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의 가치
“바로 접니다.”
최기현 교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뭐, 이 소인이 찍힌 문위 우표를 감정할 수 있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전문가가 최기현 교수 자신이라는 것인가? 역시 그렇다면 내가 사람을 제대로 찾아온 거기는 하군.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는 뭐하지만, 전공과 무관하게 취미로 시작한 근대 우편 연구에서 이제 저만한 전문성을 가진 학자는 없으니까요.”
최기현 교수는 원래 조선사를 전공하고 대학에서는 역사교육학과 교수를 맡고 있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특히 그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시대라면 개화기라고 불리는 조선 말기, 대한제국 시절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드라마틱한 격변의 시간이었으니까요. 짧은 시간 동안 굉장히 여러 가지 사건들이 일어났고, 그 결과로 결국 조선, 지금은 대한민국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의 운명이 결정 지어진 시기니까요.”
“그렇겠네요.”
대한제국, 구한말이라는 식으로도 말해지는 근대 초기의 한국 역사는 외세의 침략과 그에 맞서는 한민족의 주체적인 대항이 부딪힌 시대라고 할 수 있었다.
“특히, 역사학자들이 소홀하게 여기는 부분들이 유물에 관한 부분이죠. 각 시대를 상징하거나 역사적인 사실을 입증하거나 아니면 미처 알려지지 않은 어떤 사실을 유추할 수도 있는 증거물인데 말입니다. 문위 우표처럼 말입니다.”
“그런 쪽으로는 역사학자들이 좀 소홀한가요?”
“우리나라 학계의 특징이죠. 추상적이고 현학적으로 묘사하면서 역사를 마치 소설처럼 쓰거든요. 어떤 특정한 의도와 목적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처럼 말입니다.”
“그게 아니라는 건가요?”
“전혀 아니죠. 우리가 미래를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 시대의 사람들도 자신들의 몇 년 앞의 상황을 예측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역사를 마치 원인과 결과가 정해진 그런 드라마 각본으로 보면 곤란합니다.”
“그럼요?”
“그보다는 마치 주사위 게임처럼 우연성이 지배하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죠. 어떤 수가 나올지도 모르고, 또 그 숫자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훨씬 이후에나 밝혀지게 된다는 거죠. 아무튼, 역사를 너무 큰 흐름으로 이해하다 보면, 실제로 그 시대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망각하게 되는 거죠. 가장 중요한 우연이라는 요소, 즉 행운과 불운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최기현 교수는 역사에 대해서 나름 독특한 사관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목적과 의지보다는 우연이라는 요소가 역사를 지배하며 본질이라는 생각 말이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역사의 해석이라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교수님이 이 문위 우표, 소인이 찍힌 문위 우표를 감정하실 수 있다는 말이죠?”
“물론입니다. 근대 우표의 감정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제가 최고라고 자부를 하죠. 그래서 많은 사기꾼들이 나를 찾아오기도 했고요.”
“사기꾼들이 교수님을요?”
“예, 최고의 권위를 가진 근대 우표 감정전문가인 나에게 진품이라는 감정을 받으면 한국 우표계에서 진품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런 사기꾼들이 많았지만, 저의 날카로운 전문가적인 식견을 피할 수는 없었죠.”
“그럼, 모두 가짜라는 것이 밝혀졌다는 거군요?”
“지금까지는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정말 그 소인이 찍힌 봉토와 문위 우표가 일부러 조작한 것이 아니라는 자신이 있는 겁니까?”
최기현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진수도 그다지 자신이 생기지는 않았다. 비록, 행운의 과자의 행운의 힘이 지금까지 진수를 실망시킨 적은 없었지만, 역사상 한 번도 진품이 나오지 않았던 소인이 찍힌 문위 우표가 맞는 것인지 확신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이것 역시도 조작된 가품일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어차피, 감정을 받아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가품이라고 해도 진수가 일부러 최기현 교수를 속이려고 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우표에 관심도 없고, 문위 우표라는 말도, 홍영식이 우정국 총관이었다는 말도 오늘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니까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그저 우연히 발견한 오래된 편지와 그 내용이 궁금해서 온 것뿐입니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이 문위 우표의 진위를 한 번 감정 받아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음, 진짜라는 확신은 없다 이거군요? 설마 가짜일 때를 대비해서 핑곗거리를 만들려는 건가요?”
최기현 교수는 아직도 진수를 우표를 위조한 사기꾼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좋아요. 어쨌든 감정을 해보죠.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한동안은 가짜 문위 우표를 감정해 달라는 제안이 많았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저도 무척이나 곤혹스러웠죠.”
“우표 감정이 어려운 일인가요?”
“진품과 가품을 감정하는 것은 결국, 비교 대조를 하는 수밖에 없죠. 하지만 1884년의 우정국은 20일의 단명을 한 비극의 주인공이라 비교를 해볼 원본 자료라는 것이 없었죠. 이걸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최기현 교수는 컴퓨터를 켜고 스캔한 이미지 파일을 보여주었다.
“그게 뭔가요?”
“1884년 12월 4일에 우정국 개국 기념 축하연장에 갑신정변이 일어납니다. 역사의 한 장면이었죠. 하지만 당시 고종과 개화파들은 새로운 개혁 정권을 세우기에는 역량이 많이 부족했죠.결국, 청나라 군대의 개입으로 갑신정변은 3일 천하로 끝나고 말게 되죠.”
“우정국도 폐쇄되고 말이죠?”
“우정국 총관이었던 홍영식도 갑신정변의 주역이었죠. 하지만 홍영식은 청나라 군대가 밀려들어왔을 때, 다른 개화파들과는 달리 일본으로 도망치지 않았어요.”
“그럼요?”
“홍영식은 개화파 중에서도 특이한 인물이었죠. 갑신정변이 실패로 끝난 게 확실해진 시점에 도 박영교와 함께 끝까지 고종 곁을 지킨 충신이었죠. 결국, 홍영식은 도망치지 않고 고종을 끝까지 지키다 목숨을 잃었으니까요. 그리고 그의 아버지인 홍순목도 청군에게 항복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자살하며 명예를 지켰죠. 덕분에 홍영식의 가문은 몰락을 길을 걷게 됩니다.”
“음, 그러면?”
“그 후로 홍영식의 후손은 역사에서 사라져버렸죠. 하지만 그 후손인 홍지훈, 미국 이름으로는 로버트 지훈 홍으로부터 작년에 연락이 왔습니다.”
“홍영식의 후손요?”
“예, 놀랍게도 미국에서 홍영식의 후손들이 있었던 거죠. 그리고 홍지훈 씨는 저에게 홍영식의 유품들을 보내주었습니다. 거기에는 우정국 시절에 사용했던 인장들도 있었던 거죠.”
“그럼, 이 이미지 파일은?”
“그렇습니다. 홍영식의 후손 홍지훈 박사, 홍지훈은 미국 뉴욕에서 외과의사로 일하고 있죠. 아무튼, 그가 보내준 우정국의 인장을 정밀하게 스캔한 파일입니다. 이걸로 문제의 문위 우표의 소인을 비교 대조할 수 있게 된 거죠.”
“그럼, 이 문위 우표의 소인도?”
“예, 어렵지 않은 일이죠. 그걸 줘보세요. 역시 이 편지봉투와 우표도 스캔을 해서 이미지 파일로 만들어 보는 거죠.”
최기현 교수는 고성능 스캔 장비로 진수의 편지봉투를 스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개의 이미지 파일을 서로 대조해 보기 시작했다. 스캔한 이미지 파일은 고문서 감정용 프로그램으로 3차원 이미지로 만들어졌다.
3차원 그래픽으로 도장과 편지봉투를 각각 재구성해서 실제로 찍어보는 일도 가능했다.
그렇게 3차원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도장으로 진수의 봉토의 소인 위에 도장을 겹쳐서 찍어본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이럴 수가, 이걸 보세요. 완전히 일치하고 있어요.”
진짜였다, 1884년 11월 17일은 우정국이 처음 개국한 바로 그 날이었다. 그렇게 처음 우정국이 문을 연 역사적인 바로 그날, 누군가가 한성의 우정국에 인천으로 한 통의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결국, 우정국은 진짜로 우편을 발송했고, 인천에 살던 그 편지의 수신인은 그 최초의 근대적인 우편을 수신한 것이다.
역사의 한 장이 새롭게 구성되는 순간이었다. 단지 상상에 불과하고 혹시 그런 일이 있지 않을까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던 한국 최초의 근대적 우편의 실체가 과학의 힘으로 그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진수도 문위 우표가 진짜라는 것이 밝혀지자 흥분된 감정을 감추기 힘들었지만, 더 격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이 분야를 수십 년 이상 연구했던 최기현 교수였다.
“아아..우아아...”
젠틀해 보이던 세련된 외모의 미중년 교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괴성을 내질렀다. 마치, 시라쿠사의 천재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벌거벗은 채로 유레카를 외쳤다는 고사가 떠오르는 한 장면이었다.
갑작스러운 괴성에 놀란 학생들이 교수실 문을 두드렸다.
“교수님, 무슨 일입니까?”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무 일도 아닙니다.”
“교수님, 진정하시죠. 이제 이 우표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
대성 그룹 회장실.
“마침 잘됐군요. 다음 달 17일이 무슨 날인지 아십니까?”
“글쎄요? 키스 데이 그런 건 아니겠죠? 하하하..”
“그런 건 매달 14일 아닌가요? 다음 달 17일은 우리 대성 전자의 창립 30주년 기념일이죠. 아시겠지만, 우리 대성 그룹은 한국 1위의 스마트폰 생산 업체입니다. 휴대폰과 정보통신 시대의 도래는 우리 대성 그룹에게는 엄청난 기회였죠.”
“그렇겠군요.”
최기현 교수가 문위 우표의 소인이 진품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에 진수에게 소개시켜 준 사람은 한국의 3대 재벌 그룹 중에 하나인 대성 전자 그룹의 장태식 회장이었다.
진수는 TV에서 몇 번 얼굴을 본 적은 있었다. 가장 최근에 본 것은 구치소에서 수감되었다가 출소하는 장면이었다.
새벽 일찍 구치소를 나오면서,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이제부터는 사회공헌을 하는 기업인이 되겠다고 기자들을 향해 짧은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었다.
그 후에는 15살 연하의 여배우와 스캔들이 있기도 하고 말이다. 장태식 회장은 40대지만 이미 이혼한 돌싱이라 불륜까지는 아니라 언론에서도 호의적이었던 기억이지만 말이다.
장태식은 키가 크고 스포츠맨 타입으로 전형적인 3세 경영인이었다. 그룹 승계 과정에서 불법적인 일이 많았고 그 문제로 감옥에도 1년이나 수감되어 있기는 했지만, 돈이 최고인 한국 사회에서 재벌 회장의 전과는 별 문제가 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출소한 후에 바로 경영에 복귀했고, 여전히 대성 그룹의 회장으로 막강한 위세를 떨치고 있으니 말이다.
그 카리스마 넘치는 장태식 회장이 진수를 만나자고 먼저 연락을 해 온 것이다. 물론, 진수를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한국에서 최초로 사용된 우정국 소인이 찍힌 문위 우표 때문이었다.
“30억이면 어떻습니까?”
“예?”
“그 정도면 충분한 가격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삼십억 원? 말입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다음 날 17일이 대성 전자 30주년입니다. 대성 그룹의 역사는 더 오래됐지만, 한국 정보통신 산업을 이끌고 있는 대성 전자는 대성 그룹의 핵심 기업이니까요. 그래서 30주년 행사도 화려하게 열 생각인데, 거기에 그 문위 우표가 필요합니다.”
최기현의 감정을 받은 진품 문위 우표 두 장과, 소인이 찍힌 봉투까지 30억에 대성 전자에서 구매하겠다는 것이었다. 한국 IT 산업을 대표하는 대성 전자가, 한국의 근대 통신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문위 우표를 구매해서 그룹 전시관에 전시하며 자신들이야말로 고종의 지시로 홍영식이 설립한 우정국의 적통을 잇는 후계자라는 것을 과시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최기현 박사가 연구한 홍영식의 후예들에게서 기증받은 우정국 인장과 문위 우표 등에 대한 연구결과도 발표하면서 대성 그룹의 30주년 행사의 분위기를 띄우겠다는 계획인 것 같았다.
30억이라는 가격은 한국 우표 가격으로는 이례적인 고액이었지만, 장태식 회장은 우표 자체의 가치보다는 역사적 위상과 또 대성 전자 30주년 행사의 홍보 효과를 감안해서 그런 고액을 책정한 것이라고 했다.
“어떻습니까? 그 우표와 봉투 30억에 제게 파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