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여자들
“네가 정해.”
“뭘요?”
“누가 최고의 여신인지?”
이건..분명 미친 여자들...아니, 적어도 제정신은 아닌 여자들인 것 같았다. 거기다 외국인들이고, 아니면 무슨 몰카라도 찍고 있는 건가?
진수는 그저 길을 가다가, 하트 모양의 빨간 상자 하나를 주웠을 뿐이었다. 주웠다기보다는 진수에게 누가 던진 것 같았고, 굴러오는 그 상자를 그저 집어 들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 여자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솔직히 누가 제일 예뻐? 누가 제일 섹시하냐고? 나 아냐?”
자칭,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라는 여자는 자기가 최고의 미모를 가지고 있으니, 그 빨간 상자의 주인은 자기라고 주장했다.
“얼굴 예쁘면 뭘 할 건데? 머리가 있어야지. 지혜의 여신, 아테나야. 그 상자 나에게 줘. 내가 머리가 가장 똑똑하니까.”
“웃기고들 있네, 공부 잘하고 얼굴 예쁘면 뭘 해? 세상만사 운빨이야 운빨. 나는 얼굴은 좀 딸리고 머리도 좀 딸리지만, 흠...아니, 뭐, 쟤들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말이야. 나도 평균은 된다고. 아무튼, 나는 행운의 여신 티케야. 항상, 행운을 몰고 다니지. 아마, 그 상자도 나 같이 운 좋은 사람의 차지 아니겠어? 어서, 그거 이리 내.”
이탈리아나, 라틴계열처럼 보이는 여자들이었다. 아프로디테라고 주장하는 여자는 그중에서도 특히 특출나게 예쁘기는 했다. 여자 친구를 고르라면 당연히 아프로디테를 선택할 듯...
하지만 나 같은 남자랑 사귈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아서...아무튼, 이 빨간 상자는 내 것도 아니고 말이야. 대체 뭐가 들어 있는 거야?
상자를 흔들어봐도 별소리는 나지 않았다.
사실, 아프로디테 말고도, 두 여자, 아테나와 티케? 라는 여자들도 평균 이상의 외모는 되는 것 같았다. 키들도 커서 175 정도는 되는 것 같고. 서양 사람이라 그런지, 몸매도 쭉쭉 빵빵, 그리고 옷도 좀 야시시한게, 무슨 홀복도 아니고 드레스도 아닌, 하늘거리는 얇은 천 같은 것을 두르고 있고 말이다.
움직일 때마다 살짝살짝 속살이 보이는 게, 은근 신경 쓰이잖아?
아무튼, k팝을 좋아하는 외국의 미녀들이 아닐까 싶었다. 한국어가 능숙한 게, 한국 드라마 매니아들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뭐, 이유야 어쨌든, 멀쩡하고 한 미모들 하는 여자들인데, 지금 진수 앞에서 진상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거 아무나 가져요.”
“바보야, 지금까지 뭘 들었어?”
뭐, 바보? 이것들이 가만히 다 들어주고 있으니까, 누굴 가마니로 아는 건가? 나로 말하자면, 대한민국 육군병장, 최진수라는 말이야. 그리고..그리고, 흠, 그 외에는 딱히 내세울 건 없군. 뭐, 아무튼, 병역도 다 마치고, 이제 좀 있으면 복학 예정인 대한민국의 건실한 청년, 최진수, 그게 바로 나다. 그리고 나는 군대에서 철이 들었는지, 등록금이라도 보태 보려고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편의점에 출근 중이었다.
이 여자들이 그런 나를 막아서고 있는 것이다.
“그럼, 어쩌라고요? 이거 상자, 아무나 가지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네가 정해달라고 주인이 누군지.”
와, 미치겠네. 나도 지나가다 상자가 굴러와서 무의식적으로 집어든 것뿐인데, 누구한테 주라는 거야? 그냥 알아서 가져가라고 해도 안 된다고 하고. 나한테 그 주인을 정해 달라는 것이다. 진상도 이런 진상들이 없네,
이 여자들, 어디서 낮술이라도 하고 온 건가?
“넌 이름이 뭐니?”
“저요, 왜 반말이에요?”
“우리가 나이가 한참 위인데, 반말 좀 하면 안 돼?”
“뭐, 그렇게 나이가 많아 보이지는 않는데,”
세 여자들 모두 묘령의 나이라고 할까? 외국인이라 그런 건지, 동안이라고 해야 하나? 나이를 잘 구별할 수 없었다.
“최진수예요.”
“오, 진수, 그래, 진수가 선택을 해보라는 거야. 우리들 셋 중에 최고의 여신이 누구인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야, 잘 모르겠으면 찍어, 아무나..그러면 되잖아.”
세 여자들이 꼭 합리적인 판단을 바라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저 술 한잔 하고, 술냄새는 안 나지만, 아니면 무슨 약을 한 건가? 아무튼, 약간 이상한 상태로 자기들끼리 무슨 게임을 하는 건지? 진수에게 그 빨간, 하트 상자, 최고의 여신에게...라고 쓰여 있는 상자의 주인을 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걸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준다면, 너에게 최고의 선물을 줄게..”
“무슨 선물요?”
자칭 아프로디테는 메고 있던 백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게, 뭐예요?”
아프로디테가 꺼낸 건, 화장품 병이었다.
“얼굴천재 크림이야, 너는 이게 좀 필요할 것 같은데.”
“얼굴천재 크림이 뭔데요?”
“이걸 바르면, 하룻동안 얼굴천재가 되는 거지, 이 병이 작아 보여도 화수분 기능이 있어.”
“화수분 기능요?”
“써도 써도 계속 나온다는 거야. 그러니까, 하루에 한 번씩만 이 크림을 발라주면 얼굴천재가 된다는 거야. 이민호나 현빈처럼 너도 이걸 딱 바르고 거울 속에 현빈보다 잘 생긴 남자가 서 있다면 기분이 어떻겠어?”
“그런 게 가능할 리가, 그리고 내 얼굴이 어때서요?”
“야, 말 다했으면 좀 비켜. 진수야, 얼굴이야 너 정도면 충분하지. 남자가 너무 잘 생겨도 그렇잖아? 그리고 얼굴이 밥 먹여주니? 중요한 건 머리야, 학력사회잖아? 한국은 학벌이 얼마나 중요해. 너, 학교 어디 다니니?”
“학교요? 고성 대학교요.”
“고성대? 학벌이라면, 스카이 정도는 돼야지, 아니면, 카이스트나 안 그래? 외국으로 눈을 돌려서 하버드나 옥스퍼드도 괜찮고. 이거 받아.”
“그게, 뭔데요?”
이번에는 작은 약병이었다. 안에는 알록달록한 알약이 들어 있었다.
“먹으면 머리 좋아지는 약, 빨간 약은 문과용이고 파란 약은 이공계용, 노란색은 예체능계 쪽으로 하나씩 먹을 때마다 머리도 좋아지고 공부도 잘 되는 약이야. 이거 먹고 한 1년만 다시 공부하면 서울대 수석 합격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그다음에 빨간 약을 계속 먹고 행정고시나 로스클 준비를 해도 좋고, 의사나 과학자가 되려면 파란약을 먹던지, 예술 쪽은 노란색을 먹으면 되겠지. 어때? 최고의 학벌과 최고의 전문직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야. 이것도 화수분 기능이 있어서, 먹어도 줄지 않는 건 기본이고.”
역시, 미친 여자들이야.
“저기, 남은 한 분은 뭐 없나요?”
“짜잔...”
자칭, 티케라는 여자였다. 이 여자도 과자가 들어있는 병을 들어 보였다.
“과자?”
“행운의 과자야, 이걸 하나씩 먹으면 행운이 생기는 거지. 이것도 화수분 기본이 기본 탑재라 계속 나오기는 하는데 그래도 제한이 좀 있어서, 하루에 하나만 먹을 수가 있어. 아무튼 이걸 먹으면 행운이 하나씩 생긴다는 거지.”
“겨우, 행운, 그리고 하루에 한 개로 제한이 있잖아? 그게 뭐야?”
아프로디테가 티케를 밀어내며 말했다.
“자자, 싸우지 말고요.”
“최진수 그거 나한테 줘, 이 얼굴천재 크림이면, 넌, 평생 여자들에게 왕처럼 군림하면서 살 수 있다고. 여자들이 돈도 다 갖다 바칠 텐데, 학벌이나 행운이 무슨 필요가 있어?”
“정신 차려, 최진수, 평생 여자들한테 들러붙어 살 거야? 자기가 능력이 있어야지, 머리가 좋아야, 학위도 따고 스타트업도 창업하고 출세할 수 있는 거야.”
아프로디테와 아테나 이 두 여자가 특히 나대는 것 같았다. 둘이 거의 레슬링을 하듯 몸싸움까지 벌이면서 말이다.
“뭐 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저기, 옷 벗겨지겠어요.”
둘 다 얇은 로브를 걸치고 있어서 심하게 뒤엉켜 서로 밀고 당기는 통에, 아프로디테의 로브가 쓸쩍 흘러내렸다.
진수의 눈이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아프로디테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오호, 그래, 바로 그거야, 남자의 욕망의 시선은 언제나 여자의 육체를 원하고 있다고. 안 그래? 최진수 군? 이 얼굴천재 크림을 바르면 여자들은 말이야, 알아서 스스로 진수 군에게 달려올 거라고..무슨 말인지 알겠지?”
“진수 씨, 정신 차려, 세상이 밤만 있는 게 아니야. 낮에는 뭘 할 거야? 머리가 좋아야 번듯한 직업도 얻고, 회사 경영도 할 수 있고, 지위와 권력을 얻으려면 머리가 좋아야 한다고.”
이, 여자들 은근히 피곤하게 하네, 장난을 받아주는 것도 정도 것이지. 셋 다 헛소리를 하는 게 분명하지만, 그나마, 제일 좀 얌전하게 있는 티케라는 여자가 그나마 좀 나은 것 같았다.
“아줌마, 이거 아줌마 줄게요.”
“뭐, 나? 정말? 앗싸, 역시, 운빨하면 티케지. 하하하... 야, 아프로디테, 아테나, 보라구. 이거 이제 내 꺼야, 최고의 여신에게, 이 빨간 하트 상자 말이야...”
“아씨, 짜증나게, 쟤는 맨날 가만히 앉아서 좋은 거 다 가져가는 것 같아.”
아프로디테가 볼멘 얼굴로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 티케 쟤가 행운의 여신이잖아. 실력으로 승부가 안 나면, 나머지는 다 행운이 결정하는 거니까.”
어쨌든, 진수가 빨간 하트 상자를 티케라는 여자에게 건네자 일단 여자들의 싸움은 진정이 된 것 같았다.
“땡큐, 덕분에, 올림포스에서 어깨 좀 펴고 다니겠어. 그리고 이건 약속한 선물..”
“과자요?”
뭐, 애들도 아니고 과자를 선물이라고? 하지만 주든 거니까 받기로 했다. 뭐 독이 들어있거나 상한 건 아닌 건 같으니까, 편의점에서 일할 때 하나씩 꺼내 먹으면 되겠지.
“그럼, 우리들은 가볼게, 참, 그리고 그 과자 하루에 두 개 먹으면 죽어. 그거 조심해.”
“아, 예...”
하루에 두 개를 먹으면 죽는다고?
***
편의점.
“진수 늦었네.”
“아, 예, 오다가..”
“오다가 뭐? 티라노사우르스라도 만났어?”
주인아저씨는 좋은 분이다. 가끔 썰렁한 농담을 하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죄송합니다. 뭐라고 해봐야 변명일 뿐이죠. 다음부터는 늦지 않겠습니다.”
“하하, 괜찮아, 왜 그래? 그냥 평소에 안 늦던 진수가 20분이나 늦어서 물어본 것뿐이야.”
“중간에, 좀 이상한 사람들이랑, 이상한 일이 있어서.”
“그래? 아무튼, 나도 약속이 있어서 지금 가야 돼. 따로 인수인계할 건 없고 평소처럼 부탁해. 진수 씨.”
“예,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편의점의 근무가 시작됐다. 오후에는 손님들이 적은 편이다. 저녁이 되면 근처의 학원 수강생들이 좀 몰려들고, 그러다가 퇴근하고 돌아오는 직장인들 그렇게 두 번 정도 바쁘다가, 야간 심야 알바생과 교대하면 하루 일과가 끝나는 것이다.
지금은 오후 시간에 일을 하는데, 복학을 하게 되면 심야 시간으로 옮길 생각이었다. 근무 하기에는 저녁 시간대가 더 좋기는 하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학교 다니면서 알바도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심야가 몸은 피곤해도 시간은 좀 여유가 있을 테니 말이다.
이미, 복학하면 야간 알바로 자리를 옮기기로 편의점 사장님과 이야기가 다 끝난 상황이었다.
아무튼, 학원 수강생들의 첫 번째 파도와 직장인들의 두 번째 파도가 지나가고, 한가롭고 잔잔한 저녁 시간이 찾아왔다.
편의점 통유리 밖의 거리의 풍경은 완전히 어둠이 내리깔리고 그 사이로 도시의 화려한 불빛들이 낮보다 더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나의 밤은 낮보다 더 아름다웠다. 기지개를 한 번 켜고 다시 의자에 앉았는데, 눈앞에 과자가 담긴 유리병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 낮에 그 티케라는 여자에게서 받은 과자병이었다.
무슨 과자인지 확인하려고 뚜껑을 살펴봐도 별다른 건 없었다. 병 아래쪽에 화수분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화수분? 계속 나온다는 건가? 아니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무튼, 과자라고 했으니까 하나 먹어볼까?
진수는 무의식적으로 과자 한 움큼을 집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