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무죄 무전유죄
남자는 지금 한강으로 뛰어내려 자살을 하려고 하고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사람은 살리고 볼일...
“저기, 선생님 진정하시죠. 지금 정말 뛰어내리실 건 아니시죠?”
“고민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신에게 아니, 신이든 악마든 날 도와줄 수 있는 초월적인 존재에게 기도를 했었죠. 천사든 악마든 누구라도 보내서 나의 이 고통을 끝내달라고 말입니다.”
이거 뭐야? 행운의 과자를 먹었는데, 행운이 아니라 골치 아픈 일이 생기고 있잖아? 하지만 행운의 과자가 나를 배신한 일도, 나를 실망시킨 일도 한 번도 없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번 일도 결론에 이르러서는 행운으로 나에게 좋은 일이 될 거라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일단, 이 사람을 살려야 했다. 뭔가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 사람이기도 하고 그게 아니어도 죽겠다는 사람은 일단 살려야지,..
“저기, 지금 거기가 어디입니까?”
“그건 당신이 알 거 없을 것 같군요. 이제 쓸데없는 통화는 그만합시다. 난 내 갈 길을 갈 테니까...”
“아니, 저...이봐요..저기..잠깐만..”
전화는 그대로 끊겨버렸다.
어쩌지? 한강으로 뛰어들 거라면? 한강 다리인가? 보통 한강으로 뛰어들어서 삶을 마감하려는 사람들은 가장 수심이 깊은 중심에 도달할 수 있는 강의 한 가운데를 선택하게 된다. 그래서 많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곳이 바로 한강의 다리들,
강남을 강북과 연결하며 서울의 팽창과 고도성장을 이끌었던 현대적인 한강의 다리들은 역설적으로 자본주의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들의 마지막 장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꼭 그렇다는 보장은 없지만, 지금 통화를 한 남자는 아마 한강의 다리 어디쯤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그렇다면 어디일까?
한강의 수많은 다리들 중에서 자살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다리는?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보니 마포대교라는 답이 나왔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그 남자가 진짜 마포대교에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그 번호는 행운의 과자가 진수에게 보내준 번호, 아마도 운이 따른다면 그 남자를 살리고 진수도 아직은 알 수 없는 행운을 얻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지금은 생각할 때가 아니라, 달릴 때야..일단 마포대교에 달려가 보자...
다행히 강변북로는 정체 없이 한산했다.
무작정 한강의 다리 중에 하나를 찍어서 거기에서 이름도 모르는 그 남자를 찾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물론 보통의 확률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마포대교를 지나면서 어딘지 침울한 표정의 한 남자를 찾을 수 있었다. 진수는 그대로 차를 세우고 남자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아까 통화한 분이죠?”
남자는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다.
“누구시죠?”
“저는 천사도 아니고 악마도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선과 악의 이분법만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대체 누굽니까?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저는 우연과 확률을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한마디로 운이 좋은 녀석이라는 거죠.”
“하하..하하하..재밌는 분이군요. 설마, 아까 나랑 통화를 했던 그 사람인가요?”
“예, 맞습니다. 최진수라고 합니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것도 신기한 일이네요. 여기는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겁니까?”
“그저, 운이 좋았죠. 대충 한강 다리 어디쯤일 거라고 생각을 했고, 마포대교이지 않을까 찍어본 거죠.”
“찍었다고요.”
남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예, 전 뭐랄까? 운이 좋은 편이거든요. 지식이나 경험이나 그런 걸로 하는 것 말고 그저 확률과 우연에 강하다는 말입니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한강에 뛰어드시겠다는 건가요? 그러니까,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말입니다.”
남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최진수 씨라고 했나요? 저는 이성현이라고 합니다. 최진수 씨는 운이 좋은 분이라고 한 것 같은데, 저는 아주 운이 없는 사람이죠.”
“운이 없다고요?”
“예, 나처럼 운이 없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화가 나서 한강에 뛰어들지 않고는 미쳐버릴 정도로 말입니다.”
운이 없다? 하긴 사람들은 자신의 불행을 운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대체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 제가 좀 들을 수 있을까요?”
남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남자의 이름은 이성현, 아버지는 대기업에 납품을 하는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계시다고 했다.
“그거 아십니까? 대기업에 부품을 공급하는 우리나라 중소기업들 매출 대비 이익률이 평균 2%에요.”
“2%요?”
2%로는 부족하잖아?
“예, 우리나라 빈부격차의 원인 중 하나죠. 솔직히 다들 서울대, 연고대 나와서 대기업 취직하고 싶어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중소기업 다니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요. 한국은 중소기업의 나라라는 겁니다. 고용인원으로 보면 말이죠.”
“그렇겠네요. 대기업은 들어가기도 힘들고 퇴직도 빠르니까요.”
“맞습니다. 대신에 중소기업들은 입사도 쉬운 편이고 본인이 원하면 오래 근무하는 것도 가능하죠. 하지만 대부분 중소기업들은 구직자들도 기피하는 편이죠.”
“대우가 안 좋아서 그런 거 아닌가요?”
“중소 제조업체들은 대부분 저희 유성 정밀처럼 대기업에 물건을 납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중소기업들을 파트너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착취의 대상으로 보죠. 그리고 갑질을 하는 것도 모자라서 좋은 기술이 있다 싶으면 훔쳐가는 것도 서슴지 않고요.”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는 원래 디자인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홈페이지 제작하는 디자인 회사를 운영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중소기업을 운영하시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쓰러지셨다는 이야기에 급히 귀국을 하게 된 것이었다.
“항상 건강하시던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어요.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셨지만.”
“저런, 상심이 크셨겠네요.”
“예, 항상 건강하시던 아버지라, 저도 다른 가족들도 충격이 컸죠. 그런데 아버지가 쓰러지신 건 단순히 건강문제가 아니었어요. 의사 말로는 급성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하는데, 나중에 저도 그 이유를 알게 되었죠.”
“이유요?”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회사의 핵심 기술을 거래를 하던 대기업에서 훔쳐 간 겁니다.”
“저런? 어떻게 그런 일이?”
“저도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아버지는 동신 자동차와 20년 이상 거래를 하고 계셨죠.”
“아, 그 동신 자동차 말인가요? 거기라면 엄청난 대기업인데. 그런 큰 회사에서 이성현 씨 아버님 회사의 기술을 훔쳐갔다는 겁니까?”
“예, 아버지는 당신이 일궈낸 회사에서 만든 부품이 동신 자동차에 부품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에 자부심이 대단하셨어요. 그래서 아버지도 우리 가족도, 회사 직원들도 모두 동신 자동차만 타고 다니게 하셨죠.”
동신 자동차에 부품을 납품하던 유성 정밀과 그 직원들은 특히, 사장이신 이성현 씨의 아버님은 대기업인 동신 자동차와 자신들이 같은 일을 하는 파트너 더 나아가 한 가족 같은 운명 공동체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좋은 부품을 동신 자동차에 공급하기 위해서 그다지 많지 않은 수익을 쪼개서 신기술 개발에도 투자를 하고 말이다.
하지만 동신 자동차에 대한 유성 정밀의 애정은 짝사랑에 불과했던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동신 자동차에서는 유성 정밀이 납품하던 부품의 설계도를 요청했다. 납품 계약을 하려면 기술 검토가 필요하니, 제품 설계도와 관련 자료를 모두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버지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던 거죠. 그로부터 6개월 후에 동신 자동차와의 거래가 끊기고 같은 부품을 다른 업체에서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다른 업체 관계자에게 듣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그럼?”
“설계도와 개발 자료들을 동신 자동차에서 빼돌린 거죠. 20년 이상이나 자신들의 손발이 되어준 유성정밀을 헌신짝처럼 차버리고 동신 자동차에서 퇴직한 임원이 세운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려고 우리의 자료를 그 회사에 넘겨 버린 겁니다.”
“아니, 그건 너무하네요. 거래를 중단한 것도 모자라서 기술까지 훔쳐간 거 아닙니까? 그건 법적으로 어떻게 안 되나요?”
“물론, 아버지도 너무 화가 나셔서, 동신 자동차에도 가서 따지고, 기술을 훔쳐서 카피한 제품을 만드는 그 부품 회사도 찾아가셨죠.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법대로 하라는 비아냥뿐이었습니다.”
“그럼, 법대로 하시지 그랬어요?”
“동신 자동차에서는 잘 알고 있었던 거죠. 이런 경우에 우리 같은 작은 기업들이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전을 벌이기 어렵다는 걸요. 법이라는 게 공평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법이 공평하냐고? 물론, 그럴 일은 없지. 법, 법이라는 것의 뿌리는 민법이다. 가장 오래된 법이 민법이고 모든 법 이론의 베이스가 되는 기본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민법은 일본의 민법을 고대로 베낀 것이고, 일본 민법은 독일 민법에서 왔다. 독일 민법은 로마 만민법이 기원이고 말이다.
한마디로 로마의 만민법이 우리 민법의 조상님이라고 할 수 있는데, 로마 만민법이라는 것이 왜 태어났냐? 부자들의 재산을 보호해주기 위해 태어난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것이 그 당시에는 권력자들이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는 일이 횡행했기 때문이다. 그걸 보호하기 위해 발전한 개념이라, 법의 핵심 가치가 사유재산 보호고, 결국 가진 자에게 유리한 법이라는 것이다.
군대에서 소대장님에게 들은 말인데, 정확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소위 말하는 법조인들의 리걸 마인드라는 것도 로마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정의와 법조인들의 정의가 좀 다른 개념으로 갈라지는 이유가 이것이다.
한마디로 쉽게 말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이 아직도 화자가 되는 건 이 말이 가진 생명력이 아직도 유효하게 살아있다는 의미일 테니까 말이다.
“법이 부자들에게 유리한 건 로마 시대부터 변함없다고 그러더군요. 군대에서 소대장님에게 들은 말입니다.”
“그래요. 하하하..그 소대장님은 뭘 좀 아시는 분이군요. 로마 시대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오직 가진 자에게 유리한 게 법이죠. 억울한 일을 당하면 소송을 하고 그걸로 뭔가 구제를 받기가 너무 힘든 나라에요. 슈퍼에서 몇천 원짜리 계란 한 판을 훔치면 당장 잡혀가서 감옥에 가지만,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수천억짜리 기술을 훔쳐가도 오히려 처벌은 고사하고 큰소리치는 게 대한민국이라는 겁니다.”
“그럼 소송으로는 해결이 안 된 건가요?”
“그래도 억울해서 고소라도 해보려고 변호사들을 찾아다녔지만, 대기업 상대로 소송을 맡겠다는 사람들도 거의 없고 해봐야 이길 수도 없을 거라고 하더군요.”
“왜요?”
“대기업들의 변호사들이 하는 전략이 있는데, 소송을 최대한 복잡하게 만드는 거죠. 여기저기 불필요한 학술자료나 그것도 외국 자료를 인용해서 쓸데없는 서류들을 만들어 내는 겁니다. 한마디로 소송의 본질보다는 아무 상관 없는 아무 말 대잔치를 만드는 거죠.”
“그래도 되는 건가요?”
“그런 식으로 소송을 복잡하게 하고, 법원에서 검토하고 따져야 할 것들을 양산을 하는 거죠. 법이라는 게 형식이라는 것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증거로 제출한 자료들을 검토하고 다 따져보고 그러다 보면, 소송 기간은 점점 늘어나는 거죠. 대기업 입장에서는 소송에서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라 시간을 끌어서 자금력이 달리는 중소기업을 고사시키려는 겁니다.”
“정말 치사하네요?”
“예, 돈이 있다고 거짓으로 승소를 하기는 어렵지만, 대신 돈이 있고 힘 있는 대형 로펌과 손잡으면 소송을 거의 무한대로 끌고 가서 사실상 중소기업들을 돈과 시간으로 파산시키는 전략인 거죠.”
“그럼, 그 동신 자동차 때문에 화가 나서 한강에 투신하려고 하신 건가요?”
“뭐, 그것도 주요한 이유지만, 꼭 그것만은 아니죠. 그건 저의 한심한 불운 때문입니다.”
“한심한 불운요?”
남자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보였다.
“그게 뭔가요?”
“비트코인 지갑입니다.”
“비트코인 지갑요?”
“예, 여기에는 지금 시세로 2천억 원 가치의 비트코인이 들어있죠.”
“예?”
헉? 2천억? 뭐야? 이 자식, 불쌍한 놈인줄 알았는데 대박 돈 많은 녀석이었잖아? 그런데 왜 죽겠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