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성원 소프트 (30/200)

성원 소프트

영등포 문래동

이 동네는 분위기가 좀 특이하네, 무슨 스테인레스가 이렇게 많아?

여기저기 보이는 간판에 스테인레스나 파이프라고 쓰인 곳들이 많이 보였다. 한 마디로 금속들을 다루는 철공소들의 거리라고 해야 하나?

정확하게 뭘 하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철공소나 그런 분위기의 점포들이 많이 보였다. 그리고 중간중간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카페나 레스토랑들도 있고 말이다.

쇠락한 느낌의 칙칙한 철공소 점포들 사이로 알록달록한 벽화들도 그려져 있고, 거리의 인도 한 구석에는 고깔모자를 쓴, 피노키오인지, 오즈의 마법사의 양철 나무꾼인지, 가슴에 동그란 것이 달린 것을 봐서는 아이언맨 같기도 한 정체불명의 금속 조형물도 보이고 말이다.

정체성이라는 기준으로 보자면, 뭔가 애매한 느낌이 드는 모습들이었다.

성원 소프트는 그런 문래동의 허름한 골목 한쪽의 낡은 빌딩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서 오시죠. 오병태입니다.”

사장실은 따로 없고, 사무실 한쪽에 칸막이가 쳐져 있는 곳에 성원 소프트의 오병태 사장의 책상이 놓여 있었다.

“여기 앉으세요. 누추하죠. 사무실..”

“뭐, 사업 초기에는 다 이런 식이겠죠. 창업을 하신 지는 얼마나 됐나요?”

“3개월 정도요.”

오병태 사장은 창업 자금이 부족해서 여기저기 사무실을 알아보다가, 서울시에서 문래동 쪽에 창업자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쪽으로 들어오게 되었다고 했다.

“원래, 이쪽이 작은 철공소들이 많은 곳들이었는데 IMF 이후에 철공소들이 쇠락하면서 주변 상권이나 그런 곳도 다 무너진 거죠. 그래서 도시 재생이라고나 할까요? 서울시에서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는 곳입니다. 주로 젊은 창업가들에게 기회를 주고 있어요.”

“오, 그렇군요, 어쩐지, 오다 보니까, 낡은 점포들 사이에 좀 안 어울리는 카페나 상점들이 보이더라고요.”

“하하, 이런 식으로 도시 재생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저희들은 나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여기서 창업을 했죠. 직원들도 근처에서 자취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싼 집을 구하기도 좋고요.”

같은 모바일 게임을 만드는 곳이라는데, 민소희가 소개시켜 주었던 테헤란로의 엔피 소프트와는 완전히 분위기가 다른 곳이었다.

진수가 오던 날은 먹구름이 낀 흐린 날이었는데, 성원 소프트의 사무실의 형광등 하나가 나갔는지 약간 중간에 어두운 부분도 있고 전체적으로 사무실 분위기도 좀 칙칙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어떤 모바일 게임을 개발 중인 겁니까?”

“일종의 마피아 게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마피아 게임요?”

“범인을 찾는 게임입니다. 왜 TV에서도 그런 거 많이 하지 않습니까? X맨을 찾는 그런 거 말입니다.”

“아,..”

원래 나야, TV도 잘 안 보고, 게임 같은 것도 잘 안 해서 솔직히 설명을 들어도 잘은 감이 오지 않았다. 거기다 왠지 이런 우중충한 날씨에 잘 어울리는 이런 우중충하고 칙칙한 분위기의 사무실에서 뭔가 그럴듯한 모바일 게임이 만들어질 것 같지도 않고...

도대체 여기에 무슨 행운이 있을 거라는 거지? 뭔가 행운과자에 에러가 있는 것인가?

하지만 오병태 사장은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열심히 자신의 게임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었다.

“사실, 오래전부터 기획하고 있던 게임이라, 자금만 좀 있으면 금방 개발 가능합니다. 문래동으로 들어온 것도 지금 개발 중인 게임을 만들고 싶어서였거든요.”

“흠, 그래요? 전에는 뭘 하셨나요? 역시 게임 회사 그런 곳에서 일하셨던 건가요?”

“예,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부터, 사실은 졸업은 아니고 검정고시였지만요.”

“검정고시요?”

오병태라는 이 성원 소프트의 사장은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다. 외모는 그다지 꾸미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피부도 좋고 동안에 게임 같은 걸 잘할 것 같은 인상..

실제로도 학창시절에는 게임에 미쳐 있었다고 했다.

“덕분에 학교는 잘 안 나갔어요. 인문계 학교라 공부를 안 하면 안 되는 분위기도 있었고.”

“그렇죠. 한국 학교는 대학입시 준비하는 곳이니까, 대학 준비 안 하면 따로 할 건 없기는 하죠.”

그러다가 자퇴를 하게 된 오병태는 검정고시를 치르고 게임 관련된 대학에 가려고 했지만, 그것도 잘 안 돼서 군대에 입대를 하게 되었고 거기서 게임 관련 회사에 일하던 선임을 만나게 된다.

“군대 덕분에 게임 업계로 들어올 수 있었죠. 그래서 하고 싶던 게임 회사에 들어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쪽이 그다지 대우가 좋은 편은 아니거든요. 일은 많고 월급은 적고, 그리고 단기간에 빨리 개발해서 승부를 봐야 하기 때문에 하루하루 시간 과의 싸움이고 아무튼 그에 비해 회사들이 영세해서 도산하는 경우도 많고요.”

오병태도 그렇게 이런저런 이유로 회사를 옮겨 다니다가, 결국 직접 창업을 해보자 하고 뛰어들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진짜, 이유는 직전에 다니던 회사 사장이 완전 사기꾼이었다는 거죠. 그래서 더는 못 참겠더라고요.”

“사기꾼요?”

“예, 하버드 출신이라고는 하는데, 외국에서 학위 따 온 것 외에는 게임이나 소프트웨어 쪽으로는 전혀 아는 것도 없는 사람이에요.”

“하하, 게임 회사 사장이 게임은 전혀 모른다고요? 그래도 되는 건가요?”

“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잘 되죠. 원래 집도 좀 잘 사는 집이라 그런지 하버드 졸업한 후에 미국에서 취직이 안 되니까, 한국으로 와서 부모님 돈을 밑천 삼아 사업을 시작한 거라고 하더군요. 강남 금수저 출신에 외국어 고등학교도 졸업하고, 인맥도 좋은 편이에요. 아는 사람도 많고.”

어? 뭐지?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인데?

“그래서 테헤란로 쪽에 번듯한 사무실도 차리고, 차도 람보르기니 그런 끌고 다니고 하니까, 사람들도 잘 나가는 벤처 사업가로 알고 있죠.”

스티브 킴 이야기인가? 테헤란로에 람보르기니까지?

“그런데 그 사장이 왜 사기꾼이라는 겁니까? 들어보면 하버드 출신에 잘 나가는 벤처 사업가처럼 보이는데 말입니다.”

“모바일 게임 개발을 한다고 해서 저도 들어간 건데 막상 회사에 들어가보니까, 게임 개발 같은 건 형식적으로 하더라고요.”

“형식적요?”

“예, 게임을 만들어서 정말 시장에서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겠다 그런 마인드가 아니라, 투자자들 끌어모으려고 만드는 척만 하는 거죠. 저도 회사 들어가서 일하면서 듣게 된 건데, 거기 회사 사장이 투자금을 모아서 빼돌리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겉으로 보면 얼굴도 미남이고 회사 입구에 하버드 졸업장도 떡하니 붙여 놓고, 그러면 한국 사람들은 대단하게 보는 것도 있잖아요.”

“하지만, 투자금을 모아서 개발에는 안 하고 다른 곳에 쓴다는 말이죠?”

“그렇죠. 개인적으로 차를 좋아해서 람보르기니에 페라리에.. 슈퍼카라고 하나요? 아무튼 수억짜리 고급 수입차들도 6대 정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거 다 무슨 돈으로 사겠어요? 투자금 받아서 펑펑 쓰고 다니는 건데, 다른 직원들도 그런 분위기를 알고 대충 월급이나 받으려고 회사에서 시간이나 때우고 있더라는 거죠.”

“저기, 혹시 그 사장 이름이 스티브 킴 아닌가요? 엔피 소프트 사장 말입니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저도 얼마 전에 지인에게 엔피 소프트에 투자를 해보라고 제의를 받아서 말이죠. 그래서 투자를 해볼까 고민 중입니다.”

“엔피 소프트에 투자를요?”

오병태 사장은 갑자기 표정이 좀 굳어졌다.

“예, 스티브 킴 사장이 2백억을 투자하면 지분 30%를 주겠다고 제안을 하더군요. 자기가 개발 중인 게임이 있다면서 투자를 하면 게임 출시 후에 천억의 가치는 있을 거라고 하면서요.”

“하하, 제 말을 믿으실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100% 사기입니다.”

“사기요?”

“예, 스티브 킴은 게임 개발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에요. 뭐 게임 개발을 해서 흥할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최소한 시장에 내놓을 게임을 개발하기는 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런데 스티브 킴은 그런 게 전혀 없어요. 그저 모바일 게임 개발이라는 건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위장일 뿐이죠. 그 회사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저도 더 있을 수가 없어서 그 회사를 나온 거고요.”

사실이라면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테헤란로의 화려한 오피스 빌딩에 자리잡은 하버드 출신의 잘 생긴 벤처 사업가의 이미지가 모두 허구이고, 사기에 가까운 방법으로 투자자들을 현혹하고 있다는 말이니 말이다.

“웃기는 게 스티브 킴이 게임이나 그런 건 전혀 모르고 관심도 없는 사람이지만, 최진수 사장님도 만나보셨겠지만, 스펙도 좋고 겉보기에는 참 그럴듯한 사람이거든요. 그래서인지 투자금을 끌어오는 건 정말 잘하더라고요. 여기저기 연예인들하고도 친한 모양이고요.”

오병태 말로는 스티브 킴이 끌어모은 투자금이 상당하지만 게임 개발에는 거의 투자가 안 된 상태여서 스티브 킴 말한 것처럼 출시를 앞둔 모바일 게임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가끔 투자자들에게 보여주는 게임들도 사실은 외국의 유명하지 않은 게임들을 자기들이 개발한 것처럼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튼, 스티브 킴의 진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하마터면 2백억을 투자할 뻔했으니 말이다.

역시, 행운과자의 행운의 의미는 그런 의미였던 것인가? 이익을 본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손해볼 것을 막았으니, 어쨌든 여기에 와서 2백억을 번 셈이었다.

“오, 사장님 덕분에 좋은 정보를 얻었네요, 저도 스티브 킴의 하버드 학벌 같은 것과 화려한 겉모습에 깜빡 속을 뻔했지 뭡니까? 그나저나, 오 사장님의 사업은 잘 되고 있는 건가요?

“뭐, 보시는 것처럼 좀 초라합니다. 스티브 킴이 사기를 치는 걸 보고, 차라리 내가 직접 창업을 해보자고 회사를 차리기는 했는데, 고졸 출신의 변변한 스펙도 인맥도 없는 저 같은 사람에게 투자를 해주는 사람이 없더군요.”

오병태 사장은 사기꾼 같은 스티브 킴이 모바일 게임을 빙자해서 투자금만 빼먹는 짓을 하는 걸 보고 실망과 반발심에 자기가 제대로 게임 개발을 해보자고 그동안 모은 돈을 다 털어 사업을 시작했지만,

스티브 킴과는 달리, 투자자를 유치하는 능력은 없었는지, 전혀 투자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걸 페티시즘이라고 하죠.”

“페티시즘요?”

진수의 페티시즘이라는 말에 오병태 사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군대 있을 때, 소대장님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인간이 모든 영역을 배우거나 경험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현대인은 미지의 영역이 늘어난 거죠. 마치 저 같이 게임을 모르는 사람들은 모바일 게임 개발이라는 게 어떤 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 하는 거죠. 그리고 그런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익숙한 것들도 대체하는 거죠. 예를 들면 하버드 졸업장 같은 것 말입니다.”

“졸업장이라?”

“예, 복잡해진 현대를 사는 현대인의 물신들이죠.”

“물신요?

“명문대학의 졸업장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외관을 보고 판단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런 겉으로 드러나는 좋은 스펙들이 성공을 보장해준다고 착각하는 거죠.”

“반대로 생각하면 저 같은 사람들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겠군요. 저는 대학 졸업장 같은 건 없으니까 말입니다.”

오병태 사장은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진짜 게임 개발을 잘할 사람들은 학교 다닐 때 공부 열심히 해서 명문대에 들어간 사람이 아니라, 공부 안 하고 게임하던 사람들일 텐데 말이죠. 오 사장님 같은 분들은 좀 억울하시겠어요.”

“저도 사회생활을 해보니까, 실력도 중요하지만 학벌도 무시할 수 없다는 걸 알겠더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재수에 삼수라도 해서 대학에 들어갈 걸 그랬어요.”

“그러기에는 좀 늦으신 것 같네요. 아무튼, 성원 소프트라고 했나요? 제가 투자를 좀 하고 싶은데요.”

“예? 정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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