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Chapter 35: 개연성의 사도 (7)
그제야 상황이 파악됐는지 웃음이 멈추지 않던 므의 표정에 어느덧 다급함이 가득 묻어났다.
“……그 입, 닫아.”
“싫은데? 내가 말하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데.”
“마지막 경고야.”
저렇게까지 말하면 당연히 더욱더 엇나가고 싶어지는 게 사람 심리 아니겠는가.
“아, 글쎄 싫다니까 그래.”
「양치기 소년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당신의 삐딱함에 동질감을 느낍니다!」
「청개구리를 자처하는 한 독자가 당신의 삐딱함에 동질감을 느낍니다!」
므의 표정이 싸늘하게 물들었다.
“그렇다면…… 억지로라도 닫아 줄게.”
그와 함께 그녀의 몸이 흐릿한 잔상만을 남긴 채로 사라졌다.
즉, 내가 그녀의 움직임을 놓쳤다는 이야기.
고작 옛 마왕에 불과한 그녀가 무력만으로는 [먼치킨]에 가까운 내 감각을 뛰어넘을 요소는 이곳에서 단 한 가지뿐이었다.
「[파워 인플레] 클리셰가 발동 중입니다!」
「적대 성향을 가진 모든 [등장인물]의 전투력이 [500%] 증가합니다!」
그와 함께 몰아치기 시작한 광풍 속에서 수백 갈래의 검은 기운이 나를 향해서 쏟아졌다.
‘얼씨구야.’
이용해 먹을 수 있는 건 아주 다 이용해 먹는구만.
그렇다면 나도 사양할 필요가 없지.
“들어봐.”
내가 몰아치는 기운들을 쳐내며 살며시 입가를 비쭉이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광풍 속에서 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입, 닫으라고 했어.”
친절하게 일일이 대답해 주기는.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두려워? 그저 말만 몇 마디 하겠다는 건데.”
“시끄러워.”
그녀는 여전히 광풍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았지만, 그 동요는 여실히 드러났다.
크릉, 크르릉-.
그와 함께 마치 굶주린 야수처럼 광풍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어둠 무리들.
아무래도 마왕의 권속인 모양이었다.
“키리엘은 그런 거 못 쓰던데.”
“어설픈 가짜가 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가짜? 재미있네.”
「대다수의 독자가 등장인물, ‘마왕 므’의 발언을 주시합니다!」
「[강제 복원력]이 독자들의 시선을 묵살합니다!」
얼씨구야.
도대체 선을 어디까지 넘어 대려는 건지.
물론 그렇게 막 나가 주면 나야 고맙지만 말이다.
“본인은 그 가짜가 아니라는 확신이 있고?”
“시끄럽다고 했다!”
“그리고 방금 했던 말, 거짓말이야. 키리엘도 그거 쓸 수 있던데?”
「[궤변] 클리셰가 발동 중입니다!」
「당신의 발언이 등장인물, ‘마왕 므’의 내적 갈등을 부추깁니다!」
“……너!”
그와 함께 마치 그녀의 의사를 대변하기라도 하듯이 마왕의 권속들이 나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크롸앙-!
힘으로 해 보자 이거지.
그렇다면 나도 사양할 필요가 없다.
“그거 알아?”
「[궤변] 클리셰가 발동 중입니다!」
「[개연성]이 당신이 발언에 주목합니다!」
“나, 존나 세거든.”
그와 함께 전신에서 솟구치는 힘.
「[궤변] 클리셰가 발동 중입니다!」
「[궤변] 클리셰 효과로, 등장인물, ‘아인즈 반’의 전투력이 [500%] 상승합니다!」
* * *
“스승님.”
모든 일을 맡긴 후 자리에서 빠져나온 베른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끝내기 위해서 옛 스승 앞에 섰다.
“볼일이 끝난 것 같지는 않은데, 오랜만에 스승에게 응석이라도 부리고 싶어진 거냐?”
“농담이 느셨군요.”
“여기 있는 젊은 친구와 친목을 도모하는 시간을 가졌거든. 유머 감각이 제법이더구나.”
가람이 옆에 있는 디오에게 슬쩍 시선을 옮기며 말하자, 디오가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
“낯을 많이 가리는 게 꼭 에단을 보는 것 같더구나.”
베른이 디오를 한 번 훑어보고는 가람의 말을 받았다.
“그런 편이 없지는 않죠.”
“그래, 그래서 여기에는 무슨 일이냐? 므를 용서하는 거냐?”
“제가 그러기를 바라십니까?”
베른의 대답에 가람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적어도 나는 그럴 자격이 없겠지.”
“잘 아시는 분이 굳이 그 사실을 입에 담으시는군요.”
“하지만 스승으로서 너에게 복수의 무용성에 대해서만큼은 말해 두고 싶구나. 복수는 결국 또 다른 복수를 부를 뿐이다. 베른.”
베른이 사납게 웃었다.
“스승님께서는 그런 부류의 인간들을 위선자라고 하셨지요.”
“옛 제자를 위해서라면 위선자 따위가 무슨 대수겠느냐.”
“위선자의 말을 들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미 너도 잘 알고 있지 않으냐? 위선도 결국 선(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이 이 거짓된 세계를 이루는 근간이자 진리였으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베른은 그의 스승을 바라보며 그렇게 물었다.
그리고 스승이 대답했다.
“아무것도.”
그의 스승은 웃었다.
그저 웃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단다. 베른.”
* * *
콰카카카!
므의 공세는 제법 맹렬했으나, 그것도 여기까지였다.
“당신은 나한테 안 돼.”
내가 손등으로 날아드는 어둠 무리를 쳐내자, 끔찍한 비명과 함께 어둠 무리가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끼에에엑!
그녀는 제국을 몇 번이라도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로 무식한 공격을 퍼부었으나, 그 모든 공격은 수포로 되돌아갔다.
애초에 그녀와 나의 존재하는 힘의 차이 때문이었다.
그 때문인지, 좀처럼 광풍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므의 움직임도 이제는 거북이가 움직이는 것처럼 느릿해져 있었다.
마침내 이 지루한 공방전이 끝을 알린 것이다.
“이제 대화할 생각이 들었어?”
“……네 말은 듣지 않는다.”
그녀는 이제 아예 대놓고 귀를 틀어막았다.
만약 내가 조금만 더 마음이 여렸더라면 크게 상처를 받았을 법한 광경이었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건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가 어째서 저렇게까지 내 말을 듣지 않으려는 건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내뱉은 말로 인해서, 이 세계에 있는 무엇인가가 바뀐다는 사실을.
“……두려운 건 없어.”
“그러면 마음대로 떠들어도 상관없겠네?”
“하지 마.”
“싫은데.”
“하지 말라고!”
그녀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나에게로 손을 뻗었으나, 그 손은 닿지 않았다.
“사라지는 게 두렵지?”
“……멋대로 추측하지 마.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이 우리의 의무야.”
“모든 것이 원래대로 되돌아가기를 원한다면서? 그러면 그냥 그대로 너희들끼리 사라지면 될 일 아니야? 굳이 누군가와 함께 사라질 필요도 없이.”
개연성의 사도.
제아무리 베른을 없애기 위해서 탄생했다지만, 그들의 표면적인 존재 이유는 어디까지나 이 세계의 비틀린 [개연성]을 바로 잡는 것이었다.
그것이 명분이고, 대의일 테니까.
하지만 그들이 그 순리를 거부한 순간부터, 그들은 그것을 잃었다.
그들은 더 이상 정의롭지 못하고, 명예롭지 못하다.
그들은 결국 추락하고 만 것이다.
베른이 있는 곳까지, 그리고 내가 있는 곳까지.
“그만 인정하는 게 어때? 너희는 숭고한 존재가 아니야. 그저 어떤 추잡한 목적에 의해서 이용되는 과거의 망령에 불과해.”
“……우리는, 사도다. 순리를 지키고, 이 세계의 질서를 지키는.”
“아직도 모르겠어? 그것 자체가 모순이라니까? 일단 너희들부터가 그 순리와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잖아.”
「[궤변] 클리셰가 발동 중입니다!」
「등장인물, ‘마왕 므’가 당신의 [궤변]에 흔들립니다!」
“그럴…… 리가.”
“아닌 것 같아?”
“너, 너…….”
그와 함께 므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사실, 내가 한 일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진실의 상기.
그들은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억지로 고개를 돌리고서 그것을 외면해 왔다.
그래야만 존재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제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고, 그들은 이제 선택해야만 했다.
「[궤변] 클리셰가 발동 중입니다!」
「등장인물, ‘마왕 므’의 내적 갈등이 심화합니다!」
미끼는 이 정도면 충분히 던졌고.
이제 낚싯대를 건질 차례였다.
“내가 기회를 주지.”
“……기회라고?”
“당신들의 운명을 가지고 놀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농락한 자에 대해서 복수할 수 있는 기회.”
“그게…… 누구지?”
누구긴.
지금 시점에서 내가 탓할 대상이 그놈 말고 또 있겠는가.
“신.”
「[궤변] 클리셰가 완성되었습니다!」
「클리셰를 창조하여, 기존 클리셰가 파괴됩니다!」
「클리셰 붕괴율: 81.2%」
* * *
용사 가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대충 끝난 모양이구나.”
그의 옛 제자가 가볍게 동의했다.
“그런 것 같군요.”
베른의 시선이 어느새 주저앉은 므에게로 향했다.
그래, 결국 그렇게 됐구나.
예상했던 결말이었지만 베른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직도 복수에 대한 미련이 남았느냐?”
마치 속내를 들여다보는 듯한 가람의 말에 베른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그럴 거다. 나 역시도 그랬으니.”
“그게 무슨 말씀이죠?”
“너도 이미 알고 있지 않으냐. 용사와 마왕의 운명은 마치 쳇바퀴처럼 반복된다는 것을. 네가 겪었던 것을, 나라고 한들 겪지 않았겠느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베른은 스승이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쉽게 잊히지는 않을 거다. 아니, 아마 평생토록 기억에 남고 또 어떤 때는 후회도 하겠지. 하지만 분명히.”
그의 스승이 멋쩍게 웃었다.
“잘했다고 생각할 날도 있을 거다.”
스승의 말을 듣고 있던 베른은 몇 번인가 이상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애써 그의 스승과 같은 웃음을 지었다.
“……다 늙은 제자를 가르치시는군요.”
“배움에는 나이가 없는 법이지.”
“이제는 제가 더 많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네가 가르쳐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구나.”
가람이 그렇게 말하며 껄껄 웃자, 베른도 함께 그의 얼굴을 마주 보며 껄껄 웃었다.
그래, 이거면 된 거다.
굳이 무언가의 매듭을 짓지는 않아도.
그 결과가 이처럼 애매모호 하더라도.
이거면 된 거다.
“가자. 너희가 이곳에 온 목적이 있지 않으냐?”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있었던가.
베른은 어느샌가 주객이 전도됐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스승이 내민 손을 맞잡고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음?”
그의 스승은 어느새 사라져 가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베른?”
시선을 돌리니, 저 멀리 있는 바네사와 므 역시도 가람과 마찬가지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바네사!”
베른이 다급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으나,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사라졌다.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아.”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으나, 베른은 본능적으로 아인즈 반을 찾았다.
“반!”
그리고 마침내 베른이 유난히 비열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를 찾았을 때, 그의 앞에는 어느새 기묘한 문자들이 늘어져 있었다.
무척이나 익숙한 글자들이었다.
「네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아인즈 반.」
데우스 엑스 마키나.
이 거짓된 세계의 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