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섬
제주 대학교
“역사 선생님이라는 건 학생들이 지어준 제 별명이었죠.”
고성진 교수는 제주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역사 교수는 아니었다고 한다, 오유정을 만났을 때는 지금으로부터 20년전..
“그때는 막 제주교대를 졸업해서 초등학교 교사에 임용되었을 때였죠, 지금은 제주교대는 제주 대학에 통합돼서 제주대 사라 캠퍼스가 되었죠.”
“그러니까, 진짜 역사 선생님은 아니고, 별명이 역사 선생님이셨다는 말이군요?”
“맞아요, 초등학교 때의 기억으로는 고성진 선생님은 항상 제주도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거든요. 초등학생들끼리 만들어 부르던 별명이죠. 로보트 선생님, 호랑이 선생님 이런 것처럼요.”
고성진 교수는 초등학교 교사로 처음에 아이들과 어떻게 친해질까? 고민을 많이 했다고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옛날이야기, 특히 제주도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 것이었다. 본인 스스로도 오래된 전설이나 제주 역사에 관한 이야기들에 관심이 많았고,
그러다 보니, 초등학생들에게 고성진 선생님은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는 역사 선생님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진짜 역사 교수님이 되신 겁니까?”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제주 교대에서 역사 교육학을 더 공부할 기회가 생겼어요. 저도 평소에 역사 분야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기회가 생기자 바로 대학원에 진학을 했고 그렇게 20년 정도가 지나자 이렇게 역사학 교수 직함을 달게 되었습니다.”
듣고 보니 사람의 운명이라는 게 뭔가, 어떤 길로 이끄는 운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별히 노력을 했다기보다는 해류에 이끌려 먼 바다를 건너 도착한 유리병 속의 편지처럼, 어떤 거대한 세상의 흐름에 이끌려 지금의 역사학 교수가 되었다는 말처럼 들렸던 것이다.
“오유정 씨가 고성진 교수님은 제주도의 금괴 전문가라고 하던데요?”
“하하, 뭐, 틀린 말은 아니죠. 지금도 일 년이면 몇 명씩은 저를 찾아옵니다.”
“누가 말인가요?”
“제주도에 묻힌 황금을 찾으려는 사람들이죠. 제주도는 사실, 황금의 섬이죠.”
“황금의 섬요?”
“예, 거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황금백합작전과 결7호작전 두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황금백합작전요”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작전이라면 무슨 전쟁 시나리오나 그런 건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고성진 교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간단하게 말하면, 황금백합작전은 플랜B라고 할 수 있죠.”
“플랜B요?”
고성진 교수의 말에 의하면 백합은 일본 왕실의 상징이다. 조선왕실의 상징이 오얏 문양인 것처럼 일본 왕실에서는 예전부터 백합 문양을 왕가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어로 백합을 말하는 사유리도, 일본어로는 꽤나 고풍스러운 어감인 것이다. 그래서 일본 문학 속에 등장하는 사유리라는 여자 이름도 귀족적이고 단아한 이미지가 있는 것이 많다.
아무튼, 바야흐로 태평양 전쟁 말기..일본 제국은 전세가 기울었다는 자체 판단을 하고, 일본의 전쟁을 이끌었던 육군 중심의 군부는 전쟁의 패망을 예감한 듯, 전쟁에 패한 이후의 일본의 재건 문제를 고심하기 시작한다.
기세 좋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를 침략했지만 미국이라는 난적을 만났고, 유럽 쪽의 동맹인 독일의 전세도 불리하게 돌아가자, 급하게 전후 일본의 재건이라는 그리고 그들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인 일본 왕실의 존속 같은 문제들을 심각하게 논의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전쟁 승리 후 아시아 제국 건설이라는 플랜A의 실패 후 패망한 일본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일본 왕실을 지켜낼 플랜B인 황금백합작전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꽤나 치밀한 녀석들이군요. 전쟁 중에 이미 패전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말이니까요?”
“맞습니다. 일본인들의 특성이죠. 한국인처럼 빠르게 움직이지는 않지만, 천천히 이것저것 따져보는 일에는 장점을 가진 민족이죠. 황금백합작전도 그런 일본의 특성이 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 패한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패전국 일본이 살아남을 방법은 무엇인지, 고심 끝에 일본군부는 군사적 패배가 필연이라면 그 후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신중하게 따져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론은 바로 황금이었다. 전쟁의 패배라는 것은 한 국가가 가진 모든 역량의 상실을 의미한다. 군사력과 정치력, 외교력, 그리고 통화 지배력까지 마치, 대한제국이 일본에게 점령당해 식민 지배들 당하면서 모든 국가의 힘을 상실했던 것처럼 미군이 일본을 지배하게 되고 일본 역시도 미국에게 모든 국가적 역량을 박탈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국가 차원의 힘이 모두 사라진 후에도 가치와 힘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황금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면 일본군부가 패전 이후에 대비하기 위해 황금을 모았다는 건가요?”
고성진 교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사실은 황금백합작전 이전부터 일본제국주의의 황금 수탈은 있어 왔었죠. 일본의 역사를 좀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근대 일본을 만든 것은 메이지 유신을 일으킨 사무라이 계급이고 그들이 군부로 진출해서 근대적인 일본 군대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태평양 전쟁 당시의 군 지휘관들은 사무라이 출신들이 많아요. 군대 장교라는 정체성도 있지만 사무라이 집단 출신의 폭력배의 성질도 있는 거죠.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군대에서의 권력을 바탕으로 개인적인 치부를 한 경우도 많고요. 대표적인 인물이 남방군 사령관이었던 야마시타 같은 경우죠.”
한 꺼풀 벗겨보면 야쿠자와 다를 것이 없는 것이 일본의 군대였고, 당연히 태평양 전쟁 중에 수많은 만행과 광기를 저지르게 된다. 그 중에 하나가 아시아 각지의 황금을 비롯한 귀금속들을 약탈한 일들이다. 특히 일본의 전선이 중국과 동남아 각지로 퍼지면서 이런 일본군의 황금 사냥은 점점 더 규모가 커지게 된다.
그리고 전세가 기우는 시점이 되자, 이런 아시아 각지에서 약탈한 황금을 전후의 비자금으로 쓰기 위해 황금백합작전을 은밀하게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황금백합작전은 크게 전후 일본 부흥과 전쟁을 일으킨 일본 왕실과 일본군부의 사면 같은 일들을 진행하기 위해서 막대한 황금을 일본 혹은 그들이 관리 가능한 곳에 보관해서 그 금권의 힘으로 패전 후에도 영향력을 유지한다는 계획이었죠. 그리고 그 황금백합작전의 일환으로 해외에 나가 있는 황금과 그 황금을 가지고 있는 병력들도 천천히 일본본토로 철수시킨 겁니다.”
“그럼 아까 황금백합작전과 함께 결7호 작전을 알아야 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결7호 작전은 일본본토 사수 작전으로 알려져 있죠. 쉽게 말해서, 일본본토로 미군이 들어오지 못하게 미군이 들어올 입구들을 하나하나 방어하겠다는 계획입니다.”
44년 말이었다. 미군이 일본본토를 공격할 것이라는 것이 거의 확실해진 상황, 일본군은 미군의 공격 경로를 미리 예상해 보고 있었다.
하나는 사이판과 괌을 거쳐, 일본 남서부 간토 평야에 상륙하는 경로, 또 하나는 필리핀, 오키나와를 거쳐 제주를 점령한 후, 큐슈에 상륙하는 경로였다.
그에 따라, 일본본토를 지키는 작전명 ‘결전작전’이 만들어진 것이다.
결 1호 작전은 홋카이도, 결 2호는 지시마, 그런 식으로 토후쿠, 간토, 토카이, 츄부, 규슈, 그리고 결 7호 작전이 바로 제주도였다. 각, 지역별로 본토 공격을 막기 위해 결사 항전한다는 계획. 그리고 미군을 막기 위해서라면, 그 지역 주민과 시설, 농토 등, 모든 것을 파괴하고 사살한다는 극단적인 계획까지 마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전작전을 위해서는 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제주도에는 관동군 7만의 병력이 진주하게 된 거죠.”
“그럼, 황금 이야기는 그 관동군들이 황금을 가지고 제주도로 들어왔다는 거겠군요?”
“맞아요. 공식적인 군사작전인 결전작전 외에도 비공식적인 비밀작전인 황금백합작전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는 거죠. 중국 본토를 침략하던 관동군은 그동안 대륙에서 막대한 황금을 약탈한 상태였고 그 황금들을 일본본토로 가져가기 전에 중간 단계로 제주도로 가져온 거죠.”
여기서 바로, 제주도 황금의 전설이 시작되는 것이다. 패망을 감지하고 있던 일본 관동군은 마지막 결전을 준비한다면 제주도에서 군사시설을 만들며 미국의 진격을 기다리고 있는 동시에 자신들이 약탈한 황금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애초에는 일본본토로 수송할 계획이었겠지만, 일본본토로 미국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일본본토라고 해서 그들 입장에서는 안전한 곳은 없었다. 그래서 일본군들이 후일을 기약하며 제주도의 곳곳에 금괴와 보석들을 묻어두고 떠났을 것이라는 제주 황금에 대한 소문이 만들어진 것이다. 나름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 황금은 찾은 건가요?”
“하하, 뭐, 사실 관동군 황금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만 실제로 그 황금을 찾았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물론, 황금을 찾았다고 해도 그걸 신문기자에게 인터뷰를 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이유는 없겠죠. 최진수 씨가 그런 황금을 찾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세상에 알릴 건가요?”
“물론, 그건 아니겠네요. 오래된 유물이라면 또 모를까? 황금이라면, 환금성이 좋은 귀금속이죠. 어디서든 쉽게 판매할 수도 있고요.”
“맞아요. 설령 그런 황금이 어디서 발견되었다고 해도 그걸 찾은 사람이 몰래 그 비밀을 감추어두고 있을 거라는 거죠. 그게 황금이 여타의 다른 역사적 유물들과는 다른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역사는 보통 우연이든 아니면 의도적인 발굴이든 유물을 통해서 그 실체가 들어나는 일들이 많은데, 이런 황금과 관련된 역사적인 사실은 발견 자체도 어렵겠지만 우연히 발견된다고 해도 발견자가 세상에 발표하기보다는 몰래 황금을 처분하고 싶어할 테니까요.”
“그래서, 더더욱 제주도 황금에 대한 전설 같은 풍문들만 떠도는 거겠군요? 그 샛별 오름에서 황금을 찾는 사람들처럼요?”
“그렇죠.”
“선생님, 그런데 정말 샛별 오름에 일본군 황금이 있다는 근거가 있는 건가요?”
오유정의 질문에 고성진 교수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좋은 질문이야. 뭐, 예전부터 그런 관동군의 황금 이야기는 많지만, 사실 명확하게 맞다 틀리다 이야기를 하기는 어려워, 정확한 자료가 남아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하지만 샛별 오름도 나의 책에 나오는 여러 후보지 가운데 하나이기는 하지.”
“책요?”
고성진 교수는 약간 부끄러운 듯 수줍게 미소를 지으면 책장에서 책 두 권을 꺼내서 나와 오유정에게 한 권씩 선물이라며 건네주었다.
책은 하드커버로 된 꽤 고급스럽고 두꺼운 책이었다. 책의 제목은 탐라 황금의 비밀, 이라고 적혀 있었다.
“저자가 고성진 교수님이네요?”
“하하, 부끄럽기는 한데, 저도 그런 황금이나 금괴, 보물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죠. 사실 재미있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있던 역사나 전설 중에서도 가장 좋아했던 이야기는 황금과 보물에 관한 것들이었죠. 아무튼, 제주도가 고향이기도 하고 교사와 교수 생활을 하면서 나름 이런 연구를 할 시간도 있었고 해서 취미 삼아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겁니다.”
책에는 관동군의 황금에 대한 전설들 특히, 민간에 떠도는 일본군 황금의 매장지로 거론되는 곳들에 대한 소개와 나름의 타당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적혀 있었다.
“샛별 오름도 나오네요?”
“그곳도 예전부터 인근 주민들 사이에 일본군이 샛별 오름에 땅을 파고 뭔가를 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 중에 하나예요. 물론, 아직은 발견된 건 없지만 꾸준히 발굴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죠.”
고성진 교수가 풀 컬러로 여러 가지 사진들 위주로 만들어 낸 탐라 황금의 비밀은 그 외에도 관동군 58군 사령부와 예하 96사단이 주둔했다는 산천단과 일본군 비행장이 있었다는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 같은 곳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각각의 매장 예상지마다 번호가 매겨져 있네요?”
“예, 조사를 하다 보니까, 각 지역마다 여기 쯤이다 하는 매장 예상지들이 꽤 많더라고요. 그런데 샛별 오름만 해도 이런저런 소문들이 많아서 전설이 있는 곳들이 많아요. 대부분 그냥 산이나 들판 어디어디 하는 식이어서 정확하게 지명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곳들이라 직접 사진을 찍고 번호를 매긴 거죠.”
그렇게 번호를 매긴 황금 매장 예상지가 3백 개 이상이었다. 이런 일본군의 황금에 대한 전설이라면 정식 역사로 분류하기도 애매해서 학술적으로는 평가받기 어려울 텐데, 황금과 보물 전설을 좋아하는 역사 교수님의 취미치고는 상당한 작업인 셈이었다.
음, 그런데, 번호가 매겨져 있네? 번호라?