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갑신정변 (10/200)

갑신정변

선영 여대. 교정.

주차장으로 은색의 포르쉐가 천천히 들어오고 있었다, 거기에서 내리는 것은 진수였다.

“최진수 선배잖아?”

“누구야? 아는 사람이야?”

“응, 최진수 선배라고 문화대 경영학과에 진짜 인기 있는 선배거든.”

“그래?”

진수는 잘 몰랐지만, 문화대 후배 여학생과 그 고등학교 동창인 선영 여대생이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내리는 진수를 뒤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야, 니네 학교 수준 떨어지는 거 아냐? 저 정도 외모로 인가 있다고?”

“왜, 저 정도면 멋있지 않아? 그리고 포르쉐도 가지고 있고. 우리 과에 정은채라고 진짜 섹시하고 몸매짱인 여자 선배가 있거든, 그 여선배랑도 애인 사이라는 것 같아?”“너네 학교에서 예뻐봤자 아냐?”

“야, 아냐, 실물로 보면 너도 놀랄 걸, 진짜, 아이돌 그런 애들 뺨친다고, 아, 같이 셀카 찍은게 있었지, 보여줄까?”

“정말이네, 이거 뽀샵한 거 아니지?”

“야, 뽀샵을 하면, 내 얼굴을 하지, 왜 은채 선배 뽀샵을 하겠어? 진짜 이쁘지? 진짜 섹시하지?”

“뭐, 그렇기는 하다. 그런데 이런 여선배랑 저 최진수인가 하는 그 남자가 정말 사귄다고?”

“그래, 그게 우리 경영학과 최대의 미스터리라는 말이 있기는 한데, 정은채 선배가 정신이 이상한 사람도 아니고, 뭐가 있지 않겠어?”

“뭐가 있는데?”

“소문에는 최진수 선배가 재벌 3세라는 말도 있고.”

“진짜? 저 포르쉐 타고 다닌다고 재벌이라는 거야? 포르쉐는 강남에서는 이제 흔한데.”

“뭐, 포르쉐 타고 다닌다는 것도 그렇고 은채 선배가 최진수 선배라면 뭐랄까? 마치 생명의 은인이라는 되는 것처럼 좀 그렇게 쩔쩔매는 게 있거든.”

“무슨 약점 잡힌 거 아냐?”

“약점 잡힐 일이 뭐가 있어? 분명히 최진수 선배가 어마어마한 재벌가의 상속자인게 분명해, 그러니까 정은채 선배 같은 아쉬울 거 전혀 없는 섹시한 여자가 최진수 선배라면 껌뻑 죽는 거겠지. 사실, 젊고 예쁜 여자가 어지간해서 남자에게 그렇게 매달릴 이유는 없잖아?”

“그렇기는 하네, 이 정도 미모라면 재벌 3세가 아닌 다음에야 여자가 아쉬울 건 없겠지. 그러고 보니까, 저 남자 매력 있다.”

“최진수 선배 말이야?”

“그래, 외모는 뭐, 그냥, 그렇지만, 재벌 3세라는 색안경을 딱 끼고 보면, 멋져 보여.”

“크큭, 그래, 색안경을 끼고 보면 달라 보인다고.”

행운의 과자의 부작용일까? 진수는 귀가 너무 예민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눈치 없이 너무 큰 소리로 두 여자가 떠드는 것이던가 말이다.

아무튼, 옆에서 최진수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들려왔지만, 진수는 시크하게 못 들은 척 갈 길을 가기로 했다.

와, 그건 그렇고, 여기 여대라서 그런가? 어디선지 모르게 막 향기가 피어오르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인데.

선영 여대, 유명 드라마에서 우리 딸 선영 여대 다녀요. 라는 대사가 화자가 될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대학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 드라마 대사 의미가, 평범한 직장인을 자기 딸에게 중매를 하려고 하자, 어림없다는 듯이 우리 딸이 선영 여대 다니는데 어디다 대고 그런 수준 떨어지는 남자를 소개하려고 하는냐는 그런 의미였을 정도로 말이다.

실제로도 선영 여대생들은 콧대가 클레오파트라급으로 높다는 소문이 있었다. 물론, 클레오파트라는 실제로는 동글동글 귀여운 스타일이었다는 말도 있지만 말이다.

“음, 실례합니다. 여기 역사교육과가 어디죠. 최기현 교수님 혹시 모르세요?”

“최기현 교수님요, 무슨 일이시죠?”

하늘거리는 핑크색 테니스 스커트 같은 걸 입은 아주 예쁘게 생긴 여학생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만나기로 하고 찾아왔는데, 초행길이라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네요.”

진수는 최기현 교수가 적어준 교수실 위치를 보여주었다.

“여기가 교수님 연구실이라고 하는데, 제가 제대로 찾아온 건가요?”

“음, 저기 계단 보이시죠. 저기로 쭉 올라가서 왼쪽에 있는 건물이에요. 들어가셔서 물어보시면 될 거에요.”

“아, 예, 감사합니다.”

콧대가 높은 여대인줄 알았는데, 직접 와보니, 학교 교정도 예쁘고 학생들도 예쁘고, 친절하기까지 한 것 같았다. 앞으로도 종종 와봐야겠어.

교수실 앞에서 일단 전화를 걸어보았다.

“여보세요, 최진수 씨? 어디인가요?”

“지금 바로 앞입니다. 교수님 연구실 바로 앞이에요.”

“아, 잠깐만요.”

문이 열리고 큰 키에 핸섬한 느낌의 중년의 교수가 얼굴을 내밀었다.

“최진수 씨군요. 어서 들어와요.”

나이는 40대 중반 정도쯤 되었을까? 미중년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세련된 느낌의 미남이었다. 상상이 되었다.

저 정도 얼굴에, 대학 교수라면 여대생들에게 엄청 인기도 좋을 것 같고. 하하, 부처님급의 인내심이 아니라면...

“그 편지라는 게 어떤 거죠?”

“아, 예, 가방에 가져왔습니다.”

진수는 배낭에 파일철에서 조심스럽게 편지봉투를 꺼냈다.

“잠깐요, 이게 뭐죠?”

“아, 이건 편지가 들어있던 봉투입니다. 그리고 편지는 안에.”

“아니 아니, 잠깐, 이 봉투에 편지가 진짜 들어있었다는 겁니까?”

왜 그러지, 갑자기 뭔가 얼굴이 차가워진 느낌이네.

“예, 얼마 전에 구입한 헌책을 살펴보다가 책 속에 있던 봉투를 발견했습니다. 그냥 툭 떨어졌죠.”

“저기, 이봐요. 나를 찾아온 이유가 정확히 뭡니까?”

방금 전까지 친절하고 부드러웠던 최기현 교수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리고 표정도 화가 난 것처럼 보이고 말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대체 뭘 했다고 나한테 이러는 거냐고? 난 단지 편지봉투를 꺼냈을 뿐인데 말이다.

“저, 편지는...”

“됐어요. 도대체 최진수 씨는 정체가 뭡니까?”

“저기 제가 뭘 잘못한 건가요? 갑자기 화를 내시는 이유를 잘 모르겠는데.”

“이봐요, 괜히 모르는 척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요. 누가 보냈어요? 누가 뒤에서 이 일을 꾸미는 겁니까?”

대체, 이 멀쩡하게 생긴 교수는 왜 이러는 거야? 생긴 건 핸섬하고 성격도 젠틀하게 생겨서 무슨 싸이코 패스급으로 성격이 급변하네...

“저, 전 그냥, 이 편지 내용이 궁금해서 와본 겁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실례한 게 있다면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뭔가 안 좋은 시간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뒤로 돌아서 나가려는데..

“정말, 그 편지 때문에 온 거라는 거죠? 그럼, 그 우표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입니까? 정말로?”

우표? 무슨 우표를 말하는 거지?

“우표라뇨?”

“정말, 그게 문위 우표라는 걸 모른다는 건가요?”

“그게 뭔데요?”

최기현은 문위 우표는 우리나라의 최초의 우표라고 했다, 그러니까 고종의 명령으로 1884년 우리나라에 최초로 근대적인 우편 기관인 우정국이 설립되고 거기에서 최초로 우편 발송을 위해 발행한 것이 바로 문위 우표, 그러니까,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인 것이다.

“그럼, 이게 귀한 거군요?”

인사동에 들렀을 때, 골동품상 주인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골동품의 가치는 희소성에 있다는 것 말이다. 최초의 우표라면 희소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기현 교수의 대답은 좀 실망스러웠다.

“문위 우표는 그렇게 희귀한 우표는 아니죠. 시중에 떠도는 문위 우표가 많으니까요. 역사적으로 보면, 문위 우표는 20일 정도 밖에는 사용되지 않아서 미발행 우표가 많이 남아 있죠.”

“20일요?”

“갑신정변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갑신정변요? 어, 들어보기는 했는데, 김옥균, 3일 천하 그런 걸 역사 시간에 암기하기는 했었죠.”

“김옥균만큼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홍역식도 개화파로 갑신정변의 주역이었죠. 아무튼, 당시 고종의 개혁정책의 일환으로 우정국이 만들어졌고 홍영식은 그 우정국의 초대 우정총관이었어요.”

하지만 근대적인 우편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우정국은 갑신정변에 휘말리며 20여 일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우정국의 개관 축하연을 기회로 삼아 개화파가 갑신정변을 일으켰고 일시적으로 개화파가 정권을 잡았지만, 청나라 군대의 개입으로 개화파가 몰락한 것이다.

그로 인해 고종과 개화파 중심의 근대적 개혁정책들도 많이 뒤로 후퇴를 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근대 통신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우정국이었다. 1884년에 처음 문을 열었던 우정국은 갑신정변 이후 폐쇄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최초의 우표인 문위 우표도 발행은 되었지만, 아직 우편이라는 개념도 모르던 시절이고 우정국이 20여 일 만에 폐쇄가 되면서 실제로 우정국에서 우편을 송달 했는지, 즉 편지를 실제로 보낸 사실이 있는지는 증명할 길이 없었던 겁니다. 실제로 우정국이 최초로 발행한 문위 우표 중에서 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는 우표가 발견된 적은 없으니까요.”

뭐야? 그럼, 이 편지봉투의 소인이 찍힌 우표가 그 최초의 문위 우표고 소인까지 찍혀서 편지봉투까지 있는 거라면, 희귀한 것이라는 말인가?

“교수님, 그럼, 이 소인이 찍힌 문위 우표와 봉투는 다른 문위 우표와 달리 희귀한 건가요?”

“하하, 물론, 진짜라면?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죠. 왜냐하면, 이 우표가 진짜라면 우리나라의 최초의 우편의 역사가 달라지는 엄청난 역사적 증거물이 되는 거죠. 20 일만 운영되었던 우정국의 직접 사용한 우표로 유일한 우표가 되는 거니까요.”

“그래요?”

역시나 행운의 과자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이게 진짜라면 이 우표의 가격은 얼마나 되는 걸까? 편지봉투에는 우표 두 장 붙어 있었다. 두 개다, 소인도 찍혀 있고 말이다.

“그러면 교수님, 이 우표가 진품이라면 그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진품이라면 뭐, 최소 수십억, 아니 정확한 감정이 불가능할 정도의 가치가 있는 거죠.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웨덴 희귀 우표인 트레 스켈링 옐로우의 경우에는 뉴욕의 경매에서 230만 달러에 거래가 되었죠. 우리 돈으로는 30억 이상의 가치죠. 그게 10년 전 일이니까, 지금은 더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사..삼십억요?”

하지만. 트레 스킬링 옐로우는 세계적으로 최고가 우표다. 잘은 모르겠지만, 스웨덴이라는 나라는 작아도, 같은 유로존으로 뭔가 경제와 문화를 공유하는 그런 개념이니까. 스웨덴 우표지만 유럽과 서구 문화권을 대표하는 희귀우표,

그에 비해 문위 우표라는 건 한국 최초의 우표라는 의미는 있지만, 아무래도 그 역사적 가치라는 건 한국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거니까. 트레 스킬링 옐로우라는 그 스웨덴 우표만큼의 가격이 책정되지는 않는 거 아닐까?

그렇다고 해도 상당한 고가의 우표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진짜 사용된 적이 있는 문위 우표라면 말이다.

“그럼, 이 우표가 진짜인지 감정이 가능한가요?”

“물론이죠. 요새는 기술이 발달해서, 물론 위조 기술도 발달했지만. 다양한 우표 내지는 우편에 대한 감정 기술이 발달했습니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이 우표와 편지봉투가 진짜일 가능성은 희박하죠.”

“예? 왜요?”

“문위 우표는 근대 초기의 우표치고는 흔한 편입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우정국이 조기에 폐쇄되면서 미발행 우표들이 엄청나게 남았고 그게 다 수십가들 손에 들어가서 문위 우표 자체는 흔한 편이니까요. 그러다 보니, 흔한 문위 우표에 소인을 위조해서 사용된 것처럼 위조하는 범죄도 많았죠.”

“그럼, 이 소인이 찍힌 우표와 편지봉투도 가짜라는 건가요?”

“그럴 확률이 크죠. 심지어 우정사업본부에서 소장했던 소인이 찍힌 문위 우표조차 가짜로 밝혀졌으니까요. 처음에 그게 진짜라는 소문이 돌면서 tv 프로그램에도 소개가 되었지만, 결국 위조 논란이 생겨서 지금은 수십 년째 비공개되고 있습니다. 아마 위조된 게 분명하고 책임 문제 때문에 우정사업본부에는 우표를 숨기고 있다는 게 정설이죠.”

“그럼 이걸 진품이라는 감정을 받으려면 어떻게 합니까?”

“그걸 감정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뿐입니다.”

“예, 단 한 사람요? 그게 누군가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