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
성수동 트리피오 아파트.
“멋진 곳이죠.”
“정말 멋지네요.”
임장 데이트를 다닌다는 말도 있다는데, 나름 그럴듯한 이야기인 것 같았다. 더구나 이현정 과장처럼 멋진 모델 같은 여자와 함께, 강남이든 성수동이든 새로 신축한 근사한 아파트를 구경하러 가는 것이다.
백화점에서 명품 쇼핑을 하는 것도 뭔가 그런 화려함을 즐기는 것이 아닐까? 고급스럽고 럭셔리하고 값비싼 물건들을 보고, 거래를 하는 것이다. 고급 아파트 입장은 그런 명품 쇼핑보다도 한 단계 더 윗급의 쇼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단, 거래되는 가격이 수십억에 달하는 진짜 최고가의 물건들이니 말이다.
신축의 고층 아파트는 서울숲 옆에 멋지게 우뚝 솟아 있는 느낌이었다. 마치, 고대의 오벨리스크와도 비슷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태양신을 상징하는 오벨리스크는 신을 상징하고 동시에 신의 대리인인 파라오의 권력과 권위를 상징한다고 한다. 심리적으로는 빅 씽, 거대한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고대 이집트 시대를 상상해보면, 도심에는 이런 오벨리스크가 외곽에는 더 규모가 큰 피라미드가 건설된 것이다.
둘 다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압도하는 인상적인 건축물이라는 것에서는 공통점이 있었다. 인간은 일정한 크기 이상의 거대한 것을 보면 심리적으로 압도되는 특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예술적인 감각이 더해지면 인간은 그 거대한 조형물에 평범함을 넘어서는 비범한 힘 내지는 비밀이 있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트리피오 아파트도 마치 고대의 오벨리스크처럼 압도적인 높이로 하늘을 향해 솟아 있었고 모양도 박스형의 일반 아파트와는 달리, 디자인적으로도 아름답고 멋진 모습이었다. 그렇게 압도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 가치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선택받은, 자본주의 시대의 선택받은 선민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 같았다.
“정말, 근사한데요. 날씨도 좋고. 이 주위는 모든 게 좋아보이네요.”
진수는 파나메라의 옆좌석에 앉은 이현정을 힐끔거렸다. 약간 말려 올라간 베이지색 미니스커트는 그 아래로 늘씬한 각선미를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진수는 젠틀하게 그런 것을 모르는 척 운전에 집중하고 있었다. 파나메라 같은 고가의 슈퍼카는 혼자 탈 때보다는 옆에 누군가를 태울 때 더 매력적인 것 같았다. 적어도 자동차 자체의 머신으로서의 기능을 즐기는 스타일은 아닌,
진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진수에게 포르쉐라는 차는 빨리 달리는 차라기보다는 근사하고 특이한 디자인과 옆에 매력적인 여자를 태웠을 때, 부족한 진수의 남성적인 자존심을 충전시켜 주는 그런 차였다.
그리고 내릴 때의 소위 말하는 하차감도 좋고 말이다.
그렇게 기분 좋은 드라이브를 하며 트리피오의 지하 주차장에 들어올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진수의 그런 자신감도 트리피오의 주차장에 들어오니, 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와, 여긴 고급차들이 진짜 많네요.”
역시 부자들이 사는 아파트라 그런지 진수의 포르쉐 파나메라는 그저 평범한 느낌이었다.
“후후, 아무래도 그렇죠. 말씀드렸잖아요. 여기는 강북이지만, 강남 출신들이 많이 와서 사는 아파트라고요. 연예인들도 많고, 당연하게도 고급 차들도 많고요.”
차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던 진수였지만, 면허도 따고 포르쉐 파나메라도 구입하면서 조금씩 자동차에 대한 관심과 지식도 생기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진수의 포르쉐와 비슷한 등급 내지는 윗등급이라고 할 수 있는 슈퍼카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는데,
트리피오의 주차장에는 페라리, 포르쉐, 람보르기니 같은 슈퍼카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던 것이다. 그 외에 벤츠 S클래스나 벤틀리, 롤스로이스들도 많이 보이고 말이다.
“헐, 뭐, 아무리 고급 아파트라지만, 다들 뭐 하는 사람들인데 이렇게 차들이 화려하죠?”
포르쉐를 몰고, 뭐라도 되는 것 같이 트리피오 아파트로 운전을 해왔던 진수는 조금 의기소침해진 목소리로 이현정 과장에게 물었다.
“소위 말하는 금수저들이죠. 강북으로 원정을 온 강남 금수저들이라고나 할까요.”
“하하, 원정요.”
고대 그리스인들이 세력이 번성하면서 가까운 시칠리아나 남부 이탈리아 반도까지 진출하던 것처럼 강남의 부자들이 이제 강남과 가까운 성수동으로 진출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예, 이곳은 지리적으로 강남과 가까워서 강남 사람들도 거부감이 없거든요, 본토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식민지고 할 수 있죠.”
물론, 농담으로 하는 말이었지만, 강남 특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한민국에서 특권을 누리고 사는 최상류층들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서 약간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위로 올라가서 매물을 보여드릴게요.”
진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보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꽤 높은 고층까지 올 라가자, 오늘 임장을 하기로 한 아파트가 나왔다.
“56평형인데, 지금 35억에 내놓은 급매물이에요.”
“35억이라? 이 정도 아파트면 그렇게 비싼 가격은 아니네요.”
“물론이죠. 그래서 운이 좋다고 한 거예요, 시세보다 훨씬 싼 가격이고, 앞으로도 트리피오의 아파트는 계속 가격 상승이 예상되니까요.”
진수도 노블레스 부동산에 오기 전에 강남의 고급 아파트들의 시세를 대충은 확인하고 온 것이었기 때문에, 이현정의 말대로 트리피오 정도의 아파트의 56평형이라면 나쁘지 않은 가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어차피, 아파트는 가격은 계속 상승 중이고도 말이다.
“어쨌든, 아파트가 35억이 싼 거라니? 우리나라의 부동산도 미친 것 같아요. 왜 이렇게 가격이 오르는 거죠? 정부에서는 어떻게든 부동산을 잡으려고 난리인 것 같은데.”
“구조적인 문제죠. 저도 부동산 일을 하지만, 부동산만 이렇게 오르는 게 좋다는 생각은 안 들거든요. 하지만 정부 정책을 보면 뭐랄까? 사람들의 심리를 너무 모르는 것 같아요.”
“심리요?”
“예, 임대아파트 같은 것만 많이 만들려고 하잖아요. 하지만 저렴한 아파트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인간이라면 더 크고 더 화려하고 더 새로 지어진 고급 아파트를 원하는 거 아니겠어요? 물론, 능력의 범위 내에서 말이죠.”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다. 주택의 공급도 문제지만, 모든 사람들이 집을 가지게 된다고 해도, 결국은 더 좋은 집을 찾아서 수요는 계속 생겨나게 마련이다. 결국 지방에서 서울로, 서울에서는 더 여건이 좋은 강남으로, 강남에서는 더 입지가 좋은 고급 신축 아파트로, 그렇게 사람들의 욕망의 이동은 끝이 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강남 불패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말이군요. 사람들은 어쨌든 여건이 허용하는 한, 더 부자 동네, 고급 아파트로 모여들고 그게 바로 강남으로 사람과 돈이 몰리는 이유라는 거죠?”
진수의 말에 이현정 과장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예, 맞아요. 그리고 그런 연장선에 이 성수동 트리피오도 있는 거죠. 강남은 아니지만 강남 세력권이라는 의미에서요.”
아파트의 문이 열리고 복도가 나왔다. 그리고 양쪽으로 복도가 나누어지고 있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여기가 메인 공간이거든요. 거실과 마스터룸이 있어요.”
이현정을 따라 짧은 복도를 지나자, 거실의 통유리 너머로 멋진 한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와, 경치가 정말 좋은데요. 이게 바로 한강뷰군요.”
“예, 장점은 보시는 그대로고요. 저는 단점을 말씀드릴게요.”
지방 출신인 진수는 서울 시내에 이런 고층의 고급 아파트에 와 본 것은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거실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통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한강의 멋진 경치였다. 서울에 산 지 꽤 오래되기는 했지만, 이렇게 한강이 멋지다는 느낌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보시다시피, 라운드형의 거실에요. 그래서 반듯한 모양이 아니라 데드 스페이스가 좀 많고, 여기 보시면 커다란 기둥도 하나 있고요.”
잠시 한강뷰에 감탄을 하고 있던 진수에게 이현정 과장은 라운드형 구조의 거실의 단점부터 말해주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트리피오는 일반적인 아파트들처럼 네모난 상자갑 모양이 아니라 멋진 타워형의 아파트였다. 그래서 멀리에서 보기에 마치 고대의 오벨리스크를 연상시킬 정도로 인상적인 모습이었지만, 그런 멋진 외관 때문에 내부에는 이런 라운드형의 구조가 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
네모반듯한 형태가 아니라, 부채꼴 형으로 되어 있는 거실은 경관을 감상하는 데는 오히려 장점도 있었지만, 생활공간이라는 측면에서는 데드 스페이스가 많이 발생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거기에 건설 구조상 거실 한가운데에 커다란 기둥 하나가 솟아 있어서, 미관이나 공간 활용에도 방해가 되기도 하고 말이다.
덕분에 반듯한 다른 곳에 비해서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 같았다.
“라운드형 때문에 가격이 좀 다운되기는 하겠네요?”
“예,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56평형이 35억이면 나쁘지 않죠. 얼마 전에 거래된 38평형이 32억이었으니까요. 제가 이걸 팔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지금 계약하시면 절대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
행운의 과자에서 나온 번호로 노블레스 부동산을 알게 된 것이니, 이 아파트를 사면 큰 이득이 되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수익이 나는 것과는 별개로 진수도 단지 재테크를 넘어서 이곳에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 아파트를 꼼꼼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방이 꽤 크네요?”
56평형의 고급 아파트는 평수도 넓은 편이고, 지금 사는 경희궁 아파트와는 좀 차원이 다른 것 같았다. 마스터룸에 들어가 보니 안에 화장실은 물론이고 욕조가 설치된 꽤 큰 욕실과 드레스룸까지 있었다.
고급 주택에는 드레스룸이 따로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진수가 직접 드레스룸이 있는 집에 살게 될 줄은 몰랐다.
“56평형이면, 혼자 살기에는 넓은 집이죠. 따로 가족은 없으시다고 하셨죠?”
“예, 혼자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계시기는 하지만 이건 제가 혼자 살 집이죠.”
“그러면 공간은 충분하실 거예요. 거실이 좀 실평수가 적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마스터룸은 이렇게 넉넉한 공간이고요. 드레스룸도 옷이 많으신 편은 아니시죠? 이현정 대리는 청바지에 체크 남방을 걸치고 있는 진수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말했다.”
“옷은 거지 수준입니다. 드레스룸은 남을 것 같네요.”
“음..그럼 서브 존을 보러 가실까요?”
반대쪽 복도로 가자 방 두 개가 더 있었다. 마스터룸처럼 넓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은 크기의 방 두 개가 더 있었다.
“여기는 아이들 방으로도 좋지만, 혼자 사실 거면, 서재나 홈트레이닝 공간으로 꾸미시면 좋죠. 어떠세요?”
대충 상상을 해보니 거실의 한강뷰도 좋고 이현정 과장 말대로 서재를 꾸며서 게임도 할 수 있게 만들고, 남은 방은 운동 기구를 들여다 놔도 좋을 것 같고, 지금 살고 있는 것이 그냥 먹고 자는 공간이라면 여기로 이사를 오면 뭔가 삶의 질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은 분명해 보였다.
“일단, 아파트 자체는 괜찮은 것 같네요. 혼자 살 거니까, 공간도 충분하고.”
“그리고 남자 혼자 사시면 식사도 문제잖아요? 특히 아침 식사요. 트리피오는 커뮤니티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으니까요. 관리비가 80만 원 정도로 좀 비싼 편이기는 하지만...”
“80요? 관리비가요?”
“좀 비싸죠?”
월세도 아니고 관리비가 무슨 월세 수준이네, 하지만 한 달 80만 원이 부담스러워서 살지 못할 아파트는 분명 아니었다.
“예, 대신에 입주자 전용 시설이 많아요. 헬스장도 있고 수영장, 스파, 실내 골프장 그리고 식당에서 조식 서비스고 가능하고요. 저도 몇 번 이곳 커뮤니티 식당을 이용해 봤는데, 고급 아파트라 수준이 꽤 높거든요.”
이현정 과장을 따라 커뮤니티 시설도 한 번 둘러보니, 역시 고급 아파트라 시설이나 수준도 훌륭한 편이었다.
“이 정도면 괜찮은 조건 아닌가요?”
이현정 대리는 이제 다 보여줬다는 듯이 진수의 표정을 살폈다.
“좋습니다. 계약하기로 하죠.”
이제 나도 강남 주민...아니, 강남은 아니구나. 아무튼, 강남급의 고급 아파트 주민이 된 것이었다. 사실상의 강남 진출인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