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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 이후의 소설 속-152화 (152/164)

◈ 152화 Chapter 34: 경계 (3)

제국의 멸망.

베른조차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고 말한 그 거대 사건은 말 그대로 쥐도 새도 모르게 일어났다.

그리고 바로 지금 [메인 시나리오]는 우리에게 그 사건에 대해서 알아내라고 말하고 있었다. 우연치고는 과하다 못해 수상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뭔가 냄새가 나는데.’

말 그대로 개수작의 냄새가.

구린내도 이 정도로 진동하면 의심이 들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였다.

“……제국의 멸망이라고?”

이제야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린 디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일행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설마 이곳이…….”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키리엘이었다. 그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그제야 경악하며 조심스럽게 두 눈을 감았다.

“……맙소사.”

확실히, 주위의 풍경은 황량했다.

그 찬란했던 제국을 기억하는 이라면 두 눈을 질끈 감고 싶어질 만큼.

“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내가 무슨 척척박사도 아니고, 무슨 일만 생기면 나한테 묻기는.

“나도 몰라.”

내 말이 영 신용이 가지 않았는지, 루가 마치 가자미처럼 미간을 좁히며 다시 물었다.

“정말 몰라?”

「탐정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추리란 응당 사소한 의심부터 시작한다며 ‘루’의 의심을 응원합니다!」

「당신의 행보를 지켜봐 온 한 독자가 당신의 말을 한번 걸러 듣는 ‘루’의 현명함에 과연 수천 년을 살아온 드래곤이라며 격찬합니다!」

……어째 나란 놈의 신용도가 추락해 가는 게 느껴졌지만, 이것도 업보라면 업보였으니 어쩔 수 없었다.

“모른다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짐작 가는 거라면 대충 있었지만 말이다.

“모른단 말이지…….”

루는 여전히 의심했지만, 어차피 내가 그 사실을 입 밖으로 내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때 하이디가 끼어들었다.

“저…… 그걸 모르니까 지금부터 알아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야, 너…….”

나이스 어시스트.

하이디까지 나서자 그제야 루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알았어. 안 물을게.”

아무래도 그녀는 끝까지 내가 무언가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뭐,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렸지만.

“그 말이 맞다.”

그때 나선 것은 다름 아닌 베른이었다.

그가 어떤 결단을 내렸는지 알고 있었기에, 한참은 삐친 여자 친구마냥 입을 꾹 다물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회복이 빠른 모양이었다.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다거나.

‘예를 들면, 짐작 가는 게 있다든지.’

아무래도 일행 중에서 유일하게 이곳에 남아 있었던 베른인 만큼, 제국의 멸망과 관련해서 모종의 단서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루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끼어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저씨는 뭘 알고 있다는 말이야?”

“그건 아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똑바로 해.”

가열되어 가는 분위기에 내가 중재에 나섰다.

“베른에게는 내가 아까 물어보았어. 베른, 아까 했었던 ‘아무 일도 없었다’라는 말이 무슨 뜻이죠?”

“……말 그대로다. 제국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저 사라졌다. 내가 본 것은 그게 전부다.”

“뭐? 그게 말이 돼?”

루가 얼굴을 붉히며 따지듯이 말했으나, 베른이 가볍게 일축했다.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그게 사실이다.”

결국, 아까 했던 말과 같은 말이었다.

정말이지 [개연성] 없는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나만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야? 제국이 사라졌다고! 그 거대한 땅덩어리 안에 있던 모든 것들이 통째로 사라졌는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들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열변을 토하는 루의 모습.

드래곤인 그녀가 제국의 멸망에 저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설정]도 있었지.’

인간을 사랑하는 드래곤.

내가 만들어 낸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있던 [설정]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분명히 그녀는 그런 [설정]을 가지고 있었다.

새삼 떠오른 설정에 쓴웃음을 짓고 있을 때였다.

“잘들 노는군.”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디오였다.

“언제까지 그렇게 말싸움이나 하고 있을 참이지?”

언제 정신을 차린 건지, 디오는 그렇게 말하며 키리엘과 함께 떠날 채비를 한 상태였다.

“네가 무슨 상관이야.”

루가 대답하자, 디오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시간을 조금 더 생산적으로 쓰라는 말이다. 여기서 죽치고 앉아서 말싸움이나 할 것이 아니라.”

루가 눈을 부라렸다.

“지금 싸우자는 거지?”

“아직 너를 죽일 생각은 없다만. 아인즈 반이라면 모를까.”

“이게 진짜……!”

「다수의 독자가 점차 막장으로 치닫는 ‘용사 일행’의 분위기에 주목합니다!」

「일부 독자가 예상치 못했던 ‘디오’와 ‘루’의 물과 기름 케미에 주목합니다!」

「아싸를 자처하는 한 독자가 등장인물, ‘용사 디오’의 인간관계 불능 화법에서 깊은 동질감을 느낍니다!」

그렇게 디오와 루가 서로를 노려보고 있을 때였다.

“저 그런데요…….”

끼어든 이는 다름 아닌 하이디였다.

“왜?”

“아무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 말하는 건데…….”

“답답하게 굴지 말고 빨리 말해.”

루가 짜증 난다는 듯이 말하자, 그제야 하이디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디오와 키리엘이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에드윈이라는 여자, 어디 갔죠?”

“……어?”

그제야 주위를 두리번거린 루가 벙찐 표정을 지었고, 디오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그리고 키리엘은 왠지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오직 하이디만이 눈치챌 수 있었던 사안이었다.

* * *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의외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에드윈이 사라졌다는 일은 일행에게 있어서 그다지 큰 충격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때가 되면 어련히 알아서 찾아오겠지. 아니, 어쩌면 아예 이곳에서 [로그아웃]했을 수도 있겠군. 굳이 시간을 들여서 찾을 필요는 없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게 아니야.”

디오는 그렇게 말하며 발걸음을 돌렸고,

“흠.”

베른은 침묵했으며,

“그딴 여자, 알 게 뭐야.”

루는 애초에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디오! 같이 가!”

그나마 망설이던 키리엘은, 디오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길을 떠나자 그제야 바쁘게 발걸음을 옮겨서 그를 뒤따랐다.

동료까지는 아니더라도, 명색이 일행이 사라졌는데도 참으로 정감 있는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일부 독자가 일행의 실종에도 아무런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용사 일행’의 막장 실태에 경악합니다!」

「아싸를 자처하는 한 독자가 자신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에드윈’에게서 깊은 동질감을 느낍니다!」

상황이 그러했으니, 홀로 에드윈의 존재를 눈치챈 하이디만이 불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반?”

아마 그녀가 에드윈의 빈자리를 눈치챌 수 있었던 것은 그 둘이 가지고 있는 동질감 덕분이었으리라.

그렇다면 나도 선택을 해야만 했다.

이쯤에서 에드윈을 찾아볼 것인지, 아니면 외면할 것인지.

마음 같아서는 그냥 외면하고 싶었으나, 대놓고 그렇게 행동하기에는 마치 아기새마냥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치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하이디의 시선이 마음에 걸렸다.

굳이 말하자면, 청소년기를 방황하던 딸내미를 간신히 제자리로 돌려놓은 아빠의 심정이랄까.

온갖 입바른 소리를 하면서 딸내미를 간신히 설득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입바른 소리에 정면으로 위배 되는 행동을 보이면 그 딸내미가 어디까지 엇나갈지 예측이 되질 않았다.

‘어째 수상하긴 한데…….’

이 타이밍, 이 시점에 에드윈이 사라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간 거 아니야?”

내가 슬쩍 운을 띄우자, 하이디가 어느새 물기로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이건 안 먹힐 듯싶었다.

“알았어. 같이 찾아보자.”

“반!”

꺅 소리를 지르며 나에게 안겨든 하이디의 체온이 느껴졌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체온이었다.

「야설 빌런이 요즘 들어서 초심을 잃었다며, 당신의 게으름을 비난합니다!」

……시끄럽다, 요놈아.

물론, 내가 아무런 계산도 없이 이를 승낙한 것은 아니었다.

에드윈이 사라진 일과 제국의 멸망 사이에는 분명히 모종의 연관 관계가 있을 터였다. 그에 대한 근거는 간단했다.

‘얼핏 보면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건도, 내막을 알고 보면 관계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이 [클리셰]였고,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클리셰]라 한들 그 본질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곳은 여전히 ‘이야기 속’이었고, [개연성]이 있는 한 이야기는 언제나 합리적인 구조를 가지려고 하는 법이었으니까.

「탐정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뛰어난 직감은 탐정의 기본 소양 중 하나라며 당신을 응원합니다!」

……어째 확 짜치는 기분이다.

‘어쨌거나…… 지금 있는 단서들을 가지고 생각해 봐야겠군.’

단서는 총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개연성의 사도]

나는 이미 이곳으로 오기 전에 대기 장소에서 [개연성의 사도] 중 하나인 마왕 ‘므’를 만났었다.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즉, 그녀와의 만남 자체가 이 사건과 [개연성의 사도]가 모종의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말해 주는 셈이었다.

두 번째는 베른의 변화와 증언.

어떤 계기를 맞이한 것인지는 몰라도, 베른은 자신이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가 말하기를 제국의 멸망이 아무런 징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일어났다고 했다. 말 그대로 아무런 [개연성]이 없게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의 [개연성]은 그것을 방치했다.

즉, 제국이 멸망한 원인에는 충분히 멸망할 만한 합당한 이유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사라진 에드윈이었다.

사실, 이 단서는 얼핏 보기에 다른 두 가지 단서와의 연관성이 크게 떨어졌다. 아니, 연관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이상하게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모든 단서를 조합하니 한 가지 확신이 떠올랐다.

‘개연성의 사도가, 베른과 접촉했다.’

만약 그렇다면 베른이 자신이 가진 모순을 눈치챈 게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제국의 멸망과는 무슨 관계지?

‘설마…… 베른이 거짓말을 한 건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만약 개연성의 사도와 베른이 모종의 거래를 통해서 제국의 멸망에 대한 거짓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도 있었다.

비중을 가진 ‘등장인물’ 중에서, 제국에서 일어난 일을 지켜 보고 있었던 것은 오직 베른뿐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무언가 부족해.’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베른의 반응이 마음에 걸렸다.

물론, 그것마저도 연기일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으나 솔직히 말해서 입가에 핏줄기를 흘리는 그 장면까지 연기였다면 차라리 그냥 속아 주고 싶었다.

‘생각하자. [강제 복원력]의, [개연성]의 목적은 무엇이지?’

내가 망가뜨린 세계를 원래대로 되돌리고, 이 소설이 올바른 [결말]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

“어?”

그 순간, 어떤 사실이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개연성의 사도는, 스스로 사라지기를 원한다.

‘잠깐.’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개연성의 사도]의 목적이 무엇인지.

제국이 어째서 아무런 [개연성]도 없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는지.

그리고 사라진 에드윈이 어디에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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