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건물주
“괜찮죠?”
“멋..멋지네요.”
오유정은 30대 초반의 세련된 분위기의 부동산 중개사였다. 하지만 옷차림은 상당히 과감해서 빨간색의 투 피스 정장은 상당히 강렬한 인상이었다. 얼굴도 상당히 미인에 어딘지 럭셔리한 강남스타일의 미녀라고 할 수 있었다.
신사동 골드 부동산에서 소개시켜 준 곳은 신사동의 이면 도로에 자리 잡은 영진 빌딩이라는 곳이었다.
“199평이니까 대충 2백 평이라고 잡고, 120억이면 평당 6천이죠.”
1평에 6천만 원이라고? 비싸잖아? 아닌가? 여기가 강남이니까, 그렇게 비싼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강남에 이런 위치에 평당 6천이면 헐값이죠. 그리고 건물도 아주 쓸만해요.”
오유정이 자신 있게 가리킨 영진빌딩은 7층의 건물이라고는 하는데, 일반적인 네모반듯한 7층의 건물은 아니고 5층부터는 면적이 좁아지는 구조였다. 그래서 건물은 좀 특이하고 디자인적으로 멋지다는 느낌이 있었다.
대지가 199평이라 건물 앞쪽에 여유 공간도 좀 있고 지하 주차장 공간도 따로 있고 나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건물 자체도 깔끔한 느낌,
1층에는 고급 의류 매장이 들어와 있었고, 2층은 카페, 3층은 마사지 업소가 쓰고 있었고, 4층과 5층 사무실로 임대 그리고 6층과 7층은 펜트하우스였다.
오유정과 상가 쪽을 둘러보고, 6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도 설치되어 있고 6층으로 올라가자, 근사한 펜트하우스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6층만 80평이니까요. 거기에 7층의 30이 추가돼서, 110평의 공간이죠.”
7층은 말하자면 옥탑방 같은 곳인데, 물론 30평 규모의 어지간한 아파트 수준의 크기였다. 덕분에 6층 옥상 부분은 정원으로 만들어 쓰고 있었다. 물론, 옥탑방 앞의 옥상 공간과는 차원이 다른 럭셔리한 옥상 정원과 테라스가 있었다.
초고층 빌딩은 아니어도 7층의 높이에서 강남을 내려다보는 그런 위치였다. 테이블과 의자도 있어서, 마치 야외 노천 카페 같은 분위기도 있고 말이다.
“와, 여기는 완전 카페 분위기인데요.”
오유정은 진수의 말에 싱긋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저도 아파트에 살지만 아파트가 아무리 좋아도 아파트죠. 사실, 진짜 럭셔리한 주거공간은 이런 펜트하우스 아니겠어요?”
“그러게요. 저도 한강뷰가 좋다는 트리피오에 살고는 있지만, 한강뷰와는 또 다른 분위기가 있네요. 안쪽 공간도 볼 수 있나요?”
“그럼요. 급매로 내놓은 곳이라, 전 주인 물건이 그대로 있는데, 인테리어나 가구 배치가 잘 되어 있어서, 나중에 참고하셔도 될 거예요.”
안으로 들어가 보니, 역시 오유진의 말대로 공간도 80평과 30평대로 큰 집 하나에 작은 크기 집 하나가 더 얹혀진 느낌이었다. 작다고는 해도 7층도 혼자 살기에는 충분하고 거기에 앞쪽에 루프탑 공간이 상당히 넓어서 7층만 써도 트리피오의 아파트보단 더 여유있는 생활 공간이 확보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때요? 마음에 드시나요?”
오유정은 강남에서 일하는 강남 여자라 그런지, 어딘지 럭셔리하고 세련된 느낌이 있었다. 빨간색 미니 스커트는 보통 너무 튀거나 촌스럽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유정 같이 몸매도 좋고 화려하고 어딘지 표정도 자신만만해 보이는 여자에게는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는 모습이고 말이다
영진 빌딩도 상당히 디자인도 튀고 화려한 느낌의 빌딩이지만, 그래서인지 강남의 신사동이라는 공간과 아주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좋네요. 아주 좋아요. 마음에 들어요. 이게 120억이라는 거죠?”
자본주의 시대였다. 돈만 있으면 뭐든지 다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머릿속에서 빌 클린턴이 했다는 유명한 슬로건이 떠올랐다.
바보야, 중요한 건 경제야. 아니, 진수야, 중요한 돈이야..돈만 있으면 뭐든지 가질 수 있다고 원하는 것 뭐든 말이야.
120억을 마련해야 했다. 일단 빌딩 계약은 하는 걸로 하고, 2주 안에 120억을 입금하기로 한 것이다.
대출을 알아보니, 다행히 3주 정도 걸리는 아파트 담보 대출 신청 심사가 고급 아파트 우대 서비스로 심사 기간이 1주일로 단축이 가능했다. 신청일 기준으로 2주 내에 대출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 외에 가지고 있던 현금에, 무엇보다 영동에서 발견한 금괴를 처분해야 했다. 일단, 신사동의 빌딩을 사면, 거의 백억 가까운 시세 차액이 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유정 말로는 200억은 최소치라고 했다.
몇 년 내로, 백억 이상을 더 받고 그 건물을 팔 수도 있을 거라는 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금괴를 약간 손해 보고 판다고 해도 남는 장사였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금괴를 좀 손해를 보고 팔아도 부동산으로 큰 이익이 생긴다고 생각하자, 미련 없이 금괴를 처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약간 싸게 팔기로 마음먹자, 대량으로 구매하겠다는 업자가 나타나서 금괴는 어렵지 않게 모두 처분할 수 있었다.
그리고 행운은 하나 더 있었다.
“가구들은 모두 말입니까?”
신사동 빌딩의 전 주인은 뭐가 급한지, 펜트하우스를 꾸며 놓은 고급 가구들이며 가전제품 같은 것들을 진수가 인수하면 어떻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빌딩의 전 주인은 40대 초반으로 김영석이라는 깔끔한 인상의 남자였다. 펜트하우스도 역시 그가 살던 곳이라고 했다.
“사실은 제가 혼자 쓰려고 꾸민 곳인데 별로 쓰지도 못했어요. 가족과 집에서 지내는 생활이 많았고 여기는 일종의 제 아지트였죠. 그래서 물건들을 새것이나 다름없죠. 어떻습니까? 저렴하게 최진수 씨가 모두 인수하는 거 말입니다?”
하지만 남이 쓰던 가구들을 살 마음은 없었다. 그리고 중고라고는 해도 이태리나 독일의 고급 제품들로 중고 가격도 상당할 거라는 것 같아서 빌딩 잔금을 치르느라 남은 돈도 별로 없는 진수에게는 돈도 부담이었고 말이다.
“사실 이렇게 꾸미는데 수십억은 쓴 거 같습니다.”
“수십억요?”
전 주인 말로는 화장실의 수전 하나도 유럽에서 수입한 최고급 제품이라는 것이었다. 거기에 루프탑 정원을 만드는 것도 상당히 비용이 들어갔고 말이다. 6층과 7층 펜트하우스를 꾸미는 비용만으로도 그 정도 비용은 썼을 거라고 하는데, 과장이 들어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돈이 많이 들어갔을 거라는 느낌은 확실히 드는 펜트하우스였다.
빌딩을 팔고 급하게 외국으로 갈 거라, 가구들이나 가전제품들도 다 진수에게 팔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돈도 없고 난색을 표하자, 마음을 바꾸었는지 진수에게 그냥 꽁짜로 주겠다고 한 것이었다.
“어차피, 나는 외국으로 떠나야 하니까요.”
“급하신가 보죠? 건물도 급매로 내놓으시고. 가구도 처분하지 못할 만큼 말입니다.”
“하하, 뭐 그런 셈이죠. 아무튼, 최진수 씨라고 했나요? 내 입장에는 손해가 크지만, 세상 이치라는 게 한쪽이 손해를 보면 다른 사람은 또 이익을 보는 거죠. 세상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어쨌든, 진수 씨에게는 행운이 계속 따르네요. 빌딩도 싸게 사고, 거기에 이 가구와 펜트하우스의 집기들도 다 공짜로 받게 되었으니까요. 나중에 언제 만날 일이 있으면 그때 술이나 한잔 사시죠.”
그래, 내가 운이 좋기는 좋은 모양이었다. 내 돈 주고 사기에는 너무 비싸고 고급스러운 가구들과 호화로운 인테리어의 펜트하우스였다. 김영석은 운동기구나, 책, 화분들도 다 진수에게 주고 가기로 한 것이다.
진수가 물건들이 다 빠진 이 펜트하우스에 이사를 왔다면, 이렇게 화려하고 럭셔리하게 꾸미지는 못했을 것 같은데 외국으로 이민을 가는 건지? 전 주인은 통째로 펜트하우스의 집기들을 진수에게 다 공짜로 넘겨주었다.
어쨌든 진수에게는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그렇게 금괴를 판 돈으로 잔금까지 치르고 나자, 그다음은 건물 임차인들과 상견례를 했다. 뭐 거창하게 상견례라고 할 건 없었지만, 인사도 하고 혹시 건물에 다른 문제가 없는지도 확인할 겸, 건물을 한 번 돌며 임차인들을 만난 것이었다.
1층은 여성 수입 의류 회사가 쓰고 있었는데, 사무실 겸 매장도 겸하는 공간인 것 같았다.
“와, 옷들이 멋지네요.”
“어머, 사장님 그러면 여자 친구분 있으면 하나 사드리세요.”
“하하, 뭐,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래야겠네요.”
처음 듣는 브랜드들이 많이 보였는데, 가격들은 상당한 것 같았다. 옷들도 디자인이 범상치가 않은 것이 보통 사람들은 공짜로 줘도 입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한 옷들이 많이 보였다.
40대 후반 정도쯤 되었을 것 같은 여사장님들이 젊은 여직원들을 데리고 운영하는 것 같았다.
“나이도 젊으신 것 같은데 돈은 많으신가 봐? 그 나이에 강남 건물주면 최고죠. 여자 친구 있어요? 없으면 소개시켜 드릴까?”
“하하, 뭐...”
여사장님은 좋게 말하면 사교성이 좋고, 나쁘게 말하면 말이 좀 많은 스타일이었다. 거기에 진수에게 필요 이상으로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서 진수는 서둘러 2층의 카페로 이동했다.
2층은 화려한 1층과도 또 다른 럭셔리한 고급진 느낌의 공간이었다. 은은한 재즈 음악도 좋고, 이곳도 카페라 그런지 30대 중반 정도의 여자 사장님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의류 회사 사장님이 불같이 화끈한 스타일이라면, 2층 카페는 물처럼 잔잔하고 세련된 분위기였다.
여자 사장님도 큰 키에 좀 우아한 스타일의 미녀였고 말이다.
3층 마사지업소였다. 물론, 건전하게 스웨디시 마사지를 하는 곳이라는데, 뭔가 귀여운 눈웃음의 원장님과 마사지 관리사님들은 하늘하늘한 원피스 유니폼들을 단체로 입고 있었는데,
입구에서부터 향긋한 향기가 나고, 뭔가 천국에라도 온 듯 편안한 분위기였다. 원장님과 월세 이야기만 하고 있어도 뭔가 근육이 릴랙스가 되는 기분이었다.
공교롭게, 1층부터 3층까지 여자 사장님들이 운영하는 곳들이었다. 개인적인 인상으로는 1층은 부담, 2층은 쿨, 3층은 릴랙스 라는 단어로 정리가 될 것 같았다.
4층과 5층을 쓰는 딱딱한 인상의 무슨 벤처 기업 사장님이 진수를 맞았다. 첨단 기술이라면서 투자를 해보지 않겠냐는데, 문송하게 살아온 진수라 설명을 들어도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기술이 뭐냐 하면 말이죠.”
“아, 예, 아무튼, 지금은 급한 약속이 있어서 가봐야겠네요. 임대 계약은 기존과 변경사항은 없으니까요. 하하, 나중에 뵙기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6층부터는 진수의 새로운 아지트인 강남의 최진수 빌딩의 펜트하우스였다. 물론, 이 빌딩 정식 이름은 영진 빌딩이지만, 아무튼 이제부터는 최진수 빌딩 아니겠어?
전 주인에게 그대로 물려받은 펜트하우스는 따로 가구나 인테리어가 필요 없이 완벽한 컨디션이었다.
와인 셀러에 와인도 그대로 두고 간 것이었다. 그나저나, 빌딩에는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전 빌딩주가 도망치듯 서두르는 것 같아서 혹시 건물에 큰 하자라도 있지 않나 해서 걱정했는데, 일단은 괜찮은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고급진 빌트인 냉장고를 열어 보았다.
와인은 꽤 많이 남겨 두고 간 주인은 여기서 식사는 거의 하지 않았는지 뭐, 먹을 만한 것 전혀 보이지 않았다. 수입 맥주 몇 병이 덩그러니 있는 폼이 왠지 냉장고는 오래전부터 맥주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을 것 같은 느낌
그래도 세입자 점검도 하고 나니 그것도 일이라고 배가 고팠다. 보통은 집에 있으면 트리피오 커뮤니티의 레스토랑에서 주로 식사를 해결했는데,
거기까지 밥 먹으러 가기도 그렇고, 일단 아주 배가 고픈 것도 아니어서 근처에 편의점으로 향했다.
역시, 편돌이 출신이라 편의점이 편하네. 익숙하게 고른 것은 컵라면과 삼각김밥, 그래 라면엔 삼각김밥이지...거기에 알바 할 때 자주 먹던 커피도 하나 고르고..
그렇게 한 봉지 들고 다시 최진수 빌딩으로 향하자, 뭔가 만감이 교차하는 느낌이었다. 편의점 알바 하던 복학생 최진수가 눈앞에 보이는 저 럭셔리한 그것도 강남 한복판에 빌딩의 주인이 된 것이다.
성공했네, 최진수. 강남 건물주가 된 거야..
그때였다. 뒤쪽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최진수 선배님이셨어.”
어라? 누구야?
헉? 앞으로 해도 민영민, 거꾸로 해도 민영민이잖아? 저 녀석이 여긴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