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학생
“그 정도 예산이 있으시면,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많죠. 포르쉐는 물론이고, 페라리나, 맥라렌, 람보르기니 같은 슈퍼카들도 있고요. 좀 로맨틱한 차를 원하시면 벤틀리도 있고요. 설마 롤스로이스를 사실 것 같지는 않은데요.”
“롤스로이스요?”
차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진수였지만, 롤스로이스가 세계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차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었다.
“여기에 롤스로이스도 있나요?”
최선화는 진수의 말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예, 바로 눈앞에 있으시잖아요? 롤스로이스를 잘 모르시는구나?”
최선화는 자신의 뒤에 있는 육중한 느낌의 자동차를 가리켰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더니, 바로 코앞에 두고도 몰라봤던 것이다. 하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 운전면허 딴지도 얼마 안 되고 말이다.
약간 멍청해 보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최선화는 비웃는 표정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돈 없는 가난한 대학생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15억 현금을 가지고 있는 고객의 입장이라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건, 롤스로이스의 기함이라고 할 수 있는 롤스로이스 팬텀입니다. 고급차의 대명사인 롤스로이스의 대표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죠.”
“와, 그래요?”
기함이라? 대표 모델이라는 말인가? 아무튼, 차가 일반 세단과는 달리, 무슨 탱크 같은 느낌이었다. 차도 엄청 길고, 무슨 방탄 기능이 있을 것 같이 탄탄한 느낌도 있었다. 차는 튼튼해 보이기는 한데,
초보 운전인 진수가 몰기에는 너무 큰 차 같은 느낌이다. 이런 차는 진짜 대기업 회장님이나 타고 다녀야 할 것 같았다.
“이 차는 좋아 보이기는 한데, 나중에 성공해서 타야 할 것 같네요.”
“그렇기는 하죠. 이런 차는 쇼퍼 드리븐이라고 해서 기사를 두고 뒷좌석을 이용하는 차라고 봐야 하니까요. 젊은 분들은 기사를 따로 두는 게 불편하기도 하고요. 오너가 직접 운전하기에는 좀 부담스러운 모델이죠.”
그러면서 최선화는 옆에 있는 조금 작은 차, 그러니까. 팬텀에 비해서 좀 작은 차를 보여주었다.
“이건, 어떠세요? 역시 롤스로이스의 인기모델인 고스트의 최신형 모델인 뉴고스트입니다. 팬텀보다는 오너 드리븐에 적합한 모델이고요. 차체도 좀 짧아서 운전이나 주차도 편한 편이고요. 팬텀에 비해서는 좀 더 젊은 오너들을 위한 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선화가 두 번째로 보여준 차는 팬텀보다는 작기도 하고 더 날렵한 느낌도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롤스로이스라 그런지 일반차들과는 달리 뭔가 압도적인 느낌의 웅장한 차였다.
“이런 건 가격대가 어떻게 되는 건가요?”
“팬텀은 8억 5천부터 옵션에 따라, 10억 이상까지도 생각하셔야 하고요. 고스트는 4억 5천 정도에서 6억 5천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지금 보시는 이 뉴고스트는 옵션 포함해서 6억 2천으로 가격이 책정된 차량이고요.”
헐, 팬텀이라는 차는 거의 10억까지 올라가는 모양이었고, 그보다 작은 뉴고스트도 6억이 넘는다는 말이네. 수입차 매장까지 왔을 때는 비싼 차를 사려고 오기는 한 거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10억 6억이란 말이 나오자, 진수는 뭔가 비현실적인 기분이었다. 그리고 팬텀이나 뉴고스트라는 차들은 차도 비싸서 좀 엄두가 안 나기도 하지만, 약간 크기나 스타일이 진수가 타기에는 좀 부담스러운 것도 있었다,
최선화는 진수의 눈치를 슬쩍 살피더니 말을 이어갔다.
“이런 차들은 고급스럽고 멋진 차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가격대도 그렇고 젊은 운전자들에게는 좀 스타일이 안 맞는 차들이기도 하죠. 아까, 포르쉐를 보고 싶다고 하셨죠? 이쪽으로 오세요.”
최선화는 진수를 매장 끝쪽으로 데리고 갔다.
“이건, 포르쉐 엔트리 모델로 인기가 있는 포르쉐 박스터입니다. 가격도 9천만 원부터 시작해서 큰 부담이 없는 모델이고요. 옵션이 들어가도 1억 2천 정도면 충분하니까요. 1억으로 살 수 있는 가성비 모델이라고 할 수 있죠.”
최선화가 보여준 차는 흰색의 귀엽게 생긴 자동차였다.
“소프트탑이 탑재되어 있어서, 탑을 오픈할 수도 있고요. 애인과 데이트하기 좋은 차죠. 특히 여자들이 좋아하는 차인데. 어떠세요?”
음, 뭔가? 롤스로이스 팬텀을 보고 나서인가? 차가 너무 작아 보이는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뭐, 여친이랑 둘이서 타고 다니면 딱이기는 하겠는데, 일단 여친도 없고, 뭔가 근사한 포르쉐라는 느낌은 아니었다.
“차가 너무 예쁜 거 아닌가요? 전 좀 뭐랄까? 귀여운 것보다는 멋지다는 느낌의 차가 필요한데 말이죠.”
최선화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사실, 박스터는 여자들이 사고 싶어하는 모델이기는 하죠. 그렇다면 이 차는 어떠세요?”
이번에 최선화가 보여준 차는 박스터보다 더 크고 좀 길고 우아한 느낌의 은색 차였다.
“이 차는?”
“포르쉐의 인기모델인 파네메라입니다. 만약에 이 차를 사게 되시면 정말 운이 좋으신 거예요. 지금 거의 풀옵션 모델인데, 2억 6천에 바로 인수 가능하시거든요.”
“싼 건가요?”
최선화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가격이 비싸지는 않다고 할 수 있고요. 파네마라는 워낙 인기모델이라 주문해도 차를 받는데 정말 오래 걸리거든요. 그래서 중고가나 신차 가격이나 한국에서는 큰 차이가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내년에는 가격이 더 오를 수도 있고요.”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였다. 올해 신차를 구매하고 1년을 탄 중고차 가격이 신차보다 오를 거라는 건가?
“1년 탄 중고차가 신차보다 가격이 더 오를 수도 있나요?”
“충분히 가능하죠. 대기자는 많고 출고는 늦으니까요. 차를 빨리 타고 싶은 사람은 웃돈을 주고라도 중고 구매를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포르쉐는 감가가 거의 없는 차종이에요. 그래서 더 인기가 있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선순환이 되는 거죠.”
최선화 대리의 말로는 포르쉐는 소위 말하는 독일 3사의 차들보다는 한 단계 윗등급으로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과 함께 슈퍼카로 분류되지만, 스포츠성이 강한 페라리나 람보르기니에 비해서는 데일리카로 적합해서,
수요가 항상 많은 차종이라고 한다. 가격이 비싸기는 하지만 이제 강남에서 벤츠나 BMW는 너무 흔해져서 남들과 차별화되는 선택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포르쉐로 수요가 몰린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파나메라는 급매물로 나온 건데, 계약하신 분이 사정이 있어서 인수를 못 하고 계신 차인데, 이걸 사시게 되시면 진짜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죠.”
사실, 차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진짜 좋은 차를 좋은 조건에 인수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질러보기로 했다.
“좋습니다. 이 차로 계약하기로 하죠.”
“어머, 사장님, 정말 화끈하시다. 진짜 잘 선택하신 거예요.”
음, 사장님? 최선화는 습관인지 차를 계약하겠다고 하자, 진수를 사장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뭐, 나쁘지는 않은 느낌이었다. 그런 식으로 누구에게 불려본 적은 없었지만, 사장님이라? 이참에 사업을 해 봐?
***
문화 대학교 교정.
그렇게 뜨거웠던 여름방학도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었다. 진수는 당연히 복학을 했고 그리고...
“와, 저거, 최진수 아냐? 미쳤네. 옆에 팔짱을 끼고 걷는 건, 정은채잖아?”
“정말? 그런데요. 은채 선배랑, 그 옆에 저 남자는 누구라고요?”
“어, 있어, 최진수라고? 이진수였나? 아무튼, 눈에 띄지 않는 그런 녀석이었는데, 군대 간다고 하더니 복학한 건가?”
2학기가 되면서 문화대학교 경영학과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끈 것은 은채와 진수 커플이었다. 뭐, 사실, 진수가 은채에게 적극적으로 대시를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은채는 진수 덕에 아버지 병원비도 마련하고, 속초에 제법 큰 집도 하나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형편이 좋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아버님 건강도 좋아지시고, 그런 모든 행운들이 진수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복학을 하면서 진수와 은채의 사이도 가까워지고 말이다. 아직, 정식 연인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은채는 진수를 아주 특별한 친구 정도로는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팔짱을 끼고 걸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팔짱을 끼는 행동이 은채에게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와, 도저히 안 어울리는 커플인데요? 안 그래요. 선배?”
“정은채랑, 최진수 말이야? 야, 그건 모르는 일이지, 남녀 관계는 모르는 거라는 말도 있잖아. 그리고 최진수 은근히 능력이 있는 모양이더라.”
“능력요?”
“그래, 요새, 학교에 포르쉐를 타고 다니더라고.”
“포르쉐요? 어떤 거요?”
“그게 파나메라였던가? 그거 내가 어디서 봤는데 2억이 넘는 차라고 들은 것 같아.”
“와, 그럼, 역시, 최진수라는 사람, 무슨 금수저 집안인 건가요? 그래서 정은채 선배도 저런 남자와 같이 다니는 건가?”
은채가 워낙 눈에 띄는 미인이라 그런지, 어딜가나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특히나 진수의 청력이 예민한 건지, 그런 소리들이 제법 정확하게 들려왔다.
망할 녀석들, 금수저라서 저런 남자와 다니는 건가? 라니? 내가 어떤 남자라는 의미야? 이것들이...
약간 빈정이 상할 때도 있었지만, 동시에 묘한 쾌감도 있었다. 내가 은채와 같이 다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 특히 남자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은채와 늘 붙어다니는 진수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남자들만이 아니었다,
학교의 여학생들도 은채 같은 미녀 옆에 서 있는 진수에게 호기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호기심들에는 진수가 타고 다니는 포르쉐 파나메라도 한 몫을 하고 있었다.
다소 평범해 보이는 외모의 진수였지만, 완벽한 몸매를 가진 미모의 은채와 함께 다니고 또 학교에 고가의 슈퍼카를 몰고 다니자, 학교에서는 자연스럽게 진수가 상당한 재력을 가진 집안의 후계자로 조만간 큰 기업을 물려받을 것이라는 헛소문까지 돌고 있었다.
“진수 선배, 그런데 정말 재벌 3세라는 소문이 사실인가요?”
“뭐?”
가끔 그런 식으로 물어오는 후배들도 있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아니라고 해야겠지만, 진수도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런 사람들의 관심이 나쁘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런 질문에는 적당히 둘러대었다.
“야, 그건 알아서 뭐하게? 재벌 3세가 별거냐?”
“정은채 선배랑은 진짜 사귀는 거예요?”
“하하, 은채, 왜 너도 관심 있어? 하긴 은채가 워낙 남자들에게 인기가 있기는 하지. 하하하...”
대충 이렇게 애매모호란 태도로, 재벌설이나 은채와의 연인설에도 긍정도 부정도 아닌 태도로 일관하며 그렇게 진수는 새로 시작한 복학 생활을 사람들의 관심을 즐기며 시작하고 있었다.
***
돈이 좋기는 좋구나, 돈만 있으면 포르쉐도 살 수 있고, 아파트도 사고 말이야. 은채가 진수와 친해진 것도 알고 보면 돈의 힘이었다.
진수가 은채에게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은채가 진수에게 마음을 열었던 것이 사실이니까 말이다.
돈이 생기면서 복학 전에 학교에서도 쩌리 취급받던 진수가 일거에 스타급으로 관심과 주목을 받는 것도 신나는 일이고 말이다. 그러다 보니, 진수도 자연스럽게 돈에 더 관심이 생기고 있었다.
돈을 더 벌면 더 행복해지겠지?
진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행운의 과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과자 한 개를 꺼내 입에 넣고 씹었다.
‘와그작..’
천천히 조심스럽게 바삭거리는 과자를 씹기 시작하자, 입안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역시 이번에도 있군. 종이를 꺼내 스마트폰을 촬영 후 확대를 해보았다.
‘027348245’ 이런 숫자네, 역시 전화번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