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골동품점
전화를 걸어볼까? 02가 서울 지역 번호라면, 734는 종로라는 의미겠군, 시골 출신이라 서울 전화번호 체계는 잘 모르는 진수였지만, 경희궁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734는 익숙한 번호였다.
종로라면 집에서 가까운 곳인데, 뭐하는 곳이지?
전화를 바로 걸어볼까 하다가, 인터넷으로 검색부터 해보려고 했다. 무턱대고 전화해서 뭐 하는 곳이냐고 물어보기도 민망하고 말이다.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보니, 다행히 번호가 검색이 되었다. 검색된 곳은 종로구 인사동의 골동품 전문점이라고 되어 있었다.
동화 골동품이라?
오래된 물건들을 취급하는 곳이라는 말인데? 여기에 무슨 행운이 있다는 거지? 역시 비싼 도자기 같은 걸 살 행운이라는 건가?
지도를 보니, 진수의 아파트에서 가까운 거리였다. 주말에 시간을 내서 가보면 될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번에도 큰 돈을 벌면 뭘 하지? 아직 평범한 대학 2학년생, 그것도 지방 출신으로 돈 좀 써본 금수저 출신도 아니어서, 막연하게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전부터 하고 있었지만,
돈을 벌어도 뭘 해야 할까? 하는 건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추상적으로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되면, 그냥 폼나게 살거나 그런다는 정도, 진수가 생각하는 부자가 된 미래는 대기업 회장님 같은 것이 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멋진 정장 수트를 빼입고, 커다란 개인 사무실에서, 김 비서, 오늘 스케줄은 뭔가? 하고 물어보면, 짧은 미니스커트 정장 차림의 미모의 여비서가 회장님, 오늘은 홍콩 출장이 있습니다. 홍콩에서 콴 회장을 만나서 어쩌구 저쩌구 뭐, 이런 내용이랄까?
하지만 그런 진수의 판타지와는 달리, 현실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서 회장이 될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뭔가를 생산하거나 유통을 할 회사 없이도 행운만 있다면 큰 돈을 벌 수 있는 거래를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회사가 필요 없으니, 사무실도 필요 없고, 회장이 될 필요도 없었다. 김 비서도 당연히 필요없고 말이다. 음, 여비서가 없는 건 좀 아쉬운데...
일반적인 성공스토리라면 단계를 밟아서 어떤 조직을 만들어야할 것이다. 아니면 기존의 조직에서 하부조직에서부터 상부로 등반을 해야 하든지 말이다. 둘 다 공통점이라면, 조직의 수장이 되거나 적어도 부과 권력을 가질 수 있는 고위직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자본주의 질서의 일반적인 성공 서사라고 할 수 있었다. 부과 권력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구성하는 구성 조직에 편입되면서 얻게 되는 부산물인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그와는 다르다, 우연적인 것, 단지 행운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진수의 행운처럼 말이다.
***
인사동, 동화 골동품 전문점.
지도 검색으로 어렵지 않게 문제의 골동품 가게를 찾을 수 있었다.
“뭘 찾으세요?”
진수가 골동품 가게 안을 기웃거리고 있자, 주인인 듯한 통통한 안경을 낀 남자가 진수에게 말을 걸었다.
“아, 뭘 찾는 건 아니고요.”
진수도 사실, 뭘 찾고 있는지는 알지 못 햇다. 단지 우연과 행운에 이끌려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대체 뭘 찾아야 하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것이 이 행운이라는 놈의 함정이었다.
“하하, 행운을 찾는 분이군요.”
“예?”
뭐야?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건가?
“행운을 찾는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진수가 되묻자, 골동품 가게 주인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가끔 그런 분들이 있거든요. 뭔가 이런 골동품 가게에 가면 비싼 골동품을 값싸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런 이야기가 많이 있잖아요? 프랑스 파리의 벼룩 시장에서 10달러에 뭘 샀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백만 달러짜리 값비싼 골동품이었다거나 그런 거 말입니다.”
골동품 가게 주인은 뻔하다는 듯한 얼굴로 진수를 보며 말했다.
“하하, 그런 사람들이 많은가 보죠?”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조금 뻘쭘한 기분이었다.
“요새는 특히 젊은이들이 그런 것 같아요. 로또들도 많이 산다면서요? 다들 일을 할 생각을 해야지, 요행이나 바라고 말입니다.”
중년의 남자는 못마땅한 듯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열심히 일을 한다고 성공하고 존경받을 수 있는 사회인가? 대한민국이 말이다. 다들 노력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전에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그만한 대우는 해주고 그러는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해봐야 골동품 주인과 싸움만 날 것 같아서, 진수는 조용히 골동품 가게의 물건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수가 찾는 그런 물건들을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보통 우연히 발견되는 고가의 도자기라면, 일단 그냥 보기에는 좀 초라해 보이는 그런 것이 아닐까?
그냥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의외의 가치가 있는 것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곳 골동품 가게의 물건들은 모두 잘 정리되고 깔끔하게 관리가 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가게 주인에게 물어보니 가격들도 상당하고 말이다.
수십만 원에서부터 수백만 원, 천만 원이 넘는 도자기들도 많이 보였다. 골동품 주인은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지 진수가 물을 때마다 신이 나서 이야기를 떠들어 대고 있었다.
“이런 도자기가 천만 원이나 하나요?”
“물건 볼지 모르시네, 도자기는 겉보기에 화려하다고 가치가 있는 게 아니에요. 골동품은 무조건 희소성이지,”
“희소성요?”
“그렇죠. 옛날 물건들이 그 당시 기준으로는 수준이 높다고 해도 현대 기술과 비교해서 특별할 건 없거든요. 문제는 얼마나 잘 만들었냐가 아니라, 그 시대에 만든 것 중에 지금 몇 개나 남아 있는가, 그래서 얼마나 구하기 힘든가? 하는 게 바로 골동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요소라는 말입니다.”
“그래요?”
그러면서 골동품상은 조선 시대의 백자 화병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다지 사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좋은 도자기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왠지 비싸게 사면 샀지 저걸로 대박이 날 물건은 아닌 것이 확실해보였다.
어떻게 된 거지? 행운의 과자에도 오류가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골동품 가게를 나서려는데 진수가 나가는 문으로 허름한 노인 하나가 들어오고 있었다.
“할아버지 오지 말라니까, 왜 또 왔어요.”
“저 그러지 말고, 김 사장, 몇 개만 사줘, 나도 어려워서 그래.”
“참, 제가 무슨 자선사업가인가요? 왜 저한테 자꾸 그러세요. 할아버지, 정말 저도 서운합니다.”
노인과 골동품상은 서로 안면이 있는 것 같았다.
“저, 무슨 일입니까? 저 할아버지는 자주 오시나 보죠?”
“근처에서 폐지도 줍고 이것저것 고철이나 고물 수집도 하시는 분인데, 뭐 형편도 좀 어려우시다고 해서 제가 몇 번 오래된 물건들을 사 드렸거든요. 그거 다 쓸모도 없는 건데. 그냥 도와드리려고 제가 사드린 거라고요.”
“그러니까, 한 번만 더 부탁합니다. 요새 폐지 가격이 떨어져서 골물상에 가져가면 이거 다 합쳐도 몇천 원도 안 되요. 하루 종일 모은 건데.”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는 작은 손수레에 오래된 책들을 잔뜩 싣고 계셨다.
“이걸 다 직접 모으신 거예요?”
“원래는 폐지 수집을 했는데, 폐지 값이 떨어져서 이제는 고물상에서도 값을 안 쳐줘, 커다란 구루마에 잔뜩 싣고 가도 만원 짜리 한 장 받아오는데,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 그래서 박스 줍는 건 때려치우고 이제는 좀 돈 될만한 오래된 책들을 모으고 있어.”
“할아버지, 차라리 헌책방에 가보세요. 여기는 보다시피, 도자기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이에요.”
“헌책방에서도 안 사주니까, 이리 오는 거지, 그래도 여긴 몇 번 사줬잖아. 한 번만 더 사줘.”
이야기를 들어보니, 골동품 가게 주인에게 야박하다고 하기도 어려운 상황인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형편이 어려운지 옷차림도 좀 남루하고 불쌍한 마음이 들기는 했다.
“이 책들은 다 어디서 주워 오신 겁니까?”
“뭐, 여기저기서 주워왔지. 요새는 다들 책은 안 보니까. 여기저기 버리는 책들이 많아. 이거 다 멀쩡한 책들이야. 보라구, 깨끗하지?”
할아버지는 깨끗하다고는 했지만, 표지가 누렇게 되고 속지까지 바랜 오랜된 책들이었다. 대신에 전주인이 관리는 잘했는지, 낙서나 찢어진 곳들은 보이지 않았다. 문제라면 오래된 책들이라 가로 쓰기가 아니라 새로 쓰기로 된 책들이었고 그나마도 한자로 된 책들도 있었다.
“어때? 젊은이가 사볼라우? 이런 오래된 책들은 인터넷에 내다팔면 꽤 비싼 책들도 있다고 하더라고?”
“할아버지, 그런 책들을 누가 비싸게 사요. 고서적도 오래됐다고 다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고 요.”
“아니, 김 사장이 그걸 어떻게 알아? 책은 취급 안 한다면서?”
“대충은 알죠. 그리고 값비싼 책들을 누가 그렇게 막 버립니까? 그리고 그런 책들은 딱 봐도 고서적은 아니네요. 그냥, 오래된 헌책이지.”
진수가 보기에도 큰 가치는 없어 보이는 책들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고생하며 어렵게 가져온 책이라 측은지심이랄까? 그냥 좀 사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혹시나 여기서 뭔가 행운이 나올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할아버지 그 책들 제가 살게요.”
“뭐, 정말이야? 고마워 젊은이.”
할아버지는 그제야 얼굴이 조금 밝아지시는 것 같았다. 진수는 행운의 과자의 행운을 한 번 믿어보기로 하고, 수레에 담긴 오래된 헌책들을 꽤 후한 값을 쳐드리고, 책을 받아들고 골동품 가게를 나왔다.
***
경희궁 진수의 아파트.
괜히 사온 건가? 맘에 드는 게 없어서 사오기는 했는데, 진수가 사온 20권의 헌책들은 그냥 어떻게 봐도 헌책 같았다.
행운의 과자에 역시 오류가 있었던 모양이다. 뭐, 행운의 과자도 가끔 실패할 수도 있는 거지 뭐. 그래도 어려운 할아버지를 도와드린 것 같아서 뭔가 마음은 편했다. 그렇게 위안을 하며 책들을 하나씩 살펴보고 있는데, 한자로 쓰여진 책들을 넘기다가 안에서 뭔가가 툭 떨어졌다.
뭐야? 편지?
거실 바닥에 떨어진 것은, 책들만큼이나 오래되어 누렇게 변색이 된 편지봉투였다. 원래는 흰색이었을 것 같은 좀 커다란 편지봉투였다. 재질도 좀 두툼하고 좀 느낌이 독특한 편지봉투였다.
아이들이 직접 만든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진짜 편지를 보낸 것이었는지, 우표도 붙어 있고 소인도 찍혀 있었다.
이게 뭐지?
혹시 안에 무슨 보물 지도라도 있는 건가?
진수는 혹시나 하는 기대로 편지봉투 안을 열어 보았다. 그리고 안에 나온 것은,
한 장의 편지, 그리고... 모두 한자로 쓰여 있었다.
이게 대체 뭐야? 한자는 약하다고, 아니, 한자는 전혀 모른다고 할 수 있었다. 아니, 대체 세종대왕이 만드신 훌륭한 우리글을 놔두고, 왜 중국의 글자인 한자를 쓰는 거냐고?
그것도 이렇게 모두 다 한자로 편지를 쓸 필요가 있어?
하지만 동시에 호기심도 생겼다.
내가 읽을 수가 없어서 그렇지, 한자로 무슨 보물지도 같은 것일 수도 있잖아?
한자로, 강원도 원주시, 무슨 산 어디 어디에 황금 10만냥을 감추었다. 내 후손들은 그걸 찾아서 재벌이 되어라. 이렇게 말이야.
만약에 그런 거라면, 이걸 대체 어떻게 해독을 하지?
한자 전문가를 찾아가야 하는 건가? 아니면, 구글 번역 서비스로 해독 가능한가?
그래, 아무래도 행운의 과자를 하나 더 먹어야겠어.
진수는 병에서 과자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행운의 과자를 하나 입에 물고 씹었다.
이번에도 역시, 바스락거리는 과자 사이로 종이 한 장이 나왔다.
역시, 이번에도 나온 것은 숫자였다.
01057392345
휴대폰 번호인 것 같았다. 누구 번호일까? 한문학 전문가의 번호이려나?
일단, 진수는 번호를 눌러보았다.
“여보세요, 최기현입니다. 누구시죠?”
“아, 저기, 혹시 한문 전문가이신가요? 교수님이나?”
“교수는 맞는데, 한문 전문가는 아닙니다. 전공은 조선사 전공 교수고요. 근대 우편 전문가이기는 하죠.”
“근대 우편요?”
“예,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아, 저 오래된 편지 때문에 그러는데요. 이 편지를 보여드려도 될까요?”
“편지요? 오래된 편지라? 무슨 내용인데요?”
“그게, 한자로 된 편지라 내용은 전혀 모르겟습니다.”
“그럼, 제 연구실로 한 번 방문하시죠. 정 궁금하시다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