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로또
“그래서, 그 냄새 나는 기름 덩어리는 어떻게 했는데?”
“어, 그거? 뭘 어떻게 해? 그냥 도망쳤지, 그건 아마 그대로 모래사장에 있을 걸.”
횟집 알바를 마치고 나온 은채는 진수의 말에 뭔가를 골똘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후에 뭔가 결심한 듯 진수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 은채야, 왜?”
“가자.”
“어디로?”
“아까, 그 냄새 나는 기름 덩어리가 있는 곳으로.”
뭔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진수로서는 바다에서 별 재수 없는 물건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은채는 다시 그곳으로 그리고 그 냄새나는 역겨운 그 덩어리에게 가자는 것이었다.
“야, 그게 생긴 것도 그렇고, 냄새도 안 좋고, 뭔가 무슨 폐기물일 수도 있어.”
“일단 가보면 알겠지.”
은채는 진수의 팔에 팔짱까지 끼면서 진수를 다시 해변 쪽으로 끌어당겼다. 왠지, 은채랑 팔짱을 끼고 있으니까, 기분이 좋은데...
뭐, 은채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은채랑 다시 한적한 해변길을 걷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저녁 무렵이 되자, 날씨가 더 선선해져서 오히려 바닷가를 산책하기에는 더 좋은 것 같았다. 그리고 여름이라 해도 길어서 날도 환하고 말이다. 음, 약간 어둑해지는 것이 더 좋았으려나?
아무튼, 그 덩어리가 사라져 버렸기를 바라면서 다시 아까 그 길을 다시 걸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혼자 쓸쓸하게 걷는 것이 아니라, 은채와 함께였다.
혹시 아까 혼자 진수가 좁아지는 모래사장 길을 따라 포구 쪽으로 걸어가던 걸 본 사람이 있다면 상당히 쓸쓸해 보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물에 뛰어드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지금 누군가 진수와 은채를 보면 두 명의 연인이 데이트를 한다고 생각하겠지? 그것도 여자가 엄청 예쁘다고 생각하면서 부러워하며 말이다.
뭐든지 부러워하면 지는 건데 말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부러워하게 하면 이기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몸매 종결자인 정은채와 이 호젓한 모래사장 길을 걷고 있는 나는 진정한 승자인 것이다.
“여기에서 그걸 본 거야?”
“어, 승자, 아니...그 덩어리는 그렇지, 저 끝에 파도에 떠밀려서 올라와 있었는데, 지금도 있으려나?”
사라져 버렸기를 바랬던 그 문제의 덩어리는 진수의 기대와는 달리 아직 모래사장 위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저기야.”
은채는 무슨 생각인지 그 냄새 고약한 덩어리로 재빨리 다가가고 있었다.
“은채야, 그거 조심해. 아주 냄새가 역겹다고.”
하지만 진수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은채는 그 덩어리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 보았다. 그리고 이내 얼굴을 찌푸렸다.
“아우, 진짜네.”
“거봐, 그런 걸 뭘 보러 여기까지 오자고 그래, 이제 됐지? 그만 가자고.”
포구 쪽으로 향하며 모래사장이 좁아지는 곳이라 지금 진수가 있는 모래사장은 폭이 2미터도 채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피서객들도 이곳까지는 일부러 찾아오지 않는 외진 곳이었다. 이런 곳에 은채와 단둘이 있다니..
은채는 식당에서 일할 때와는 달리, 핫팬츠 차림이었다. 거기에 슬림한 흰색 티셔츠 하나를 걸치고 있었는데, 바닷가에서 특별할 것 없는 그런 모습이기는 했지만 은채 특유의 글래머러스한 체형과 어우러져 뭔가 도발적인 느낌마저 풍기고 있었다.
그런 은채와 이런 외진 곳에서 둘만이 있다니...
“이거 용연향인 것 같아. 진수야.”
“용연향? 그게 뭔데?”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고래의 배설물이야.”
“뭐, 역시, 그럴 것 같더라니, 그러니까 고래의 그거라는 거잖아.”
왠지 은채 앞에서 더러운 단어를 언급하기가 미안해서 돌려 말하게 되었다. 어쨌든, 고래의 배설물이라고 생각하니까, 더 역겨운 기분도 들고 말이다. 빨리 여기서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야, 그 말 듣고 보니 더 여기 있기 싫은데. 빨리 돌아가자. 내가 커피든 저녁이든 쏠게.”
“진수야, 그게 아니야. 이건 엄청난 거라고.”
하긴, 엄청나긴 엄청나다. 배설물치고는 사이즈가 어마어마한 녀석이었다. 그래서 더 역겹고 말이다.
“고래 배설물이니까, 사이즈가 큰 거겠지. 아무튼, 신기하기는 한데. 은채 너 이쪽으로 나와 옆에 있으면 뭔가 오염될 것 같은 기분이야.”
“최진수 넌, 용연향이 뭔지 모르는구나?”
“고래 배설물이라면서?”
“그게 아냐, 이건 바다의 로또라고.”
“바다의 로또?”
무슨 말이지? 로또라면, 대박, 큰 돈을 벌게 해주는 행운이라는 그런 의미로 말하는 걸 텐데. 이게 그러니까, 저 냄새 나는 고래 배설물이 돈이 된다고?
***
다음날 오전, 속초시, 장사동 어촌계 회관
“용연향이라고? 진짜네. 허허, 아가씨가 발견한 건가?”
“아뇨, 제가 발견한 건 아니고, 서울에서 온 제 친구가 찾은 거예요.”
영량해변 주위는 장사항이라는 포구로 유명한 곳이고, 피서지보다는 어업 활동과 그에 따른 수산물, 횟집 등이 더 유명한 곳이다.
그리고 그런 어업인들이 공동으로 설립한 조합이 어촌계라고 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해 수협의 하부조직으로 농협과 비슷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진수는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지만, 속초 출신의 은채는 바다에서 발견한 용연향에 대해서 여기서 물어보자고 한 것이었다.
아무튼, 어촌계장이라는 아저씨는 진수와 은채가 들고 온 그 용연향이라는 커다란 덩어리를 살펴보더니 감탄을 하기 시작했다.
“야, 나도 용연향이라는 건 말로만 들었지, 직접 보는 건 처음인데, 이 젊은이가 아주 대박이 터졌네. 이거 엄청 비싼 거야.”
“그게, 그렇게 비싼 건가요?”
은채가 그 문제의 덩어리가 아무래도 향유 고래의 배설물인 용연향이라는 것 같다면서 진수에게 어촌계로 가져가 보자고 한 것이었다. 은채의 말로는 용연향은 바다의 로또 내지는 바다의 산삼으로 불리는 고가의 재료라는 것이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비싼 건가요?”
“그건 말이야.”
나름 부경대학, 수산과학대학 학사 출신이라는 어촌계장 아저씨는 용연향에 대해서 일장 설명을 하기 시작하셨다.
“용연향은 수컷 향유 고래에서 나오는 일종의 내장 분비물, 내장에 쌓인 지방 찌꺼기라고 할 수 있지. 영어로는 엠버 그라스라고도 하는데, 정확하게 어떤 물질인지에 대해서 과학적인 연구가 있는 건 아니야, 하지만 유분이 많은 지방으로 단순 배설물은 아니고 내장에 모인 지방이 일시적으로 배출되는 거라는 정도가 알려져 있지.”
“그래서 이게 왜 비싼 겁니까?”
“이게, 냄새는 고약하기는 한데, 이 용연향은 고대부터 고급 향수를 만드는 원료가 되거든, 마치 사향과도 비슷한 거야, 사향도 수컷 사향 노루의 분비물이잖아? 그런 것처럼 향유 고래의 내장 기름 배설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용연향도 아주 진귀한 향수 원료로 쓰였던 거야.”
음, 듣고 보니, 뭔가 귀한 원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악취가 나는 걸로 어떻게 향수를 만든다는 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거야 뭐, 향수 제조업자들이 생각할 일이고. 아무튼, 꽤 비싼 천연 원료라는 말인데...
역시, 행운과자의 행운 덕분인 건가? 바다에서 우연히 뭔지 알지도 못하는 용연향을 발견하다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굉장한 행운이 분명했다.
“그런데, 저 어촌계장님, 이걸 팔 수도 있는 건가요?”
“글쎄. 이게 엄청 비싸다는 이야기는 들어봤는데, 흔하게 거래되는 건 아니라서. 우리 어촌 공판장에서 거래하는 건 아니거든.”
“음, 그렇기는 하겠죠. 흔한 물건은 아닐 테니까.”
“아무튼, 임자만 만나면 로또나 산삼 못지않게 큰 돈을 받을 수 있는 건 분명해. 뭐, 당장 처리하기 어려우면 나에게 팔면 어때?”
“예?”
“내가 한 1억에 구매할 생각은 있는데.”
“1억요?”
바다에서 주운 물건, 아니 배설물 덩어리를 1억을 받고 파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 정도면 상당한 돈이기도 하고 은채에게 그 돈을 나눠 갖자고 해도 될 것 같고 말이다. 용연향을 처음 발견한 건 진수지만, 그 가치를 알아본 것은 은채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은채도 어려운 살림에 도움이 될 테고.
“어때, 나에게 이걸 팔겠어?”
어촌계장 아저씨는 진수가 관심을 보이는 것 같자, 왠지 탐욕스러운 눈빛이 되어 있었다. 뭔가 용연향을 헐값에 넘기는 기분이 그래서인지 진수에게 들었다.
“저, 잠시만 생각해 보고요.”
1억이 작은 돈은 아니지만, 바다의 로또치고는 액수가 너무 적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잠시 생각해 보겠다고 밖으로 나왔다.
“은채 네 생각은 어때?”
1억에 용연향 덩어리를 팔라는 어촌계장의 제안에 은채도 잘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글쎄, 나도 그걸 어떻게 처분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지. 가격도 잘 모르겠고.”
하긴 은채가 용연향 전문가는 아니니까 말이다.
“은채야 여기서 잠깐 기다려.”
“어디 가려고?”
“화장실에 좀 다녀올게.”
진수는 화장실 핑계로 어촌계 회관 뒤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배낭에서 과자가 담긴 병을 꺼내 들었다.
“그래, 행운 과자 하나를 더 먹어보자, 그러면 뭐라도 나오겠지.”
진수는 과자 하나를 꺼내 천천히 입안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과자가 바삭거리며 씹히다가 어느 순간 혀끝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있다. 빙고...”
작은 종이를 꺼내 조심스럽게 펴보자, 숫자가 또 나왔다. 이번에도 스마트폰으로 촬영 후 확대....
‘01054264545’
이런 숫자였다.
역시 전화번호인가?
일단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전호를 걸어 보기로 했다. 번호를 누르자, 신호가 가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누구시죠?”
“아, 저...”
이 번호의 주인은 누구일까? 이름도 모르고 뭐 하는 사람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뭐라고 하지?
“저기, 용연향을 팔고 싶은데요.”
어차피, 누군지도 모르고, 진수가 원하는 사람의 번호가 아니라면 그냥 잘못 걸었다고 하고 끊으면 그만이었다.
“저기 지금 뭐라고 하신 건가요?”
“용연향 말입니다. 향유고래에서 나오는 그 용연향요.”
잠시 전화기 너머에서 침묵이 흘렀다.
“저기 용연향을 어디서 구하셨나요?”
이것 봐라? 아주 잘못 건 전화는 아니네, 일단 용연향이 뭔지는 알고 있잖아.
“여기는 속초입니다. 속초에 장사항이라는 작은 포구인데요. 해변을 걷다가 우연히 용연향을 줍게 되었거든요.”
“그래요? 정말, 진짜 용연향이 맞나요?”
“예, 여기는 장사 어촌계 회관인데, 여기 어촌계장님이, 무슨 수산과학대 출신이라고 하더라고요. 아무튼, 어촌계장님 말씀이 용연향이 맞는 것 같다고 자기에 팔라고 하는데 말이죠.”
“음, 그래요? 바다에서 주운 용연향을 팔고 싶다는 말이군요.”
“예, 혹시 그래서 관심이 있으신가 해서요.”
“마침, 용연향이 우리 회사에 필요하기는 한데. 그럼 가격은 얼마나 생각하고 있습니까?”
“가격요? 글쎄요. 가격이 어느 정도나 하는 건가요?”
“일단 품질을 봐야겠지만, 무게가 어느 정도 되나요?”
“꽤, 무겁습니다. 돌덩이 같아요. 지방이라 바다에 둥둥 뜨기는 하는데, 한 80킬로 정도 되는 것 같던데요.”
“그래요. 상당히 크네요. 그 정도의 용연향이라면 가치가 상당하죠.”
“그럼 얼마나 받을 수 있는 건가요?”
“최상품이라는 걸 전제로, 3천에 4천만 원 사이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삼천에서 사천 만 원요?”
뭐야? 1억도 안 되는 건가? 어떻게 된 거야?
“그럼 최대 4천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예, 그 정도면 최대한 많이 쳐 드리는 겁니다. 최상급일 경우에 말이죠.”
“아, 그렇군요.”
아무래도 어촌계장에 파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전화를 끊으려는데.
“혹시 다른 곳에 연락해도 그 이상의 가격을 받기는 어려울 겁니다. 1kg에 4천 이상을 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으니까요.”
“예? lkg에 4천만 원이라고요? 아까 말하신 게 킬로그램당 가격인가요?”
“하하, 당연하죠. 용연향이 80kg에 4천만 원이라고 생각한 건가요? 당연히 1kg당 가격입니다.”
뭐지? lkg에 4천이면, 80kg이면, 팔사 삼십이, 3억 2천, 아니, 32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