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산 파파라치 (20/200)

도산 파파라치

“최진수 선배님이시죠? 맞죠?”

“어, 하하, 이게 누구야, 거꾸로 해도..아니, 민영민, 영민이구나? 어쩐 일이야?”

뒤를 돌아보니, 평소와 다름없는 밋밋한 모습의 민영민이 서 있었다. 평소와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어깨에 카메라를 걸고 있다는 것이었다.

카메라? 뭘 하러 다니는 거야? 사진 촬영 알바를 하나? 돌잔치나 회갑연 같은 곳에서 촬영해 주는 알바도 있으니까 말이다.

“일이 좀 있어서 이 근처에 왔어요. 그나저나 최진수 선배님은 여긴 어쩐 일이세요? 그 편의점 봉투는 또 뭐고요?”

“어, 이건?”

뭐라고 하지? 몇 번 겪어보니까, 확실히 입이 가벼운 녀석인데, 내가 새로 산 최진수 빌딩, 그러니까 영진 빌딩 펜트하우스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으러 가는 일이라고 말하면 또 여기저기 소문을 낼 거 아냐?

헛소문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안녕하세요. 최 사장님.”

“아, 예, 안녕하세요.”

빌딩 앞에서 민영민과 어정쩡하게 서 있는데 어디서 상큼한 향기가 코끝에 닿았다, 그리고 들려오는 어딘지 달콤한 목소리, 3층의 마사지샵 원장인 서지영이었다. 옆에는 꽤나 섹시해 보이는 키가 큰 여자와 함께였다.

“인사드려, 선아 씨. 우리 마사지샵 건물주 최 사장님, 여기는 윤선아라고 새로 온 테라피스트예요.”

“처음 뵙겠습니다. 윤선아 관리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굉장히 젊으신 분이지? 그래도 여기 강남에 7층짜리 건물도 있고, 잘 나가는 분이야. 그럼, 최 사장님 나중에 봬요.”

서지영 원장과 윤선아던가? 아무튼, 눈웃음이 매력적인 원장과 신입 테라피스트는 은은한 향기를 남기고 그렇게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마주한 민영민...

“헉, 선배님, 역시, 이 앞에 초럭셔리한 이 건물이 바로, 최진수 선배님 소유의 건물이었다는 거죠? 와...대박이다. 일단 사진 한 장 찍겠습니다.”

아니, 이 자식이, 사진은 왜 찍어? 건물에도 초상권이 있는 거 아닌가?

***

신사동 영진빌딩 펜트하우스

“와, 여기서 사신다는 거죠?”

민영민은 6층의 펜트하우스를 둘러보더니 감탄을 내뱉었다.

“뭐, 여기서 쭉 사는 건 아니고. 뭐랄까? 좀 쉬는 그런 개념이라고나 할까? 취미 생활도 하고 말이야. 일종의 아지트지.”

“아지트요? 굉장한 아지트군요.”

이 건물을 나에게 판 전 주인이 이곳을 자신의 아지트로 쓰려고 했다는 말이 떠올라서 무심결에 그렇게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여길 아지트니 뭐니 할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막상 나도 여기에서 지내보니 뭔가 아지트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그런 공간이었다. 아파트와 달리 온전하게 나의 소유의 땅 위에 세워진 내 소유의 건물이기도 하고,

꽤 큰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사는 건 나 혼자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이야, 일이 끝나면 퇴근하니까 말이다. 그래서일까? 어린 시절에 시골집 옥상에서 혼자 비밀 기지 놀이를 하던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완벽하게 나만의 공간이라는 그래서 나만의 아지트라는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런 나의 신성한 공간에...

외부의 침입자가 침입한 것이다.

“영민이 너는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이야? 집은 마포라고 하지 않았나?”

“최진수 선배님이 그건 어떻게 아세요? 제가 말했었나요?”

“어? 뭐, 어디서 들은 것 같아. 아무튼, 이쪽에는 무슨 일이야? 그리고 그 카메라는 또 뭐고?”

민영민은 어깨를 걸고 있던 카메라를 들어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아, 제가 누굽니까? 바로 도산 파파라치 아니겠습니까?”

“도산 파파라치?”

파파라치라면? 사진을 찍어서 남들 협박하는 나쁜 놈들 아닌가? 파파라치라면 원래 연예인 사진을 찍어서 언론에 판매하는 그런 개념이라고들 하는데, 요새는 대한민국에서는 다양한 의미로 쓰이는 것 같았다. 공익적인 파파라치 제도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도산 파파라치는 또 뭐야?

“한 마디로 도산대로에서 고급 슈퍼카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죠.”

“슈퍼카를 찍는다고? 도산대로에서? 왜?”

“그냥, 멋있잖아요. 차들도 멋지고, 그리고...”

“그리고?”

“사람들, 고급 슈퍼카나 아니면 롤스로이스 같은 럭셔리한 차들 타고 다니는 그런 사람들, 아니 그보다는 그런 인생이 멋져 보이는 거죠. 마치, 최진수 선배님처럼 말입니다.”

민영민 말로는 도산대로는 강남에서도 고가의 수입차들이 많은 곳이라고 했다. 특히 슈퍼카 오너들이 도산대로에서 드라이브를 하는 일도 많아서 슈퍼카들을 동경하는 청소년들이 차 구경을 하려고 많이 오는 곳,

그중에서도 차를 전문적으로 촬영까지 하는 사람들을 일명 도산 파파라치 한다고 한다.

민영민은 뭔가 동경하는 눈빛으로 진수를, 아니 진수의 럭셔리한 펜트하우스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었다.

“와, 이런 의자 하나하나도 뭔가 럭셔리한 느낌인데요. 이건 브랜드가 뭐죠?”

“브,.브랜드, 그거야 난 모르지.”

내가 산 것도 아닌데 어떻게 다 알아? 나도 여기 몇 번 안 와봤는데...그냥 전 주인이 공짜로 주고 간 물건들인데 말이다.

“하하, 하긴 그렇겠네요. 뭐, 원래 돈 많은 사람들은 고급 브랜드라고 해도 큰 감흥은 없겠죠. 원래 진짜 부자는 자기 재산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라면서요?”

“누가 그래?”

“어, 최진수 선배님 그거 모르세요? 미국의 석유 재벌, 진 폴 게티가 한 말이잖아요. 현대 자본주의 시대의 부자들은, 부동산과 주식 같은 자산이 스스로 돈을 불리기 때문에 늘어나는 재산을 동시에 다 파악할 수 없다는 거죠. 자산은 쉬지 않고 계속 증식하니까 말입니다. 이거 김현선 교수님이 수업 중에 하신 이야기인데.”

“김현선 교수님이?”

그거라면 나도 듣는 수업인데, 왜 나는 기억이 안 나는 거지? 내가 수업 시간에 졸거나 하는 사람도 아니고 말이야, 물론, 가끔 몽상에 빠져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예, 이거 외워두세요.”

“그런 게 시험에 나오겠어? 교재에 나오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아니에요, 김현선 교수님이 퀴즈라고 해서 중간고사 말미에 이런 문제도 단답식으로 낸다고 하더라고요, 수업 참석 제대로 한 건지 확인 차원에서 말이죠.”

“그래? 그 사람이 이름이 진 뭐라고?”

“진 폴 게티요. 아무튼, 엄청난 펜트하우스네요. 인테리어도 최고급인 것 같고. 사실, 인테리어는 바닥을 보면 알죠. 사람은 신발을 보면 그 사람을 알고, 주택은 바닥을 보면 수준을 안다고 하잖아요.”

“바닥?”

“예, 이건 원목마루잖아요. 어지간한데는 강화마루 그런 건데 이건, 최고급 원목마루인 것 같은데요. 어디보자, 역시...이건 리스토네 조르다노네요.”

“뭐? 리스토...지오다노?”

“리스토네 조르다노요, 이태리 최고급 원목마루 업체라고 보시면 돼요. 유럽에서는 고급 호텔에서도 많이 쓰는 최고급 원목마루 브랜드죠.”

“야, 바닥이 나무인 건 맞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 어디 브랜드가 써 있냐?”

“알죠, 이래 봬도, 마루 시공은 좀 해봤거든요. 물론, 이런 고급 원목마루는 옆에서 구경만 한 거지만.”

민영민은 생긴 것과 달리 인테리어 업체에서 알바를 하며 돈을 벌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이 카메라도 그 돈으로 산 거예요. 용돈으로 사기에는 미안하기도 해서, 마침 강남에서 마루 시공하는 알바가 있더라고요. 강남의 부자들 사는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제 호기심도 채우고 돈도 벌고 저로서는 일석이조였죠. 아무튼, 그때 제가 듣기로는 리스토네 조르다노가 원목마루로는 끝판왕이라고 하더라고요. 평당, 시공가격이 백만 원이 넘는다는 것 같았는데.”

평당 백만 원? 아니, 바닥 장판 같은 건데, 그렇게 비싸? 하긴 김영석인가 하는 사람이 여기 인테리어에만 수십억을 썼다고 하더니 진짜인 모양이었다.

“원목마루에, 여기 이 긴 벤치도 여기 리스토네 조르다노 콜라보 제품이군요. 거기에 거실 원목 진열장도 그렇고, 와 이것만 해도 얼마야? 7층도 펜트하우스라고 하셨죠? 루프탑도 있다면서요?”

영민이는 7층에 올라가더니, 그야말로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지었다.

“와, 여기 루프탑 데크도 다 리스토네 조르다노잖아요? 원목마루에 루프탑 데크까지 바닥에만 몇억은 쓰신 것 같네요. 그렇죠? 최진수 선배님.”

“어? 뭐? 아, 그렇지. 원래, 기초가 좋아야 하잖아. 바닥이 튼튼해야 좋은 거니까. 하하, 바닥이 좀 비싸다고 하더라고.”

뭐가 이렇게 비싼 걸로 바닥을 깐 거야? 이태리 명품 원목이라고? 그냥 나무가 다 나무지, 이태리 원목은 나이테가 금테라도 되는 건가?

경치가 좋은 루프탑까지 다 둘러본 후에 민소희의 사촌 오빠인 민영민은 진수의 침실을 보고 싶다고 했다.

아니, 남의 침실은 왜 보고 싶다는 거야? 남자가 내 침대 건드리는 건 별로인데, 하지만 어차피 전 주인에게 물려받은 가구들과 침대들이니까, 뭐, 별 상관은 없었다.

눈치를 보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민소희의 사촌 오빠기는 하니까, 침실을 구경시켜 주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말이다.

“영민아, 침실은 여기야”

진수가 문을 열자 이번에도 민영민의 탄성이 새어 나왔다.

“오, 마이 갓, 선배님, 와, 침대가...”

침대? 침대는 또 왜? 지저분한가? 무슨 냄새라도?

“킁킁, 뭐, 깨끗하고 청결한 내 침대가 왜? 체크무늬가 좀 촌스러워?”

“하하, 하하하. 그건, 재벌가의 유머인가요?”

유머? 내가 무슨 웃긴 이야기를 한 거야?

“세계 최고의 명품 침대, 해스텐스의 시그니처 체크 문양을 촌스럽다고 하시니 말입니다.”

“해...해시 뭐?”

“설마, 이것도 모르시는 건 아니시죠? 이거 영국과 스웨덴 왕실에서 쓴다는 스웨덴 전통의 명품 침대 메이커 해스텐스 침대 아닙니까? 이 정도면 1억은 넘는다고 들은 것 같은데...”

침대가? 이 침대가 1억이 넘는다고? 공짜로 받은 가구 중에서 침대는 체크무늬 때문에 좀 싸구려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누워보니 의외로 편하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이 요상한 체크무늬 침대도 굉장히 유명한 명품인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뭔가 디자인이 스웨덴, 스칸디나비아 그런 느낌이 있네...잘은 모르겠지만.

“실물로 해스텐스 침대를 보는 건 처음인데 사진 좀 찍어도 되겠죠?”

“야, 침대 사진은 왜 찍어?”

“제가 이런 걸 좋아하거든요. 뭐랄까? 가질 수 없으니 사진이라도 찍는 거죠. 대리만족 말입니다.”

뭐,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고, 공상을 하는 사람이나 드라마나 영화에 열광하는 심리들도 일종의 대리 만족일 테니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가진 자들의 세상인 대한민국에서 사진이라도 찍으며 대리만족을 하겠다는 영민이의 태도도 이해가 가고, 동시에 조금 안쓰러운 생각도 들었다.

아직, 한창 젊은 나이에 이미 세상에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많은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사진을 찍으며 대리 만족을 한다니, 꿈도 희망도 없는 헬조선이라는 건가?

“도산대로에 자동차 사진을 찍는 것도 그런 대리만족 때문인 거야?”

“그렇죠. 특히 우리 세대는 물론, 최진수 선배님 같이 선택받은 금수저들은 예외겠지만, 저희 같은 N포 세대에게는 서울에서 자기 힘으로 돈을 벌어서 아파트나 괜찮은 집을 사는 건 불가능해져 버렸고, 그래서 자동차로 눈을 돌리는 거죠.”

진수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전 세대는 소득은 적었지만, 그 소득으로 어렵게나마 부동산을 구매할 수 있었고 그 부동산 가격의 상승으로 근로소득과 비근로소득이 동시에 상승하며 경제 성장의 결실을 공유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이미, 부동산이 너무 올라버린 지금의 젊은 세대는 부동산을 살 돈을 모을 기회조차 없는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은 꾸준히 상승 중이고 결국, 근로소득에만 의존해서 겨우 현상 유지 정도를 할 수밖에 없는 세대가 된 것이다.

대한민국은 부동산과 주식 같은 자산이 꾸준히 성장하며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는 자산을 축적할 기회가 전혀 없이 자본주의 시대의 맨 밑바닥에서 저임금 노동자, 사실상의 노예 생활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부모에게 자산을 물려받은 금수저나, 타고난 재능을 가진 천재들, 혹은 진수처럼 행운을 누리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대한민국은 희망이 없는 헬조선일 뿐이다.

“최진수 선배님처럼 사는 게 제 꿈입니다.”

“나처럼?”

“예, 돈 걱정 없이, 사는 거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요. 슈퍼카들도 맘대로 사고 멋지잖아요.”

“슈퍼카? 하하, 넌 그런 걸 좋아하는가 보구나?”

“다들 좋아하지 않나요? 여자들도 그렇고.”

“여자들도 그런 차를 좋아해? 누가?”

“뭐, 많죠. 소희도 람보르기니라면 아주 환장을 하는데, 멋지다고 말이에요.”

민소희가? 람보르기니에 환장을? 상상이 되었다. 노란색 람보르기니, 남자의 상징과도 같은 노란 황소에 민소희 같은 미모의 아이돌을 태우고 탁 트인 도산대로를 시원하게 달린다. 상쾌한 바람이 나의 귓가를 스치고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민소희의 요염한 웃음소리도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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