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의 알바
먹으면 죽어...
헉...
정말, 한 개 이상을 먹으면 죽는 건가? 하하, 말도 안 돼. 그 미친 여자들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다니...
과자는 크기고 작아서 하나만 먹기에는 너무 자잘한 느낌이었다. 진수는 그냥 한 움쿰 잡아든 과자를 입안에 집어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뭔가, 등꼴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물론, 그 여자들 말이 진짜일리는 없지만, 그래도 세상일은 모르는 거니까...일단, 한 개만 먹어볼까?
그래, 두 개를 먹으면 죽을까봐, 무서워서가 아니라, 맛없는 과자일 수도 있잖아..뭐, 이상한 맛이 날 수도 있고 말이야.
진수는 자기 합리화를 하며, 움켜잡은 과자들을 다시 병 속에 쏟아 내렸다. 그리고 딱 한 개만 손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참, 이게 뭐라고...”
웃기네,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2개 이상 먹으면 죽는다니까, 쉽게 먹지 못하는구나. 이게 바로 사람의 심리인가?
무당들이 그런다고들 한다, 복을 준다고 하면 잘 안 믿지만, 너 내일 죽어, 이런 말을 하면 쉽게 겁을 먹는다고 말이다. 그래서 사기도 치는 거고 말이다.
아무튼, 작은 행운의 과자인지 뭔지를 하나 집어 들어 천천히 입에 넣어 보았다.
‘바스락’
바삭거리는 과자였다, 속에는 별거는 없는 것 같고 그냥, 고소한 과자맛, 소라과자 비슷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보다는 좀 더 부드럽고 바삭거리는 식감은 나쁘지 않다.
그런데..
뭐야?
과자 안에 뭐가 들어 있는 것 같다.
입안에서 이물감이 느껴진다.
“퉤...뭐야? 이건...종이네..”
입안에서 나온 건, 작은 종이 같은 것이었다. 행운의 과자라더니, 포춘 쿠기 같은 건가? 그렇다면 약간 이해가 갔다. 서양 쪽에는 이런 행운의 과자가 있다고 하니까, 레스토랑에서 에피타이저 개념으로 주는 포춘 쿠키 말이다.
“참, 그 아줌마는 뭐 별것도 아닌데 괜히 겁을 주고 그래. 그냥 포춘 쿠기라고 하면 되지.”
그나저나 뭐라고 써 있는 거야?
종이는 꽤 작았다. 그나마도 접혀 있고 말이다. 작게 접은 종이를 겨우 펴보니, 무슨 숫자 같은 것이 적혀 있었다.
“아, 짜증나네, 뭘 이렇게 작게 적어 놓은 거야?”
그냥 휴지통을 버릴까도 했지만, 그래도 뭐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휴지통으로 향하던 진수의 손을 잡아끌었다.
“내가 늙은 건가? 아니면 그냥 글씨가 작은 거냐? 잘 안 보이잖아.”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확대를 해보기로 했다.
“음, 이제 좀 크게 보이는군. 이게 뭔가? 숫자네..”
작은 종이쪽지에 적혀 있는 것은 숫자, 230745341709 음, 이게 뭐야?
“일십...백천..만..이천 삼백 칠억?”
한숨이 나왔다. 대체, 이게 뭐라고 혼자서 생쇼를 하고 있는지...
그때였다. 편의점 문이 열렸다.
“진수 씨, 뭘 그렇게 봐요. 뭐, 야한 사진이라도 보는 건가?”
“예, 무슨 말이에요. 누가 그런 걸 본다고?”
야간 알바를 하는 심영진이라는 친구였다. 나이는 진수보다 2살이 더 많은데, 한 번도 진수에게 말을 놓은 적이 없었다.
말도 항상 반듯하고 생활도 반듯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이라는데 공무원이 되면 일을 잘할 스타일이었다.
아무튼, 대충 인수인계를 해주고 편의점을 나왔다. 여름이라 밤이 되니 서늘한 바람이 불어서 상쾌한 기분이었다.
진수가 향하는 곳은 학교 근처의 옥탑방이었다. 아직 복학은 하지 않았지만, 진수의 고향은 작은 중소도시라 일자리도 그다지 많지 않고, 편의점이나 카페 알바라도 해볼려고 해도 작은 동네라 다 아는 사람들이라 약간 불편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학교가 있는 서울로 상경해서 미리 복학에 적응도 할 겸,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며 알바를 해서 생활비도 벌고 있는 상황이었다. 처음 계획은 등록금이라도 벌어볼까? 생각도 했는데, 편의점 알바만으로는 서울에서의 생활비를 대기에도 빠듯하고...
등록금 정도를 모으려면, 상하차 알바라도 따로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약간은 무거운 마음으로 버스에서 내려, 터벅터벅 옥탑방이 있는 건물로 걸어가는 길이었다.
옥탑방으로 가는 골목길 앞쪽에는 매일 지나치는 로또방이 있었다. 요즘 로또가 꽤 인기라고 한다.
내수경기는 최악이고, 실업률도 높고, 좋은 일자리는 더 적고 말이다. 그에 비해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 아파트나 주식은 폭등하고 있었다.
뭐라도 가진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벌지만 진수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인플레로 점점 더 가난해지는 상황이었다.
워낙에 돈도 없지만 물가가 폭등하니 생활도 더 어려워지는 셈인 것이다.
소위 말하는 양극화시대, 아파트 값이 자고 나면 오르고, 강남의 아파트는 물론이고, 강북 아파트, 수도권 아파트, 이제는 지방의 아파트까지 연일 폭등에 폭등이다.
영끌이니 패닉바잉이니 그나마 안정적인 직장에서 고정 수입이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돈을 끌어모아서 막차라도 타는 모양이지만,
사실, 진수 같은 20대에는 그런 희망도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영끌도 뭐가 있어야 하는 거고, 대출을 받기도 힘들지만 대출 이자를 낼 최소의 수입도 없으니까 말이다.
사실, 아파트를 사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그래도 계속 이렇게 아파트가 가격이 오른다면 영원히 서울에 내 집을 마련하기는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울에 6억 정도로는 살 아파트가 없다는 말도 있고 말이다. 편의점 알바든 뭐라도 해서 6억을 번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데, 그렇게 6억을 벌어도 서울에 변변한 내 집 하나 사기도 어려운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찾게 되는 유일한 희망은 로또, 올 한해의 로또 판매량이 역대 최대라니 이미 대한민국은 평범한 서민들에게는 희망이 없는 헬조선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희망 없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로또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로또방을 지나치는데, 로또방 앞에 붙여 놓은 지난주 당첨 번호가 눈에 들어왔다.
“행운의 로또 1등 번호라고?”
물론 지난주 당첨번호였고 이 로또방에서 산 것도 아니었다. 그저 로또방 아저씨는 손님들에 대한 서비스인지, 아니면 일종의 유혹인지 지난 회의 1등 당첨번호를 밖에 붙여 놓는 모양이었다.
진수는 휴대폰을 꺼내서 아까 편의점에서 찍은 숫자를 살펴보았다. 모두 12자리의 숫자는 로또 당첨번호 6개 숫자의 개수가 같았다.
설마? 로또 번호인가?
물론,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에 만난 그 여자들이 진짜 여신들일 리도 없고, 과자 안에서 나온 종이에 적힌 숫자들이 진짜 로또 당첨 번호일 리도 없잖아?
하지만 그런 이성적인 판단과는 달리, 진수는 뭔가에 홀린 듯 로또방으로 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서 오세요.”
“저기, 로또는 처음 해보는데 어떻게 하는 건가요?”
로또방 주인아저씨는 50대 정도로 보이는 안경을 낀 남자였다. 약간 마른 체격에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아니, 한국 사람이 로또를 안 해본 사람도 있나? 하하, 아무튼 어려운 건 없으니까, 이쪽으로 오세요.”
그렇게 주인아저씨의 도움으로 진수는 로또 용지 하나를 받아 들고는 로또방을 나올 수 있었다.
“무슨 좋은 꿈이라도 꿨나 봐요. 처음으로 로또를 산다니..”
“아, 예. 괜찮은 번호가 생각이 나서, 수고하세요.”
진수가 산 로또는 단 한 장이었다.
“진짜, 이 번호가 로또 당첨번호인 건가? 그렇게만 되면 그야말로 인생역전인데.”
진수는 잠시 마음이 설레기는 했지만, 다시 하루가 시작되고 자취생의 고달프고 바쁜 일상이 시작되자 로또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 버렸다.
***
그리고 일주일 후, 토요일 오후.
평소라면 편의점에 손님이 없으면 공부라도 하면서 심야 알바 교대를 기다리고 있을 시간이지만 오늘은 인터넷 생중계로 로또 추첨방송을 보고 있었다.
“그럼, 아름다운 로또 걸, 신인 탤런트 유미란 씨가 번호를 추첨하도록 하겠습니다.”
“로또걸 유미란입니다. 그럼 로또 추첨을 시작하겠습니다.”
로또걸은 신인 탤런트인데 누군지는 잘 모르겠는 얼굴이었다. 아무튼, 로또 추첨기에서 첫 번째 공이 흘러나왔다.
“예, 첫 번째 로또 당첨번호는 이십삼, 이십 삼입니다.”
23? 첫 번째 번호는 맞았다. 뭐 순서는 상관없지만, 그리고 다음 번호도 07, 그리고 그다음은 45이었다.
“네 번째 당첨번호는 34입니다.”
이럴 수가, 번호는 물론이고, 순서도 그대로잖아? 진짜, 행운의 여신이 찍어준 로또 1등 당첨번호인 건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진짜 로또 당첨이라면, 진짜 진수의 인생이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남은 번호는 두 개,
“다섯 번째 당첨번호는 17입니다. 십칠...”
맙소사, 또 맞았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리고 있었다. 와, 미치겠네, 긴장감 최고다. 진짜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거 아냐...진정하자, 심호흡을 하고...휴우...들이쉬고 내쉬고...
겨우 숨을 가라앉히고 로또 방송에 집중했다.
“마지막 여섯 번째 당첨번호는 구...”
아아앗...당첨이잖아? 나도 모르게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었다.
“그리고 행운의 보너스 볼은 이십 칠입니다. 이십 칠...”
보너스 볼은 관심도 없었다. 진짜 로또 1등에 당첨된 것이었다.
편의점 문이 열리고 심영진이 들어오고 있었다.
“진수 씨,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있어요? 어디 아파요?”
산발한 머리로 머리카락을 훔쳐쥐고 잔뜩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는 진수를 보며 심영진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아뇨..배가 좀 아파서..”
“왜, 복통이 심해요? 맹장 아닌가?”
“아뇨, 괜찮아요. 그냥, 먼저 좀 퇴근해도 되죠?”
“따로 인수인계할 거 없으면 먼저 가봐요.”
다음날은 일요일이서 월요일이 되자마자 로또 당첨금을 찾기 위해 농협 본점을 찾았다.
시골 출신이라, 가끔 농협 건물을 본 적은 있지만, 농협 본점은 시골의 작은 농협 지점들과는 차원이 다른 큰 빌딩이었다.
본점 건물로 무작정 들어가서, 로또 당첨자라도 하자, 직원들이 미소를 지으며 안쪽 사무실로 안내를 했다.
“일단은 신원확인을 해야 하니까요. 신분증과 로또 용지를 보여주시겠습니까?”
“아, 예.”
로또 당첨과 신분 확인을 마치자 농협의 담당 직원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진수에게 악수를 청했다.
“축하드립니다. 최진수 씨, 로또 1등에 당첨되셨군요.”
“와, 믿어지지가 않네요. 내가 로또 1등이라니.”
“하하,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하죠. 어쨌든, 로또는 누군가는 당첨되니까요. 운이 아주 좋으셨던 거죠.”
물론, 단순한 운일 수도 있지만, 그 티케라는 여자는 진짜 행운의 여신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당첨금은 얼마를 받는 건가요?”
“세금이 제법 붙기 때문에, 약간 실망하실 수도 있지만, 실수령액은 14억 2천만 원 정도네요.”
14억?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한 큰 돈이었다. 내 인생에 10억이 넘는 돈을 벌게 되다니...
“와, 엄청 많은데요. 전 편의점 알바를 하는데, 제가 백 년을 벌어도 못 벌 돈이네요. 사실, 계산을 해보고 한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대충 지금 알바로 받는 돈을 계산해보니, 백 년은 벌어야 하는 돈과 거의 비슷하기는 했다.
백 년 치 알바비를 한 방에 번 셈이었다. 이제 백 년 동안 알바는 안 해도 되는 건가?
하하, 그나저나 이 돈으로 뭘 하지? 14억이면, 미국 달러로 백만 달러가 넘네. 나도 말로만 듣던 백만장자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