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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 이후의 소설 속-161화 (161/164)

◈ 161화 Chapter 36: 기계장치의 신 (1)

그 이후, 므를 설득하는 일은 간단했다.

“……신이라고?”

“그래, 신. 너희의 모든 걸 가지고 논 존재.”

몇 번의 짧은 대화가 더 이어지고, 내 이야기를 들은 마왕 므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개연성의 사도]를 모두 설득해 낸 것이다.

분명히, 여기까지의 과정은 꽤나 순조로웠다고 볼 수 있었다.

[개연성의 사도] 중 하나인 므를 설득하는 것도 모자라서, 마침내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을 이 잘나신 ‘신’의 탓으로 돌린 것까지.

그렇기에 녀석이 이쯤에서 개입하는 것은 사실 이미 예정된 일이나 다름없었다. 이곳은 녀석의 안방이나 다름없는 데우스 교단 한가운데였고, 내가 아는 ‘신’은 사태를 여기까지 관망할 만큼 참을성이 좋지 못했다.

‘슬슬 나설 때가 됐는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하던가.

말하기 무섭게 이질적이지만 이제는 어느덧 익숙해진 서늘한 감각이 전신에 드리웠다.

떨어져 내리던 나뭇잎의 시간이 멈추고, 올바르게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멈추는 순간.

녀석이 나타났다는 징조였다.

「관리자의 권한에 의해서 작품이 일시적으로 비공개 처리됩니다!」

「대다수의 독자가 갑작스러운 작품 비공개에 크게 반발합니다!」

「대다수의 독자가 [작가]의 프로의식에 대해서 맹렬한 비난을 쏟아냅니다!」

「관리자가 독자들의 반발을 묵살합니다!」

그와 함께 눈앞에 떠오른 문자열들.

「네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아인즈 반.」

누구를 닮았는지는 몰라도 여전히 싸가지 없는 말투였다.

“오랜만에 하는 첫인사치고는 예의가 많이 부족한걸.”

내가 이죽거렸으나, 눈앞에 있는 문자열은 요지부동이었다. 예전이었다면 당장 발끈해서 뭐라도 내뱉었을 텐데 말이다.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거나.’

아니나 다를까, 말하기 무섭게 그 예상은 곧 현실이 되었다.

“바네사!”

저 멀리서 들려온 베른의 외침.

“……아.”

망연자실한 베른의 얼굴처럼 그곳에서 일어난 일은 상당히 심플했다.

사라졌다.

내 앞에 있던 므는 물론이고, 베른과 함께 있던 가람과 바네사를 포함한 [개연성의 사도] 전부가.

‘이제는 아예 막 나가는군.’

사냥이 끝난 후 사냥개가 잡아먹히듯이 결국 제 몫을 해내지 못하게 된 [개연성의 사도]들은 사라졌다.

따지고 보면 이 세계의 창조주인 [작가]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을 터였다. 애초에 그들은 이미 [설정]상 죽은 존재였고, 그들의 존재가 묵인되고 있던 것도 결국 [강제 복원력]에 의한 일련의 목적에 의한 것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어지간히도 제멋대로 구는군.’

그때 베른의 다급한 목소리가 내 귓가를 찔렀다.

“반!”

그와 함께 보인 떨리는 손과 창백하게 물든 얼굴이 지금 그의 상태를 말해 주었다.

“진정해요.”

“……진정? 지금 이 상황에서 나보고 진정하라고?”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을 떠올려요.”

「당신의 발언에 [메인 시나리오]가 반응합니다!」

「제국의 멸망에 대해서 알아내기 위해,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대화하시오.」

베른의 눈이 뚫어지듯이 나를 응시했다.

“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요. 하지만 저를 믿고 지금은 기다려요.”

제아무리 [설정] 속에서 [개연성의 사도]들이 이미 죽은 존재에 불과하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전 이야기였다.

베른은 자신의 과거를 가렸고, 이제 그들의 죽음은 처음부터 없었던 일이 되었다.

그렇기에 지금 우선해야 할 일은 일일이 베른의 응석을 들어주고 있을 것이 아니라, [메인 시나리오]를 이용해서 이 상황을 돌파하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일단은 베른 정도인가.’

슬쩍 주위를 둘러보니, 아니나 다를까 나와 베른을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들이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멈춰 있었다.

이미 여러 차례 겪어 보았던 현상.

조금 의외인 점이 있다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가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디오의 모습이 어느 순간부터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뭐, 때가 되면 어련히 알아서 나타나겠지.’

지금 중요한 것은 디오가 아니라 눈앞에 있는 자칭 창조주였으니까 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작가 녀석의 말도 그다지 틀렸다고 볼 수만은 없었다. 그 말대로 이 지긋지긋한 이야기도 슬슬 막을 내려야 할 때가 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당연히 그 방식은 철저하게 내 방식대로일 테지만 말이다.

“됐고, 비즈니스 이야기나 하자고. 제국을 멸망시킨 이유가 뭐지?”

스스로의 뻔뻔함에 저도 모르게 입가가 씰룩였다.

내 조소를 보고서 그제야 열이라도 받은 건지, 요지부동이던 문자열이 그제야 들썩이며 이내 새로운 문자를 이루었다.

「뻔뻔하게 잘도 지껄이는군.」

“그게 내 특기라서.”

「웃기지도 않는 소리는 집어치워라. 제국을 멸망시킨 원인을 나에게 뒤집어씌우고 싶은 모양인데, 상대를 잘못 골랐어. 여기는 내가 만든 세계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아무튼, 어디서 여기저기 조잡하게 모아 놓은 이 뻔한 세계를 만든 게 무슨 인생의 대단한 업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 게 참으로 녀석다웠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또 잘난 혓바닥을 놀리고 싶은 모양인데, 아까도 말했다시피 네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그 순간.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기적]을 행합니다!」

「등장인물, ‘아인즈 반’에게 [천벌]이 가해집니다!」

쿠구궁-!

그와 함께 뜬금없이 마른하늘에서 내리치는 벼락.

제아무리 이 세계 내에서 ‘신’의 영향력이 사라졌다지만, 지금은 그것을 지적할 그 어떤 [독자]들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개연성]도 없이 나를 죽이지는 못할 테니, 이런 식으로 ‘신’의 권능을 내세워서 간접적으로 죽이려는 모양이었다.

쿠구궁!

한 번.

두 번.

벼락이 내 전신을 사정없이 내리치고,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제아무리 [먼치킨]이니 [서브 주인공]이니 해도, 아무런 [개연성]도 없이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천재지변에는 당해 낼 도리가 없었다.

‘망할 자식.’

내가 다급하게 외쳤다.

“아자토스!”

그러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아자토스 역시도 아무런 [비중]이 없는 존재답게 시간이 멈추며 함께 멈춰 버린 것이다.

그리고 벼락이 끊임없이 내리쳤다.

쿠루룽!

전신에서 타는 고기 냄새가 진동했다.

내가 산 채로 구워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대로는 진짜 위험할 수도.’

물론, 녀석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이런 무식한 짓거리를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기계장치의 신] 클리셰가 발동 중입니다!」

「[기계장치의 신] 클리셰 효과로, [작품성]에 심대한 타격이 가해집니다!」

「[작품성]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습니다! 클리셰가 파괴됩니다.」

「클리셰 붕괴율: 83.6%」

말 그대로 제 살 깎아 먹기.

이러한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녀석이 이렇게까지 나온다는 것은 이제는 정말로 녀석의 발등에도 불똥이 떨어졌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내 머리 위에 떨어진 것은 불똥 정도가 아니었지만 말이다.

콰르릉-!

그와 함께 내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듯이 계속해서 내려치는 낙뢰.

「[작품성]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습니다! 클리셰가 파괴됩니다.」

「클리셰 붕괴율: 85.2%」

막거나 피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제 나도 거의 한계였다.

‘……망할 놈.’

아무리 나라도 녀석이 저런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무식한 수를 둘 줄은 몰랐다.

아니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까지 멍청하리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진짜 머저리네.’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고작 이 정도 도발에 넘어오고, 이 정도 수에 넘어오는 상대였을 뿐이다.

문제는, 그 머저리처럼 무식한 수에 당장 내가 잘 익은 계란후라이마냥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게 생겼다는 점이었지만 말이다.

쿠구궁-!

그때였다.

“반!”

다급하게 들려온 베른의 외침과 함께 쟁기를 뽑아 든 베른이 나를 밀어내며 내리치는 벼락을 대신 받아냈다.

“끄윽!”

비명을 지르는 베른의 앞에 나타난 자음과 모음들이 모여서 이내 짧은 문장을 만들어 냈다.

「어리석은.」

그의 그러한 희생정신에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심각해졌으면 더 심각해졌지.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기적]을 행합니다!」

「등장인물, ‘전대 용사 베른’에게 [천벌]이 가해집니다!」

그와 함께 나에게만 내리치던 벼락들은 이내 베른에게도 사정없이 쏟아졌다.

콰카캉!

흰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연기가 자욱하게 올라서며 살타는 내음이 사방에 진동했다.

“끄으윽……!”

베른의 상태는 나보다 훨씬 더 안 좋았다.

작중 [먼치킨]이자 마족 왕자인 나조차도 버티기 힘든 저 [천벌] 세례를 일개 용사에 불과한 그가 버틸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다.」

비틀린 문자열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우리의 주위를 맴돌았다.

「아무 의미도, 과정도 없이 이대로 사라져라. 너희의 최후는 이거면 족하다.」

내가 애써 입술을 비틀었다.

“그, 그것참…… 듣는 사람 서운한데.”

그 순간, 내가 입을 열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듯이 다시 한번 내 머리 위로 벼락이 내리쳤다.

콰르릉!

「처음부터 너희를 방치한 것이 내 실수였다. 내 작품을 좀 먹는 암세포. 너희는 그런 암세포에 불과해.」

그러한 녀석의 의지를 대변이라도 하듯, 벼락이 점차 거칠게 내리쳤다.

그와 함께 내 몸은 점차 허물어졌고, 이제는 의식조차 희미해질 지경이었다.

‘……아직도냐.’

작용에는 늘 반작용이 따른다.

그것이 이번처럼 강력한 작용일 경우에는 더욱더.

내가 지금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반작용이었다. 그것도 이 상황을 단숨에 뒤집어 버릴 수 있는.

「목숨 한번 바퀴벌레 같군.」

“머, 멋대로 잘도 떠들어 대시는데.”

고맙게도 말이지.

그 순간, 다시 한번 내 위로 내리치던 벼락이 허공에서 사라졌다. 드디어 내가 기다리고 있던 일이 일어났다는 징조였다.

「[강제 복원력]이 거칠게 요동칩니다!」

「[강제 복원력]이 [개연성] 오류를 포착합니다!」

「[강제 복원력]이 [개연성]을 넘어선 개입을 무효화합니다.」

그와 함께 거의 정신을 잃어 가던 베른이 반쯤 떠진 눈을 한 채로 말했다.

“……이, 이게 무슨?”

그리고 당황한 것은 베른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무슨 짓을 한 거냐.」

무슨 짓이긴.

다 네가 자초한 짓이지.

“아직도 모르겠어? 네가 지금 무엇의 일부가 되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녀석도 이제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자신이 [설정]에 잡아먹혔다는 사실을.

“이런 말이지.”

「[메인 시나리오]가 갱신됩니다!」

「제국을 멸망시킨 가짜 신,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처치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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