 모양이었다.

“안에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남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디오가 문고리를 잡고는 말했다.

“그 전에, 당신 이름이 뭐지?”

“저희끼리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혹시나 신원이 유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냥 박 아무개라고 불러주십시오.”

“……알겠다.”

“그러면 어서 들어가시지요.”

남자의 재촉에 디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고리를 두드렸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박 아무개가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었다.

“저는 이만.”

박 아무개의 눈짓에 따라서 디오는 방 안쪽으로 발걸음을 내밀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인 것은 예상외로 화려한 방이었다. 빼곡하게 늘어선 각종 그림과 공예품들은 흡사 예술가의 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대장’이라는 자는 의자를 뒤로 돌린 채로 있었다. 손님을 맞이하는 태도치고는 영 무례한 행동이었으나 디오는 그런 예법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말했다.

“당신인가? 나를 찾은 게.”

“맞아.”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

디오는 그 목소리를 어디서 들어보았나 싶어서 기억을 되새겼으나 떠오르는 것은 불쾌한 기억뿐이었다.

“왜지?”

“이미 대충은 짐작하고 있을 텐데.”

재미있는 말이었다.

디오를 이곳으로 데려온 ‘박 아무개’는 디오에게 자신들에 대해서 말해 주지 않았다. 디오가 알 수 있었던 것은 그저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그들이 이곳에 숨어 지낸다는 사실뿐.

그런데 ‘대장’은 지금 디오가 이곳이 반란군의 아지트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재미있군.”

디오는 가볍게 웃었다.

그가 디오를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그가 디오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말한 디오의 짐작대로라면, 저들은 디오를 이용하기 위해서 이곳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뻔히 알고 있는 디오가 아무런 대가도 없이 순순히 이용당해 줄 리가 만무했다.

“나에게 무엇을 바라지?”

“‘왕’을 끌어내리는 것.”

반란군다운 목적이었다. 납득하지 못할 바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디오는 더욱 의심했다.

“어떻게?”

디오의 질문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대장’이 덤덤하게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는 ‘왕’에게 거역할 수 없다. 그는 우리의 ‘생사여탈권’을 지니고 있고, ‘불지옥 반도’의 국민인 이상 그것을 피할 수 없지.”

“그래서 이렇게 쥐새끼처럼 숨어 있는 것이고?”

“그래, 맞다.”

“그렇다면 더욱더 불가능하지 않나? 내가 비록 그 ‘생사여탈권’에는 해당되지 않더라도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 말은 사실이었다. 인간계 내에서야 용사와 마왕의 힘을 모두 소유한 디오는 손꼽히는 강자가 맞았으나, 이곳은 ‘지옥’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디오 정도의 강자뿐만 아니라 그를 뛰어넘는 강자들마저도 이곳에는 발에 차일 정도로 있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염려할 것 없다. 우리에게는 ‘비장의 한 수’가 있으니까.”

“그게 뭐지?”

“그렇게 아무렇게나 나불거리고 다닌다면 ‘비장의 한 수가’ 될 수 없겠지.”

“지금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 얼굴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 이의 말을 어떻게?”

디오의 말에 남자가 웃었다.

“그것도 그렇네.”

그렇게 말한 남자가 의자를 빙글 돌렸다. 그리고 나타난 얼굴은 디오가 이미 알고 있던 얼굴이었다.

그의 얼굴을 본 디오의 목에 핏대가 섰다.

“아인즈…… 아인즈 반!”

디오의 손에서 단숨에 성검이 뽑혀 나왔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진정하라고. 그저 얼굴만 비슷한 것뿐이니까.”

그의 나긋한 말과 함께 거대한 힘이 디오를 짓눌렀다. 그것은 결코 상처 입고 지친 그가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디오가 거대한 압력에 짓눌려 가며 악을 썼다.

“마,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그 낯짝을 하고서 잘도 지껄이는군.”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나는 녀석의 쌍둥이 동생이니까.”

“……뭐?”

디오가 얼이 빠진 표정을 짓자, 너무나도 익숙한 그 얼굴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내 이름은 하인즈. 하인즈 반. 이곳, ‘불지옥 반도’의 왕자였던 자다.”

* * *

“그러니까…… ‘불지옥 반도’의 왕자 중 하나인 아인즈 반이 오랜 인간계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안 너는 부하들을 이끌고서 이곳으로 숨어들었고, 패륜아를 처단하기 위한 기회를 엿보고 있던 차에 마침 내가 나타났다. 이 말인가?”

“요약에 재능이 있는걸. 맞아.”

미묘하게 익숙한 것이 거슬리는 말투였으나, 디오는 애써 본능적인 충동을 억누르며 말했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네가 아인즈 반이고, 나를 꾀어내기 위해서 함정을 팠다는 가설이 더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는데?”

“상상에도 재능이 있는걸.”

자신을 하인즈라 밝힌 자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익숙하고도 이질적인 분위기. 디오는 그의 정체에 대해서 확신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네 말대로 내가 정말로 ‘아인즈’라면, 이런 귀찮은 과정을 거칠 것도 없이 그냥 너를 죽여 버리면 되지 않나? 그러지 않을 이유가 있어?”

그에 대해서는 디오 역시도 항상 의문으로 가득 차 있던 사안이었다. 여전히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디오는 아인즈 반이 자신을 죽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있다.”

“……오호? 어째서?”

하인즈가 흥미를 표하자, 디오가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나도 모른다.”

“뭐야,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나.”

“어쨌거나 그 이유는 네가 아인즈 반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해.”

“결국, 그 말이 하고 싶은 거였어? 그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 나도 쉽게 믿어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포기하는 건가?”

“그럴 리가. 따라와.”

하인즈가 그렇게 말하며 방 안쪽에 있는 책장을 치우자, 그 뒤로 비밀스러운 문 하나가 드러났다. 그 광경을 보며 디오가 한마디 했다.

“비밀스러운 걸 좋아하는군.”

“이 안에 있는 것에 비하면 다른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지.”

그리고 드러난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둡고 긴 비밀 통로였다.

“천천히 따라와.”

디오는 그의 뒤를 따르며 수많은 생각을 했다.

이자를 믿을 수 있을까?

아니, 그에 대한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다.

더군다나 ‘하인즈’라는 이름은 그 역시도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과연 우연일까?

만약 우연이 아니라면?

이자가 적이라면…… 다른 방법이 있을까?

디오의 머릿속에 잡혀가던 키리엘-마왕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 이 자리에 선 것이었다. 아무리 수상하고, 함정인 것 같아도 그는 이 유혹을 뿌리치는 것이 힘들었다.

“이곳이야.”

디오의 예상과는 달리, 통로 끝으로 향하는 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마법적인 효과로 감각을 흐리게 한 모양이었다.

“명심해. 지금부터 이곳에서 본 모든 것은, 함부로 발설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렇게 말한 하인즈가 디오의 등을 떠밀자, 디오는 마침내 드러난 빛으로 싸인 그 기묘한 공간으로 발을 디뎠다.

“약속대로, 디오를 데려왔다.”

……약속?

“나를 속였나!”

디오가 그렇게 외치며 뒤를 돌아보았으나 이미 하인즈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가 들어왔던 입구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때였다.

쩌저적-.

쩌적-.

그 순간, 디오의 앞에서 기괴한 문자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왜인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었다.

「디오.」

갑작스럽게 들린, 아니 보인 문자들.

“……너는 누구지?”

디오의 물음에 빛무리에 흩어져 있던 문자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내 이름은」

「데우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이 세계의」

「창조주」

「너를 만든」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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