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와 포르쉐
코코 인터네셔널 본사. 사장실
진수는 상자를 천천히 열어보였다,
“이게, 그 겁니다. 흠, 좀 냄새가..쿨럭...”
대체 이 용연향인지 뭔지로 어떻게 향수를 만든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진수의 코에는 엄청난 악취에 불과한데 말이다.
“와, 진짜, 굉장히 크네요. 무게를 좀 재보겠습니다. 음, 79.8kg이군요.”
용연향의 무게는 거의 80kg에 달했다.
“최상급의 용연향이군요. 킬로당 4천만 원의 가치는 있는 물건입니다.”
박상현은 외국에서 고급 화장품과 향수 등을 수입하는 코코 인터네셔널의 대표였다. 나이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걸 봐서는 자수성가형보다는 금수저 집안 출신처럼 보였다.
“그러면 이걸 킬로그램 당 4천만 원에 사겠다는 겁니까?”
“예, 물론이죠. 이런 대형 용연향은 드문 물건이니까요. 마침, 저도 이게 필요하던 참입니다.”
코코 인터네셔널은 고급 향수류를 수출입하기도 하지만 향수나 화장품 원료를 외국 화장품 회사들에 납품하는 일도 하고 있는데, 요즘 용연향을 찾는 수요가 많다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진수가 가져온 것처럼 대형 용연향은 쉽게 구하기 어렵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악취 덩어리로 어떻게 향수를 만든다는 건가요?”
진수의 질문에 박상현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용연향 자체가 어떤 향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향을 보존하는 기능이 있어서 다른 향수에 첨가하면, 향을 오랫동안 보존하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고급 향수일수록 은은한 향기가 오랫동안 유지되는 것이 아주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최고급 향수를 제조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한 원료가 되는 거죠.”
박상현 사장은 용연향의 기능에 대해서 간단한 설명을 해주었다.
아무튼, 고급 용연향에 만족했는지, 박상현 사장은 30억 넘는 용연향을 흔쾌히 구매하기로 했다.
***
속초시 영량해변길, 카페.
“그래서 32억을 받고 그 용연향을 팔기로 한 거야?”
은채는 짧은 데님 스커트를 입고 카페로 나왔다. 뭘 입어도 몸매가 좋아서 그런지 모델처럼 섹시한 느낌의 은채는 진수가 용연향을 팔았다는 말에 한껏 호기심 어린 표정이었다.
“그래, 뭐, 거기보다 더 좋은 가격을 받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축하해, 역시 진수 너는 운이 좋은 모양이야.”
“내가? 하긴 그렇지.”
나의 운이 좋다기보다는 행운의 과자 덕분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긴, 그게 그거니까..
“은채야, 그래서 말이야. 용연향은 은채 너랑 같이 찾은 거니까, 돈은 반씩 나누면 되는 거겠지?”
“돈을 나눈다고? 하지만 그건 진수 내가 발견한 거잖아?”
은채는 의외로 용연향의 소유권에 대해서는 초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돈에 욕심이 없는 건지, 형편이 많이 어렵기도 해서 돈이 많이 필요할 텐데..아니면, 진수가 알아서 돈을 나누기를 기다리는 건가?
뭐, 은채의 속마음까지 알 수는 없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은채의 태도는 일단은 용연향은 진수가 발견했으니 진수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용연향을 찾은 건 사실이지만, 은채 내가 말해주지 않았으면 그게 뭔지도 몰랐을 테니까, 어쨌든, 우리 둘의 공동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잖아?”
“그래서 정말, 그 용연향을 판 돈을 나랑 나누겠다는 거야?”
“그래, 그 코코 인터네셔널에서 받기로 한 돈이, 31억이 조금 넘거든, 둘이 나눠도 15억이 넘는 돈이야.”
은채는 진수가 돈을 나눠주겠다는 말에도 그다지 기뻐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갑작스럽게 큰 돈이 생긴 실감이 나지 않는 듯 약간 멍한 얼굴이었다.
남자가 그런 멍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얼빠진 녀석처럼 보일 텐데, 미모의 여성이라 그런지, 그런 백치 같은 표정도 은근히 매력이 있는 은채였다.
“은채야, 정신 차려, 이 돈이면, 너희 아버지 병원비 걱정도 없고, 너도 하고 싶은 일 다 할 수 있다고.”
그제야, 은채도 상황 파악이 됐는지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들기 시작했다.
“고마워 진수야. 다 네 덕분이야. 그동안 너무 힘들었는데, 진수 너를 하느님이 나한테 보내주셨나 봐.”
뭐지? 하느님이라? 은채도 교회에 다니나? 상상이 되었다. 엄마와 은채가 같이 일요일마다 교회에 같이 나가고, 진수는 두 고부의 종교활동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다시 침대에서 잠에 빠져드는 어떤 일요일 오전의 풍경 말이다.
은채는 그동안 힘들었던 감정들이 한 번에 쏟아져 나오는지는 카페 안에서 펑펑 울기까지 했다. 은채가 울기 시작하자, 카페 안의 사람들이 그런 은채와 진수를 힐끔거리기 시작했다.
뭐지? 여자를 울리는 남자로 보이는 건가?
뭐, 이런 상황이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나쁘지는 않았다. 다들 진수를 어떻게 볼까? 은채 같은 초특급 미녀를 울게 하는 그런 남자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 걸까?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은채가 내 앞에서 이렇게 눈물까지 보이면서 자신의 내면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뭔가 은채와 특별한 관계가 된 느낌에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쏟아내던 은채는 겨우 눈물을 멈추고 화장실에 다녀왔다.
화장실에서 돌아왔을 때는 화장도 고치고 다시 말끔해진 얼굴, 그리고 언제 그렇게 울었나 싶게 밝은 얼굴로 진수에게 활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처음 은채 소식을 들었을 때, 은채가 불행해진 것 같아서 마음이 안 좋았는데 다시 은채는 행복을 되찾은 것 같았다.
그리고 진수도 덕분에 15억이 넘는 돈을 벌게 되었고 말이다. 그리고 행운의 과자는 많이 있으니까, 앞으로도 돈을 벌 기회는 더 많을 테고 말이다. 은채의 밝은 얼굴처럼 진수의 인생도 밝은 미래가 환하게 열리는 느낌이었다.
***
진수는 속초에서 돌아와 본격적으로 복학 준비를 시작했다. 학교에 복학신청도 하고,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도 했다.
사실, 그동안은 차도 없고 당분간 차를 살 계획도 없었는데, 이번에 속초까지 갔다 오다 보니까, 차가 없으니까, 여기저기 돌아다니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시내에서야 대중교통만으로 큰 불편은 없지만 지방 같은 곳은 차 없이 다니기 어려운 곳이 많으니까 말이다.
***
운전면허 학원
“이번 도로 주행만 합격하면 되는 거죠?”
“예, 연습한 대로만 하면 무조건 합격입니다. 어려울 건 없어요.”
같이 옆에 동승한 강사의 말대로 이미 여러 번 연습을 한 코스였다.
“오늘은 A코스입니다. 길은 아시죠?”
A 코스라면 비교적 쉬운 곳이다, 시 외곽으로 가는 코스라, 차가 별로 없는 2차로를 따라서 쭉 갔다가 돌아오면 되는 코스다. 점수를 따는 시험이라기보다 감점을 안 받는 것이 중요한 시험이니까. 아무래도 초보운전자에게는 다른 차들이 없는 곳이 더 편하기도 하고 말이다.
역시, 오늘도 운이 좋은 편인가?
행운의 과자 없이도 운이 따르는지 면허도 쉽게 따고, 그다음은 차가 필요했다.
***
강남의 수입차 매장, 제이에스 인터네셔널
“수입차를 찾으시는 거죠?”
수입차 매장의 여직원은 진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짙은 회색 정장 차림의 여직원은 가슴에 최선화라는 명찰을 달고 있었다.
깔끔한 인상에 짧은 미니스커트가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약간 보이시한 듯 상큼한 인상에 힐 때문인지 상당히 늘씬해 보이는 몸매였다.
그에 비해 진수는 편한 청바지에 운동화, 체크 셔츠 차림으로 그냥 평범한 대학생 정도의 모습이었다.
화려한 강남의 수입차 전문 매장의 화려한 분위기와는 좀 이질적인 느낌에 양복이라도 입고 올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실, 정장도 갖고 있지 않는 진수였다. 정장을 입을 일도 없으니까 말이다.
옷차림과 어려 보이는 얼굴 때문인지, 최선화 대리는 그다지 진수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지는 않았다. 이 매장의 비싼 차들을 살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걸 최선화의 편견이라고 할 수만도 없는 것이, 보통 진수 정도 나이의 서민 출신의 대학생이라면 이 매장의 차들을 구매할 능력이 없는 것이 정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원래 진수가 사려던 차는 국산의 소형차 같은 것들이었다.
면허 시험장에서 운전해본 차들도 그런 차들이었기 때문에 그냥 작은 국산차를 사볼까 생각했던 것이다. 소위 말하는 생애 첫 엔트리카로는 그런 차들을 많이 고르기도 한다니까 말이다.
하지만 용연향을 코코 인터네셔널에 매각해서 15억이 넘는 현금이 생겼는데 남들 다 사는 그런 평범한 차는 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좀 있으면 대학에 복학하게 된다. 진수가 행운의 과자 덕에 아파트도 사고 나름 돈도 벌었고, 앞으로도 더 큰 부자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학교에 복학을 하게 되면서 전처럼 존재감 없는 의미 없는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운전면허도 딴 김에 차라도 멋진 녀석을 하나 뽑기로 한 것이다.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대한민국에서 인간을 평가하는 척도는 돈이나 외모 사회적 지위 같은 외형적인 것들이니까 말이다.
비록 화려한 외모를 가지지는 못한 진수였지만, 행운의 힘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큼 비싼 차를 살 돈을 갖게 된 것이다. 진수도 그런 관종적인 삶을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진수에게 롤모델이라면 좀 그렇지만 흉내내 보고 싶은 사람이 하나 떠올랐는데 그건, 바로 과 동기인 한승호였다.
한승호라면 외모만 보면 진수보다 나을 것도 없는 그저 그런 녀석이었다. 하지만 워낙 부잣집 금수저 출신이라 평범한 외모라도 좀 귀티가 나 보이는 그런 것이 있었다. 그리고 신입생 시절부터 학교에 스포츠카를 몰고 오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게 아마 포르쉐인가 그랬던 것 같은데.
한승호가 학교에서 인기인이 되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그 포르쉐였던 것이다. 입학 초기에 낡은 기타 하나를 메고 다니던 진수는 철저하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존재였지만. 한승호는 고급 수입차인 포르쉐를 타고 다닌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학교에서 유명인이고 인기를 끌었다는 것이 진수의 생각이었다.
실제로 과방에서 기타를 치고 있던 진수에게 별 관심이 없던 여학생들이 승호가 잠시 진수의 기타를 빌려서 되지도 않는 코드 몇 개를 치는 걸 보고 잘 친다고 멋있다고 했던 기억도 있고 말이다.
그때의 불쾌했던 기억 때문에 그 후로는 기타를 가지고 학교에 오지 않았던 기억이었다. 아무튼, 여자들, 아니 사람들은 기타보다는 포르쉐 같은 고급 슈퍼카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큰 돈이 생긴 김에 멋진 슈퍼카를 질러보고 싶은 생각이었다.
“저기 포르쉐 같은 차를 찾고 있는데요.”
“포르쉐요? 그런 차는 가격이 상당한데요. 대학생이신 것 같은데 맞죠?”
“예, 맞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유산을 좀 상속받아서 돈은 충분합니다.”
“유산요?”
큰 돈을 상속받았다는 말에, 최선화의 표정이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었다.
“그럼, 유산을 얼마나?”
“음, 한 30억 정도요. 그래서 절반은 작은 아파트를 하나 사고, 나머지는 차를 사볼까 하는데 말이죠.”
“그럼 예산이 15억 정도 있으시다는 거군요?”
생긴 것과 다르게 돈이 많다는 이야기에 최선화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