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화 Chapter 36: 기계장치의 신 (3)
그와 함께 [작가]의 화신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얼굴에 말 그대로 「혼란」이 가득 나타났다.
「마, 말도 안 돼…… 이곳은 분명히 내가 만든, 내가 창조한…….」
“시끄러우니까 그만해. 추하다.”
누가 머리 나쁜 거 몰라 줄까 봐, 이제는 아니라고 그렇게 말을 해도 도통 알아먹지를 못한다.
「말도, 말도 안…….」
“원래 잔혹한 진실일수록 받아들이기 힘든 법이야.”
물론, 녀석의 입장도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약간이지만 조금은 불쌍한 것도 사실이었고.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현실은 현실이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맞닥뜨려야 할 때는 반드시 오는 법이었고, 지금이 바로 그 순간 중 하나였다.
“이만 인정해. 너나 나나, 이곳에서는 똑같은 [등장인물]일 뿐이라는 걸.”
「그럴 리가…….」
그리고 녀석의 얼굴에 나타난 단어들.
「멘탈 붕괴」 「현실도피」 「자아성찰」
……에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긴 했지만, 하차 댓글 몇 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녀석답게 유리멘탈이 따로 없었다.
어쨌거나 나름대로 [주인공]으로서 [메인 시나리오]에 대한 구색 맞추기는 해야 하는 법이었으니, 내가 그대로 녀석의 멱살을 쥐어 잡고는 말했다.
“됐고, 제국이 멸망한 배후에 있는 것이 ‘디룽 칸’이지?”
「뭐, 뭐?」
“나쁜 머리 굴리지 말고 그냥 대충 그렇다고 말해.”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차피 중요한 것은 진실 따위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 그래. 맞다.」
마침내 녀석이 떨떠름한 고개를 끄덕이자, 그와 함께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메인 시나리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메인 시나리오]가 갱신됩니다!」
「제국을 멸망시킨 동쪽의 주인, ‘디룽 칸’의 야욕을 막으시오.」
‘대충 됐군.’
물론, 할 일은 아직 더 남아 있었다. 아직도 눈앞에서 끈질기게 남아 있는 거추장스러운 ‘가림막’이라던가.
내가 슬쩍 눈앞에 있는 ‘가림막’을 가리켰다.
“이제 이것도 슬슬 걷어내고.”
언제까지 가리고 있을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제4의 벽]이 [주인공]의 발언에 감응합니다!」
「[제4의 벽]에 의해서 작품이 강제적으로 공개 처리됩니다!」
그와 함께 다시 흐르기 시작한 시간.
「대다수의 독자가 이제야 공개된 작품에 큰 불만을 쏟아냅니다!」
「대다수의 독자가 불친절한 시점 변화에 불쾌함을 표합니다!」
마치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독자]들의 불만과 함께 그제야 멈춰진 시간 속에서 깨어난 일행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뭐야?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이 느낌…… 왠지 익숙한데.”
“뭐야, 저거 베른 아저씨 아니야? 상태가 왜 저래?”
그 말대로 베른의 상태는 그야말로 빈사 상태였다.
다급하게 베른의 상태를 살피던 하이디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내 귓가를 찔렀다.
“반!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일이 있었어.”
“일? 잠깐…… 그 옆에 있는 건 누구야? 아니, 뭐야?”
하이디가 가리킨 대상은 다름 아닌 얼굴에 「멘붕」을 써 놓은 자칭 신, 타칭 작가 놈이었다.
“신.”
“……뭐?”
“별로 마음에 안 들지? 정 원하면 몇 대 때려 줘도 돼.”
내가 녀석의 머리를 몇 대 쥐어박자, 얼굴에 쓰여 있는 단어에 「아픔」이 추가되었다.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웃긴 꼴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그게 그러니까…… 신이라고? 우리가 찾고 있는 데우스 교단의?”
“맞아.”
그와 함께 하이디를 비롯한 일행들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허어.”
“말도 안 돼.”
그리고 그런 표정을 지은 것은 일행들뿐만이 아니었다.
「대다수의 독자가 등장인물, ‘하이디’의 황당함에 적극적으로 동감합니다!」
「대다수의 독자가 어이가 없다 못해 파격적인 시점 변화에 황당함을 표합니다!」
「다수의 독자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무능함에 대해서 깊은 의문을 표합니다!」
「탐정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도대체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깊은 흥미를 표합니다!」
마침내 현실을 받아들였는지 하이디와 루가 이내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 하하.”
“도대체 너는…… 이젠 하다 하다 신까지…….”
“보통이지.”
내가 씨익 웃으며 말하자 하이디와 루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이제 끝난 거야?”
“아직.”
“아직이라니? 뭐가 더 남아 있어?”
하긴, 상식적으로 ‘신’까지 잡은 마당에 더 이상 남은 게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아니, 보통이라면 그래야만 할 터다.
그러나 내가 상대해야 할 것은 더 이상 ‘신’이나 ‘작가’ 따위가 아니었다.
“있어.”
“……그게 뭔데?”
“이 세계.”
「선비를 자처하는 일부 독자가 당신의 발언에 [중2병]을 의심합니다!」
「중2병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당신의 감성에 적극적으로 동감합니다!」
‘아직도 자기들이 위에 있는 줄 아는군.’
그러나 독자 녀석들이 저렇게 웃고 떠들 수 있는 날도 이제 멀지 않았다.
내가 끝장낼 것은 고작 이 세계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정확히는, 이 소설 그 자체.
나는 그것을 끝장낼 것이다.
* * *
「관리자의 권한에 의해서 작품이 일시적으로 비공개 처리됩니다!」
이제는 어느새 익숙해진 기묘한 느낌과 함께 세상이 멈췄을 때, 디오는 본능적으로 그 자리를 피했다. 앞으로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아인즈 반 앞에 이 세계의 신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디오는 피가 흘러나올 정도로 주먹을 꽉 쥐며 입술 안쪽을 물어뜯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대상은 디오에게 있어서 그런 존재였다. 그의 삶과 운명을 농락하고 한낱 유희 거리로 만든 존재.
그러나 디오는 예전처럼 무식하게 뛰쳐나가지 않았다. 그에게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디룽 칸.’
그자를 죽이고, 모든 것을 끝낸다.
그러나 그 압도적인 강함을 지닌 동쪽의 지배자를 죽이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말이다.
‘……지금이 기회다.’
세상이 멈출 때.
예전에 이 현상을 겪었었던 디오는 지금까지 다시 한번 이 순간이 찾아오기를 기다려 왔었다.
그렇기에 디오는 지금 이 순간을 기다려 온 것이다. 제아무리 디룽 칸이 압도적인 강함을 지닌 존재라고 한들, 무방비로 심장에 성검이 꽂히고서는 살아남지 못할 테니까.
용사다운 방법 따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용사로서 이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 굳게 믿고 있었으니까.
‘스승님, 제가 모든 것을 끝내겠습니다.’
디오는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그 무엇도 나를 옭아맬 수는 없다.
나는 자유로우며 이제 내 손으로 직접 이 모든 고리를 끊어 낼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디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귓가에 무엇인가 속삭이고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강제 복원력]이 요동칩니다!」
「당신의 [서사]를 이행하십시오!」
「동쪽의 지배자, ‘디룽 칸’과 최후의 결전을 벌이시오.」
* * *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그렇게 한참 동안 무엇인가를 찾아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키리엘이 말했다.
“……혹시 디오 봤어?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는데.”
진심으로 걱정스러움이 가득 묻어나는 키리엘의 목소리에 에드윈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마치 주워 온 고양이가 또 집을 나갔다는 듯한 말투.
「[주인공]을 지지하는 일부 독자가 등장인물, ‘에드윈’의 무심함을 맹렬히 비난합니다!」
그러나 무심한 그녀와는 달리 키리엘의 표정은 말 그대로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도대체 어디로…… 너는 혹시 알아?”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바라본 대상은 당연히 나였다.
“알지.”
“안다고? 혹시 다른 곳으로 떠난 거야?”
키리엘의 목소리에는 어느덧 물기가 가득 묻어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어차피 우리도 디오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하니까.”
“어디로 갔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굳이 추측이나 생각 따위는 필요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디오가 갈 곳은 처음부터 이 소설의 [결말]뿐이었으니까.
“동쪽.”
기겁한 표정을 지은 루가 끼어들었다.
“동쪽이라고? 설마…….”
“맞아. 디오는 디룽 칸을 만나러 간 거야.”
“……미친놈.”
그녀의 말대로 디오의 돌발적인 행동은 사실상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아니, 이 경우에는 ‘작가’에 의해서 의도된 타살이라고 보는 게 맞으려나.
뭐, 어쨌거나 디오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도 그의 죽음은 애초에 피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이미 이 소설의 [결말]은 그렇게 정해졌고, 제아무리 [주인공]이니 뭐니 하더라도 이 소설에 속한 존재인 이상 그것을 거스를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대로 손가락만 빨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내가 왜 아직도 이 녀석을 살려 뒀는지 알아?”
내가 슬쩍 옆에서 기절하다시피 있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 쓸모가 있어서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죽인다고 해서 죽을지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부호가 찍히지만 말이다.
“얀마, 일어나 봐.”
내가 녀석의 몸을 발로 툭툭 건드리자, 그와 함께 녀석의 얼굴에 한 가지 단어가 나타났다.
「귀찮음」
……조금 잘해 줬더니, 아무래도 우리가 친구 사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
이렇게 보면 상대방의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도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면 적어도 지금처럼 열 받지는 않았을 테니까.
“뒈질래?”
「……무슨 일이냐.」
“말이 짧다.”
「무슨 일이십니까.」
여전히 녀석의 낯짝에는 「귀찮음」과 기타 등등의 별 잡스러운 감정들이 떠올라 있었으나 나는 애써 무시했다. 녀석과 푸닥거리 따위나 하며 낭비할 시간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네 힘 좀 빌리자.”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나는 이제 아무런 힘도 없다. 아니, 할 수 있지만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해야 할까. 너도 이미 알고 있을 텐데?」
그리고 녀석의 얼굴에 한 가지 단어가 더 떠올랐다.
「진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자신의 [설정]에 먹힌 대가로, 녀석은 이제 ‘신’으로서도, ‘작가’로서도 자격을 잃은 일개 [등장인물]이 되어 버린 상태였으니까.
내가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알고 있어.”
「그런데 도대체 나에게 무슨 힘을 빌리겠다는 거지?」
“너는 할 수 없지만, 나는 할 수 있으니까.”
「그게 무슨…….」
무슨 말이긴.
내가 이 빌어먹을 세계에서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는 [주인공]이라는 말이지.
「당신의 [서사]가 요동칩니다!」
「[제4의 벽]이 당신의 [서사]에 감응합니다!」
「[제4의 벽]에 의해서 작품이 일시적으로 비공개 처리됩니다!」
「당신의 [서사]에 의해서, 일정 시간 동안 작중 모든 [개연성] 없는 행위가 용납됩니다!」
주인공이란 응당 그런 존재다.
무슨 짓을 해도, 어떤 짓을 해도.
모든 도덕적 규탄과 개연성에서 벗어난 존재.
“뭐해?”
「……어, 어?」
“냉큼 디오 녀석 여기로 안 데려오고.”
그렇기에 나는 말할 수 있다.
이 맛에 주인공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