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 전설 (16/200)

황금 전설

영동군, 뉴욕 부동산

“이름이 특이하네요. 혹시 뉴욕 유학파 출신이신가요?”

“하하, 그런 건 아니고, 아들이랑 아내가 뉴욕에 가 있죠.”

이선호 사장은 소위 말하는 기러기 아빠라고 했다. 그러다가 안 좋은 일도 많다는데.. 어쨌든 이선호라는 남자는 자녀들의 유학비를 벌기 위해 이 뉴욕 부동산을 창업했다고 했다. 그전에는 공무원이었다고 했다.

“공무원도 요즘 인기 직종 아닌가요?”

“그렇기는 하죠. 그런데 전 체질에도 안 맞고 수입도 적고 해서 부동산을 시작했죠. 나중에 퇴직하면 연금은 좀 괜찮기는 해요.”

“공인 중개사 일에는 만족하시나요?”

“만족이랄 건 없지만 공무원보다는 더 재밌어요. 워낙에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니까, 답답하지 않아서 좋다고 할까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약간 작은 키에 말이 많은 편이었다. 자기 말대로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처럼 보였다.

“좋은 매물이 있다고 하셔서 오기는 했는데, 정말 괜찮은 물건이 있는 겁니까?”

뉴욕 제과, 아니,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을 때, 이선호 사장은 마침 싸게 나온 좋은 매물이 있다고 한번 임장을 오라고 초대를 했던 것이다.

충청도까지 가는 건 좀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기에 와야 뭔가 행운의 기회가 있을 것 같아서 진수는 주말에 시간을 내서 영동까지 내려온 것이었다.

“물론이죠. 서울 말고 이런 지방에도 좋은 매물이 가끔 있어요. 소위 말하는 급매물이니까요. 사두면 다 돈이 되는 겁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땅만한 게 없으니까요.”

“그러게요. 한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땅을 좋아하는지.”

“하하, 한국이라는 나라가 그렇죠 뭐. 약간은 미친 것 같아요. 불로소득자들이 근로소득자들보다 더 많은 나라라고 할까? 아무튼, 주위를 봐도 외제차라도 끌고 다니는 사람들 중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더라고요.”

그러면서 이선호 사장은 부동산 사무실 앞에 세워놓은 진수의 포르쉐 파나메라를 힐끔거렸다.

“차가 좋네요. 아버지가 돈이 많으신 모양이죠?”

아버지가 돈이 많은 게 아니고 내가 운이 좋은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일일이 설명하기도 귀찮고 그렇다고 해두기로 했다.

“예, 소위 말하는 강남 금수저입니다.”

“오, 역시, 왠지 럭셔리해 보이시더라니, 그랬었군요. 강남이라면 어디 사시나요?”

“지금 사는 곳은 강남은 아니고, 성수동 트리피오라고..”

아니, 그런데 왜 그런 건 왜 묻는데..또 대답하는 나는 뭐고?

“저, 그건 그렇고. 그 괜찮다는 매물이 어떤 겁니까? 한 번 보여 주시죠.”

***

충청도 영동군, 학산면

“와, 여긴 완전 산골이네요.”

영동군에서도 좀 외진 학산면이라는 곳이었다. 진수도 지방 출신이지만, 이곳은 또 차원이 다른 시골..주위가 좋게 말하면 산수가 좋은 곳이고, 나쁘게 말하면 산들이 많아서 갑갑한 그런 느낌이었다.

“저기가 백하산이에요. 명산이야, 명산..산의 기가 좋은 곳이지.”

왠지, 뭔가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이선호 사장은 신이 나서 운전을 하며 여기저기를 설명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투자 가치가 있는 부동산이 있을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시골이라 사람도 없고, 포도밭만 많네요.”

“그럼요. 영동하면 포도의 고장 아닙니까? 지금 가는 도라지밭도 주위에 포도 과수원들이 많아서 가을이 되면 포도향이 기가 막히죠.”

“도라지밭요?”

“아, 지금은 도라지를 많이 심었는데, 뭐, 나중에 여러 가지로 개발도 가능하고 한 번 보시면 맘에 드실 겁니다.”

이쪽은 지리도 잘 모르고 길이 좀 험하다고 해서 진수의 포르쉐는 부동산 사무실에 세워두고 이선호 사장의 차로 이동하는 길이었다.

그렇게 차가 도착한 곳은...

충청도의 어느 산골 마을, 산비탈을 따라 꽤 넓은 도라지밭이 보였다.

“저게 다 도라지밭이라는 거죠?”

“그렇다니까요? 도라지만 해도 꽤 돈이 되죠. 10년 묵은 도라지가 산삼보다 더 좋다고 하잖아요.”

진수도 어디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본 것 같기는 했다. 산삼이나 인삼이나 도라지나 같은 사포니 계열의 성분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사포닌은 숙성이 될수록 좋은 효과가 있는 건데 사포닌이 자연적으로만 숙성이 되는 특성이 있어서, 오래된 산삼이 좋은 것이고 도라지도 오래되기만 하면 산삼 못지않은 효능이 있다고 말이다.

“그래요?”

“그런데, 도라지는 수명이 3년 정도라, 10년 된 놈은 보기 힘들어. 3년 넘어가면 슬슬 뿌리가 썩거든..하하..”

“도라지는 인삼의 사촌 정도 되는 거죠?”

“사촌이라? 그쯤 된다고 하더라고. 나도, 키우기만 했지. 잘은 모르지.”

도라지밭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남자는 이 땅의 주인인 정 사장이라고 했다. 무슨 사장님이냐고 물었더니 포도 농장 사장님이라는데, 60대 정도의 보이는 전형적인 시골 농부 스타일의 남자였다. 그리고 옆에는 자칭 부동산 전문가라는 정 사장의 친구, 박 사장이라는 사람도 같이 있었다.

“정일영이라는 분이 유명한 분이셨나 봐요?”

다 쓰러져 가는 오래된 기와집은 그래도 예전에는 규모가 꽤 컸을 것 같은 집이었다. 이런 산골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 그런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땅 주인은 이곳이 원래 정일영이라는 선조의 생가터라고 했다.

“그럼요. 고종황제 밑에서 요새로 치면 비서관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뭐, 이런 시골에서 태어나서 과거에도 급제하고 아주 똑똑한 분이셨지. 그런데 일찍 돌아가셔서 후손이 없어..”

“허허, 정 사장. 이거, 서울 양반한테 구라를 치를 치면 쓰나? 내시가 무슨 과거를 급제해?”

내시? 그러고 보니, 익숙한 이름인데? 고종황제 밑에서 일했던 비서? 내시 정일영? 이거 그 문위 우표가 붙어 있던 그 편지의 주인 아니야?

“내시요?”

정 사장의 친구라는 자칭 땅 좀 볼 줄 안다는 부동산 전문가 박 사장은, 정 사장 집안의 내력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조선 말기 궁궐에서 일하던 정일영은 당연히 씨 없는, 아니 후손이 없는 관계로 사촌 동생의 아들을 양자로 들였다는 뭐, 그런 이야기였다.

“아니, 이 인간이, 또 무식한 소리를 하네. 내시들도 다 같은 내시가 아니여, 우리 선조님은 과거에 급제해서 관직이 있었다니까, 뭘 알지도 못하고 그런 말을 하는겨.”

“아, 알았어. 내시 이야기만 하면, 승질을 내네, 따지고 보면 직계 조상도 아닌데 뭘 그런 걸로 화를 내고 그려?”

충청도 사람들이라 그런지 말하는 게 무슨 만담을 하는 느낌이었다. 아무튼, 둘이 크게 싸우는 건 아니고 친해서 투닥거리는 정도로 정 사장의 조상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래서 이 집터하고 땅을 선생님이 물려받으신 거군요?”

“그렇죠, 우리 고조부께서 정일영이라는 분 사촌이고, 증조부님은 후손이 없는 집안에 양자로 들어가서 결국, 이 집하고, 밭을 다 물려받은 거지.”

“집은 그대로인가 봐요?”

“집도 그대로고, 저 밭도 전에 정일영 그분이 다 개간을 해 놓은 그대로예요.”

원래 궁궐에서 내관으로 일하던 정일영은 아마도 갑오개혁 이후에 궁궐을 나온 모양이었다. 그 후에 고향인 충청도로 내려와 살다가 후손은 만들지 못 하고,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고, 친동생이 있었으나 친동생도 지병으로 정일영보다도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어서 양자로 입적했던 지금의 정 사장의 증조부가 모든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이 동네에 내려오는 전설에는 정일영 씨가 궁중에도 돈 관리를 하던 내시라서 돈을 많이 빼돌렸다는 말도 있더라고.”

“전설요?”

“그려, 정일영 씨가 궁궐을 나올 때, 황금 단지를 들고 나왔네, 뭐네, 그런 전설이지. 황금 전설 말이여.”

황금 전설?

“아이고, 박가, 이놈아 어디서 또 되도 않는 헛소리를 하고 자빠졌냐? 그런 금덩이가 있었으면 우리 집안 사람들이 바보냐? 그걸 여적 놔두게.”

“하하, 하긴 그려. 서울 양반은 그건 신경 쓸 거 없고, 여기 좋은 땅이니까, 한 번 둘러 보쇼. 사 두면 뭐라도 할 땅이라니까.”

이곳은 정일영이 태어난 생가와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하는 산골 마을, 후에 출세한 정일영이 초라한 오두막이던 생가를 허물고 제법 번듯한 집을 지었다고 한다.

비탈진 곳에 있던 작은 텃밭도 개간을 해, 지금의 제법 큰 도라지밭이 된 것이다. 도라지는 탐스럽게 잘 자라있는 것 같았지만, 대체 이 땅을 사서 무슨 돈을 번다는 거지?

하지만 이제껏 행운 과자의 행운이 나를 실망시킨 적은 없었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여기가 그 문위 우표의 편지 주인공이었던 정일영의 생가라는 것도 수상하고,

그리고 저 박 사장인지 뭔지 하는 사람이 말한 황금 전설이라는 것도 좀 흥미롭게 들렸다. 최기현 교수가 했던 말도 정일영은 고종황제의 내탕금, 즉 왕실 재산을 관리하던 내수사의 돈을 관리하던 하급 관리라고 했던 것 같은데,

하급관리직이라면 실무자급이라는 말이잖아? 가끔 뉴스에 나오는 회사 공금 횡령하는 사람들 기사 중에 많이 나오는 단어가, 경리다. 경리 직원이 중소기업의 자금 수십억을 횡령하는 사례도 많은 것이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에 나오는 그 유명한 샤워씬의 여주인공도 그렇게 돈을 횡령해서 도망 중인 경리 직원이기도 하고 말이다.

말하자면 정일영은 내수사의 하급관직인 전환, 즉 경리담당이라는 말인데..정말, 그 황금 전설이라는 것은 사실인 건가?

머릿속에서 복잡한 상상들이 연이어 스쳐갔다. 보통 상식적인 수준으로 생각하면 이런 시골에 땅을 살 이유도 없고, 동네 촌부들의 전설 타령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겠지만,

행운 과자의 마법 같은 힘을 알고 있는 진수에게는 이 모든 것이 뭔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큰 그림의 일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그림의 한 가운데에는 전설의 그 황금이 있을 거라는 느낌적인 느낌도 들고 말이다.

그렇다면 일단, 이 정일영 생가터와 저 도라지밭을 구매할 필요가 있었다. 진수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자, 이선호 사장이 다가왔다.

“어떻습니까? 괜찮은 땅이죠? 주위에 인가도 없어서 아주 조용해요.”

이선호 사장의 말대로 주변에 마을도 잘 안 보이는 완전 시골 산골짜기의 땅이었다. 그래서 진수의 선택은?

“마음에 드네요.”

“귀농을 하시려고 그러나? 젊은 분인데? 이런 산골에서 뭘 하시려고?”

“하하, 요즘, 자연에 산다, 라는 프로그램 보니까 산골생활도 좋아 보이더라고요. 뭐, 아주 이주를 하는 건 아니고 별장처럼 종종 들러서, 힐링 좀 하려는 거죠.”

“힐링요? 그것도 좋죠. 그런데 그럼 가격은 어느 정도 생각하시나?”

정일영의 후손이라는 남자는 가격이 가장 궁금한 모양이었다.

“정 사장님은 얼마를 생각하시나요?”

“음, 그게, 집도 쓸만하고, 도라지밭의 도라지 가격도 상당하고, 뒤편의 산의 가격도 있으니께.. 못 해도 2억은 받아야...”

“1억 드리죠.”

“예끼 이보슈, 요새 1억으로 저만한 땅을 어디서 산다고?”

“싫으면 그만두시고요, 이런 시골 산골짜기의 땅을 누가 1억이나 주고 삽니까? 저는 경치가 맘에 들어서 손해를 봐도 사두려고 한 건데, 욕심이 너무 과하시네요. 뭐, 경치는 맘에 들지만 어쩔 수 없죠.”

“그럼, 1억 5천..”

“1억 이상은 못 드립니다.”

뉴욕 부동산 이선호 사장에 듣기로는 이 남자는 돈이 궁한 모양이었다. 급매물로 내놓은 땅이지만, 몇 년째 주인을 찾지 못 하고 있다고 했다. 집터와 텃밭이 400여 평 정도, 뒤로 작은 야산이 500 평 정도 되는 곳이라고 했는데 부동산 사무실에서는 시세보다 싸게 값을 불러도 살 수 있을 거라는 귀뜸이었다.

“그럼, 1억 2천...”

“1억에 파시든가? 다른 사람 찾아보시죠? 그럼 이만..”

“잠깐, 그럼, 1억으로 합시다. 대신, 도라지는 내가 다 캐갈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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