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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뷰 아니면 한강물 (21/200)

한강뷰 아니면 한강물

“최진수 선배 말이야, 강남에 꽤 큰 빌딩도 가지고 있다던데.”

“정말?”

“재벌가의 3세라는 말이 사실이기는 한가 봐. 건물이 7층인데, 6층하고 7층은 자기 펜트하우스로 쓴다는 것 같아.”

“와, 건물 2개 층을 개인 공간으로 쓴다는 거 아냐?”

“그렇지, 건물이 대지가 2백 평이 넘는다고 하더라고.”

“그러면 한 층이 2백 평, 그럼 펜트하우스가 4백 평이나 된다는 거야?”

“그런 셈이지.”

“와, 4백 평짜리 펜트하우스? 상상이 안 가는데.”

“인테리어도 어마어마한가 봐, 영국 왕실에서 쓰는 가구들을 쓴다고 하더라고.”

“영국 여왕과 같은 레벨이라는 말이잖아?”

“하하, 그런가? 영국 여왕 재산이 얼마나 되지?”

“몇십조 되지 않을까?”

“그럼, 최진수 선배도 수십조 자산가의 상속자쯤 되려나?”

소문이라는 것은 대게 부정확하며 과장되게 마련이다. 진수에 대한 소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문의 진원지가 민영민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민영민이 옮겨 나른 소문의 씨앗은 인간의 호기심이라는 토양에 뿌리를 내리며 근거 없이 무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하지만 재벌가의 후계자라는 터무니없는 소문과는 달리, 진수에게 어마어마한 돈인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빈털터리라고 할 수 있었다.

“진수니?”

“엄마, 무슨 일이에요?”

“저기, 너 혹시 돈 좀 있나 해서?”

“돈요?”

“그래, 전에 로또 1등에 당첨되었다고 했잖아?”

시골에 계시는 엄마에게서 갑자기 돈을 좀 구할 수 없냐는 연락이 왔다.

“집에 무슨 일 있어요?”

“아버지 차가 사고가 나서...”

“사고요? 아버지는 괜찮으시고요?”

“아버지야 멀쩡하시지. 트럭을 경사진 데 세워놓고 브레이크를 안 걸고 그대로 내렸나 봐. 그러고 일 좀 보러 갔는데, 차가 그대로 미끄러지면서 상가로 돌진해서 남의 가게를 박살을 내놨어.”

“아니, 어쩌다가, 그러셨데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 다친 사람은 없어요?”

“다행히 사람은 안 다쳤는데, 부서진 상가 보상비도 필요하고, 너희 아버지가 보험도 제대로 안 들어놨는가 보더라, 그래서 그 고물 트럭도 폐차했으면 하기도 하고, 아무튼 너희 아빠는 진수 너한테 전화 걸지 말라는데, 어디 달리 돈 나올 것도 없고 말이야.”

“알았어요. 엄마 내가, 그 정도 돈은 있으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갑자기 고향집에 돈이 필요하게 되었다. 아버지 트럭이 돌진한 가게 보상비도 있어야 하고, 고향에 내려간 김에 아버지가 타시던 트럭도 새 차로 바꿔 드려야 했다.

***

무진시 진수의 고향집.

“그래도 사람이 안 다쳐서 다행이에요. 물건하고 건물 부서진 거야, 다시 고치면 그만이고요.”

“참, 나도 평생 가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분명 사이드 브레이크를 올린 것 같았는데 말이야.”

“나이 먹어서 그렇지, 뭐 딴 게 있겠어요? 당신도 이젠 운전도 조심조심하고, 주차든 뭐든 더 신경 써서 해요. 당신도 청춘이 아니라고요.”

“엄마, 그만 하세요. 살다 보면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하는 경우도 많고, 잘 기억이 안 날 때도 있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한평생 운전한 네 아버지가 브레이크를 채우는 걸 깜박할 수가 있니? 아무래도 건망증이 심해진 것 같아. 네 아버지 책망하는 게 아니라, 요새 나도 건망증인지 깜빡깜빡하는 게 많거든. 엄마도 이제 늙었나 봐.”

“엄마는 동안이시잖아요.”

“동안이든 뭐든 나이에 장사 없어.”

“당신도 적당히 좀 해요. 그래도 진수 네 덕분에 잘 해결이 돼서 다행이다. 아버지가 이 나이 정도면 모아놓은 돈도 좀 있고 그래야 하는데, 이만한 일로 아들에게 손이나 벌리고 면목이 없다.”

“아니에요. 지금껏 키워주시고, 아버지도 열심히 쉬지 않고 일하시며 지금껏 살아오셨잖아요. 아버지 같은 분이 돈이 없다면 세상이 잘못된 거죠.”

“허허, 세상이 잘못돼? 그나저나, 진수 너한테 괜한 부담준 건 아닌가 모르겠다. 그래도 어떻게 여윳돈이 있었던 거냐?”

“예, 돈은 충분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와 어머니 앞이라 좀 거짓말을 했지만, 사실상 빈털터리 신세였다. 물론, 신사동에 건물도 사고 강남 건물주가 되기는 했지만, 덕분에 가진 돈은 탈탈 털어 넣었고 거기에 아파트로 대출도 받고,

소위 말하는 하우스 푸어, 아니 빌딩 푸어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빌딩과 아파트는 있지만 대출로 갚아야할 빚도 상당해진 것이었다.

그나마 건물을 사면서 당분간 생활비나 등록금으로 쓰려 남겨두었던 돈도, 이번에 아버지의 사고로 다 써버리고 말았고,

이제 남은 현금은 거의 바닥이 나버린 상태..

“그 지난번에 아파트 산다는 건 산 거지?”

“예, 그럼요. 뭐, 그리고 아파트 사고 남은 돈으로 투자도 좀 해서, 더 돈을 불려가고 있어요.”

“투자? 무슨 주식 그런 거 말이냐?”

“예, 뭐, 돈만 있으면 또 돈을 불리는 건 어렵지 않거든요.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잖아요.”

진수는 건망증에 좋다는 침향을 꺼내놓았다.

“이게 뭐냐?”

“침향이에요. 홈쇼핑 같은데 광고 많이 하는 거 있잖아요. 엄마가 자꾸 아버지 건망증 걱정을 하시길래, 하나 사 왔어요. 뇌기능 개선을 해서 건망증, 치매에도 좋데요. 엄마도 건망증 심하니까 같이 드세요.”

“어머, 뭐 이런 걸 다 사 왔어. 고마워 아들.”

“이번에 돈도 많이 썼을 텐데, 뭘 이런 것까지 사 와? 너나 맛있는 거 많이 사 먹지.”

“전, 잘 먹고 있어요.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그리고 아버지 트럭은 새로 샀는데, 이참에 다른 차도 하나 더 사요.”

“트럭 있으면 됐지, 무슨 또 차를 사?”

이번에 내리막 경사 사고 때문에 겸사겸사 아버지의 고물 트럭도 새 트럭으로 교체해 드리기는 했는데 농사일에 필요한 거라 트럭을 새로 사드리기는 했지만, 이제 아버지 나이도 있으시고 좀 승차감이 좋은 차를 타고 다니시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트럭이야, 농사일에 필요하니까 산 거고. 언제까지 엄마랑 트럭 타고 외출하고 그러기도 그렇잖아요. 그러지 말고, 세단 같은 거 하나 사서 타고 다니세요. 아니면 요새는 SUV가 인기라니까. SUV를 사시든지요.”

“그래, 여보, 진수가 여유가 있으니까 그러는 거겠죠. 오늘 보니까, 차도 좋은 거 타고 왔던데. 진수야, 엄마 말이 맞지? 너 돈 좀 있는 거지?”

“예, 돈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로또 당첨금으로 더 불려서 좀 여유가 있어요.”

어쨌든, 전부터 아버지가 트럭 몰고 다니시는 게, 어렸을 때는 왜 남들 아버지들처럼 승용차가 아닌가? 창피한 마음이 들었던 적도 있었고, 나이 먹고는 아버지가 고생하시는 것 같아서 안쓰럽기도 했었다. 거기다, 철없는 아들 녀석은 돈 좀 생기니까, 덜컥 자기 포르쉐부터 사버리고 말이다.

약간, 죄송스러운 마음에, 남은 현금이 거의 없었지만 거의 영끌 수준으로 돈을 탈탈 털어서, 아버지에게 신형 SUV도 한 대 사 드리고, 그렇게 다시 서울로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

서울 트리피오, 진수의 아파트.

“와, 대출금 이자도 갚아야 하고, 아파트 관리비에 밥도 사 먹어야 하고, 큰일이네.”

뭐, 강남 건물주가 되어서 엄청 부자가 된 느낌적인 느낌을 잠시 만끽한 것도 잠시, 성수동에 번듯한 아파트의 거실에서 한강뷰를 내려다보는 진수는 수중에 몇만 원도 없는 신세였다.

알바라도 다시 뛰어야 하나?

사실, 당장 현금이 없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심리적인 부담감이 있는 건 아니었다. 이렇게 거실에서 한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전망과 햇살 가득한 포근한 날씨, 거기에 다리 하나만 건너면 강남에는 나의 럭키 세븐 빌딩, 7층짜리 빌딩이라는 의미다..

아무튼, 행운 가득한 나의 강남 빌딩도 있고,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장 수중에 현금이 없는 건 아쉽기는 했다.

돈만 있으면, 민소희가 환장을 한다는 노란 황소, 람보르기니도 살 수 있고 좋을 텐데 말이다.

람보르기니는 얼마나 줘야 사는 거야?

당장, 현금이 없으니, 전에 포르쉐를 살 때처럼 카드 하나 들고 딱 매장에 들어가서 차를 고를 수는 없는 일이고, 인터넷으로 가격이라도 알아보기로 했다.

카이사르 흉내를 내보자면,

람보르기니는 크게 3종류로 나누어진다. 엔트리 모델인 우라칸과, 고성능 모델인 아벤타도르, 그리고 최근의 SUV 열풍을 타고 새롭게 출시된 SUV 우루스 정도로 말이다.

우라칸이 최소 2억 중반 정도, 아벤타도르는 6억, 우루스도 3억 정도는 필요한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아벤타도르가 가장 인기 있는 모델이라고 할 수는 있는데, 가격도 비싸고 승차감이나 운전하기에 편한 차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서 엔트리 버전인 우라칸이 가장 많이 팔린다는 것 같고, 거기에 최근에 대세인 SUV인 우루스도 인기이고 말이다.

돈이 생겨서 람보르기니를 사게 된다면, 일단 무조건 노란색으로 사야 할 것 같았다. 람보르기니의 상징적인 색이기도 하고, 사진으로 보니까 노란색이 제일 예쁘게 나온 것 같고 말이다.

그리고 검은색 같은 것도 나쁘지는 않은데, 어차피 이런 차야 남들 관심받으려고 타는 차라고 한다면 노란색이 더 눈에 띄는 것 같고 말이다.

기왕 살 거면, 그래도 아벤타도르를 사는 게 좋겠지? 보통 사람들 눈에는 우라칸이나 아벤타도르나 다 특이하게 생긴 람보르기니겠지만, 민소희가 람보르기니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우라칸과 아벤타도르를 구별을 할 테니까, 기왕이면 고성능 버전에 가격도 비싼 아벤타도르를 타고 다녀야 멋있게 봐줄 거 아냐?

최진수 정신 차려, 네가 지금 돈이 어딨냐? 대출금 이자도 내야 하고, 관리비에 생활비도 있어야 하고 돈부터 벌어야지.

그래, 별수 없군. 이렇게 앞이 깜깜할 때는 행운의 과자가 필요해.

“그래, 행운의 과자 하나 먹으면, 어떻게 수가 생기겠지.”

진수는 별 고민 없이 과자가 들어있는 화수분 병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행운의 과자 하나를 꺼내 들었다. 오늘따라 뚜껑을 열 때, 고소한 향기가 솔솔 퍼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배가 고픈 건가? 왜 이리 맛있는 냄새가 나는 것이냐? 그래도 하나만 먹어야겠지,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깜빡하고 두 개를 먹었다가, 죽으면 곤란하잖아? 하하, 그러면 건망증으로 죽게 되는 건가? 중요한 걸 잊어버려서 죽게 되는 그런 남자 이야기 말이야..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어쨌든, 과자가 입으로 들어가고, 바삭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이던가? 일종의 조건반사 말이다.

과자를 먹을 때마다 좋은 일이 생기다 보니, 이제는 과자를 씹는 소리가 천국의 소리처럼 들려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입안의 이물감과 함께, 숫자가 적힌 종이가 나왔다.

‘01054212577’

역시, 전화번호, 휴대폰 번호겠군? 역시 부동산 중개인 번호인가? 부동산이라면, 지금 부동산을 살 돈은 없는데. 아니면 고액 알바를 소개시켜 줄 사람인가?

“아무튼 전화를 걸어보자고.”

진수는 휴대폰으로 번호를 눌러보았다. 신호가 가고...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누구시죠? 천사인가요? 아니면 악마인가요?”

“예?”

뭐지? 천사? 악마? 왠지 느낌이 좋지 않은 느낌적인 느낌인데.

“저, 실례지만, 거기가 어디인가요? 뭐 하시는 분이죠?”

“어디에 전화를 하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잘못 거신 겁니다. 제가 원했던 건, 천사 혹은 악마였죠. 어느 쪽이라도 상관은 없지만 말입니다. 천사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라면, 저는 이제 원래 계획대로 해야겠군요.”

원래 계획? 무슨 계획을 말하는 거야?

“저기, 죄송하지만, 지금 어디서 뭘 하고 계시나요?”

“여기는 한강이 아주 잘 보이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제 저 푸른 강물 속으로 시원하게 뛰어들 생각입니다.”

“수영 선수나 다이빙 동호회인가요?”

“하하..하하하...전혀 아닙니다. 저는 수영할 줄을 모릅니다. 그냥, 이걸로 모든 걸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싶을 뿐이죠. 그럼 이만...”

뭐..뭐야? 그럼 한강으로 뛰어들어서 자살을?

“아..안 돼요. 캄 다운, 캄 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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