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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 이후의 소설 속-157화 (157/164)

◈ 157화 Chapter 35: 개연성의 사도 (4)

디오 일행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서쪽 마왕의 영토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들이 있었던 제국과 마왕의 영토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를 생각한다면 예상보다도 훨씬 더 빠른 도착이었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군.”

디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말에 키리엘이 끼어들었다.

“원래 어느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글쎄…… 우리 이동속도를 감안하더라도 삼 일 이상은 걸렸겠지.”

키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그러면 이상하긴 하네. 갑자기 땅덩어리가 줄어든 것도 아닐 테고 말이야.”

그녀의 말에 디오는 그저 씁쓸하게 웃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 가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빌어먹게도 친절하군.’

디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깊게 생각할 필요 없어. 아무래도 내가 무언가 착각한 모양이니.”

“……응? 알았어.”

어차피 디오가 이상한 것이 한두 번도 아니었기에 그녀는 더 이상 묻지 않고서 고개를 돌렸다.

“어?”

고개를 돌린 그녀의 시야에 거무튀튀한 형체 하나가 들어왔다.

“저쪽에 뭐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러나 디오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키리엘이 의아함이 느끼며 그가 있던 곳을 향해서 시선을 옮기자, 그곳에 있는 것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시선을 고정한 디오의 모습이었다.

“왜 그래?”

“……설마.”

디오는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고는 그곳을 향해서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자, 잠깐! 디오!”

그 돌발적인 행동에 당황한 키리엘이 디오를 불렀으나, 이미 그의 모습은 저 멀리까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디오!”

키리엘까지 디오를 쫓아서 달려가자,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에드윈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짜증을 부렸다.

“아, 진짜! 저 미친놈이!”

그렇게 에드윈까지 그들의 뒤를 따라가자, 눈 깜짝할 사이에 루와 단둘이 남은 하이디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쟤네는 맨날 이러고 놀아?”

루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러게나 말이다.”

* * *

“……역시, 당신이었군요.”

디오는 눈앞에 선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마음을 붙였던 사람이자, 늘 그리워했던 이.

벌써 수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있는 남자의 모습은 그의 기억 속의 모습과 똑같았다.

마치 그의 시간만 멈추기라도 했던 것처럼.

“스승님.”

디오는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다.

“다행히도 내 얼굴은 안 까먹은 모양이구나.”

기억 속과 똑같은 목소리와 말투.

만약 이것이 누군가의 연출이라면, 디오는 그에게 백 점 만점에 백 점을 주고 싶었다.

그 정도로 이 재현은 완벽했다.

“여기는 어떻게?”

“말 짧은 것도 여전하고.”

“제가 먼저 물었습니다.”

“싸가지 없는 놈. 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더냐?”

디오는 손아귀를 쥐었다.

고작 몇 마디의 대화에 불과했지만, 그 짧은 대화는 눈앞에 있는 남자가 자신의 스승이 맞다는 확신을 주기에는 너무나도 충분했다.

“……이곳은 스승님이 계실 곳이 아닙니다.”

디오는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던 스승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공허한 눈동자.

스승의 눈은 항상 그랬다. 그는 무엇인가 아주 소중한 것을 잃은 것처럼 항상 텅 빈 눈동자로 세상을 주시했다.

“원래라면 그랬겠지.”

“돌아가십시오. 돌아가서 다시는 제 앞에 나타나지 마십시오.”

“마치 내가 네 앞길을 막으러 온 것처럼 여기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라도 있느냐?”

“아닙니까?”

디오의 말에 그의 스승이 웃었다.

“내가 잘 가르쳤구나.”

“항상 모든 일에 존재하는 원인과 결과, 인과를 생각하라고 강조하셨었죠. 지금, 스승님이 저를 찾아올 인과는 없습니다.”

“여전히 싸가지 없는 대답이구나. 그렇다면 오히려 내가 묻고 싶구나. 너는 스승이 제자를 찾아가는 데 특별한 이유라도 필요하다는 거냐?”

“그렇진 않습니다. 스승님께서는 응당 그럴만한 권리를 가지고 계시니까요.”

에단이 여전히 공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 네가 하는 말이 모순이라는 것은 알고 있느냐? 그럴만한 권리는 있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이건 또 무슨 말장난이냐.”

“말장난이 아닙니다. 스승님께서는 그러셔도 되지만, 그러실 수 없습니다.”

“해도 되는 일이지만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말이구나.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냐?”

“그야…….”

디오는 그의 스승을 바라보았다.

처음 이곳에 와서 오갈 데 없었던 그를 받아주고 키워 준 이.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기억에 불과했다. 그는 다시는 그 기억을 마주할 수 없었다.

“스승님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디오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직 미숙했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내던졌던 스승의 모습을.

디오는 직접 그 최후를 보았고 그 때문에 지금 있는 남자의 존재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죽었다라…….”

그의 스승은 그저 웃었다.

“그렇다면 지금 네 눈앞에 있는 나는 무엇이냐? 죽음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한 망령이냐?”

“……그럴 수도 있겠죠.”

“망령일 수도 있다면, 가짜일 수도 있지 않냐? 그렇게 가르친 기억은 없는데, 너는 지금 가장 뻔한 가정을 배제하고 있구나.”

설마 스승이 그 이야기를 직접 꺼낼 줄은 몰랐기에 디오는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가짜 따위가 아닙니다.”

“흥미롭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만약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당신이 가짜라면, 진짜를 뛰어넘는 가짜겠죠. 그렇다면 이미 진짜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나에게 있어서는 꽤 잔인한 말이구나. 말하자면 내 입장은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말이 아니냐?”

스승의 반론에 디오는 저도 모르게 과거에 있었던 스승과의 논쟁을 떠올렸다.

주로 떠오르는 논쟁 주제는 현대인으로서 살아온 디오의 인류애적인 가치관과 죽음의 시대를 살아가는 스승과의 대립이었다.

결과는 항상 디오의 판정패였다.

그는 스승을 이길 수 없었다.

“……스승님의 입장에서는 그렇겠죠. 하지만 지금 저에게 있어서는 스승님이 진짜든지 가짜든지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디오는 저도 모르게 나오는 씁쓸한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그는 알고 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스승이 진짜라는 것을.

“싸가지 없는 놈.”

그의 스승은 그렇게 말하며 무엇이 그렇게 유쾌한지 껄껄 웃었다.

“하지만 미련해.”

어느새 웃음을 멈춘 스승이 말했다.

“너는 나를 정면에서 부정했어야 했다. 디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너는 나를 가짜라고 매도하고, 몰아세운 뒤에 기회를 주지 말고 죽였어야만 했다.”

그의 스승이 검을 뽑아 들었다.

아무 이름도 없는 보잘것없는 검이지만, 스승은 그 검으로 몇 번이나 세상과 자신을 구했다.

몇 번이나.

“디오, 네 적은 누구냐?”

“……스승님께서 지금 제 적이라고 말하고 싶으신 겁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그건 네 대답에 달렸으니까. 다시 한번 묻겠다. 지금 네 적은 누구냐?”

디오는 지금 스승이 어째서 이런 말을 하는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지금 그에게 주어진 정보는 너무나도 적었고, 판단에 힘이 될 그 어떤 도움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는 스스로 선택해야만 했다.

‘……적이라.’

우습게도, 디오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용사의 숙적인 마왕이나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가진 디룽 칸의 얼굴이 아니었다.

첫 번째로 떠올린 것은 어울리지 않게 비열한 눈매를 가진 어느 소년의 얼굴이었고, 두 번째로는 자신을 가지고 농락한 ‘신’의 모습이었다.

‘우습군.’

디오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지금 스승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가 떠올린 모든 대상 속에서, 그의 진정한 적은 존재하지 않았다.

“……죽어서도 저를 가르치시는군요.”

“벌써 시체 취급하는 거냐? 아직 멀쩡하다만. 아, 곧 그렇게 할 예정인 건가?”

무척이나 오랜만에 듣는 스승의 농담에 디오는 웃었다. 그리고는 그에 맞서서 성검을 뽑아 들었다.

“제가 성검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스승님의 덕입니다.”

“아니, 네가 그렇게 선택한 거다. 이 점을 명심해라.”

“감추실 필요 없습니다. 그에 대해서라면 이미 베른에게…….”

“디오.”

그렇게 디오의 말을 자른 스승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여겨서는 안 돼.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돼. 어디까지나 너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고, 너의 존재 또한 오롯이 너의 의지로 인한 것이어야 한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네 존재를, 누군가의 의도나 목적에 의해서 탄생한 것으로 여기지 말라는 얘기다.”

“……이해가 안 됩니다.”

“그렇겠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적어도 이 세계 안에서는.”

“그게 무슨…….”

그때였다.

「[강제 복원력]이 등장인물, ‘스승 에단’의 발언을 주시합니다!」

「[강제 복원력]이 자신의 목적을 잃은 ‘개연성의 사도’에 대한 집행을 시작합니다!」

「등장인물, ‘스승 에단’의 [비중]이 하락합니다!」

「현재 비중: 0.4%」

그와 함께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에단의 몸.

디오는 이와 비슷한 현상을 이미 수차례나 보아 왔었다.

“……스승님?”

“디오, 명심해야 한다. 네가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는 내 아집 따위에 의한 것이 아니다. 아니, 그래서는 안 돼. 적어도 너만큼은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금 스승님께서 사라져 가는 이유도, 지금 그런 말을 하는 이유도.”

“머리로는 이해할 필요가 없어. 아니, 하지 못할 거다.”

“……어째서죠?”

“너는 이 세계의, ……니까.”

“예?”

디오는 스승의 말을 듣지 못했다.

이미 일반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감각을 가진 디오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였다.

“빌어먹을…….”

스승의 침음과 함께, 디오는 이질감을 느끼고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마주했다.

“이 무슨…….”

「[개연성]이 폭발할 듯이 요동칩니다!」

「등장인물, ‘스승 에단’의 [비중]이 삭제됨에 따라, 등장인물, ‘용사 디오’에게 [설정 충돌]이 발생합니다!」

「등장인물, ‘용사 디오’의 [비중]이 하락합니다!」

「현재 비중: 21.3%」

“말도 안 되는……!”

「[주인공] 버프가 주제도 모르고 까부는 [개연성]을 향해서 흉악한 기세를 드러냅니다!」

「[주인공] 버프의 효과로, [비중] 하락이 일정 시간 보류됩니다!」

디오는 그제야 스승이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그의 스승은, 자신과 그의 인연을 없던 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서로가 없더라도 애초에 각자 다른 존재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스승님!”

디오가 다시 스승을 불렀을 때는 이미 스승의 모습은 이제 거의 흩어져서 반대편이 훤히 비쳐 보일 정도였다.

그의 스승이 입술을 비틀었다.

“스승? 누가? 나는 너 같은 제자를 둔 기억이 없다.”

「[개연성]이 등장인물, ‘스승 에단’의 발언에 주목합니다!」

「[개연성]이 요동칩니다!」

디오는 스승의 말에 지그시 어금니를 깨물었다.

“……제가.”

그리고는 피를 토하듯이 내뱉었다.

“제가 착각했나 봅니다.”

「[개연성]이 완성되었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흐릿해진 그의 스승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렇겠지.”

「등장인물, ‘스승 에단’의 [비중]이 삭제됩니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아, 아아…….”

디오는 망연자실하게 남겨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존재조차 하지 않고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그의 스승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스승을 기억했다.

설령 그것이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존재일지라도.

“……스승님.”

그의 스승은 선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을 희생하지 않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승은 그렇게 했다.

아마 그것만이 디오를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여겼을 테니까.

스승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내색하지 않고,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지려는 인간.

디오는 그것을 내심 용사가 되지 못한 열등감 때문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는 용사 따위보다도, 그 어느 용사보다도 더 훌륭한 영웅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훌륭히 수행해 내셨습니다.”

디오는 말했다.

과거에 에단을 꼬셨던 베른이 그랬듯이.

“용사의 조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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