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화 Chapter 33: 지옥에 대하여 (7)
그것은 무척이나 익숙한 느낌이었다.
언제고, 또 언제나 느껴왔던 감각.
“……네가, 나를 만들었다고?”
「그래, 내가 너를 만들었다.」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디오는 그 말을 쉽게 외면하지 못했다. 지금 그가 겪고 있는, 그리고 겪어 왔던 비정상적인 현상들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데우스라는 이름.
그 이름은 디오가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잘도 내 앞에 나타났군.”
데우스 엑스 마키나.
디오는 그 존재가 자신을 창조했다는 이야기는 믿지 않았다. 말 그대로 개소리였으니까. 하지만 다른 말까지 믿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 세계의 신.
제멋대로 이 세상에 던져 놓고 귀환을 미끼로 용사라는 굴레를 씌워서 그의 삶을 유린하고, 한낱 유희 거리로 삼은 존재.
추악하게 발버둥 치며 어떻게든 돌아가겠다고 악을 쓰는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스웠을까.
디오는 저도 모르게 입가에 지어지는 사나운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 너와도 마무리를 지어야 할 일이 있지.”
‘뻔뻔하게도 그 낯짝을 드러내는구나.’
디오는 조용히 성검을 뽑아 들었다. 눈앞의 존재에게 상식적인 힘이 통용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용사와 마왕의 힘은 눈앞에 있는 ‘신’으로부터 주어졌을 테니까.
그렇기에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힘 중 가장 이질적인 힘을 사용했다. 아직 스스로조차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그 힘을.
「[개연성 무시]를 사용하였습니다!」
디오는 검을 휘둘렀다. 성검에 담긴 것은 용사의 힘도, 마왕의 힘도 아니었다. 그저 무엇인가를 근본부터 ‘부정’하는 힘.
쩌적-!
그와 함께, 그의 앞에서 나열되어 있던 문자들이 기괴한 비명을 내질렀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어-」 「리- 석-」 「긴-」
그와 함께 조각나서 흩어진 문자들이 모여들어서 디오를 조롱하자, 디오의 표정이 찌푸려지며 더욱더 강하게 성검을 휘둘렀다.
「[개연성 무시]를 사용하였습니다!」
「[개연성 무시]를 사용하였습니다!」
「[개연성 무시]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런 그를 조롱하듯이 조각난 문자들이 그를 비웃었다.
「하-」 「하-」 「하.」
그의 ‘힘’이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디오가 공격할 때마다 떠오른 문자들은 조각나서 흩어졌다. 하지만 저 문자 너머에 있는 실체에까지 타격을 주지는 못하는 듯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가장 큰 문제는 디오가 저 너머에 있는 존재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경험상 실체가 없는 적을 상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존재에 대한 ‘인식’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디오는 성검을 다잡았다.
‘공략법을 찾는다.’
설령 눈앞에 있는 존재가 정말로 ‘신’이라고 한들, 어떻게든 상대할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의 기억 속에는 이미 그렇게 해 왔던 한 소년에 대한 기억이 있었다.
‘아인즈 반.’
디오는 그 기만과 궤변으로 가득했던 소년에 대한 기억을 잠시 떠올리고는 증오와 함께 떠오른 정체 모를 감정을 느끼고는 고개를 저으며 이내 눈앞의 적에 집중했다.
「[개연성 무시]를 사용하였습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정산금]이 부족하여, [개연성 무시]의 사용이 취소됩니다!」
그 순간, 절도 있게 휘둘러진 그의 검이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예상치 못했던 결과에 하마터면 중심을 잃을 뻔한 디오의 왼손이 바닥을 짚었다.
디오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망할.”
아직 그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모두 다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 ‘힘’이 이제 한계에 달했고, 이제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 정도를 깨달았을 뿐.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챈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제야 대화를 할 생각이 들었나?」
마치 조롱하듯이 떠오른 그 문자열을 보며, 문득 디오에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곳이 정말로 그 ‘지옥’이라면, 지금 이 상황 자체도 결국 자신의 ‘지옥’이 불러온 것인가?
우스운 생각이고, 또 자의식 과잉이었다. 그러나 아예 터무니없는 추론도 아니었다. 만약 이 추론대로라면, 그 잘난 ‘신’조차도 무엇인가에 얽매여 있다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는 지금 ‘데우스’가 내민 대화라는 끈을 살며시 잡았다.
“……대화? 아직도 지껄이고 싶은 게 남았나?”
「많지. 아주 많지.」
다행히도 상대는 입이 아주 근질거리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늘 그랬던 것처럼 제멋대로 지껄이지 그래?”
디오의 말과 함께, 문자들이 꿈틀거리며 마치 웃는 이모티콘 같은 모양새를 취하고는 이내 사라졌다.
「그럴 생각이다.」
* * *
데우스의 이야기는 꽤 길게 이어졌다. 그중 몇 가지 이야기는 상황과 아주 딱 들어맞아서 사실인지 긴가민가했고, 다른 몇 가지는 쉽게 믿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지금……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고?”
「믿고 말고는 네 자유다.」
이야기가 끝나자, 이제는 제 소관이 아니라는 듯한 데우스의 말에 디오는 할 말을 잃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믿고자 하면 전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쉽게 믿을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이미 말했다시피, 아인즈 반에 의해서 내 영향력은 상당히 줄어든 상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되어 있어.」
“……바로 그 점이 이해가 안 된다는 거다. 네가 그렇게 잘난 ‘신’이라면, 지금 네가 하는 말이 얼마나 어처구니없게 들리는지는 잘 알고 있겠지?”
데우스의 말에는 분명히 모순이 있었다. 디오는 바로 그 점을 지적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역시나 똑같은 대답이었다.
「거기까지 설명해 줄 의무는 없다.」
“그래, 그렇게 말하겠지.”
디오는 데우스가 했던 이야기들을 되새겼다. 긴 이야기였으나, 결국 그 이야기의 요점은 간단했다.
만들어진 세계.
데우스는 이곳을 포함한 대륙 전체가 바로 그 만들어진 세계의 일부임을 말하고 있었다.
그래, 마치 어느 이야기 속처럼.
“……좋아, 믿지.”
디오가 씹어 삼키듯이 대답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개운하지 않았다. 아직도 그의 마음속에는 해결하지 못한 온갖 의문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하지만 네 말대로라면 내가 이곳을 빠져나가는 데에도 너는 내게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건 아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너는 할 수 있을 테니까.」
여전히 이상한 말이었다. ‘창조주’는 할 수 없고, 그저 다른 세계에서 왔을 뿐인 일개 ‘용사’는 할 수 있는 일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
「선물이다.」
그와 함께 디오의 앞에 어떤 버튼 하나가 공간을 찢고서 떨어졌다.
그것은 어느 삼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조잡한 컨트롤러였다. 그래, 마치 무언가의 자폭 스위치 같았다.
“……이게 뭐지?”
디오의 물음에 그의 눈앞에 있는 문자열들이 부르르 떨렸다.
「치트키.」
* * *
데우스와의 만남이 끝난 후, 디오는 다시 열린 통로를 통해서 반란군의 아지트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되돌아온 그는 곧장 그를 안내했던 하인즈를 다시 만났다.
“만남은 잘 성사된 모양이지?”
하인즈는 여유롭게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아인즈 반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고상한 취미였으나, 그 역시도 눈속임일 가능성이 있었기에 디오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제법 흥미롭더군.”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만약 눈앞에 있는 자가 정말로 ‘아인즈 반’이라면, ‘데우스’가 그 사실을 몰랐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눈앞에 있는 존재가 ‘아인즈 반’일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애초에 하인즈가 자신을 속이고자 했다면 적당히 외모를 숨기거나 대타를 세웠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마 그럴 필요가 없어서일 가능성일 터였다.
‘……정말로 아인즈 반이 아닌 건가.’
의심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나, 다양한 정황증거와 상황이 그가 아인즈 반이 아님을 말해 주었다. 디오는 결국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는 눈앞의 상대에게 집중했다.
“묻고 싶은 게 있다. ‘그 존재’와는 어떻게 알게 된 거지?”
디오의 물음에 하인즈가 웃었다.
“꽤 오랜 거래 상대라는 것만 말해 두지.”
짧은 말이었으나, 디오는 이내 대마법사 하인즈의 유산에 대해서 떠올리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당히 그럴듯한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런가.”
디오가 고개를 끄덕이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하인즈가 손가락을 까딱하며 말했다.
“뭔가 받아 온 게 있을 텐데?”
마치 전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말투였다. 저렇게까지 확신에 차서 말하니, 디오는 어설프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
“그걸 우리에게 넘겨.”
“그게 뭔지 알고?”
“그거야, 너도 모를 텐데?”
하인즈의 말에 디오의 표정이 저도 모르게 찌푸려졌다.
“나를 이용한 건가?”
“글쎄? 나는 아직도 우리가 운명공동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네가 용도조차 모르는 그걸 나에게 넘기면, 나는 그 패륜아를 처단할 수 있게 돼. 그 후에 너는 동료를 되찾아서 이곳을 빠져나가면 되는 거고. 서로 윈윈이잖아?”
하인즈의 말은 빈틈이 없어 보였다. 아니, 지금의 디오에게 있어서는 그 방법 말고는 딱히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디오는 그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왜인지 모르게 느껴지는 꺼림칙함 때문이었다.
“……좋아, 승낙하지. 하지만 그건 이게 무슨 물건인지에 대해서 알려준 후다.”
디오가 슬쩍 데우스에게 받았던 버튼을 꺼내 들어서 보이자, 하인즈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꼭 알아야겠어?”
“말해 주지 않겠다면 제안은 거절하겠다.”
“여기가 어디인지 잊었어? 우리가 강제로 뺏으면 어쩌려고?”
디오가 살며시 손에 쥔 버튼에 힘을 주었다.
“그러면 너희는 잘게 부서진 파편 쪼가리만 가져갈 수 있겠지.”
제법 단호한 디오의 말에 하인즈가 팔을 내저었다.
“워워, 진정해. 내가 졌으니까.”
“그렇다면 말해라. 이게 도대체 무엇인지.”
“그건 자폭 스위치야.”
척 보아도 그렇게 생기긴 해서 혹시나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었지만, 막상 그 정체를 입으로 들으니 이 질문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엇의?”
“불지옥 반도.”
짧은 대답이었다. 그러나 디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자, 이제 그걸 넘겨.”
디오는 망설였다. 몰랐다면 모를까,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상상을 뛰어넘는 물건이었다. 데우스의 말 그대로 ‘치트키’ 같은 물건.
그렇기에 디오는 쉽게 그것을 넘기지 못했다.
“디오.”
망설이는 그의 귓가에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하인즈가 그의 선택을 재촉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계속 재촉하는 것이 어딘가 이상했으나, 이내 그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또 속냐!”
그리고 잠깐 시간이 멈췄다.
…….
“뭐?”
디오는 얼이 빠진 얼굴로 어느새 ‘하인즈’의 손에 들려 있는 컨트롤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그가 누구인지.
“아인즈 바아아아안!”
“잘 받을게.”
그렇게 웃어 보인 아인즈 반의 손이 거침없이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