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든 악마든
“이유를 모르겠군요. 제가 보기에 비트코인이든 뭐든, 2천억의 재산을 가진 사람이라면 금수저 아니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거 아닌가요? 불행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군요.”
“하하 과연 그럴까요? 마이더스의 손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마이더스의 손? 투자를 하면 돈을 많이 번다는 말인가? 역시, 자기가 투자의 귀재라는 자기 자랑?
“이성현 씨 별명이 마이더스의 손인가 보군요? 비트코인 투자로 2천억을 손에 넣었다면, 그럴 만도 하네요.”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마이더스는 손만 대면 황금으로 만들게 되었다는 전설의 주인공이죠. 하지만 황금은 무한대로 만들 수 있었을지 몰라도, 자기가 손을 대는 순간 모든 것들이 황금으로 변하는 통에 어떤 음식도 먹을 수가 없었던 비극의 주인공입니다.”
“아, 그리스 로마 신화인가에 나오는 이야기네요. 어렸을 때 읽은 적이 있어요. 그때 어린 나이에 의문이었던 것이 손으로 못 먹으면 그냥 입으로 먹어도 되고 정 불편하면, 다른 사람한테 먹여 달라고 하면 되는 거잖아요? 어차피, 돈은 많겠다.”
옛날 로마의 황제들은 그렇게 먹는 거 아니었나? 하늘거리는 로브 같은 걸 입은 미녀들이 비스듬히 누워 있는 황제들의 입에 고기며, 과일이며 술이며 손 하나 까딱 안 해도 맛있는 걸 먹여주는 거 말이다.
마이더스는 황금으로 돈도 재벌급일 텐데, 입에 떠먹여 주는 미녀들을 고용하면 됐을 텐데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 이야기가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황금 만능주의 시대인 현대의 대한민국에서는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 돈이면 최고인데, 마이더스는 절대 불행할 리가 없다.
그가 황금손을 가진 이상 말이다.
“흠, 비유적인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마이더스는 불행하다고 책에 나오죠. 그게 다수적인 해석이라는 겁니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저는 이 비트코인을 팔 수가 없습니다.”
“왜요?”
“비밀번호를 모르거든요?”
“혹시 훔친 건가요? 다른 사람의 지갑을?”
“아뇨, 그건 아니고 말하자면 복잡한데, 제가 10년 전쯤에 막 미국에서 디자인 회사를 창업했을 때였죠. 비트코인 거래소라는 곳에서 홈페이지 디자인 제작을 해달라는 거였어요.”
“오, 비트코인 거래소요?”
“그때는 창업 초기라 저도 경험도 없고, 돈도 없을 때라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했죠. 비트코인이라는 말도 그때 처음 들어봤는데, 처음에는 일을 안 하려고 했었죠.”
“왜요?”
이성현 말로는 그 비트코인 거래소라는 곳에서 홈페이지 디자인을 부탁하면서 지금 현금이 없으니 비트코인으로 대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비트코인으로요?”
“예, 그때 그게, 한화로 하면 한 천오백 정도였는데.”
“천 오백 원요?”
“아뇨, 홈페이지 디자인 대금으로 받을 돈이 천 오백만 원 정도였다는 거죠. 만 불이 조금 넘었던 것 같으니까요.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돈의 가치를 한국 돈으로 환산해서 계산하던 시절이었죠. 아무튼, 현금 대신 비트코인으로 대금을 주겠다고 해서 거절할까도 했지만, 워낙 일거리도 없고 그러던 시절이라 맡게 되었죠.”
10년 전이라면 비트코인의 초창기인데, 그때, 현금 대신 비트코인으로 받았다면?
“그럼, 그 비트코인이 지금 가치가 2천억으로 올랐다는 거죠?”
“예, 사실, 그때는 괜히 했나 하는 후회도 했었죠. 비트코인을 팔면 돈이 될 거라고 했지만, 어떻게 팔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막 새롭게 미국 생활에 적응을 해가던 시간이었고, 그 이후로 일이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한동안은 일하느라 정신없고 미국에서 집도 사고 나름 성공적인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었죠. 한국에서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전화가 오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미국에서 정착한 후에도 한국에는 자주 들르기는 했지만, 그래 봐야 일 년에 몇 번 찾아오는 정도라 이성현은 아버지의 회사가 어떤 상황인지는 알 수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도 미국에 가 있는 아들에게 어려운 회사 이야기를 하기 싫으셨던 건지 아버지가 쓰러지시기 전까지 전 정말 아무것도 몰랐죠. 그렇게 귀국을 하게 되고. 이미 기울어 가는 아버지의 회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어쩌다 사장이 된 거죠.”
이미 어려워진 회사, 그리고 한국 굴지의 대기업 동신 자동차와의 힘겨운 소송전, 모든 것이 이 남자에게는 힘겹고 버거운 일이었다고 했다.
“완전히 인생이 변한 거죠. 미국에서 유유자적, 성공한 아시안으로 그럭저럭 여유롭게 살다가,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와 보니. 거래처에서 밀린 대금 언제 줄 거냐? 은행 대출금도 갚으라고 난리고, 아버지가 선임한 변호사는 소송 중단하자고 하다가, 결국 맘대로 사임해 버리고. 임금도 밀려서 노조 위원장이 매일 찾아오고 말입니다.”
“저런, 갑자기 인생이 꼬인 느낌이었겠네요?”
“예, 그런데, 갑자기 기적처럼 예전에 받은 비트코인이 있다는 게 떠올랐어요. 아버지 면회를 갔다가 병원 로비에서 다른 사람들처럼 멍하니 tv를 보고 있었는데, 비트코인이 연일 최고가라는 뉴스가 나오는 겁니다. 그때 섬광처럼 머리에서 번쩍하는 느낌이었죠.”
이성현은 갑작스럽게 10년 전에 자기가 비트코인을 돈 대신 받은 일이 있다는 걸 기억했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동안 비트코인이 있다는 걸 어떻게 기억 못 했죠? 비트코인이 화제가 된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잖아요?”
“그게, 좀 어렸을 때부터 건망증이 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뭔가 잊어버리는 일들이 많았거든요. 하지만 좋은 선생님 덕분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죠. 김경아 선생님이라고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는데, 제가 건망증이 있는 걸 알고는 원래 천재들은 사소한 건 잘 잊어버린다고 말해주셨거든요.”
“비트코인이 사소한 건가요?”
“흠, 아무튼, 저도 비트코인이나 코인 지갑 같은 건, 그때, 비트코인 거래소에서 처음 받아본 거였죠. 안에 뭐가 있는지도 확인도 안 해봤어요. 어차피, 비트코인 같은 건 돈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저, 신생 업체라 경험 삼아 해보는 거였거든요. 아무튼, 그때 받은 비트코인이 7천 개였죠. 럭키 세븐 말입니다. 지금 가치로는 2천억 정도의 가치죠.”
“정말, 그 코인 지갑에 비트코인이 있는 겁니까?”
“아마, 그럴 겁니다, 코인 지갑은 10년 전에 받은 그대로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제가 비밀번호를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면, 대충 생일이나 그런 걸 조합해서 눌러보시죠.”
“물론, 비번을 찾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했죠. 그런데, 이 지갑은 비밀번호 제한이 있어요. 10번까지 정확한 번호를 누르지 못하면, 안에 모든 자료가 폐기되는 시스템입니다.”
남자는 아버지의 회사가 부도 위기고, 대기업과의 소송, 거기에 아버지의 뇌졸중까지 이 복잡한 문제들이 10년 전에 우연히 받게 된 비트코인 지갑 안의 7천 개의 비트코인이라면 어떻게든 해결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건 엄청난 행운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말이다.
“처음, 이 지갑에 비트코인이 있다는 걸 기억했을 때만 해도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죠. 죽다 살아난 느낌이었거든요. 하지만 비밀번호가 생각이 나지 않았죠. 어렸을 때부터 나를 따라다니던 건망증이 내 인생 최고의 갈림길에서 나를 강하게 붙잡고 지옥으로 끌어 내리는 것 같더군요.”
결국, 이런저런 조합들을 반복하며 한번 한번 예상한 비밀번호를 눌러보았지만, 모두 실패, 그렇게 열 번의 기회 중에 아홉 번을 써버리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번의 기회가 남게 되었지만, 남자는 계속되는 비밀번호 실패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비밀번호만 기억이 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은데, 아버지의 회사도 정상화시키고, 소송 비용도 마련해서, 그 가증스러운 동신 자동차에도 복수를 하고, 사장인 나만 바라보는 직원들의 밀린 월급도 주고 말입니다. 그러면 아버지도 건강을 되찾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좋은 아들, 좋은 사장이 되어서 모두 행복하게 해줄수 있는 그런 기회가 있는데, 바보같이 나는 내가 만든 그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해서 모든 게 지옥으로 떨어져 버리는 기분이었어요.”
남자는 참기 힘든지, 몸을 긁기 시작했다.
“몸은 왜 긁으세요?”
“스트레스성 아토피죠. 원래 피부가 좀 건성이기는 했는데, 스트레스 때문에 미칠 듯이 가려워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온몸이 근질거리고 정말 돌아버리겠어요. 차라리 저 한강으로 시원하게 뛰어들고 싶게 말입니다.”
“캄 타운, 캄 다운, 진정해요. 가려움 때문에 한강으로 뛰어드는 건 너무하잖아요?”
“당신은 내 고통을 몰라요? 그리고 가려워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도저히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는다고요. 그래서 아까 이 다리 위에서 천사든 악마든, 그 비밀번호만 기억나게 해준다면, 모든 걸 다 바치겠다고 기도를 했었죠.”
“아, 그게 그런 말이었군요? 비밀번호만 풀어주면 모든 걸 다 말입니까?”
“예, 제 영혼이라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죠.”
“저기 혹시, 제가 그걸 풀어봐도 될까요?”
“최진수 씨가 말입니까?”
“무..물론, 공짜로는 아니고요.”
남자는 악에 받친 듯 광기 어린 눈으로 진수를 노려보았다.
“좋아요. 당신이 만약, 그 비번을 푼다면, 안에 들어있는 비트코인의 절반을 드리죠.”
“저..정말요?”
“대신, 비번이 틀리면, 나랑 저 한강물로 같이 뛰어드는 겁니다. 저승길로 혼자 가기는 외로웠거든요. 그래도 해보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어때요? 우연과 확률, 그리고 행운을 타고 나신 최진수 씨의 선택은 어떤 건가요?”
헉, 비번을 틀리면 같이 죽자고?
“자,,잠시만요. 1분만, 아니 30초만 기다려 주세요.”
“30초 후에는 무슨 뾰족한 수라도 생기나요?”
“아까도 말했지만, 저는 천사도 악마도 아닙니다. 하지만 확률과 우연은 언제나 저의 편이죠. 저는 저의 행운을 믿어보고 한 번 그 비밀번호에 도전해보겠습니다.”
어쨌든, 이성현은 마지막 비밀번호를 눌러볼 기회를 진수에게 주었다. 하지만, 진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이성현의 시선과 달리, 진수에게는 행운의 과자가 있었다.
그래, 과자를 먹으면 행운의 번호가 나올 테고, 그대로 누르면 되는 거 아니겠어?
“저기, 긴장도 풀 겸, 과자 하나만 먹고 하겠습니다.”
“맘대로 하시죠.”
이성현은 이미 자포자기한 건지 도도하게 흐르는 한강물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수는 행운의 과자병의 뚜껑을 열고 과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과자를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바스락거리는 과자의 소리는 한강 다리의 위의 시원한 바람 소리 속에서도 크고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입안에서 느껴지는 고소한 과자의 맛과 향이 머릿속까지 기분 좋게 퍼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입안에서 뭔가 이물감이 느껴졌다. 작은 쪽지에 적힌 것은? 뭐야?
‘1a2b3c4d5e6f’
서..설마?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가요? 비밀번호는 그냥 찍는 거 아니었나요?”
“아, 저기, 혹시 오캄의 면도날이란 걸 아십니까?”
“오캄의 면도날이라? 단순한 게 답이라는 거 아닙니까?”
“예, 그렇죠. 사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어려운 문제부터 풀지 않습니다. 어려운 걸 푸는 것보다는 쉬운 문제를 틀리지 않는 게 중요한 법이죠. 모든 고수들이 다 그래요, 가장 기본적인 것, 가장 단순한 것에서 시작을 하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러니까, 가장 쉽고 단순한 비밀번호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생각한 번호는 바로 이겁니다. 1a2b3c4d5e6f.”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겁니까? 내가 설마 이런 허접한 비밀번호를 2천억이 들어있는 코인지갑의 비번으로 설정했겠어요? 하하...하하하...내가 바보인가요? 아니면 최진수 씨가 바보인가요?”
“저..저기, 생각해보면 10년 전에는 비트코인이 뭔지도 잘 모르고, 이렇게 큰 돈이 될 줄도 전혀 상상하지 못 했을 거 아닙니까? 그리고 건망증도 좀 있으시고 하니까, 그냥 단순하고 잊어버리지 않을 비번을 설정했을 수도 있죠.”
“그래도, 이건 전혀 말이 안 되는데...”
이성현은 진수가 제시한 너무도 단순하고 허접해 보이는 비밀번호에 말문이 막힌 느낌이었다.
“어차피, 논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죠. 확률의 세계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허접해 보인다고 가능성이 더 적은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지 말고, 한 번 이 번호를 눌러 보시죠.”
이성현의 표정에서 마지막 고뇌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내 모든 걸 체념한 듯, 이성현은 천천히 비밀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확인 버튼을 누르고...
마포 대교 위의 두 남자는 시간이 멈춘 듯 얼어 붙어버렸다. 오직 강바람과 차들의 소리만 들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