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파트
편의점 사장님에게는 죄송한 일이지만, 일단 편의점은 그만두기로 했다. 그나마 불경기로 편의점 알바 지원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라, 진수의 후임 알바를 구하기는 수월해서 다행이었다.
오히려 사장님은 그런 진수를 걱정해주시기까지 하셨다.
“요새, 알바든 뭐든 구직이 어려운 세상인데, 그렇게 그만두면 나중에 이런 알바도 구하기 어려워. 괜찮겠어?”
“아, 예, 이제 복학도 해야 하고 공부에 전념해 보려고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공부에는 큰 관심이 없어져 버렸다. 공부를 해서 좋은 직장을 갖게 되고 그런다고 해서 진수의 인생에 큰 변화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개인이 능력만으로 성공하기에는 이미 미쳐 돌아가는 세상이었다.
편의점을 그만두고 다시 옥탑방으로 돌아와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장이 진수의 미래의 성공을 가져다줄 거라는 기대는 없어진 지 오래였지만, 그래도 시골에 계신 부모님 눈치도 있고 일단 복학은 하기로 했다.
그리고 로또 당첨금으로는 뭘 할까? 부모님에게 돈을 좀 보내드릴까?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골에서 농사도 지으시고 작은 가게도 경영하신다. 당장, 생계가 어려운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로또에 당첨이 되었는데, 말씀을 안 드릴 수도 없고 말이다.
일단, 부모님에게 로또 당첨을 알리고 용돈이라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무진시, 진수의 고향집
“정말이냐? 로또 1등에 당첨되었다고?”
아버지는 좀처럼 믿겨지지가 않으신다는 표정이었고, 엄마도 약간 놀란 얼굴이었다.
“그럼, 상금이 얼마나 되는 거야?”
“세금 떼고 14억 정도예요.”
“14억? 와, 대단하네. 엄청 큰 돈이구나. 횡재도 이런 횡재가 없는 거지.”
“저기 아버지, 어머니, 이 돈으로 뭘 할까요?”
진수는 선물로 사 온 홍삼과 백화점에서 산 옷과 구두를 내밀며 말했다. 태어나서 부모님에게 옷을 사드리는 것도 신발을 사드리는 것도 처음이었다. 거기에 몸에 좋다는 홍삼까지.
“아이고, 뭘 이런 걸 다 사와?”
“여보, 어때요? 우리 진수가 열심히 살고 군대도 갔다 오고 하니까, 하느님이 복을 주셨나 본데. 안 되겠다. 일단 감사 기도부터 드리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신 어머니는 이 모든 행운이 주님의 은총이라며 기도부터 하시자고 하셨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달리 무교다. 진수도 그렇고 말이다. 어쨌든 어머니의 기도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남은 돈을 사용할 방법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이 아버지가 뭘 알겠니? 시골에 농사짓고 그러는 촌부인데. 그렇지만 주변에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러니저러니 해도 서울에 집 하나 가지고 있으면 손해는 안 본다고 하더구나.”
“뭐, 그렇기는 하죠.”
진수도 서울에 아파트가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기는 했다. 부모님에게 돈 쓸 일이 없으신가 물어봐도 당장 급한 곳은 없다고 하셨다.
그래도 부모님에게 일단 천만 원씩 2천만 원을 용돈으로 드렸다.
“이게 뭐니?”
“제가 그동안 용돈 많이 받았잖아요. 이제는 제가 용돈 드려야죠.”
미리, 은행에서 뽑아온 5만 원권들이었다. 모두 4백 장으로 세뱃돈 봉투에 두둑하게 담아서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두 개씩 나눠 드렸다.
“아, 이런 걸 뭐하러? 너나 쓰지. 참, 그리고 그래도 14억으로 진수 네 인생이 크게 성공했다고 할 수는 없다는 거 너도 알지?”
“그럼요? 이걸로 뭐, 재벌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래, 알면 됐다. 그냥, 길가다 횡재 한 번 했다고 생각하고 이건 그냥 집이나 하나 사둬. 그리고 학교 복학하고 전처럼 살아.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예,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물론, 아버지의 말씀도 맞다. 로또 1등의 행운이 단 한 번뿐이라면 은행이든 아파트든 주식이든 돈을 묻어 두고 그냥 살던 인생을 사는 게 가장 안정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로또 1등 한 번으로 인생역전이 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말씀드리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요, 행운의 과자가 들어있는 유리병...
과자를 또 먹으면 다시 로또 1등에 당첨되는 것일까?
물론, 그건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로또에 연속으로 1등에 당첨이 가능한 건가?
인터넷을 뒤져보니 로또에 연속 당첨이 된 사례는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외국에서 로또에 여러 번, 물론 몇 년의 간격으로 말이다.
혹은 다른 복권에 연속으로 당첨된 사례는 좀 있었다.
고향에 갔다가 다시 서울 옥탑방으로 돌아온 진수는 과자병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냥 쳐다본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진수는 다시 뚜껑을 열고 과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직, 과자는 한 개만 먹은 상태였다.
두 번째 과자, 이번에도 안에 종이가 있는 건가? 진수는 살짝 한 입만 깨물어서 안쪽으로 살펴보았다.
“뭐지? 텅 비어 있네. 이건 꽝이라는 건가?”
과자 속에 당연히 종이가 들어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무것도 없었다. 약간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남은 과자를 입속에 넣고 바삭거리는 과자를 씹어보았다.
그런데 뭔가 입안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뭐야? 퉤..입안에 혀끝에 뭔가 닿는 느낌에 뱉어보니, 역시 작은 종이쪽지가 들어있었다.”
이번에도 접혀있는 작은 쪽지를 펴보니 작은 숫자들이 있었다. 휴대폰으로 촬영 후 확대를 해보았다.
‘027225777’
이런 숫자였다.
“뭐지? 로또 번호인가? 그런데 로또라면 숫자가 세 개 모자란다.
02면, 서울 지역 번호인가? 전화번호?
모르겠다? 전화번호라면 눌러보자, 진수는 02-722-5777을 눌러보았다. 722면 어디야?”
“여보세요. 종로 행복 부동산입니다.”
부동산?
“아, 예. 거기 부동산이죠?”
“예, 종로 행복 부동산 서지현 대리입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해 상담해드리겠습니다.”
여자네? 그런데 목소리가 예쁘다. 상담 한 번 받아봐?
“저..저기..”
“예, 말씀하십쇼. 특별히 찾으시는 매물이 있으신가요? 월세, 전세, 매매도 다 가능하고요.”
“저기, 아파트를 사고 싶은데요.”
“아파트 구매를 원하시는 건가요? 음, 마침, 괜찮은 매물이 급매로 나온 것이 있는데 한 번 임장 가보시겠어요?”
“임장요?”
“예, 부동산 거래를 위해서 직접 현장을 방문하는 걸 임장이라고 합니다. 지금 종로 경희궁 삼영 아파트에 급매물이 있는데, 가격은 매매 12억 5천, 전세는 9억에 가능하십니다.”
음, 뭐지? 좋은 건가? 나쁜 건가?
“현재 경희궁 일대의 아파트는 인기가 좋고 추가 가격 상승도 기대되서 매물이 거의 없는 상태인데, 지금 매물이라면 정말 운이 좋은 겁니다. 사시면 절대 후회 안 하실 거고요.”
운이 좋다고? 하긴, 행운 과자에서 나온 종이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해서 나온 부동산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행운은 부동산 구매 운인가?
마침, 아파트를 하나 살까 고민하고 있는데 해결책을 준 셈이었다.
“예, 그럼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일단, 저희 부동산 사무실을 방문하셔서 같이 매물을 확인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고객님.”
***
행복 부동산.
서지현은 상담을 하러 들어온 진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어머, 굉장히 젊으신 분이네요.”
“예, 대학생입니다.”
“몇 학년요?”
“올해 복학하면 2학년이죠.”
“군입대로 휴학한 거겠죠?”
“예, 만기전역을 했습니다.”
원래, 군대야 대부분 만기전역이지만 말이다. 아직, 진수에게는 남들에게 딱히 내세울 만한 경력이나 그런 것이 없었다. 유일하게 남들 다 가는 군대를 다녀온 게 나름의 자랑이라면 자랑이었다.
“경희궁 삼영 아파트는 비교적 신축이고,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꿈의 아파트라고 할 수 있죠. 광화문과 가깝고, 교통도 편리한 편이고요. 지하철과의 연계가 좋아서 대학생들도 살기에 좋죠. 지난번에 말씀드린, 25평형 매물이 급매로 12억 5천에 나온 게 있는데 한 번 보시겠어요?”
아파트는 고사하고 작은 빌라 한번 사본 적이 없는 진수였다. 돈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약간 부담스럽기도 해서 전세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2억 5천요? 전세도 가능한가요?”
“이 매물과는 좀 다르지만, 비슷한 평형으로 전세 9억짜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유 자금이 있으시면 지금 급매물을 사두시는 게 이익이라고 할 수 있죠. 위치가 좋고 지금 강북에서 개발제한 등의 이유로 이렇게 좋은 위치에 아파트는 당분간 안 나온다고 보시면 돼요.”
“가격이 오를 거라는 거죠?”
“다른 곳은 몰라도 여기는 당분간 상승세가 유지되라고 봅니다.”
“일단, 어떤지 한번 보고 싶은데 아파트를 보러 갈 수 있죠?”
“그럼요. 지금 같이 가세요.”
***
경희궁, 삼영 아파트.
“여기가 2단지 입구고, 저쪽 아래는 3단지입니다. 단지가 좀 분리가 되어 있는데. 그래서 2단지 쪽이 더 커뮤니티나 녹지 조성이 잘 되어 있어요. 아파트 자체는 같은 규격이지만, 그래서 2단지가 가격도 더 비싼 편이고요.”
“음, 와, 입구 쪽 조경이 예쁘네요.”
진수는 서지현의 안내를 받으며 경희궁 삼영 아파트 2단지로 들어섰다. 입구 쪽은 마치 숲처럼 그럴듯했는데 막상 들어서니까. 아파트 단지 안은 그렇게 녹지가 많은 느낌은 아니었다.
서지현 말로는 단지들이 여기저기 분할 되어 있는 형태라 단지 중앙에 넓은 녹지가 조성되지는 못 했다고 했다.
“아무래도, 도심 중심가라 단지 조성이 약간 복잡하게 되어 있어요. 하지만 그만큼 시내 중심가에 가깝다는 의미도 되는 거니까. 도심으로의 접근성이 좋다고도 할 수 있겠죠.”
“창문들이 그렇게 크지는 않네요?”
“예, 그렇게 대형 평수의 아파트 단지는 아니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작은 평형이 많고, 강북 중심지에 있는 아파트 단지라 직장인이나 젊은 부부들이 사는 그런 개념이거든요. 아주 고급은 아니라는 거죠.”
“하지만 젊고 가족이 많지 않으면 위치나 주변 환경은 좋은 편이겠군요?”
“그런 셈이죠. 아마, 최진수 고객님에게는 딱 적합한 아파트라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고급 아파트는 아닌 것 같았지만, 실내로 들어가 보니 그런대로 깔끔한 구조였다. 진수가 매물을 보러 간 곳은, 25평의 A타입으로 사각형에 가까워서 인기가 많은 구조라고 했다. 방은 3개에 욕실이 2개였다.
전체적으로 으리으리하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공급면적이 25평에, 전용 면적은 18평이라고 하니까, 혼자 살기에는 확실히 좋은 아파트였다.
“어떠세요? 이 정도면 공간이나 뷰도 좋고요. 학생이시면 교통도 편리하고, 나쁘지 않죠?”
“맘에, 드네요.”
행운의 과자는 이번에도 진수에게 좋은 행운을 가져다준 것 같았다. 아마, 이 아파트를 사면 서지현이라는 여자 중개사의 말대로 가격도 오를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계약하시겠어요. 이건, 시세보다 진짜 싸게 나온 거라, 지금 계약하시지 않으면 내일이라도 다른 사람이 계약할 수도 있어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좋은 행운의 기회라는 거죠.”
“좋습니다. 당장 계약하죠.”
다소 급발진하는 감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기 전에 대충 경희궁 삼영 아파트 시세를 확인했는데, 확실히 현재 평균 시세보다 2억 이상 싼 가격은 분명했다.
그래서 혹시 아파트에 치명적인 하자가 있지는 않을까? 했는데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고 말이다.
진수는 약간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생에 첫 번째 부동산 매매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이제 지방 출신의 시골뜨기 최진수도 서울에 내 집 마련, 그것도 아파트를 살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것도 강북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종로의 좋은 위치였다. 우중충하던 최진수의 인생에도 뭔가 서광이 비치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