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이유
오병태 사장은 투자를 하겠다는 말에 약간 놀란 얼굴이었다.
“투자를 하시겠다면 얼마나 하실 생각입니까?”
얼마 정도를 투자하면 괜찮은 걸까? 사실, 오병태 사장이 한다는 모바일 게임이 어떤 건지도 잘 모르겠고. 그가 성공할지에 대한 확신 같은 것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에 오게 된 행운과자의 행운이 정확하게 뭘 말하는 것인지? 성원 소프트에 투자하게 되는 행운인지? 아니면 스티브 킴에서 사기당하지 않는 행운인지도 알 수 없고 말이다.
하지만 오병태 사장 덕에 스티브 킴의 정체를 알게 되었고, 그의 인생사를 들어보니 나름 성실하게 한 길을 걸어온 사람 같아서 그의 성공을 믿는다기보다는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고 어쨌든 오병태 사장이 아니었으면 스티브 킴에게 2백억을 투자해서 날렸을 수도 있으니까, 그가 나에게 2백억의 가치는 해준 셈이었다.
원래, 길에서 지갑을 찾아줘도 10% 정도는 사례금으로 주는 건데, 그럼 20억은 투자를 해야겠지? 아니, 딱 10%는 좀 야박한 것 같으니까, 10억 정도 더해서 30억을 투자하면 되겠군.
어차피, 투자 경험도 없고, 대충 나의 머릿속에서 나온 계산은 그런 것이었다.
“30억 정도 투자하고 싶은데요. 어떻습니까?”
“사..삼십억요?”
“대신, 성원 소프트의 지분 30%를 받는 조건입니다. 괜찮을까요?”
“음, 30억에 지분 30%라, 하하..아직 그 정도 투자를 받을 단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초기 투자라는 걸 생각하면 적당한 것 같군요.”
오병태 사장도 괜찮은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사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그렇지만 시작 초기에는 성공을 예측하기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대부분 오병태 사장처럼 개인의 자산으로 시작해야 하고 그 후로 단계적으로 투자를 받아야겠지만, 나는 행운과자의 행운을 믿고 한 번 과감하게 투자를 해보기로 했다.
***
트리피오, 커뮤니티 레스토랑.
“그래서 유성 오빠 회사에는 투자를 안 하기로 한 거예요?”
아침을 먹으러 간 커뮤니티 식당에서 만난 소희는 내가 엔피 소프트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하자 실망한 표정이었다.
“어, 내가 좀 알아봤는데, 그다지 투자 펀더멘털이 좋지 않더라고.”
“그래요?”
“혹시 소희도 거기 투자한 건 아니지?”
“사실은 좀 고민 중이에요. 유성 오빠가 지금 투자하면 고수익을 챙길 수 있을 거라고 투자해보라고 했거든요.”
뭐야?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니라, 여기저기 사기를 치고 다닌다는 말이잖아. 민소희라면 어릴 때부터 알던 지인이라던데, 스티브 킴이라는 녀석도 이제 막 나가는군..
“거긴, 절대로 안 돼.”
“정말요? 투자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럼, 내가 투자는 좀 해봐서 아는데, 날 믿으라고.”
민소희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진수 오빠? 한 가지 물어봐도 돼요?”
“어, 뭐든 물어봐.”
뭘 물어보겠다는 거야?
“저기 워렌 버핏하고 정말 아는 사이예요?”
민소희도 학교에 떠도는 헛소문을 민영민을 통해 들었는지, 내가 워렛 버핏과 먼 친척쯤 되는 지 묻고 있었다.
“하하, 대체 무슨 소문을 들은 거야?”
“워렌 버핏하고는 사돈의 팔촌이라는 말을 들었거든요. 워렌 버핏 아들하고 진수 오빠 이모가 결혼해서 그쯤 된다는 것 같던데?”
“하하, 그거야 물론 헛소문이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우리 순영이 이모는 제주도에서 감자 농사를 짓고 계신데 말이다. 워렌 버핏 아들과 결혼할 미모도 아니고, 그러면 제주도에서 농사 짓느라 고생도 안 하실 테고 엄마가 순영이 이모 걱정도 안 하실 텐데 말이야.
가끔 제주도에서 농사지은 감자를 보내주시고는 하셨는데, 그러고 보니, 선물이라도 하나 보내드려야겠군.
“역시, 그렇죠? 어째, 말이 안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럼 진수 오빠가 투자로 성공했다는 것도 다 헛소문인 거죠? 워렌 버핏하고도 전혀 모르는 사이고요.”
물론, 워렌 버핏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기는 하다. 하지만 워렛 버핏의 사돈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은 나를 투자 전문가라고 생각한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고 근거도 전혀 없는 헛소문에 불과하지만,
인간의 심리라는 것이 있다고 믿으면 없는 것도 있는 것이고, 없다고 믿으면 있는 것도 없는 것이 된다.
한마디로 일체가 유심조, 일찍이 원효대사도 해골 바가지의 물을 드시고 깨달은 불가의 진리가 아닌가? 생각해보면 우리는 매트릭스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스티브 킴이 사기를 칠 수 있는 것도, 하버드 학벌이 주는 권위의 힘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민소희의 말을 들어보니, 은근히 소희도 스티브 킴에게 투자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고 말이다.
스티브 킴의 하버드 학벌 같은 이미지가 다 허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민소희가 보는 것은 여러 가지 복잡한 물신들로 이루어진 매트릭스의 세계니까 말이다. 민소희가 사기 당하는 걸 막기 위해서는 진실이 아니라, 더 그럴듯한 거짓이 필요했다.
거짓을 이기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더 큰 거짓이다.
“버핏 형님을 알기는 알지.”
“버핏 형님요? 워렌 버핏은 나이가 엄청 많지 않나요?”
“아, 뭐, 그렇기는 한데 원래 미국 사람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친구 먹고 그러잖아..”
원래는 어디 뉴스에서 이름이나 한 번 들어본 사람이었지만, 학교에 워런 버핏과 사돈의 팔촌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나도 호기심에 어떤 사람인지 한 번 검색을 해 본 적이 있었다. 투자의 천재로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그의 인생 자체가 그야말로 드라마인 인물,
6살 때 동네에서 껌과 콜라서 용돈을 벌어쓸 정도로 장사에 재능이 있었고, 이미 10대 시절에 주식 투자를 시작해 돈을 벌었다고 한다. 20대의 워렌 버핏은 30살까지 백만장자가 되지 못하면 오마하의 가장 높은 빌딩에서 뛰어내리겠다고 친구들 앞에서 큰 소리를 치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워렌 버핏이 빌딩에서 뛰어내릴 일은 없었다.
어쨌든 1930년 생이니까, 엄청 나이가 많은 큰 형님, 아니, 할아버님뻘인 것은 맞다. 아무튼, 워렌 버핏 이야기를 꺼내니까 민소희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정말, 진수 오빠랑 워렌 버핏이랑 아는 사이에요?”
“뭐, 아주 친한 건 아니고, 내가 귀감으로 삼고 계신 형님이지. 그분이 젊은 시절부터 자본주의의 속성을 제대로 깨달은 분이거든.”
“자본주의의 속성요?”
“그래, 버핏 형님이 젊었을 때 친구들 앞에서 30살까지 백만장자가 되지 못하면 빌딩에서 뛰어 내리겠다고 한 적이 있었어.”
“어머, 그래요? 사진으로 보기에는 차분해 보이시는데, 의외로 다혈질이셨네요?”
“그런데 그게 그냥 한 말이 아니라, 버핏 형님의 심오한 깨달음이 있으셨다는 거지.”
“심오한 깨달음요?”
“그래, 말하자면 이 세상은 자본을 바탕으로 한 거대한 매트릭스의 세계고, 세상은 오직 자본가들을 위해서, 부자들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거야. 나머지는 다들 부자들의 들러리에 불과하지, 그래서 돈을 번다는 건 단순히 생존이나 자아실현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적인 선택이라는 거야.”
“매트릭스요? 그건 영화잖아요? 키아누 리브스 나오는 거 말이죠?”
“그래,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도 별반 다르지가 않아. 거대한 자본주의 매트릭스고, 여기에서 부자로 태어나거나 아니면,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돈을 벌어서 적어도 30살에는 백만장자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거지.”
“그게 아니면, 빌딩에서 뛰어내려서 자살하는 게 더 낫다는 건가요?”
물론, 너무 극단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워렌 버핏의 생각은 자본주의 매트릭스에서 선택받은 부자가 될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이 매트릭스를 거부하고 다른 현실을 찾아 떠나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판단일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매트릭스를 벗어나면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겠지만 말이다. 다행히도 민소희는 워렌 버핏을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친분이 있는 척하는 나의 거짓말에 넘어간 것인지, 아니면 소희도 평소부터 알던 스티브 킴의 됨됨이가 불안했던 것인지, 결국, 스티브 킴의 회사에 투자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그리고 얼마 후, 민영민에게서 스티브 킴이 투자자들의 돈을 빼돌려서 미국으로 야반도주를 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가 있었다.
***
“정말이야? 스티브 킴이?”
“예, 역시, 진수 선배가 투자에 대한 안목이 있으신 것 같아요. 소희에게도 엔피 소프트는 위험하다고 투자하지 말라고 하셨다면서요?”
“뭐, 그랬었지. 그 회사는 워렌 버핏의 투자 방식에서 보면 투자가치가 없는 회사거든.”
“오, 그래요. 어떤 점에서요?”
“일단, 오너가 별로 믿음이 안 가더라고, 업계에서 소문도 안 좋고 말이야.”
“역시, 정보가 빠르시군요. 그럼 진수 선배처럼 정보력이 좋은 투자자라면 언제나 투자에 성공할 수 있는 건가요?”
“물론 그건 아니지. 워렌 버핏의 대표적인 투자방식은 분산 투자야.”
“분산 투자요?”
“그래, 경쟁적인 시장에서 업계 1위와 2위, 3위의 기업에 골고루 투자를 하라는 거지, 누가 그중에서 시장을 장악하고 시장을 독점해서 수익을 낼 수 있는지는 사실 예측 불가능한 신의 영역이거든.”
“그래요? 전 뭔가 어마어마한 분석기술로 족집게처럼 집어낼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군요?”
민영민은 약간 실망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오마하의 현인이라는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은 검소한 삶으로도 유명한데 아직도 맥도널드의 햄버거와 코카콜라가 그가 유일하게 즐기는 식도락이라고 하니까 말이다. 아무튼, 그의 서재에 한 칸을 차지하고 그가 평생을 즐겨 읽는 책이 바로 철학자 버틀런트 러셀의 책들이고 특히 버핏이 신봉하는 것은 러셀의 불가지론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세상만사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정확하게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미지의 변수가 존재하는 셈이다.
버핏의 투자 방식도 과도한 확신을 배제하고 언제나 미지의 가능성에 문을 열어놓는 방식이다. 그래서 버핏은 항상 뭔가에 집중해서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능성에 분산투자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래, 미래를 알 수는 없는 일이니까, 오히려 불가지의 미래를 어설프게 확신하는 것보다는 여러 가지 확률을 고려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는 거야.”
“그러면 결국 투자도 운이네요?”
“그렇지, 눈에 보이는 실패의 요소를 배제해서 최대한 성공 확률을 끌어올려야 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운이 좋아야 하는 거 아니겠어? 아무튼, 나는 엔피 소프트 말고, 성원 소프트라는 곳에 투자를 했거든.”
“성원 소프트요?”
“그래, 너도 한 번 해봐, 거기서 만든 라스트 마피아라는 게임인데, 난 게임을 안 좋아해서 잘 모르겠는데, 게임 좋아하는 애들을 재밌을 것 같더라고.”
사실, 워렌 버핏을 만나 적도 없고 그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 있는지도 알 수가 없지만, 나의 느낌적인 느낌으로는 결국 워렌 버핏도 운이 좀 따른 투자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나처럼 말이다.
별 기대 없이 성원 소프트에 투자를 하고, 지분 30%를 얻게 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성원 소프트에서 개발한 모바일 게임 라스트 마피아가 어마무시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
문화 대학교 교정
“야, 정말이야? 라스트 마피아를 최진수 선배가 개발한 거라고?”
“그렇다니까, 그거 만든 회사가 성원 소프트인가 하는 회사인데, 최진수 선배가 투자를 해서 키운 회사라는 것 같아.”
“역시, 워렌 버핏에게 투자를 배웠다는 것이 사실이었나?”
“버핏 회장하고는 가끔 만나서 햄버거도 먹고 그러는 사이라는 것 같아. 미국에 가면 한 번씩 만나다나 봐.”
“설마? 그리고 워렌 버핏은 억만장자인데, 무슨 햄버거를 먹겠어?”
“그런가? 하긴, 그건 좀 이상하다. 무슨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이라면 몰라도 말이야. 아무튼, 성원 소프트가 아직 상장은 안 해서 정확하게 평가가 나오지 않았지만 최진수 선배도 어마어마하게 돈을 벌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